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춘절(春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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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2-04 00:56본문
춘절(春節) 이야기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현대화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여전히 전통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통 명절이다. 전통 명절 중 으뜸은 바로 '춘절'이다.
중국인 십중팔구는 전통 명절의 대표 명사로 춘절을 꼽는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중국인 대부분이 춘절에 고향을 찾는다. 이동하는 이들의 숫자는 한국인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많다. 한국에서도 설날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는 숫자가 대략 2000~3000만 명 가량인 것으로 추산하는데, 언론에서 이를 두고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춘절에 이동하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 일부 보도에 의하면 17~19억 명이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가히 '대륙의 이동'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춘절'은 언제 처음 탄생했고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일반적으로 춘절의 출현은 농업의 시작점과 맞닿아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양력을 사용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주로 음력을 사용했다. 이 음력은 농업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동아시아에서는 봄에 곡물의 씨를 뿌리는 농사를 시작하고, 가을에 그 수확물을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춘절에는 봄에 모든 생물이 태어나 성장하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즉 고대 중국에서는 봄은 시작, 가을은 마무리라고 여겼다. '춘추'란 단어도 단순히 계절적인 봄과 가을이 아니라, 1년이라는 순환주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의미로 춘추는 나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에게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란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대화하면서 '한국에서 춘절을 보내는가?'
'한국의 춘절 날짜는 중국과 같은가?' 등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는 중국인이 춘절을 전통명절 중 가장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중국의 교자(餃子) / 사진출처 = pixabay
춘절이 한 해의 시작이라는 의미와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은 '교자(餃子)'를 먹는 풍습이다. 한국인들은 설날이 되면 떡국을 먹는다.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여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재산도 얻을 수 있다고들 한다.
즉 떡국의 주 재료인 가래떡은 흰색은 밝게 한 해를 보내라는 의미고, 가래떡의 긴 모습은 장수를 뜻한다. 가래떡이 썰린 모습이 돈(엽전)과 비슷하다고 해서 물질적인 풍요까지 기원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중국의 '교자(餃子)'는 한(漢)나라 시대의 명의(名醫)였던 장중경이 발명했다고 전해진다. 교자의 원래 이름은 '교이(嬌耳: 아름다운 귀 모양)'이였는데, 이후 '자시(子時)'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교자(交子)'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 이름에서 다시 음식을 의미하는 '식(食)'자가 붙어 교자(餃子)가 됐다는 주장이 있다.
즉 '자시(子時)'는 12간지에서 '자(子)'의 시간이다. 처음 즉 시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섣달 그믐에 온 가족이 함께 교자를 만들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동전을 깨끗하게 씻은 뒤에 교자에 넣고 춘절 당일에 교자를 먹을 때 동전이 있는 교자를 먹으면 복이 온다고 믿는다.
한국의 떡국이 새로운 해에 무병장수와 풍요로움을 뜻한다면 중국의 교자 역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다.
▲ 통일된 양식은 없지만 압세전(压岁钱)은 주로 빨간 봉투에 담아 준다 / 사진출처 = flickr
중국 춘절의 특이한 풍습으로는 '압세전(壓歲錢)'이 있다. 이 압세전은 한국의 세뱃돈과 비슷하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돈이지만 그 유래가 있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수(祟)'라는 검은 몸체와 하얀 손을 가진 요괴가 있었다. 이 '수(祟)'는 섣달 그믐날 저녁에 아이들의 머리를 만지는데, 수(祟)의 손길이 닿은 아이들은 몸에서 열이 나면서 아프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면 똑똑했던 아이들이 총기를 잃어 바보가 됐다.
이에 어른들은 섣달 그믐에 '지킬 수(守)'를 써서 '수수(守祟)'라며 아이들을 지키려고 했지만 '수(祟)'는 여전히 막을 수 없었다. 이에 신선들의 물건이 요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 '팔선(八仙: 여덟 명의 신선)'의 의미를 가진 여덟 개의 동전을 아이들의 베개 밑에 넣어 더 이상 수(祟)가 접근하지 않게 했다.
