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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방문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9-02-26 16:44     조회 : 15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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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도 덕분에 4박5일 동안의 북한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한 사회를, 그것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제한된 곳만 보고 듣고 와서 그 사회가 어떻다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 무척 두렵습니다. 물론 그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 너머의 의미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것 사이사이로 보이는 그 사회의 속살과 그곳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파악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만, 북한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진실과 여러 층의 실체 가운데 몇 부분의 진실과 실체만을 보고 왔음을 우선 한계로 인정해야겠지요.

첫 날(4월 28일)은 인천공항에서 중국 심양으로 가 그곳에서 북한 고려항공으로 갈아타고 순안공항에 도착하니 저녁이 되었고, 숙소를 안내받고, 4박5일 동안 우리를 안내할 분들과 만찬을 하면서 관계를 트는 것으로 일정을 끝냈습니다.

둘째 날(4월 29일)은 아침 일찍 김일성이 태어난 만경대 유적지를 보았습니다. 북한 최대의 명절인 김일성 생일(4월 15일)이 지난 지 두 주 정도 지난 시점이라 군인, 학교, 직장 단위로 참배객이 많이 밀려있더군요.

그리고 곧바로 10시부터 시작되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칠골교회로 향했습니다. 현재 북한에는 공식적인 교회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고, 각 지역별로 북한 당국이 인정하는 가정예배처소가 500여개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봉수교회는 1500여석 규모로 크게 신축하고 있는 중이라 저희는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칠골교회는 김일성이 죽기 2년 전인 그의 어머니 강반석 여사를 기념해 학자들을 동원해 해방 전에 있었던 그 교회당 모습 그대로를 복원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2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전형적인 시골교회당의 모습이었는데, 우리와 같은 방문객과 외국인이 100여명, 북한 교인들이 100여명 참석해 꽉찬 상태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흔히 북한교회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북한이 1989년 봉수교회를 지은 후 이전에 기독교인이었거나 기독교 집안 출신 사람들을 모아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기 때문에 완전히 진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짜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과 기독교 신앙을 그 내면에서 어떻게 조화하고 있는지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부분이고요. 다만 저희가 같이 예배 드리면서 느낀 것은 전체적인 예배 분위기나 목사님의 설교, 장로님의 기도, 성가대의 찬양, 참석한 분들의 얼굴과 태도에서 드러나는 예배 드리는 자세 등은 지극히 복음적이고 전통적인 신앙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예배 실황을 비디오로 담아 왔습니다) 특히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모든 성도들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부르는데 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더군요.

이들이 사용하는 성경책은 우리와 똑같은 66권(요한계시록만 묵시록이라고 표현했더군요)에 번역을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매우 쉽게(우리나라 ‘쉬운성경’보다 더 쉽게)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고, 찬송가는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와 같은데, 400곡만 포함시켜 부르고 있었고, 찬송가 부록으로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이 실려있더군요.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인민대학습당’을 관람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되는 곳인데 평양 시내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매우 웅장한 규모더군요. 인민대학습당이 언덕에 위치하고 그 아래에 김일성광장이 있고 그 좌우편에 북한 각 중앙행정기관들이 위치하고, 대동강 맞은편에 주체사상탑이 세워져있는 모양이죠. 인민대학습당의 시설과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시민들을 둘러본 후 대동강 맞은편으로 가 주체사상탑을 보고, 주체사상탑 전망대에 올라가 평양 전경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해방 직후 김일성이 북한에 들어와 첫 연설을 했던 곳에 세워진 개선문과 모란봉 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평양은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된 곳에 새로 건설한 계획도시로 도심만 따지면 서울의 두세 개 구 정도의 면적에 해당될 것 같고, 대동강과 보통강이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잘 계획된 도시 계획에 의해 건설된 멋진 도시였다. 물론 최근 20년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가꾸지 못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 김일성 부자를 중심으로 한 사상적 통일성이 모든 도시 계획에 깊게 배여 있어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셋째 날(4월 30일)은 오전에는 평양 제1중학교와 소학교(북한에서는 보통 소학교와 중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음)를 보았고, 오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보았습니다. 북한은 유치원 1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 이렇게 11년제 의무교육 체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평양 제1중학교는 전국에서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이고, 소학교는 평양 시내에서 고위급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학교 건물과 시설만 볼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교사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아이들과 교사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평양에서도 제일 좋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이나 시설은 많이 낡고 오래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너무도 밝고 총기가 넘쳐 희망을 보는 듯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영어, 수학, 화학, 컴퓨터 수업을 참관했고, 소학교 한 학급, 음악 소조활동(특별활동)을 보았습니다.

