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전쟁(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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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8-11 08:41본문
중국공산당이 창립된 후, 1922년 최초의 철저한 반제·반봉건의 민주주의 혁명 강령을 제기하였으며, 1923년 국민당과 혁명 통일전선을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1924년 손중산(孫中山)은 광주(廣州)에서 국민당을 개편하고 제1차 국공합작을 실현하였다. 이로써 국·공 양당은 공동으로 황포군관학교(黃 軍官學校)를 창설하고 국민혁명군(國民革命軍)을 조직하여 군벌세력을 정벌하였다. 국민혁명군은 먼저 광동(廣東)에서 군벌세력을 격파한 후, 1926년 정식으로 북진하여 북양군벌(北洋軍閥)을 토벌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북벌전쟁(北伐戰爭)"이라 일컫는다.
북벌전쟁의 시작 단계는 매우 순조로워 국민혁명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중국의 남부와 중부를 점령하였으며, 이로부터 혁명의 열기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25년 손중산이 서거한 후, 국민당 내부에는 분화가 발생하여 장개석(蔣介石)을 대표로 하는 우파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1927년 4월 북벌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장개석은 상해에서 정변을 일으켜 기습적으로 공산당원들을 대규모로 탄압하였다. 계속하여 국민당은 남경에 국민정부(國民政府)를 수립하였으며, 장개석은 군사위원회 위원장(軍事委員會委員長)과 중앙정치회의 주석(中央政治會議主席)을 맡아 군정 대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며, 중국 현대사에서는 이 시기를 제1차 국내혁명전쟁시기(第一次國內革命戰爭時期)라 일컫는다.
북벌전쟁의 시작 단계는 매우 순조로워 국민혁명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중국의 남부와 중부를 점령하였으며, 이로부터 혁명의 열기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25년 손중산이 서거한 후, 국민당 내부에는 분화가 발생하여 장개석(蔣介石)을 대표로 하는 우파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1927년 4월 북벌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장개석은 상해에서 정변을 일으켜 기습적으로 공산당원들을 대규모로 탄압하였다. 계속하여 국민당은 남경에 국민정부(國民政府)를 수립하였으며, 장개석은 군사위원회 위원장(軍事委員會委員長)과 중앙정치회의 주석(中央政治會議主席)을 맡아 군정 대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며, 중국 현대사에서는 이 시기를 제1차 국내혁명전쟁시기(第一次國內革命戰爭時期)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