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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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8-25 08:55본문
고대부터 거대하고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던 중국에게 명절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농사의 풍흉은 바로 그 국가의 백성들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또한 농사라는 것이 계절과 절기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이러한 연유로 중국에서의 절기 명절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바로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중국 3대 명절인 설, 단오, 추석을 다루겠다. 농촌사회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중국의 농촌풍속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낯섬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또다른 친숙함이 있을 것이다. 바로 "삶에 대한 애착"이다.
春節(설)
春節(설)은 중국 전통 풍속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1911년 전까지 중국은 음력 12월을 "臘月", 음력 정월 초하루를 원단(元旦): 1년의 시작, 臘月(음력 12월) 30일을 일년의 마지막 날로 "除夕"이라 했다. 설은 除夕부터 元旦까지를 말한다.
설은 한해가 지나고 새봄의 시작과 함께 농사의 시작을 알려주는 중요한 명절이다. 여기서는 설을 전후로 하는 기간에 행해지는 설맞이 준비과정과 진행과정을 함께 실었다.
1) 臘八(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성불의 날)
중국인들은 음력 12월 초팔일을 새해맞이의 첫 과정으로 여긴다. 이는 "臘八이 지나면 새해라네"라는 민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날은 랍팔죽을 먹는다. 랍팔죽이 뭔 죽인고?
여기서 잠깐 랍팔죽의 유래를 둘러보자.
그 기원은 석가모니 성도(成道)설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가 해탈을 얻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며 고행을 감행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얘기다. 이런 고행 중, 배고픔으로 지친 석가모니는 나일강변에 이르러 혼절을 하고 만다. 이때 양치는 소녀가 쓰러진 석가모니를 발견하곤, 한 사발의 정체 모를 무언가를 마시게 한다. 이에 정신을 차린 석가모니는 돌연 깨달음을 얻게 되고 결국에는 보리수 아래서 성불을 하게 된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아는 얘기, 다시 하는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 죽 한그릇 얘길 하기 위해 남들 하기 싫은 일을 한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죽 얘기로 돌아가자. 양치기 소녀가 과연 어떤 걸 주었기에 석가모니가 정신을 차리고 성불을 하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양치기 소녀가 사발에 담아 마시게 한 정체 모를 것이 바로 랍팔죽이다. 소녀는 당시 몸에 지니고 있던 잡곡과 야생과일에 샘물을 부어 끓여 한 사발의 죽을 만들어 혼절한 석가모니에게 먹였다. 이 날이 바로 12월 초팔일이었기에 이 날을 부처님 성도의 날이라 하며 , 이를 기리기 위해 랍팔죽을 먹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의 랍팔죽은 찹쌀, 수수, 조, 녹두, 콩과 대추, 밤,잣 그리고 계피나 흑설탕 등으로 맛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2)집안 대청소
중국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설맞이를 위한 대청소를 한다. 이때 하는 대청소를 특별히 掃年이라하는데, 이는 옛날 역병을 몰아내고 불길한 징조들을 몰아내기 위한 종교의식에서 생겨났다. 이날 사람들은 벽에 걸려있던 낡은 세화(설날 실내에 붙이는 그림)와 창문에 붙어있던 낡은 전지를 떼어내고, 불당 앞의 낡은 대련과 낡은 掛錢(음력 정월 문지방 위에 붙이는 종이. 흔히 30센티 정도의 긴 붉은 종이에 일문짜리 돈을 새겨 넣거나, ' 福'(복). ' 進寶財'(재물이 들어오다). '四季平安'(일년 내내 평안하다) 등의 길조를 비는 문자나, 용. 잉어 등의 모양을 새기거나 '八仙人'(팔선인) 등을 화려하게 색칠해 불당이나 창밑에 붙여 놓는다)을 떼어 태우고 除夕(12월 30일) 전에 새것으로 단장해놓는다.
掃年(설 대청소)의 모습을 중국 속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스물 이렛날(음력12월 27일) 온갖 고질병 다 씻어내고, 스물 여드렛날 온갖 불결한 것 다 씻어낸다."
집안청소 후에, 사람들은 목욕재계하고 이발을 한다. 이는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맞이하는 마음과 일년 동안의 불운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3) 祭 조(火+土) : 음력 12월 23일, 또는 24일을 小年이라 하는데, 이날 부뚜막신(제왕신)이 승천하여, 그 집안의 일년간의 상황을 天帝에게 보고한다하여 부뚜막신에게 제사 지내는 풍습)
음력 12월 23일을 "小年"이라 부르는데, 이날부터 정식적인 명절기간이 시작된다. 옛 풍속에 따라 이날 조왕신께 제사를 지낸다. 이는 중국인의 오래된 민족습관이다. 후한때 음자방이란 사람이 음력 섣달, 밥을 짓고 있을 때, 조왕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음자방은 황색양을 제물로 바치고 기도를 올렸다. 이때부터 그는 자손과 재물이 불어나고 대대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황양을 제물로 준비해 조왕신께 제사지내기 시작했다.
