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기 농민봉기 수령 이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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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2-03 01:08본문
이자성(李自成)은 중국 명(明)나라 말기의 농민봉기군 수령으로 섬서성 미지 출신이다. 농민가정에서 태어난 이자성은 소년시절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를 즐겼으며 커서는 무예를 닦아 재간이 출중했다. 21살 나던 해 이자성은 양친 부모를 여의고 역참에 가서 마부노릇을 하였다.
1628년 섬서 지방에 대기근이 들어 굶주린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이자성은 병사 몇 십 명을 이끌고 왕좌패가 인솔하는 농민봉기군에 합류했다. 후에 이자성은 고영상 밑에서 침장이 되었는데 이자성이 인솔한 봉기군은 당시 농민봉기군의 주력으로 되였다.
1636년 고영상이 전사한 후 이자성은 농민봉기군의 한 두령으로 되여 침왕이라고 자칭했다. 다른 두령들이 명나라에 투항한 후에도 이자성은 계속 농민봉기군을 이끌었다. 1640년 하남성으로 들어간 후 다시 세력을 회복한 이자성은 이암, 우금성 등 학자들의 건의에 따라 "귀천을 가리지 않고 농토를 균등하게 분할하며 3년 동안 징세하지 않겠다"는 민생책을 내놓았으며 "살인하지 말고 재물을 탐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고 약탈하지 말라"고 엄령을 내려 군기를 엄하게 다스려 민중의 신망을 얻었다.
1643년 이자성은 양양에서 스스로 신순왕이라 자칭하고 서안(西安)을 진공했다. 서안을 공략한 이자성은 이듬해 국호를 대순, 연호를 영창이라고 정하고 관료 제도를 설치하여 국가체제를 갖추었다. 또 동정군을 일으켜 3월에는 산시성을 거쳐 북경성에 대해 맹공격을 들이댔다. 명나라 숭정제(崇貞帝)는 대세가 기운 것을 느끼고 수황정 옆에 있는 홰나무가지에 목을 매여 자살했다. 하여 중국을 277년 동안 통치해온 명 왕조는 멸망을 선고했다.
이자성이 황제 보좌에 앉은 후 오삼계와 강남의 명나라 잔여세력, 그리고 북방의 청나라에 대한 경각성을 늦추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1645년 4월 오삼계의 명나라 군과 북방의 청나라군의 협공을 받아 이자성의 농민봉기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이자성은 북경성을 떠나 철퇴를 거듭하던 중 호북 통산현에서 현지 지주무장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