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한국문화원에서 '전설의 무희' 최승희를 조명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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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2-01-09 04:30본문
중국 베이징(北京)의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전설의 무희' 최승희를 조명하는 행사가 7일 열렸다.
이 행사는 주중 한국문화원과 연낙재 주관으로 최승희의 제자인 베이징 중앙희극학원 최승희 무도연구반 출신들을 초청해 이뤄졌다.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 성기숙 연낙재 관장의 '중국무용 근대화에 끼친 최승희 영향' 주제 발표로 시작해 최승희 방송영상 자료 및 미공개 영상 관람, 참가자들의 최승희 회고 및 증언 순서로 이어졌다.
최승희는 1950년대 초반 베이징에 최승희 무도연구반을 설립해 중국 고전무용체계를 정립하고 무용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이징 중앙희극학원 최승희 무도연구반은 중국 무용을 주도하는 인재 양성 요람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행사에는 장조혜 전 중국중앙발레단 안무, 짱치 전 중국중앙가무단 단장, 왕시영 중국희극학원 교수, 박영광 중앙민족대학 부학장, 최월매 중앙민족대학 교수, 손용규 베이징 무도학원 교수 등이 참석했다.
지난달에는 최승희가 193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신무용 '명비곡'과 '보살춤'을 추는 전체 공연 실황과 전통을 소재로 한 '장고춤'과 '부채춤'을 추는 모습, 1940년대 후반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한 '풍랑을 뚫고'의 전체 영상물 등이 새로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는 최승희 탄생 100주년이어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최승희는 19세 때인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서울에 세우고 활동하던 중 1946년 남편인 문학평론가 안막을 따라 월북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과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장에 올랐지만, 1967년 숙청돼 2년 뒤인 1969년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2003년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이 행사는 주중 한국문화원과 연낙재 주관으로 최승희의 제자인 베이징 중앙희극학원 최승희 무도연구반 출신들을 초청해 이뤄졌다.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 성기숙 연낙재 관장의 '중국무용 근대화에 끼친 최승희 영향' 주제 발표로 시작해 최승희 방송영상 자료 및 미공개 영상 관람, 참가자들의 최승희 회고 및 증언 순서로 이어졌다.
최승희는 1950년대 초반 베이징에 최승희 무도연구반을 설립해 중국 고전무용체계를 정립하고 무용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이징 중앙희극학원 최승희 무도연구반은 중국 무용을 주도하는 인재 양성 요람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행사에는 장조혜 전 중국중앙발레단 안무, 짱치 전 중국중앙가무단 단장, 왕시영 중국희극학원 교수, 박영광 중앙민족대학 부학장, 최월매 중앙민족대학 교수, 손용규 베이징 무도학원 교수 등이 참석했다.
지난달에는 최승희가 193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신무용 '명비곡'과 '보살춤'을 추는 전체 공연 실황과 전통을 소재로 한 '장고춤'과 '부채춤'을 추는 모습, 1940년대 후반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한 '풍랑을 뚫고'의 전체 영상물 등이 새로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는 최승희 탄생 100주년이어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최승희는 19세 때인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서울에 세우고 활동하던 중 1946년 남편인 문학평론가 안막을 따라 월북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과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장에 올랐지만, 1967년 숙청돼 2년 뒤인 1969년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2003년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