민간에 전해내려 오는 조왕신의 정체는? 근세이래 사람들은, 부뚜막신을 옥황상제가 인간세상에 보낸 신이라 여겼다. 그렇다면 인간세상에서 그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부뚜막이란 각 가정마다 하나씩 있는 필수품이었다. 따라서 부뚜막신 또한 각 가정마다 구비되어있는 신이었다. 그 신은 일년간 그 가족들의 선행과 악행을 지켜보다가 음력 12월 23일, 하늘로 올라가 그 가족 사람들의 선과 악을 옥황상제께 보고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그 보고에 따라 옥황상제는 벌을 내리기도 상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뚜막신이 승천하는 날, 공양물을 바치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또한 부뚜막신이 승천할 때 타고 가는 말이 있다고 여겨 그 말을 위한 풀, 사료용 콩, 그리고 한 사발의 물 공양도 잊지않았다. 가난한 집에서는 공양물을 꼼꼼히 잘 챙길 수 가 없었다. "조왕신의 속세에서의 성( 性)은 장(張)가요, 한사발의 냉수와 세 개의 향을 태우면 된다네."이는 민간에서 내려오는 속담으로 조왕신에 대한 공양품으로 는 최소한 간단한 냉수와 향 몇 촉으로 충분하다는 얘기이다. 위에서 말한 황양은 공양품으로 사용되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대신 교아당(참외 모양으로 만든 동북지방의 엿으로 민간에서 조왕신 제삿날에 먹는다)이라는 달고 끈적거리는 엿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이 엿을 조왕신의 입에 붙여놓는데, 이는 엿을 먹고 옥황상제께 달콤한 말만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순진한 마음에서 생긴 풍습이다.
부뚜막신의 神紙馬(제사 때 태우는 神像이 그려져 있는 종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왕신과 조왕여신이 함께 앉아있는 것으로, 이것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왕신 혼자 앉아있는 것으로 , 이것은 홀아비가 사용하는 것이다.
"남자는 달님께 기도 하지 않으며, 여자는 조왕신께 제를 올리지 않는다"라는 속담에서처럼, 대부분의 제사는 남자가 주관하게 되어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런 명확한 한정은 없었다. 대부분 남자가 먼저 제를 오릴고, 여자가 나중에 올리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제사가 끝나면, 예전의 신상(神像)은 태워버리고, 정월 초하루날 새로운 신상을 걸기 시작한다. 이때 조왕신이 다시 내려와 일년간 사람들의 선악을 살피기 시작한다.
4)연말시장(年市)
음력 12월 23일(小年)이 되면, 중국의 모든 시장들은 일년 중 가장 흥성한 한때를 맞이한다. 시장의 모든 가판대에는 연말에 사용할 물건들이 즐비하게 놓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북새통을 이루며 물건을 사들인다.
명절에 쓰이는 설물건으로는 술, 고기, 채소, 과일, 의복, 신발 등이 있겠지만, 이외에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으로 춘련(春聯:신년에 문이나 기둥. 미간 등에 써 붙이는 대련), 연화(年畵:설날, 실내에 붙이는 그림), 푹죽, 그리고 각종 설 명절 놀이기구 등이 있다.
춘련은 설날 특별히 사용되는 대련을 말한다. 사람들은 대련에 자기들의 소망과 바램을 적어 놓는다. 춘련은 고대의 도부(桃符:옛날의 풍속으로 정월에 두장의 복숭아 나무로 켠 판자에 두 문신(門神)을 그려서 문에 붙여 악귀를 쫓던 부적)가 점차 변해 내려온 것이다. 왕안석의 《元日》시구 중 "푹죽 소리에 한 살 더 먹고, 봄바람에 도소주(술에 담가 연초에 마시던 약의 이름, 일종의 약주) 데우네. 아침 해가 비추면, 집집마다 새 도부(도부) 걸리네"가 있다. 이 때까지도 여전히 복숭아 나무로 도부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명대, 홍무 원년, 태조 주원장이 금릉(남경의 옛 이름)일대 모든 성에 섣달 그믐날 춘련을 붙이도록 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성밖으로 나가 집집마다 살피고, 때로는 친필로 대련을 써서 관민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춘련이 설날 풍속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연화(年畵)는 일종의 민간회화예술로, 전형적인 민간 실내 장식품이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돗자리를 피고 연화를 파는 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오색찬란한 연화들이 곳곳마다 눈을 어지럽힌다. 연화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는 민간희곡의 것이나 '連年有余'(해를 이어 풍요롭다), '事事如意'(만사가 뜻대로 되다). '五子登科'(다섯 아들이 나란히 과거시험에 합격하다는 뜻으로 만사형통의 의미), '招財進寶'(재물이 들어오다) 등의 뜻을 의미하는 길상도안이 있다. 색채가 강렬해, 명절의 분위기를 돋구는데, 한 몫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명절 품목중 하나이다.
