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에 《청황실선조유래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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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06 09:19본문
예로부터 두만강류역은 다국, 다민족, 다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였다.
《두만강반제1도시》 도문은 두만강지역문화를 도문의 브랜드로, 새 도문건설의 생장점으로 활성코저 지금 한창 확건중인 두만강공원광장에 《청황실조상유래비(淸皇室肇祖由來碑) 》를 세우기로 하였다.
두만강은 녀진어(女眞語) 투먼써친(圖們色禽)에서 나온 말인데 투먼(圖們)은 만(滿) 즉 많다는 뜻이고 써친(色禽) 물줄기, 새가 많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해석, 기록되였다. 도문강(圖們江)이나 두만강(豆滿江)은 녀진어의 동음이역이다.
중국은 만족이 통치하던 청나라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로 확정되였다. 그런데 270년 이상이나 중국을 통치한 청나라의 황실이 두만강류역에서 발원했다는것이 지금까지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고있다.
사서(史書)에는 청나라 황실의 조상은 바로 두만강 중류지역인 오더리부락에서 나왔다고 기재되였다.
명나라는 1410년에 길림성 훈춘과 조선의 경원, 회령일대에 건주좌위(建州左衛)를 설치,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1559-1626)의 6대조가 바로 오더리부락의 두만(豆滿)인 맹가테무르(猛哥貼木兒,?-1433)였다. 맹가테무르는 건주의 수령으로 두만강중류지역에서 활약하다가 녀진족들 부락간 전쟁에서 죽었는데 그의 시체는 지금도 조선 회령시 풍산면에 매장되여 있다.
청비사(淸秘史)는 만족의 조상신화가 바로 두만강중류에서, 14세기 중반이전의 시대적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록했다. 도문은 바로 두만강의 이름으로 명명된 유일무이한 변경도시다.
이 몇년간 도문시에서는 도문을 《조선족문화와 두만강문화를 만방에 알리는것을 종지》로 《두만강문화관광》 《두만강국제 연놀이》 《두만강지역개발개방 도문발전포럼》 등 굵직굵직한 축제와 포럼조직에 이어 작년 6월에는 학술계, 문학계, 신문계의 부분적 인사들을 청해 전문적으로 《연변두만강지역문화개발연구》 모임을 조직하였다.
《연변두만강지역문화개발연구》 모임에서 도문시당위 박송렬서기는 학자들의 론문과 건의를 심도있게 청취하고 충분한 력사적, 문자적 기록을 의거로 즉석에서 도문에 《청황실선조유래비》를 세울것을 채납하고 이 관련사업을 착실하게 추진할것을 관계부문에 지시하였다.
일전 도문시당정책임자들은 이제 설립하는 《두만강문화발전촉진회》에 위탁하여 지금 확건중인 두만강공원광장에 《청황실선조유래비》를 세우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