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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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7-11 17:15본문
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
2019.07.11
캐리 람((Carrie Lam Cheng Yuet-ngor, 林鄭月娥) 행정수반(chief executive)
캐리 람((Carrie Lam Cheng Yuet-ngor, 林鄭月娥) 행정수반(chief executive)은 1957년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 가정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홍콩의 서민거주 지역인 완차이(Wanchai)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가난을 겪으며 성장했다.
8 식구가 좁은 하꼬방같은 집에서 살았는데, 제대로 공부를 할 공간도 없었다. 그녀의 남매들은 빽빽한 이층침대에서 함께 자고 생활했다. 캐리 람은 공부할 책상도 없어 침대 위에다 책을 펴놓고 서서 공부를 했다(그녀의 전임자였던 렁춘잉 행정수반도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산동성에서 홍콩으로 이주해 온 본토 출신 하급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 봉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릴 수 없어 투잡을 뛰었다. 렁춘잉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돕느라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어깨뼈가 탈골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어려웠던 가정에 불운도 일찍 찾아왔다. 그녀의 할머니는 병을 앓아 누웠고, 아버지도 풍에 걸려 제대로 사람 구실을 못하였다. 집안의 주된 가장(bread-miller)이 일찍부터 쓰러져 경제적 활동을 못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가사를 꾸리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캐리 람의 어머니는 강하고 심지가 곧은 분이었다.
그녀는 하꼬방 같은 집안에서 5 자녀를 건사하면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해야 했다. 캐리 람은 어려서부터 어려운 가정 분위기 속에서도 성장하면서 어머니를 보며 인내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의 어머니의 강인한 생활태도는 캐리 람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던 그녀는 학교생활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에서는 반장을 맡아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와 함께 고등학교 생활을 했던 급우들은 캐리 람이 항시 정의감의 강하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가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캐리 람의 유년 생활은 힘들었지만, 공직에 입문한 이후 그녀는 승승장구하였다. 개발부장관, 정무부총리에 이어 홍콩 최고의 공직인 행정수반 자리까지 거침없이 달려갔다.
그녀는 2007-2012년간 개발부장관을 하면서 한국을 방문하였다. 한국 방문 기간 동안 그녀는 한국의 발전상과 한국 공무원들 역량에 대해 많은 감동을 받고,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홍콩 있는 동안 여러번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러나 홍콩특별구 행정수반이 일 개인처럼 한국에 갈 수는 없는 일이었고, 뭔가 중요한 계기가 있어야만 했다.
개발부장관을 끝내고는 정무부총리(정무사장)을 맡았고,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 시위가 발생하였을 때 시위대에 대한 단호한 대응으로 베이징 당국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때의 업무처리 방식은 2017년 그녀가 홍콩 최초의 여성 행정수반이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렁춘잉 행정수반 후임으로 John Tsang 경제부총리와 Carrie Lam 행정장관 중 누구를 차기 행정수반을 시킬 지 고민하던 중국에게 캐리 람의 2014년 업무방식은 베이징에 신뢰와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홍콩대학 재학시 대학생 중국 본토 방문단을 조직하여 칭화대학으로 연수를 떠난 것도 당시 홍콩의 분위기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공직에 입문한 이후 운도 좋았다. 원래 그녀는 2017년에 행정수반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행정수반이던 렁춘잉이 1기를 무사히 마치고 제2기 행정수반까지 하는 것으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 초대 퉁치화 행정수반 이후 도널드 창 행정수반 등 역대 행정수반들이 모두 이런 저런 일로 중도낙마했는데, 렁춘잉은 1기에 이어 2기 행정수반까지 베이징에서 이미 내락을 받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행복해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앞 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제2기 행정수반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렁춘잉에게 아주 곤란한 상황이 갑자기 발생하였다. 렁춘잉 행정수반의 가정에 곤란한 문제가 생겨 렁춘잉 수반이 더 이상 공직을 수행하는게 어려워졌다. 안 좋은 일은 계속 이어졌다.
렁춘잉 수반의 부인과 딸이 홍콩 공항에서 출국하는 과정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일부 규정을 위반한 사건이 언론에 터졌다. 이로 인해 홍콩에서 렁춘잉 수반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렁춘잉 정부에 대한 불만이 들끓었다. 결국 렁춘잉 수반은 제2기 행정수반직을 부득이 포기하게 되었다. 캐리 람에게 갑작스럽게 행정수반 출마의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캐리 람에게 미소를 지었다.
캐리 람은 일찍부터 업무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았다. 맺고 끝는 게 분명했고, 맡은 업무를 틀림없이 해냈다. 그녀는 일벌레(workholic)으로 유명했다. 일을 하느라 주말 주중이 없었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유명했다. 그녀의 모든 생활은 일에 맞추어져 있었고, 일은 그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종종 업무차 그녀를 만나면 캐리 람 수반은 상대방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나 lip service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만나고 나면 직접적인 push는 없었으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복기해보면 결국 엄청난 push 였다는 것을 금방 이해했다.
그녀는 이제 기존에 해왔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엄청난 정치적 도전에 직면 했다.
장신신 기자 kiraz0123@12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