5)除夕
섣달그믐날은 명절기간의 절정기이다. 이날은 이른 아침부터, 집집마다 門神, 春聯, 年畵를 붙이고, 괘전(掛錢:음력 정월에 문지방 위에 붙이는 종이)과 초롱을 걸어 놓는다. 사람들은 새옷을 입고, 새해인사를 다니며, 조상께 배례를 한다.
12월 30일 저녁에서 정월초 새벽까지 천상계의 모든 신들이 속세로 내려와 인간들의 선과악을 살피는 시간이라하여, 집집마다 불상 앞에서 신들게 공양하기에 분주하다. 집안에 불당이 없으면, 안채나 정원 안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천지삼계십팔불(하늘과 땅, 과거.미래.현재의 삼계와 부처의 16제자와 항룡. 복호 두 존자을 합한 18불)의 모든 신께 공양을 올린다.
오후에는 집집마다 삼대종친의 위패를 모셔놓고, 붉은 초를 태우며,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거렁뱅이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福神이 그려진 종이를 판다. 설령 신의 인쇄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이날만큼은 동전 몇푼이라도 쥐어주며 사야한다. 이는 새해에도 남에게 베풀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섣달 그믐저녁의 집안잔치를 단원반(團圓飯)이라 하는데, 이는 온 가족사람들이 모두 참석해서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는 뜻에서 생긴 것이다. 가족들은 먹고 마시며, 덕담을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 날은 가난하든 부유하든 간에 모두들 가능한 한 풍성하게 음식을 준비해 다음해의 풍족한 생활을 기도한다.
섣달그믐날 밤, 사람들은 밤새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守歲라 한다.
옛날, 시간계산법에 따라 신구년이 교차하는 시간을 교자(交子)라 했다. 이는 교자(餃子:만두의 일종)와 음이 같기 때문에 섣달그믐밤 '更歲餃子(나이가 바뀌는 시간에 먹는 만두)'를 먹는다. 어떤 만두속에는 작은 동전 하나를 넣어 빚는데, 그 만두를 먹는 사람은 일년간 운수가 좋다고들 여겼다.
자시(밤 11시부터 새벽1시까지의 사이)가 지나면, 바로 설날이다. 온가족이 웃어른의 지시에 따라 신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神像과 마분지로 만든 지전(黃紙錢), 그리고 종이수레(千張:12월 23일 조왕신이 승천하는 날, 각 가정에서는 조왕신의 승천을 돕는다는 의미로 0.3미터 정도의 종이로 조왕신이 타고 갈 수레나 말을 만든다. )와 종이 엽전(紙元寶: 神佛에게 기도할 때 바치기 위해 은박지를 엽전 모양으로 오린 물건)을 뜰로 가지고 나가 소나무가지, 참깨대와 함께 태운다. 이때 폭죽을 함께 터뜨리는데, 폭죽소리와 함께 사방에 퍼지는 연기와 소나무향이 어루러지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신을 영접하는 의식이 끝나면, 이어서 전 식구들이 함께 신년인사를 한다. 우선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조상께 절을 올린 후 손아랫사람들이 연장자에게 세배를 한다. 연장자들 또한 관례대로 아이들에게 세배돈을 준다.
새해 첫날, 날이 밝자마자,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새해인사를 다니는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는 새해선물을 준비해 간다. 이날만큼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넨다.
정월초이튿날 아침이 되면, 주택과 상점들이 모두 재신(財神)께 제사를 지낸다. 민간에서 공양을 올리는 재신에는 크게 세명의 재신이 있다. 하나는 관우인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관우는 마귀를 설복시키며, 상인의 보호신이기 때문에 재신의 가장 우두머리로 모셔진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武財神 조공원수로 재산을 관할한다는 중국 민간 전설의 귀신이다. 나머지 하나는 민간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모셔지는 것으로 사모를 쓴 "增福財神"(증복재신: 재산을 늘려주는 신)이다.