이러한 전설이 전해지면서 중국의 춘절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데 이를 '압수전(壓祟錢)'이라 불렀고, 후에 '압세전(壓歲錢)'으로 글자가 바뀌게 됐다(중국어에서 수(祟)와 세(歲)의 발음이 같다).
한국에서는 설날 아침에 어른께 세배를 드리면 어른들이 세뱃돈을 주는데, 중국의 '압세전(壓歲錢)'은 주로 섣달 그믐 저녁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준다. 최근에는 춘절 당일에 주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 사진출처 = wikimedia
또한 춘절의 유래 있는 풍속으로는 '도복(倒福: 복(福)자를 거꾸로 붙이는 것)'이 있다. 이 풍속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 유래는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의 황후인 '마황후(馬皇后)'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는 강력한 철권정치를 통해 많은 정치 세력과 사람을 엄격하게 대했다. 전설에 의하면 홍무제 시기의 대부분의 신하들은 아침에 유서를 작성하고, 저녁에 귀가한 후에 별다른 일이 없다는 것을 안도하면서 아침에 작성했던 유서를 불태우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홍무제는 '복福'자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마음씨 착한 마황후가 신하들에게 억울한 죽임을 막기 위해 그들의 집에 '복'자를 붙이라고 몰래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어떤 신하의 집에서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복자를 거꾸로 붙였고, 홍무제는 이를 알고 화를 내며 그 집안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마황후(馬皇后)'는 거꾸로 붙여진 '복'자는 '복이 온다(福到)'로 재치 있게 설명해 홍무제의 화가 풀렸다고 한다.
두번째 유래는 청나라 '공친왕부(恭親王府)'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청나라 말기 공친왕은 청나라 황제를 보좌하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게 됐다.
섣달 그믐날 공친왕부의 총관은 공친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많은 '복'자를 준비해 곳곳에 이를 붙이도록 했다. 여러 하인들은 총관의 명령대로 곳곳마다 '복'자를 붙였는데, 글자를 모르는 어떤 하인이 대문에 '복'자를 거꾸로 붙였다. 이를 알게 된 공친왕의 부인은 창피해하면서 매우 화를 냈는데, 총관은 기지를 발휘하여 공친왕부에 '복이 왔다(福到)'고 설명했고 이러한 사실이 점차 민간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춘절이 되면 많은 중국사람들의 대문이나 현관에는 '복'자가 거꾸로 붙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춘절 기간 가장 많이 팔리는 다발 형태의 중국식 폭죽 / 사진출처 = flickr
중국의 '춘절'에 대표적인 풍습은 바로 '폭죽'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년(年)'라는 괴수는 평소에 깊은 바다에 살고 있는데, 섣달 그믐날이 되면 육지로 올라와 곡식과 가축을 잡아먹었다.
이 '년(年)'이 나타난 마을은 불행한 일이 지속됐다. 그래서 이 '년(年)'이 출현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쳤는데, 어떤 노인이 '년(年)'을 잡기 위해 집에 빨간 색 종이를 붙이고, 촛불을 준비했다.
그 후 '년(年)'이 섣달 그믐에 마을로 찾아왔지만 빨간 색 종이가 두려워 마을의 입구에서 움직이지 못했고, 촛불의 불이 다른 나무에 붙으면서 나무가 타는 소리를 내자 도망을 갔다.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년(年)'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빨간 색 종이와 탈 때 큰 소리가 나는 대나무를 준비했다. 당나라 시기에 화약이 만들어지면서 대나무에 화약을 넣어 더 큰 소리를 내게 하였고, 또한 빨간 색 종이도 같이 넣어 섣달 그믐 밤에 태우기 시작하했다. 이것이 바로 '폭죽'의 유래다.
춘절에 폭죽을 터뜨리는 풍습은 시대를 지나면서 민간으로 더욱 확대됐고, 지금도 중국인들은 춘절에 반드시 폭죽을 터트린다. 때로는 과도한 경우가 있어 사람들이 다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 2009년 중국중앙방송(CCTV) 문화센터에 폭죽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모그가 극심한 북경에서 폭죽 터트리는 것을 일부 제한한다는 정부 시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춘절은 중국만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는 명절이기 때문에 한번쯤 직접 경험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북경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구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