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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관광지] 제갈량의 사당 - 무후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6-09-01 17:24     조회 : 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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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광지] 제갈량의 사당 - 무후사
     

                             (사진설명: 아름다운 무후사)

개관:

중국에는 삼국시기 촉(蜀)나라의 재상인 제갈량(諸葛亮)을 기리기 위한 사당 무후사(武侯寺)가 아주 많다. 그 중 성도(成都)의 무후사가 가장 유명해서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에도 언급된다.

성도의 무후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임금과 신하가 함께 공양된 사당이고 중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보여주는 삼국유적박물관으로 삼국성지 (三國聖地)로 인정된다.

역사:

서기 234년, 제갈량이 전쟁터, 오늘날의 섬서(陝西) 보계(寶鷄)에서 54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제갈량은 촉한의 재상이고 생전에 "무향후(武鄕侯)"로 봉받았으며 사후 "충무후(忠武侯)"라는 이름을 얻어 그의 사당은 이름이 무후사이다.

최초의 무후사는 제갈량이 타계한 장소인 섬서에 세워졌지만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큰 무후사는 서진(西晉) 초반인 260년대에 신축한 성도의 무후사이다.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서기 223년, 유비가 타계한 후 그의 묘지를 성도에 두고 혜릉(惠陵)이라 이름했다. 한나라 제도에 의하면 무덤이 있는 곳에는 필히 사당이 있어서 같은 시기 한소열묘가 세워졌다.

그 뒤 명(明)나라 초반에 무후사를 개축할 때 무후사와 유비의 무덤, 한소열묘를 하나로 합쳐 임금과 신하를 함께 공양하는 사당을 만들어 오늘날에 이른다.

무후사의 건물은 1672년 청(淸)나라때 개축한 건물이다. 1961년, 무후사는 중국 중점문화재 업체로 선정, 1984년 박물관으로 되었으며 2008년, 중국 1급 박물관으로 선정되었다.

주요명소:

부지 4만 제곱미터에 가까운 무후사는 구도가 엄밀하고 대궐이 첩첩하며 소나무가 울창해 유구한 역사와 짙은 삼국문화, 수려한 경치로 장엄하면서도 숙연한 느낌을 준다.

무후사의 주요 건물은 모두 남북향의 중심선상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부터 대문과 이문(二門)을 거쳐 한소열묘, 홀, 무후사 건물이 있고 무후사의 뒤에는 삼의묘(三義廟)와 결의루(結義樓) 등 건물이 있다.

사당내에는 유비와 제갈량 등 촉한 영웅 조각상 50여점이 있고 당나라와 그 후의 석각 50여점, 당(唐)나라의 삼절비(三絶碑)와 청(淸)나라의 공심(功心')주련을 망라해 액자와 주련 70여점이 있다.

그 중 최고는 악비(岳飛)가 직접 쓴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와 글과 서예, 조각이 세 가지 절묘함을 이루는, 일명 삼절비로 부르는 비석 <촉한 재상 제갈량 무후사당비 (武侯祠堂碑)>이다.

한소열묘 간판이 걸려 있는 사당의 정문에 들어서면 짙은 녹음속에 6점의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중 서기 809년의 당나라때 세운 "촉한 재상 제갈량 무후사당비"가 있다.

당나라때의 문장대가와 서예대가, 석각대가의 손에서 탄생된 삼절비에는 제갈공명의 생애가 적혀 있고 그의 일생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로써 당나라 집권자들을 격려한다.

비문은 제갈량이 마속의 목을 벨때 마속이 죽어도 한이 없다고 목을 내놓은 일과 제갈량에 의해 유배된 요립이 제갈량의 부고를 듣고 통곡했다는 일을 적었다.

비문은 절절한 어휘를 사용하고 문필이 호방해 아무리 읽어도 감칠맛이 난다. 양각과 음각으로 된 비석의 옆면에는 당나라와 송(宋)나라, 명나라, 청나라때의 글이 새겨져 있다.