제사가 끝나면 모두들 모여 "원보탕"(元寶湯)이라는 만두국을 먹는다.
6) 정월대보름(燈節)
정월대보름은 새해 명절기간의 마지막 절정이다. 폭죽 터뜨리기, 용춤 등의 행사이외에 이날 가장 특색있는 행사가 바로 꽃등놀이이다. 중국의 꽃등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초롱불매달기, 관등놀이는 동한때 이미 출현했으며, 당대이후 점차 명절기간 안에 초롱불 놀이 구경가기, 관등의 모양을 놓고 경연대회를 하는 풍습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정월 13일부터 17일까지 날이 어두워지면 잇다른 거리의 상점들에 가지각색의 초롱이 걸린다. 어떤 상점들은 맑은 물로 얼음 등을 주조하는데, 이 등 안에 등촉을 밝히면 투명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시대에 이러한 등은 상가에 커다란 광고 효과를 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등 장식에 극진한 열성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맥아 등(온실 안에서 재배한 신선하고 연한 맥아를 이용해 만든 등)은 신록 빛을 띄고 생기가 흐른다. 옛날 북경에는 매우 특색있는 등이 있었는데, 이는 진흙을 이용해 만든 명관(미신, 전설 속의 염라대왕 수하의 '生死簿'를 관장하는 신)의 형태인데, 이 명관의 뱃속에 화로를 만들어 불을 붙이면 명관의 온 몸이 새빨갛게 되며 불을 밝힌다.
정월 13일이 되면, 시장에서 각양각색의 초롱을 팔기 시작해 온 시가지가 초롱불로 장식이 된다. 이 시장에서 파는 것으로는 모양이 복잡하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주마등이 있고, 사자 호랑이 토끼 양 무 배추등의 모양을 하고있는 등도 있고, 색채가 화려한 툭눈 금붕어 모양의 등도 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고, 또한 값도 가장 싼 것으로는 빨간 종이를 붙여 만든 '生死風燈'이다.
이날 밤 성의 모든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관등놀이를 하는데, 등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월 대보름날 먹는 음식으로는 '湯圓'이 있다. 남방과 북방의 '湯圓'을 만드는 법과 그 맛은 틀리지만 찹쌀가루로 빚어 안에 속을 넣는 것은 어느 지방이나 같다.
7) 廟會(옛날, 젯날 또는 일정한 날에 절 안이나 절 부근에서 임시로 설치하던 시장)
봉건시대 때만 해도 일반 백성들의 일상 생활을 위해 큰 규모의 공간을 설치하는 일이라는 게 극히 드물었었다. 지금의 공원과 시내의 광장 설치는 모두 민국 이후에나 생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廟會는 중국 민간 풍속 생활의 가장 집중적인 장소였다. 일반 백성들은 절 안에서 부처님께 복을 빌고 재난이 덜어지길 기도하며 마음의 평정을 구했다. 대규모의 종교적 행사가 있으면 그 주위에 수많은 민간 迎神賽會(민간에서 징을 울리고 북을 치며 각종 잡극을 벌여 신을 맞이하는 풍속)과 같은 단체가 형성된다.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신을 즐겁게 하는 것 보다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사회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고대 도시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상업 판매 회로망도 없었고 사원을 중심으로 해 정기적으로 장이 형성되었었다. 교대로 개방되는 수많은 사원시장들은 시내(도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상업 회로망을 구성하게 되었다. 민간 예술인들은 廟會에서 기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여기서 민간가무, 잡기 그리고 체육공연 등이 가장 융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민간예술의 요람인 셈이다.
이렇듯 일반 백성들의 관혼상제, 衣, 食, 住, 行(교통)의 매우 커다란 부분이 廟會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廟會의 기간은 대체로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매월 정기적으로 여는 것인데 예를 들면 '逢三 廟' 처럼 매월 초3, 13, 23 으로 최소 3일을 개방하는 것이다. 이런 廟會는 도시경제 생활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했다. 다른 한 종류는 세속적, 종교적 행사에 근거해 일정하게 여는 것인데, 종교 행사라는 것이 대부분 신들과 부처님의 탄생일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서왕모의 탄생일이 음력 삼월 초삼일이므로 서왕모여신의 선도궁(仙桃宮)에 공양한다. 매년 廟會의 기간은 음력 3월 초하루에서 초삼일까지이다. 그러나 어떠한 廟會라도 새해가 돌아오면 항상 개방해야 한다.
새해가 오면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남녀노소 모두 매우 흥겹게 廟會나 정기 시장을 둘러본다. 이때에는 전국의 크고 작은 廟會가 거의 다 이 기간에 열리는데 묘회에는 각양각색의 식품, 완구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영화, 가요, 무용 따위의 문화 오락 체육공연들이 있으며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하다.
