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사람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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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2-01-21 21:38본문
"의심하는 사람을 의심하라."
기자는 상하이에 온 지 한 달 만에 '의심하는 사람'에게 두 번 당했다. 위조지폐 얘기다. 가짜가 판치는 중국에서 위조지폐 얘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상하이엔 위조지폐로 승객을 속이는 불량 택시기사들의 사기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식이다. 승객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돈을 지불하면 택시 기사가 승객의 지폐를 위로 쳐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손가락으로 문질러본다. 중국에서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는 위폐 확인 동작이다. 돈을 만져보던 택시 기사가 승객에게 "위폐 같으니 다른 돈을 달라"고 한다. 승객이 다른 돈을 주면 또다시 다른 돈을 달라고 하고, 이런 행동을 서너 번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택시 기사는 자기가 갖고 있던 위폐를 승객의 진짜 지폐와 슬쩍 바꿔치기한다.
'의심하는 사람'을 의심하라는 말은 여기서 생겼다. 위폐는 대부분 100위안(약 1만8000원)권이나 50위안권인데, 승객이 그보다 작은 단위의 화폐를 내면 "가짜인 것 같다"며 반복해서 바꿔달라고 하다가 결국 100위안권이나 50위안권을 내게 만든다.
기자는 어느 날 상점에 가서 100위안권을 사용하려다 퇴짜를 맞았다. 점원은 손가락으로 지폐를 두세 번 비벼보고는 단박에 "가짜"라며 기자를 향해 지폐를 던졌다. 당시 택시 기사들의 사기 행각을 몰랐던 기자는 은행 안 ATM에서 인출한 돈이 가짜일 리 없다고 생각하며 퇴짜맞은 지폐를 진폐와 면밀히 비교해보았다. 역시 위폐였다. 일부 요철 처리가 돼 있어야 할 부분이 맨들맨들했고 일련번호 앞의 영문 알파벳 모양이 진폐와 달랐다.
기자는 돈을 찾은 은행 지점으로 가 직원에게 "ATM에서 인출한 돈에 위폐가 섞여 있었다"고 하자 그는 "ATM의 돈은 진폐 확인을 모두 거친 것"이라며 도리질을 했다. 그는 택시 기사들의 사기 행각을 알려주며 기자가 그들에게 당한 게 분명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민 중엔 택시기사에게 한 번에 700위안을 사기당한 사람도 있었다.
위폐 문제는 중국 전역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5월엔 중국 최대의 위폐 사건 재판이 열려 화제가 됐었다. 후난(湖南)성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위폐범 일당이 위폐 1억4000만위안어치를 시중에 유통시킨 사건이다. 주범에게 사형이 선고돼 위폐범에 대한 중국 당국의 처벌이 얼마나 엄한지를 확인시키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기도 했지만 위폐제작과 유통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하루 100~200위안 벌기가 쉽지 않은 택시 운전사들 경우 한 번만 슬쩍하면 일당이 공짜로 생기는데 범죄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국의 수천만 점원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돈을 허공에 비쳐보고 손가락으로 비벼대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인들이 처음 보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이유는 가짜 문화와 거짓 문화가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관시(關係)문화'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불신 사회에서는 역시 관시만한 보증수표가 없다. 중국 최고의 금융가인 상하이 푸둥지역, 그곳에 있는 세계 최대 은행 공상(工商)은행 지점에선 지금도 화상을 통해 고객들에게 위폐감식법을 부지런히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