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부인은 중국의 재키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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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09 05:30본문
미국서 중국 기업 변론해 승소
동료 변호사들 "재키 같았다"
"그녀는 마치 중국의 재키 케네디(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같았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변호사 에드워드 바이린은 지난 1997년 보시라이(사진 오른쪽) 전 충칭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53·왼쪽)를 처음 만난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격렬한 권력투쟁'이라고도 불리는 보시라이 낙마사태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로 추정되는 구카이라이의 진면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7일 구카이라이의 주변 인물들을 두루 인터뷰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변호사와 사업가들은 구카이라이가 매우 명석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자기 과시욕도 상당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가 보시라이의 아내로만 알려졌던 구카이라이가 처음 이름을 날린 것은 미국 기업과의 송사에 휘말린 중국 기업의 변론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직접 미국으로 건너와 소송을 진두지휘했고, 1심에서 패소했던 사건을 상급심에서 뒤집었다. 구카이라이는 이듬해인 1998년 <미국 소송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책을 써 자신을 중국의 국익 보호에 뛰어든 도전적인 변호사로 묘사했고, 이 책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구카이라이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보시라이는 지난달 해임 직전 인민대회당에서 마지막으로 가진 기자회견 중 구카이라이가 20년 전에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살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구카이라이가 자신의 영어 이름과 같은 '호루스 L. 카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워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는 고객들에게 자문을 해왔다고 상반된 증언을 했다.
지난해 11월 충칭시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는 구카이라이의 핵심 조언자였다고 그의 친구들은 전했다. 외신들은 보시라이 실각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보시라이의 오른팔' 왕리쥔 전 충칭시 부시장의 배신이 헤이우드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관측이 맞다면 보시라이 실각사태는 '중국의 재키 케네디' 구카이라이 때문에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