여기서는 중국 3대 명절인 설, 단오, 추석을 다루겠다. 농촌사회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중국의 농촌풍속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낯섬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또다른 친숙함이 있을 것이다. 바로 "삶에 대한 애착"이다.
春節(설)
春節(설)은 중국 전통 풍속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1911년 전까지 중국은 음력 12월을 "臘月", 음력 정월 초하루를 원단(元旦): 1년의 시작, 臘月(음력 12월) 30일을 일년의 마지막 날로 "除夕"이라 했다. 설은 除夕부터 元旦까지를 말한다.
설은 한해가 지나고 새봄의 시작과 함께 농사의 시작을 알려주는 중요한 명절이다. 여기서는 설을 전후로 하는 기간에 행해지는 설맞이 준비과정과 진행과정을 함께 실었다.
1) 臘八(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성불의 날)
중국인들은 음력 12월 초팔일을 새해맞이의 첫 과정으로 여긴다. 이는 "臘八이 지나면 새해라네"라는 민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날은 랍팔죽을 먹는다. 랍팔죽이 뭔 죽인고?
여기서 잠깐 랍팔죽의 유래를 둘러보자.
그 기원은 석가모니 성도(成道)설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가 해탈을 얻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며 고행을 감행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얘기다. 이런 고행 중, 배고픔으로 지친 석가모니는 나일강변에 이르러 혼절을 하고 만다. 이때 양치는 소녀가 쓰러진 석가모니를 발견하곤, 한 사발의 정체 모를 무언가를 마시게 한다. 이에 정신을 차린 석가모니는 돌연 깨달음을 얻게 되고 결국에는 보리수 아래서 성불을 하게 된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아는 얘기, 다시 하는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 죽 한그릇 얘길 하기 위해 남들 하기 싫은 일을 한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죽 얘기로 돌아가자. 양치기 소녀가 과연 어떤 걸 주었기에 석가모니가 정신을 차리고 성불을 하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양치기 소녀가 사발에 담아 마시게 한 정체 모를 것이 바로 랍팔죽이다. 소녀는 당시 몸에 지니고 있던 잡곡과 야생과일에 샘물을 부어 끓여 한 사발의 죽을 만들어 혼절한 석가모니에게 먹였다. 이 날이 바로 12월 초팔일이었기에 이 날을 부처님 성도의 날이라 하며 , 이를 기리기 위해 랍팔죽을 먹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의 랍팔죽은 찹쌀, 수수, 조, 녹두, 콩과 대추, 밤,잣 그리고 계피나 흑설탕 등으로 맛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2)집안 대청소
중국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설맞이를 위한 대청소를 한다. 이때 하는 대청소를 특별히 掃年이라하는데, 이는 옛날 역병을 몰아내고 불길한 징조들을 몰아내기 위한 종교의식에서 생겨났다. 이날 사람들은 벽에 걸려있던 낡은 세화(설날 실내에 붙이는 그림)와 창문에 붙어있던 낡은 전지를 떼어내고, 불당 앞의 낡은 대련과 낡은 掛錢(음력 정월 문지방 위에 붙이는 종이. 흔히 30센티 정도의 긴 붉은 종이에 일문짜리 돈을 새겨 넣거나, ' 福'(복). ' 進寶財'(재물이 들어오다). '四季平安'(일년 내내 평안하다) 등의 길조를 비는 문자나, 용. 잉어 등의 모양을 새기거나 '八仙人'(팔선인) 등을 화려하게 색칠해 불당이나 창밑에 붙여 놓는다)을 떼어 태우고 除夕(12월 30일) 전에 새것으로 단장해놓는다.
掃年(설 대청소)의 모습을 중국 속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스물 이렛날(음력12월 27일) 온갖 고질병 다 씻어내고, 스물 여드렛날 온갖 불결한 것 다 씻어낸다."
집안청소 후에, 사람들은 목욕재계하고 이발을 한다. 이는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맞이하는 마음과 일년 동안의 불운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3) 祭 조(火+土) : 음력 12월 23일, 또는 24일을 小年이라 하는데, 이날 부뚜막신(제왕신)이 승천하여, 그 집안의 일년간의 상황을 天帝에게 보고한다하여 부뚜막신에게 제사 지내는 풍습)
음력 12월 23일을 "小年"이라 부르는데, 이날부터 정식적인 명절기간이 시작된다. 옛 풍속에 따라 이날 조왕신께 제사를 지낸다. 이는 중국인의 오래된 민족습관이다. 후한때 음자방이란 사람이 음력 섣달, 밥을 짓고 있을 때, 조왕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음자방은 황색양을 제물로 바치고 기도를 올렸다. 이때부터 그는 자손과 재물이 불어나고 대대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황양을 제물로 준비해 조왕신께 제사지내기 시작했다.