북한은 교육 체계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이는 새터민들도 공감하는 바이고요. 11년 무상교육은 물론이고, 교사들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 학교에 계속 근무하고, 담임은 소학교에서는 4년 내내, 중학교에서는 6년 내내 한 교사가 담임을 합니다. 그리고 오전에 5교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소조활동(특별활동)을 하거나 나머지 공부를 하는데, 학교에서 모든 교육을 일체 책임지는 시스템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부자에 대한 사상 교육이 모든 교육에 과잉으로 넘쳐나는 것은 안타까웠고, 학교 벽면에 붙은 성적 순 게시물은 우리나라 1970년대를 보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와 학용품, 학습도구의 질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할지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오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남한의 대학에 비하면 자그마한 규모였습니다. 1945년 토지개혁으로 인해 농토를 받은 한 농민이 그 다음해 수확한 곡식을 헌납한 것을 기반으로 해서 세워졌다고 하는데, 본관과 사회과학관, 자연과학관 이렇게 큰 3개의 건물로 지어졌고, 한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도 오전에 모든 수업을 다 하고 오후에는 다른 활동이나 개인 공부를 하는 체계라 수업장면은 볼 수 없었고, 본관에 있는 김정일 관련 전시관만 둘러보고, 지나가는 대학생들과 약간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에 그쳐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인민대학습당, 평양 제1중학교에서도 그랬지만 김정일 관련 전시관이 학교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리랑 대축전을 관람했습니다. 마침 아리랑 대축전을 하는 기간이라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북한이 자랑하는 집단체조인 아리랑 대축전을 글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만, 능라도 5.1종합운동장이라는 대형 운동장(잠실 운동장보다 더 크게 느껴짐)10만 명이 동원되어 벌이는 카드 섹션과 집단 체조는 북한이 가지고 모든 음악, 미술, 교예, 체육 등이 동원된 북한식 종합예술인 셈이죠. 일단 그 형식 면에서 이런 것을 기획하여 시행할 수 있는 그 역량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면에서 강한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도력에 대한 찬양, 통일에 대한 강한 염원 등을 매우 정서적인 방식으로 호소하고 있는데, 외부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그 체계와 지도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체계가 갖고 있는,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불편함으로 인해 공연 내내 힘이 들었습니다.

넷째 날(5월 1일)은 황해북도 봉산군 천덕리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은 ‘면’이 없고, 군 아래 3-4개의 ‘리’로 구성되는데, 하나의 ‘리’가 하나의 협동농장이 됩니다. 우리가 방문한 천덕리 농장은 재미교포 농업학자인 김필주 박사가 4년 전부터 북한과 합작하여 경영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으로 김박사는 이곳을 포함하여 4개 농장의 농업 기술을 비롯한 각종 농촌 개선 사업을 지도하고 있었고,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북한 방문도 이 김필주 박사님이 공동대표로 계신 통일준비네트워크라는 단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죠. 국내에서 20년 정도 통일운동을 해 오신 비전아카데미 안부섭 대표가 이 통일준비네트워크를 통해 천덕리 농장에 있는 학교에 학용품을 지원했고, 우리는 이 학용품 지원 현장 확인 및 추후 지원 협의차 방문에 동행한 것입니다. 

천덕리 농장으로 가기 위해 처음으로 평양을 벗어났습니다. 일단 평양도 도심을 벗어난 지역은 전형적인 시골이었고(북한은 지역자립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평양도 도심과 4개의 군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죠), 이후 봉산군까지 가는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농촌의 모습과 봉산군 천덕리에서 목격한 다양한 삶의 모습(물지게 지고 물 길러 다니는 사람,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사람, 소 달구지로 물건을 나르는 사람,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 나물캐는 아낙네와 아이들의 모습, 텃밭 가꾸는 사람, 흙 벽돌 찍는 사람 등)을 통해 농촌 마을의 실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평양으로 돌아오니 노동절 공휴일이라 사람들이 평양 시내 곳곳이 사람으로 넘실거리더군요. 공원 곳곳에서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참 이들도 가무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가족들끼리 나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 연인들끼리 팔짱을 끼고 데이트하는 모습 등 다양하고 평화로운 일상들을 보며, 사상적인 부분만 인정하면 그 내부에서는 인간이 사는 모습이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곳이 평양이니까 좀더 그럴 수 있겠지만 시골 지역의 분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일단 이 사회가 경제적인 침체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고 노는 것과 술을 좋아하고 가족간의 유대가 강한 한국 전통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이 느껴지더군요.

다섯째 날(5월 2일) 아침 4박5일 동안 빈틈없이 동행하며 대화를 나누었던 두 참사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그 동안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지려니 아쉽더군요. 다시 평양 순안공항, 심양을 거쳐 돌아오는 길, 처음 평양갈 때와 달리 이제는 긴장이 풀려 참 편안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북한 가서 고생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먹고 자는 문제는 최고 대우를 받았습니다. 북한 체제 자체가 우리를 외국인 대우를 하기 때문에 호텔에 묵게 하고 음식도 진귀한 것으로 대접했습니다.(물론 돈은 우리가 다 내고, 이것도 북한의 주요한 수입이 됩니다) 그리고 보여주는 것도 가급적 주민들의 일상 생활이 아닌 그 사회 최고의 좋은 부분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더군요. 사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의 선택권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보여주는 모습 간간이 보이는 북한의 속살을 보고 느끼며, 보여주는 것 너머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스스로 많이 정리를 하고 왔을 뿐입니다.

이 모든 느낌과 해석들은 지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자세히 정리를 해서 마치 여러분이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초대할 수 있도록 정리해서 편지와 사진의 형태로 다시 보내겠습니다.

북한 학교 돕기 부분도 협의를 하고 조금 더 구체적인 길을 터고 왔습니다만, 이 부분도 좀더 내부 논의와 여러 다른 협력 단체들과의 협의를 거쳐 구체안을 마련하고 회원 여러분들에게 제시를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좀더 정리된 형태로 보고드릴 것을 약속하고 간단하나마 갔다온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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