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문화지도] ‘음식=약’ … 메뉴 고를 때 연령·건강 따져 주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30 13:19본문
음식 1. 먹는 것이 하늘이다
땀 많이 흘리는 남쪽 식당에 한약재료 가득
감기 기운이 돌면 마시던 차도 바꿔
‘하늘을 나는 것 중에선 비행기를 빼고, 땅 위를 달리는 것 가운데는 기차를 빼고, 바다에 있는 것 속에선 군함을 빼고, 그 나머지는 모두 먹는다’. 중국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인데 음식 재료의 다양성을 콕 집어낸 표현이다. 곰 발바닥, 순록의 코, 바다제비집 등 상상할 수 없는 특수재료로 세계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중국 2008년 맛의 현장을 둘러봤다.
땀 많이 흘리는 남쪽 식당에 한약재료 가득
감기 기운이 돌면 마시던 차도 바꿔
‘하늘을 나는 것 중에선 비행기를 빼고, 땅 위를 달리는 것 가운데는 기차를 빼고, 바다에 있는 것 속에선 군함을 빼고, 그 나머지는 모두 먹는다’. 중국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인데 음식 재료의 다양성을 콕 집어낸 표현이다. 곰 발바닥, 순록의 코, 바다제비집 등 상상할 수 없는 특수재료로 세계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중국 2008년 맛의 현장을 둘러봤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사람에게 먹는 것이 하늘이란 뜻이다.
중국 땅에서 만난 음식전문가들에게 “중국인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중국인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인가”라고 물었을 때 단박에 돌아온 답이다. 마치 사지선다형 정답을 골라내듯 한결같이 똑같다. 뒤통수를 야무지게 한대 맞은 기분이다. 대륙인을 자부하는 중국인들이 고작 먹는 데 목숨을 건단다. 그런데 실제 그렇다. 수천년 중국의 역사는 먹는 게 중심이었고,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 중인 2008년 현재도 불변의 진리는 ‘먹는 것=하늘’이다.
올 4월 중국 지난(濟南)시에서 열린 한·중 식문화 포럼에서 만난 산둥성요리협회 쑨광위안회장은 “예로부터 ‘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음식을 하늘로 여긴다)’이라는 말도 있는데 백성을 다스리는 왕들의 중요한 가치였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붕괴한 왕조들은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단 말도 덧붙였다.
연장선상에서 볼 때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것도 먹을 것 때문이란 시각이 있다. 당시 국민당 정권의 부패가 붕괴를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굶주린 인민들이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나눠 주겠다’는 공산당의 약속에 동조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음식 칼럼리스트인 노태권(43)씨는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근간도 인민들이 굶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의 한계를 깨달고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먹는 데 진짜 목숨을 거는 것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의술과 음식의 근원은 같다)’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말은 평소에 좋은 음식을 잘 골라 제대로 먹어야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의미다. 실제 중국인들은 감기 기운이 돌면 바로 마시던 차를 국화차로 바꾼다. 국화차의 감기 치료 효과 때문이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남쪽지방으로 내려가면 ‘약품=식품’개념이 더 강하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우리나라 삼계탕같이 대부분 보양식이다. 광저우의 경우엔 원하는 재료를 즉석에서 골라 요리할 수 있는 음식점이 많다. 그런 곳은 동물원이나 한약방으로 착각할 정도다.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꿈틀거리는 뱀을 보고 자지러지기도 한다. 감초·당귀·구기자·정향 등 한약 냄새에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광저우 딤섬전문점 저우청(粥城)의 관웨이창(關偉强)주방장은 “고대 중국에선 의사와 조리사를 따로 구별하지도 않았고, 약품과 식품도 구분하지 않아 의식동원의 식습관이 현재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에서도 구기자처럼 ‘한약재’급 식재료는 기본적으로 구비해 놓고 지낸다.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동반자의 연령대나 건강상태를 따져 주문한다. 단순히 뭘 넣고 빼는 정도가 아니다. 재료 상호 간의 협조와 방해를 체크하고 영양까지 감안해 준비한단다.
음식이 하늘이다 보니 중국에선 먹는 것에 관한 한 무척 친절하고 자세하다. 배화여대 중국어학과 신계숙 교수는 구체적으로 중국 글자를 예로 들며 소개했다.
“타(打)의 경우 (전화를) 걸다, (북을) 치다, (사람을) 때리다, (코를) 골다 등에 여기저기 동사로 두루 쓰입니다. 우리나라 말의 ‘거시기’수준이지요. 그러나 요리로 들어가면 정반대랍니다. 기름으로 튀기거나 볶은 다음 국물을 붓고 다시 볶거나 졸이는 글자인 소(燒·사오)의 경우 마르게 볶는 건 간소(干燒·깐사오), 붉은 색이 나도록 졸이는 건 홍소(紅燒·훙사오)로 구분하죠. 그것도 모자라 초(炒·차오, 강한 불을 사용해 기름으로 짧은 시간에 볶는 것)와 폭(爆·바오, 뜨거운 기름이나 물에 순간적으로 익혀내는 법)으로, 볶는 방법도 세분화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늘과 동격이다 보니 먹는 게 부족한 것은 불경이다. 그래서 식탁의 음식은 항상 넘쳐난다. 실제 베이징·광저우·상하이·지난·선양 등지에서 중국인과 식사를 하면서 음식이 모자라 추가 주문한 적이 없다. 항시 종류와 양이 많아 과식으로 고생한 기억뿐이다.