민간에 전해내려 오는 조왕신의 정체는? 근세이래 사람들은, 부뚜막신을 옥황상제가 인간세상에 보낸 신이라 여겼다. 그렇다면 인간세상에서 그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부뚜막이란 각 가정마다 하나씩 있는 필수품이었다. 따라서 부뚜막신 또한 각 가정마다 구비되어있는 신이었다. 그 신은 일년간 그 가족들의 선행과 악행을 지켜보다가 음력 12월 23일, 하늘로 올라가 그 가족 사람들의 선과 악을 옥황상제께 보고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그 보고에 따라 옥황상제는 벌을 내리기도 상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뚜막신이 승천하는 날, 공양물을 바치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또한 부뚜막신이 승천할 때 타고 가는 말이 있다고 여겨 그 말을 위한 풀, 사료용 콩, 그리고 한 사발의 물 공양도 잊지않았다. 가난한 집에서는 공양물을 꼼꼼히 잘 챙길 수 가 없었다. "조왕신의 속세에서의 성( 性)은 장(張)가요, 한사발의 냉수와 세 개의 향을 태우면 된다네."이는 민간에서 내려오는 속담으로 조왕신에 대한 공양품으로 는 최소한 간단한 냉수와 향 몇 촉으로 충분하다는 얘기이다. 위에서 말한 황양은 공양품으로 사용되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대신 교아당(참외 모양으로 만든 동북지방의 엿으로 민간에서 조왕신 제삿날에 먹는다)이라는 달고 끈적거리는 엿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이 엿을 조왕신의 입에 붙여놓는데, 이는 엿을 먹고 옥황상제께 달콤한 말만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순진한 마음에서 생긴 풍습이다.
부뚜막신의 神紙馬(제사 때 태우는 神像이 그려져 있는 종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왕신과 조왕여신이 함께 앉아있는 것으로, 이것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왕신 혼자 앉아있는 것으로 , 이것은 홀아비가 사용하는 것이다.
"남자는 달님께 기도 하지 않으며, 여자는 조왕신께 제를 올리지 않는다"라는 속담에서처럼, 대부분의 제사는 남자가 주관하게 되어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런 명확한 한정은 없었다. 대부분 남자가 먼저 제를 오릴고, 여자가 나중에 올리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제사가 끝나면, 예전의 신상(神像)은 태워버리고, 정월 초하루날 새로운 신상을 걸기 시작한다. 이때 조왕신이 다시 내려와 일년간 사람들의 선악을 살피기 시작한다.
4)연말시장(年市)
음력 12월 23일(小年)이 되면, 중국의 모든 시장들은 일년 중 가장 흥성한 한때를 맞이한다. 시장의 모든 가판대에는 연말에 사용할 물건들이 즐비하게 놓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북새통을 이루며 물건을 사들인다.
명절에 쓰이는 설물건으로는 술, 고기, 채소, 과일, 의복, 신발 등이 있겠지만, 이외에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으로 춘련(春聯:신년에 문이나 기둥. 미간 등에 써 붙이는 대련), 연화(年畵:설날, 실내에 붙이는 그림), 푹죽, 그리고 각종 설 명절 놀이기구 등이 있다.
춘련은 설날 특별히 사용되는 대련을 말한다. 사람들은 대련에 자기들의 소망과 바램을 적어 놓는다. 춘련은 고대의 도부(桃符:옛날의 풍속으로 정월에 두장의 복숭아 나무로 켠 판자에 두 문신(門神)을 그려서 문에 붙여 악귀를 쫓던 부적)가 점차 변해 내려온 것이다. 왕안석의 《元日》시구 중 "푹죽 소리에 한 살 더 먹고, 봄바람에 도소주(술에 담가 연초에 마시던 약의 이름, 일종의 약주) 데우네. 아침 해가 비추면, 집집마다 새 도부(도부) 걸리네"가 있다. 이 때까지도 여전히 복숭아 나무로 도부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명대, 홍무 원년, 태조 주원장이 금릉(남경의 옛 이름)일대 모든 성에 섣달 그믐날 춘련을 붙이도록 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성밖으로 나가 집집마다 살피고, 때로는 친필로 대련을 써서 관민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춘련이 설날 풍속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연화(年畵)는 일종의 민간회화예술로, 전형적인 민간 실내 장식품이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돗자리를 피고 연화를 파는 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오색찬란한 연화들이 곳곳마다 눈을 어지럽힌다. 연화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는 민간희곡의 것이나 '連年有余'(해를 이어 풍요롭다), '事事如意'(만사가 뜻대로 되다). '五子登科'(다섯 아들이 나란히 과거시험에 합격하다는 뜻으로 만사형통의 의미), '招財進寶'(재물이 들어오다) 등의 뜻을 의미하는 길상도안이 있다. 색채가 강렬해, 명절의 분위기를 돋구는데, 한 몫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명절 품목중 하나이다.
