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한국학교의 '작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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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7-30 10:34본문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자." 중국의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上海)에서 교민자녀들을 위해 '국적교육'을 실시하는 한국학교는 1916년 임시정부 산하 교육기관으로 개교한 이래 폐교와 재(再)개교, 교사(校舍) 이전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1천1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 뒤에는 한인학교 설립을 위해 직접 의견을 모아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바자회를 여는 한편, 한국과 중국 정부 및 기업의 지원을 끌어내는 등 발로 뛴 상해 교민들의 노력이 있었다.다음은 주(駐) 상하이 총영사관(총영사 김정기)에서 보내온 상하이 한국학교에 얽힌 감동의 사연이다.
『1916년 개교한 '상해 한국학교'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최대경제도시 상하이에서 교민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한 국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세계를 가슴에 품고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자'는 교훈아래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의 한국학교로 자리 잡았지만,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처음 임시정부 산하기관으로서 '상해 기독교 소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해 이듬해 '인성학교'로 이름을 바꿔 민족주의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배양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건물 조성기금 부족과 일제의 식민동화교육 강요로 인해 1926년 문을 닫아야 했다.광복 이후 1946년 학교는 다시 문을 열었으나, 사실상 외형만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한중 수교가 단절된 상태였으므로 학생들은 주로 북한 교민 자녀들이었다. 이들은 북한식 교육과정에 맞춰 연변의 교과서로 공부했다. 1981년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그마저도 문을 닫아야 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다시 상하이에 한국인들이 진출했다. 그리고 1997년 5월 자녀 교육을 고민하던 상하이 교민들이 나섰다. 교민들은 정부에 학교설립 추진 배경에 대해 설명해 1998년 정부 보조금 9억 원을 배당받았고, 교사 파견을 검토하겠다는 교육부의 답을 받았다.
상하이 총영사관의 주선으로 포동신구 합경진인민정부가 무상으로 학교부지 약10무를 기증받기로 하고 대우그룹이 30만 달러를 출연하기로 함에 따라 본격적인 학교설립 운동이 벌어졌다.주민들 사이 모금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채우기로 했지만, 당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로 인해 가정경제와 대우그룹이 타격을 입으면서 상황은 어려워졌다.
교민들은 정식학교가 아니더라도 교사(校舍)를 임대해서라도 개교할 것을 원했고, 마침 중국을 방문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교민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임대학교 논의가 적극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1998년 3월 학교설립기금 마련을 위해 교민사회가 연 바자회는 1천여 명이 참여해 대성황을 이뤘고, 2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그 가운데 12만 달러가량은 학교재단이사회에, 나머지는 당시 중국 재난지역에 구호성금으로 전달됐다.
이밖에도 상하이를 방문하는 국회의원이나 상하이 주재 기업들의 기부금을 지속적으로 받아 학교 설립기금을 마련했다.한 번 실패를 경험한 상하이 교민사회는 1998년 9월 개교를 목표로 한국학교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하여 1999년 9월 1일, 상하이 한인학교는 치신로(七薪路)의 칠보이중 건물을 빌려 초등부 학생 43명으로 드디어 문을 열었다.
당초 교민들이 원하던 장소는 아니었으나, 자신들이 직접 지정한 곳에서만 학교설립 허가를 내주겠다는 중국 정부의 통보에 따라 교민사회는 일단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시 분위기상 중국 정부의 제의를 거절할 경우 학교 인가마저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상하이 한인학교는 치신로 시절을 거쳐 2005년 다시 중국 강성학교의 건물을 빌려 이전했고, 이듬해 7월 현재 위치인 민항구(閔行區) 화차오진으로 옮긴 후에야 '만년 더부살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현재 교민 자녀 초중고생 1천100명이 재학 중인 상하이 한인학교는 지금도 개교 당시의 민족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고, 외국어(영어.중국어) 및 정보화 교육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인 한국인을 양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