정문에서 마주한 곳에는 유비전을 일컫는 한소열묘전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본전 중앙에는 금박칠을 한 3m 높이의 유비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그의 자손 조각상이 양쪽에 기립해 있다.

본전의 별채에는 동쪽에 관우(關羽)의 부자와 주창(周倉), 서쪽에 장비(張飛)의 조손 3대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생동한 조각상에서 서로 판이한 관우와 장비의 성격, 그들의 용맹한 성격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동쪽의 회랑에는 방통(龐統)을 대표로 하는 촉한의 문신들 조각상이 있고 서쪽의 회랑에는 조운(趙雲)을 대표로 하는 무신들 조각상이 있다. 실물과 같은 크기의 조각상 옆에는 그 인물의 생애를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유비전을 나와 계단을 내려 홀을 지나면 무후사간판이 보인다. 무후사 본전에는 제갈량 조손 3대의 조각상이 공양되어 있는데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에 부채를 잡은 제갈량의 조각상에는 금박칠을 했다.

조각상 앞에 있는 북은 제갈량이 싸움터로 갈때 가지고 다니던 북이라고 해서 "제갈고(鼓)"라 한다. 정교한 무늬가 있는 제갈고는 귀중한 역사문화재이다.

무후사에는 유비와 제갈량, 관우, 장비가 모두 각자의 대궐을 가지고 있고 그 외의 28명의 문관과 무관들은 문무랑(文武廊)에 공양되어 있다. 동쪽이 문관이 있는 문관랑(文官廊)이고 서쪽이 무관이 있는 무장랑(武將廊)이다.

     

         (사진설명: 유비묘의 일각)

제갈량전의 서쪽에 혜릉(惠陵)이라 부르는 유비묘가 있다. 이 능묘는 제갈량이 유비를 위해 선택한 자리이다. 청나라 건륭년간에 세운 "한소열황제지릉(漢昭烈皇帝之陵)" 묘비가 세워진 무덤에는 유비와 두 부인이 합장되어 있다.

능묘는 조벽과 문, 신도, 침전 등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동쪽의 무후사와 붉은 담벽의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청나라 초반에 신축한 삼의묘(三義廟)는 1784년에 화재가 발생해 1787년에 재축했고 1842년에 보수를 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건물은 청나라 도광(道光)년간인 1843년때의 것이다. 삼의묘는 원래 제독가(堤督街)에 위치해 있었는데 1998년 도시 건설의 수요에 따라 무후사내에 옮겨졌다.

키워드:

역사인물, 고건물

위치와 교통:

무후사는 사천(四川)성 성도(成都, Chengdu)시 남문(南門)밖 무후사거리에 위치, 성도에서 1선, 8선, 10선, 53선, 57선 등 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일년 사계절

설명:

무후사를 본 다음 무후사에 편입된 전 성도 남교(南郊)공원과 무후사 이웃에 위치한 옛 거리 금리(錦里)도 함께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할수 있다. 1938년부터 1942년사이에 축조된 남교공원은 400m의 중심선상에 석패방과 문, 정자 등 건물이 아늑한 정원과 조화를 이룬다.

무후사 박물관역할을 하는 금리는 청나라 후반과 민국초반 사천특색이 다분한 건물을 통해 삼국문화와 사천의 전통 민속문화를 펼쳐보인다. 금리는 촉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비즈니스 분위기가 가장 짙은 거리이다. 일찍 진한(秦漢)과 삼국시기에 금리는 벌써 내외에 이름이 자자했다.

2004년에 관광객을 받이들이기 시작한 금리는 대담하게 물길을 끌어들여 아름다운 경치를 조성한다. 오늘날 금리는 무후사를 기반으로 하고 진한과 삼국문화를 영혼으로 하며 명청시기의 건물을 외관으로 하고 사천의 민풍과 민속을 내용으로 사천의 특이한 매력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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