지난달 중국 산둥(山東)사회과학계연합회에서 초대한 오찬 자리도 생전 처음 보는 채소요리·두부요리·해물요리·돼지고기요리·닭고기요리에 탕과 밥과 국수에 디저트까지 30여 가지 메뉴가 식탁에 올랐다. 그러나 식사가 끝났을 땐 대부분 접시가 반도 비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았다. 세계음식문화연구원 양향자 원장은 “중국에선 손님을 식사에 초대했을 때 음식이 부족하면 큰 결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허리띠 풀고 바닥까지 싹싹 비우면 곤란하다. 초대받은 사람도 적당히 남기는 게 미덕이란다.
둔황 서역 통로의 요충지로 중국 음식과 서방 요리가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인도와 페르시아 지역의 음식문화도 소화해냈다. 남방의 쌀밥과 차, 북방의 조밥과 꽈배기, 유목민족의 기름에 튀긴 빵과 구운 고기·치즈·연유, 서방의 구운 빵과 포도주, 페르시아의 구운 만두, 인도의 설탕 등이 어우러져 일상적인 먹거리가 됐다.
산시 진나라 상인에 의해 알려진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새콤달콤한 맛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신맛의 비중이 크다. 조리할 때는 원재료 맛을 중시하기 때문에 불 조절에 신경을 많이 쓴다. 튀기기·볶기·삶기·굽기·찌기·볶은 뒤 물전분 넣기 등 다양한 요리기술을 담고 있다. 메인 메뉴는 해산물요리를 최고로 꼽는다.
시안 요리의 발원지답게 다양한 재료를 엄격하게 골라 세밀하게 조리해 낸다. 특히 탕 요리에 강하며 재료 본연의 색과 형태, 즙, 맛을 중시한다. 원료는 살코기뿐 아니라 내장은 물론 피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사용한다. 조리사의 기술도 뛰어나 비단에 고기를 올리고 채를 썰어도 비단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말이 돌 정도다.
항저우 생선과 쌀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세부적으로 ‘호수 위(湖上)’와 ‘성 근방(城廂)’의 두 가지 음식으로 나뉜다. 전자는 생선·새우류·가금류를 주원료로 만든다. 깔끔하고, 신선하고, 바삭바삭하고, 연하게 요리한다. 후자는 고기를 많이 쓴다. 기름을 적게 쓰고, 국물이 걸쭉하지 않고, 담백하며 짭짤한 맛이다.
지린 만주족의 식문화를 바탕으로 산둥지방의 조리법에 조선족과 몽골족의 음식 특성을 가미했다. 음식 재료는 고기와 산나물 등 400여 종에 이른다. 지린요리 중에서 특히 ‘백두산 진귀연회’는 백두산 인삼과 송이버섯, 사슴고기, 개구리 기름 등 진귀한 재료가 들어가 값비싼 자양건강식으로 꼽힌다. 스궈반판(石鍋拌飯)이란 돌솥비빔밥도 있다.
랴오닝 청조의 궁중요리, 관청요리, 서민요리에 만주족·몽골족·조선족·한족 등 동북지역 다양한 민족의 요리가 기본 구성요소다. 베이징·산둥요리법의 정수를 받아들여 칼 솜씨와 색깔이 뛰어나다. 눈으로 보는 맛도 있고, 입에서 맑고 담백한 맛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해산물과 녹색채소가 다양하게 쓰인다.
상하이 가정의 일상식이 발전한 것으로 비교적 소박하고 알차다. 간장을 사용해 졸이거나 원재료를 살짝 볶는 조리법이 많다. 물고기 등을 살짝 볶고 간장으로 익혀 검붉게 만드는 훙사오(紅燒)요리를 즐긴다. 맛이 무겁고 기름이 많은 게 특징이다. 원래의 조리법에 닝보 등 인근 지방의 음식을 받아들여 서방의 조리법과 결합한 독특한 메뉴도 많다.
닝보 저장성 요리의 주요 분파로 정통 해산물요리가 특기다. 해산물과 소금을 하나로 해 찌거나 굽고 삶는 과정을 거쳐 맛있는 향까지 이끌어낸다. 신선함과 부드러움을 중시해 특히 노인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로 꼽힌다. 조리 과정에 원재료의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빛깔은 진한 것을 추구한다. 살아 있는 해산물이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