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일찌감치 발 뺀 리카싱…'재벌의 남다른 촉'

중국 경기둔화 우려로 전 세계 투자자들이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홍콩 재벌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은 이미 중국에 대한 비중을 줄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리카싱 회장의 선구자적인 혜안이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커창 회장은 2011년부터 중국에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줄여왔다. 2011년 허치슨포트홀딩스 지분 62%를 55억달러에 매각했고 후이셴부동산신탁 40%를 16억5000만달러에 넘겼다. 작년에는 소매점 체인인 A.S 왓슨을 56억8000만달러에, 홍콩일렉트릭과 아시아콘테이너터미널스홀딩스를 각각 31억달러, 3억2000만달러에 팔았다. 
통신, 항만 및 인프라스트럭처, 유통, 에너지 등 크게 네 개의 사업부문 중에 인프라스트럭처와 유통부문 정리에 나선 것이다. 2012년 이후 중국에서 이렇다 할 투자는 없었고, 오히려 상업단지나 주택개발 프로젝트, 빌딩 등을 일부 팔았다. 최근에도 상하이 푸둥 금융중심가에 있는 상업단지 센추리링크 매각을 추진하면서 중국 시장 철수설이 나오기도 했다. 
리카싱 회장의 부동산 자산 대부분이 중국에 있지만 이제 개발사업에는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대신 유럽의 자산을 사들였다. 지난 18개월 동안 유럽의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는데 2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올해 영국 2위 통신사업자인 O2를 157억8000만달러에 인수했고 영국 철도그룹인 에버숄트 레일그룹도 38억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최근 1년6개월 동안 유럽 자산 인수에 들인 돈이 이전 10년 동안 합친 금액보다 더 많다. 
이에 따라 허치슨의 영업이익에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범중화권을 넘어섰고 작년에는 42%까지 늘어 범중화권 비중 30%와 차이를 벌렸다. 
월지는 리카싱 회장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중국 경제 붐으로 인해 쉽게 돈을 버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란 판단에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였지만 유럽은 오랜 기간 꾸준히 성장해온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다. 또 홍콩에서는 리카싱 회장이 추가로 투자할 곳이 많지 않은 반면 유럽은 무궁무진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유로화 약세로 인해 유럽 자산이 중국보다 더 싸졌다는 점도 리카싱 회장의 관심을 끈 요인으로 꼽힌다. 
우디 우 홍콩중문대학 회계담당 교수는 “리카싱 회장이 정말 뛰어난 점은 바로 자산 매각 시점”이라며 “가격이 적당할 때에 팔아 금융에 관련해서는 천재”라고 말했다. 실제 2008년 리카싱 회장이 상하이의 금융구역에 있는 40층 빌딩을 개인 투자자에게 49억위안에 매각한 이후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3년이 지난 시점에 이 빌딩 매각가는 5억 위안 떨어졌다. 
이밖에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 같은 중국 부동산 신흥 재벌이 떠오르면서 경쟁이 심해진 것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1990년대 리카싱 회장이 가졌던 건설에 대한 노하우가 더는 경쟁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 정치권력과의 관계가 냉랭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카싱 회장은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중국 경제를 개방하기 시작한 이후 중국에 진출한 첫 번째 해외 투자자 중 한 명이었다. 덩샤오핑뿐 아니라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시진핑 현 주석과의 관계는 이보다 소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인 빅터 리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최근의 중국 경기부진과 증시 급락을 겪으면서 미리 발을 빼기 시작한 리카싱 회장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고 월지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