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향(香) 자에 대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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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30 16:55본문
홍콩, 즉 향항은 왜 "香"자가 들어 있을까? 그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한가지는 바로 여해적에 관한 설이다. 옛날 "향고(香姑)"라는 여해적이 있었는데 한 섬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섬을 "香港"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가지 설은 옛날 "香港仔"라는 곳 부근에 큰 폭포가 있었는데 물이 달콤해 항해에 나선 선박은 늘 이 곳에서 담수를 취하곤 했기 때문에 이 곳을 "향항"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오래전 석배만 부근에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름이 "향항촌"이었다. 현재 사람들은 이 곳을 여전히 "작은 향항" 혹은 "향항위"라고 부르고 있다. 오늘날의 향항섬과 구룡 등 지역은 과거 중국 광동성의 동완현에 속해 있었다. 그후 동완현에서 떨어져 나와 오늘날의 심천시, 향항섬 등 지역으로 나뉜후 모두 보안현에 속하게 되었다. 1840년 아편전쟁후 청조정부는 강압적으로 향항섬을 영국의 조차지로 넘겨주었다.
당시 광동성 동완현에서는 향료를 생산했는데 이 향료는 고밀향수라는 나무의 즙으로 응결돼 형성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향료는 일부는 잣나무향, 일부는 단향목 향을 갖고 있어 향로제품의 원료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
동완에서 생산된 이런 향을 "완향"이라고 불렀으며 당시 대부분 이 항구에서 소주와 항주, 베이징 등 지역에로 향료가 판매된 것이다. 그 뒤로 이 부근의 섬은 "향항"으로 불리웠고 부근의 마을을 "향항촌"이라 불렀다.
홍콩에서 나는 향료는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상등품은 가격이 높아 황금가격과 거의 맞먹었다. 가장 비싼 향료는 "동완 여아향"인데 당지의 부녀들이 고밀향수의 뿌리를 파내어 가장 좋은 부분만 뽑아 향료 상인들에게 판매한 것이었다.
청조시기 황궁에서 이와같은 향을 대량으로 수요했는데 그 산량이 제한되여 있어 궁중에서는 직접 사람을 파견해 동완에서 구입했으며 심지어 강제로 향을 받아왔다고 전해진다. 당시 농민들은 압박에 못이겨 향나무를 없애버리고 뿔뿔이 도망가게 되었고 "완향"은 쇠락의 길로 나아가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다. 단 "향항"이란 이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