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져가는 중국의 ‘핵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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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11-15 11:47본문
제갈량(諸葛亮)이 죽으면서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읽도록한 책이 ‘한비자(韓非子)'라고 한다. 실권을 가진 군주가 신하들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통치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한비자는 오늘날까지 유세하려는 자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신중국 후에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毛澤東)이 그랬듯이 중국의 지도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한비자를 즐겨 읽는 것으로알려져 있다. 한비자 ‘세난(說難)'편 말미에는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나온다. “용이란 동물은 유순해서 길들이면 탈 수있다. 그러나 턱밑에 한자 정도 되는 거꾸로 난 비늘, 바로 역린이 있는데 자신을 길들인 사람이라도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는 부분에서다. 역린은 상대의 약점이기도 하고, 민감부위이기도 하다. 자존감일수도 있고, 건드려서는 안되는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다.
중국 지도자들이 한비자를 많이 읽어서일까. 그동안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와 ‘절부당두(絶不當頭·절대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를 지켜오던 중국 지도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대국이 되면서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나라에 가차 없이 보복을 가하고 있다.
중국의 역린은 무엇인가. 바로 국가의 안전과 생존을 지탱하는‘핵심이익'이다. ‘핵심이익'이라는 이 단어가 중국 신문 지상에 빈번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대만,티베트(시짱·西藏) 등의 문제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국가 핵심이익에 관계된다”고 표시했다. 이 핵심이익을 중국외교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戴秉國)는 2009년 7월 미·중전략과경제대화에서 “첫째, 기본 제도와 국가 안전 유지 보호, 둘째,국가 주권과 영토보전, 셋째, 경제 사회의 지속적인 안정 발전”이라는 3가지로 요약했다.
이 가운데 가장 민감한 부분은 국가주권과 영토보전에 관한 핵심이익이다. 이를 건드리는 한 ‘죽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12월 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의 경고에도불구하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나자 에어버스 구매 연기, 상품 구매단의 프랑스 방문 제외 등 막강한 경제력을 무기로 프랑스를 압박했다. 프랑스가 전직 총리를 사절단으로 보내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티베트는 중국 땅”이라는 굴욕적인 선언을 하고서야 마지못한 듯 손을 내밀었다.
2009년 여름에는 호주가 당했다. 자국 국영기업의 호주 광산업체 리오틴토 인수 무산으로 속앓이를 하던 중국은, 호주가 미국에 망명 중이던 신장(新疆)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의 대모 레비야 카디르의 영화 상영과 그에게 입국 비자를 내주자 기다렸다는 듯보복에 나섰다.
지난 9월7일 동중국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인근 해역에서 일본이 자국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 억류로 시작된 중국의 관광·무역 보복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모두가 중국의 핵심이익인 역린을 건드린 탓이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이익은 이해가 걸린 당사국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문제다.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이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자국의 경제발전과 국력상승에 따라 마음대로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다. 중국 지도자들이 한비자를 즐겨 읽는다면 한비 역시 그토록 조심하고 경계하던 ‘세난’과 ‘역린’의 희생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도 함께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