5)除夕
섣달그믐날은 명절기간의 절정기이다. 이날은 이른 아침부터, 집집마다 門神, 春聯, 年畵를 붙이고, 괘전(掛錢:음력 정월에 문지방 위에 붙이는 종이)과 초롱을 걸어 놓는다. 사람들은 새옷을 입고, 새해인사를 다니며, 조상께 배례를 한다.
12월 30일 저녁에서 정월초 새벽까지 천상계의 모든 신들이 속세로 내려와 인간들의 선과악을 살피는 시간이라하여, 집집마다 불상 앞에서 신들게 공양하기에 분주하다. 집안에 불당이 없으면, 안채나 정원 안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천지삼계십팔불(하늘과 땅, 과거.미래.현재의 삼계와 부처의 16제자와 항룡. 복호 두 존자을 합한 18불)의 모든 신께 공양을 올린다.
오후에는 집집마다 삼대종친의 위패를 모셔놓고, 붉은 초를 태우며,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거렁뱅이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福神이 그려진 종이를 판다. 설령 신의 인쇄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이날만큼은 동전 몇푼이라도 쥐어주며 사야한다. 이는 새해에도 남에게 베풀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섣달 그믐저녁의 집안잔치를 단원반(團圓飯)이라 하는데, 이는 온 가족사람들이 모두 참석해서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는 뜻에서 생긴 것이다. 가족들은 먹고 마시며, 덕담을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 날은 가난하든 부유하든 간에 모두들 가능한 한 풍성하게 음식을 준비해 다음해의 풍족한 생활을 기도한다.
섣달그믐날 밤, 사람들은 밤새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守歲라 한다.
옛날, 시간계산법에 따라 신구년이 교차하는 시간을 교자(交子)라 했다. 이는 교자(餃子:만두의 일종)와 음이 같기 때문에 섣달그믐밤 '更歲餃子(나이가 바뀌는 시간에 먹는 만두)'를 먹는다. 어떤 만두속에는 작은 동전 하나를 넣어 빚는데, 그 만두를 먹는 사람은 일년간 운수가 좋다고들 여겼다.
자시(밤 11시부터 새벽1시까지의 사이)가 지나면, 바로 설날이다. 온가족이 웃어른의 지시에 따라 신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神像과 마분지로 만든 지전(黃紙錢), 그리고 종이수레(千張:12월 23일 조왕신이 승천하는 날, 각 가정에서는 조왕신의 승천을 돕는다는 의미로 0.3미터 정도의 종이로 조왕신이 타고 갈 수레나 말을 만든다. )와 종이 엽전(紙元寶: 神佛에게 기도할 때 바치기 위해 은박지를 엽전 모양으로 오린 물건)을 뜰로 가지고 나가 소나무가지, 참깨대와 함께 태운다. 이때 폭죽을 함께 터뜨리는데, 폭죽소리와 함께 사방에 퍼지는 연기와 소나무향이 어루러지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신을 영접하는 의식이 끝나면, 이어서 전 식구들이 함께 신년인사를 한다. 우선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조상께 절을 올린 후 손아랫사람들이 연장자에게 세배를 한다. 연장자들 또한 관례대로 아이들에게 세배돈을 준다.
새해 첫날, 날이 밝자마자,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새해인사를 다니는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는 새해선물을 준비해 간다. 이날만큼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넨다.
정월초이튿날 아침이 되면, 주택과 상점들이 모두 재신(財神)께 제사를 지낸다. 민간에서 공양을 올리는 재신에는 크게 세명의 재신이 있다. 하나는 관우인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관우는 마귀를 설복시키며, 상인의 보호신이기 때문에 재신의 가장 우두머리로 모셔진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武財神 조공원수로 재산을 관할한다는 중국 민간 전설의 귀신이다. 나머지 하나는 민간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모셔지는 것으로 사모를 쓴 "增福財神"(증복재신: 재산을 늘려주는 신)이다.
제사가 끝나면 모두들 모여 "원보탕"(元寶湯)이라는 만두국을 먹는다.
