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커버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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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1-18 10:29본문
한바탕 광풍이 지나간 듯하다. 지난 1일 건국 60주년 기념 국경절을 맞아 열린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의 열병식에서 첨단무기를 자랑하며 중화부흥의 위용을 전 세계에 과시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 국경절 행사를 직접 또는 TV로 지켜보며 60년간 발전된 중국의 위상을 확인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중국 인민들. 생방송에 이어 다음날까지도 경축행사 전 장면을 반복하고 되짚어 본 관영 중앙방송(CCTV)을 포함한 주요 방송사들과 신문들.
‘조국 발전에 대한 무한한 감동'과 ‘너무나 자랑스러운 중국'이라는 댓글로 도배질한 인터넷 게시판. 2일 오전 개방과 함께연이틀이나 150만명 이상씩 찾은 열병식 현장 톈안먼 광장을 시작으로 지난 한주동안 중국 대륙은 온통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자긍심으로 물들었다.
중국인들이 조국의 발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하며 서방에 필적할세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당당함이 담긴 건국 60주년 행사에 벅찬 감동으로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서구열강의 침탈을 받은 치욕의 역사를간직하고 있다. 또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毛澤東)주석이 “인민들이 일어났다”고 선포할 당시 중국은 솔직히 볼품없는 농업국가에다 사회주의 신생아였다.
1951년 티베트(시짱·西藏)를장악하면서 대만 및 일부 연해지역을 제외한 중국 전 지역을 통일한 이듬해에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679억위안(약 11조8852억원)에 불과했다. 1958년 ‘대약진(大躍進)운동'을 시작하며‘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자'는 ‘차오잉간메이(超英美)'를 앞세워 강국 건설을 부르짖었으나 국민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내면서 GDP가 고작 1307억위안에 그쳤다.
그러나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 전회에서 개혁·개방을 선언, 당시 3645억2000만위안이던 GDP는 4년 뒤 1982년 5000억위안을 돌파하는가 싶더니 다시 4년이 지난 1986년에는 1조275억2000만위안으로 1조위안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GDP 1조위안시대도 잠시였다. 1992년 2조위안, 1993년 3조위안, 1995년 6조위안, 1998년 8조위안, 2001년 10조위안에 지난해에는 남부지역 폭설 등이상기후와 쓰촨(四川)대지진의 악조건에도 GDP 30조670억위안(약 5262조9277억원)을 돌파하면서 연평균 8.1%라는 놀라운 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2006년, GDP기준으로 영국을 따돌리면서 중국의 ‘차오잉간메이'가 절반은 실현됐다. 지난해 중국의 GDP 4조4016억달러는 미국(14조 달러)과 일본(4조9237억달러)에 이어 세계 3위. 그러나 올연말에는 일본마저 제칠 전망이다. 지난 60년간 사회주의 후발주자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확보하게 될 중국에 남은 것은 이제 미국뿐이다.
하지만 ‘미국을따라잡자'는 마오의 구호도 그리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사회과학원은 그 시기를 2018년으로 전망하고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는 2025년, 골드먼삭스는 2027년으로 예상한다. 시기는 다르지만 추월이라는 결론에는 이견이 없었다.
개혁·개방으로 오늘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콴유(李光耀) 총리에게 “중국이 싱가포르크기만 돼도 어떻게 해볼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988년리콴유와의 마지막 만남에선 “50년 앞을 내다보며 싱가포르와한국으로부터 배워갈 생각”이라고도 했다.
‘영국을 넘어서고미국을 따라잡자'는 마오의 후예들, “싱가포르와 한국으로부터배워갈 생각”이라던 덩의 후예들이 일군 중국의 기적을 세계는지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