6) 정월대보름(燈節)
정월대보름은 새해 명절기간의 마지막 절정이다. 폭죽 터뜨리기, 용춤 등의 행사이외에 이날 가장 특색있는 행사가 바로 꽃등놀이이다. 중국의 꽃등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초롱불매달기, 관등놀이는 동한때 이미 출현했으며, 당대이후 점차 명절기간 안에 초롱불 놀이 구경가기, 관등의 모양을 놓고 경연대회를 하는 풍습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정월 13일부터 17일까지 날이 어두워지면 잇다른 거리의 상점들에 가지각색의 초롱이 걸린다. 어떤 상점들은 맑은 물로 얼음 등을 주조하는데, 이 등 안에 등촉을 밝히면 투명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시대에 이러한 등은 상가에 커다란 광고 효과를 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등 장식에 극진한 열성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맥아 등(온실 안에서 재배한 신선하고 연한 맥아를 이용해 만든 등)은 신록 빛을 띄고 생기가 흐른다. 옛날 북경에는 매우 특색있는 등이 있었는데, 이는 진흙을 이용해 만든 명관(미신, 전설 속의 염라대왕 수하의 '生死簿'를 관장하는 신)의 형태인데, 이 명관의 뱃속에 화로를 만들어 불을 붙이면 명관의 온 몸이 새빨갛게 되며 불을 밝힌다.
정월 13일이 되면, 시장에서 각양각색의 초롱을 팔기 시작해 온 시가지가 초롱불로 장식이 된다. 이 시장에서 파는 것으로는 모양이 복잡하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주마등이 있고, 사자 호랑이 토끼 양 무 배추등의 모양을 하고있는 등도 있고, 색채가 화려한 툭눈 금붕어 모양의 등도 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고, 또한 값도 가장 싼 것으로는 빨간 종이를 붙여 만든 '生死風燈'이다.
이날 밤 성의 모든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관등놀이를 하는데, 등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월 대보름날 먹는 음식으로는 '湯圓'이 있다. 남방과 북방의 '湯圓'을 만드는 법과 그 맛은 틀리지만 찹쌀가루로 빚어 안에 속을 넣는 것은 어느 지방이나 같다.
7) 廟會(옛날, 젯날 또는 일정한 날에 절 안이나 절 부근에서 임시로 설치하던 시장)
봉건시대 때만 해도 일반 백성들의 일상 생활을 위해 큰 규모의 공간을 설치하는 일이라는 게 극히 드물었었다. 지금의 공원과 시내의 광장 설치는 모두 민국 이후에나 생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廟會는 중국 민간 풍속 생활의 가장 집중적인 장소였다. 일반 백성들은 절 안에서 부처님께 복을 빌고 재난이 덜어지길 기도하며 마음의 평정을 구했다. 대규모의 종교적 행사가 있으면 그 주위에 수많은 민간 迎神賽會(민간에서 징을 울리고 북을 치며 각종 잡극을 벌여 신을 맞이하는 풍속)과 같은 단체가 형성된다.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신을 즐겁게 하는 것 보다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사회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고대 도시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상업 판매 회로망도 없었고 사원을 중심으로 해 정기적으로 장이 형성되었었다. 교대로 개방되는 수많은 사원시장들은 시내(도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상업 회로망을 구성하게 되었다. 민간 예술인들은 廟會에서 기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여기서 민간가무, 잡기 그리고 체육공연 등이 가장 융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민간예술의 요람인 셈이다.
이렇듯 일반 백성들의 관혼상제, 衣, 食, 住, 行(교통)의 매우 커다란 부분이 廟會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廟會의 기간은 대체로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매월 정기적으로 여는 것인데 예를 들면 '逢三 廟' 처럼 매월 초3, 13, 23 으로 최소 3일을 개방하는 것이다. 이런 廟會는 도시경제 생활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했다. 다른 한 종류는 세속적, 종교적 행사에 근거해 일정하게 여는 것인데, 종교 행사라는 것이 대부분 신들과 부처님의 탄생일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서왕모의 탄생일이 음력 삼월 초삼일이므로 서왕모여신의 선도궁(仙桃宮)에 공양한다. 매년 廟會의 기간은 음력 3월 초하루에서 초삼일까지이다. 그러나 어떠한 廟會라도 새해가 돌아오면 항상 개방해야 한다.
새해가 오면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남녀노소 모두 매우 흥겹게 廟會나 정기 시장을 둘러본다. 이때에는 전국의 크고 작은 廟會가 거의 다 이 기간에 열리는데 묘회에는 각양각색의 식품, 완구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영화, 가요, 무용 따위의 문화 오락 체육공연들이 있으며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