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중국 4대 미녀 왕소군 박물관서 만난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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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4-14 08:52본문
13 중국속의 ‘아리랑’
중국의 동북 3성과 그 북쪽 넘어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일대는 옛 고구려의 기상이 떨치던 곳이다. 중국 환경운동가인 쩡(鄭) 선생이라는 분은 네이멍구 동북쪽 어디에선가 한국적 서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지역을 봤다며 목격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쩡 선생은 문화대혁명때 그곳에 하방돼 3년간 생활했었는데 언어와 기질 음주습관과 가무 등에서 조선사람(한국인)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옛날 고구려의 세력이 이곳까지 뻗쳐 그 흔적이 남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번은 중국 외교부가 외신기자들을 위해 주선한 취재 프로그램으로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의 북쪽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중국 4대미녀 가운데 한명인 왕소군의 박물관을 참관한 적이 있다.
외신 취재단을 인솔한 현지 공무원은 왕소군 관련 유적이 사막과 초원지대인 이런 외진 곳에 자리잡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야사에 따르면 한나라 때 강성했던 변방 민족인 흉노족이 중원을 침략했는데 이때 한나라 조정이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궁녀인 미녀 왕소군을 흉노족의 대장에게 공물로 내줬다는 것이다.
왕소군에 관한 설명을 듣는둥 마는 등 귓등으로 넘기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이 전시실 벽면에는 중국 남북조 및 북위시대의 자료 지도가 걸려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문제의 이 지도에 한반도 전체와 동북 3성 훨씬 북쪽의 광활한 지역이 모두 고구려 영토로 표기돼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학술 연구 프로그램을 앞세워 고구려를 자기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전시장에 버젖히 걸어놓은 이 지도를 보면서 중국이 결국 우리와는 또다른 입장에서 ‘과거엔 이랬다’며 한반도 전체에 대한 역사의 연고권을 시위 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느낌이 영 개운치 못했다.
당시 외신기자단중에는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 기자 등 북한기자 둘도 함께 참가했는데 이들 역시 지도 앞에 한참 머물며 낮은 소리로 뭔가 소곤거렸다.
“고구려가 정말 엄청난 대국이었구만.”
“그러네.....”
귓등으로 들려오는 말은 대충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 ...실효적 지배가 중요한... 남쪽은 왜 그렇게 ..... ”
내가 자리를 뜬 뒤에도 두사람은 한참동안 지도앞에 서성대며 무슨 얘기인가를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었다.
중국은 국경 지역의 역사를 자기들 입김에 맞게 기록해 나가는 동북공정을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그들의 이런 기도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단을 들춰 낼 때마다 냄비처럼 달아올라 흥분했다가는 이내 관심을 꺼버리기 일쑤였다. 우리 정부도 고구려 역사연구 관련 재단 등의 기구를 발족해 훗날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완성해낼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이론적으로 얼마나 명쾌하게 반박 논거를 제시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제고 또다시 동북공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학술적 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감정만 앞세워 흥분하면서 호들갑이나 떨고 정작 학계와 연구재단은 꿀먹은 벙어리 시늉이나 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는 정말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중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 만리장성을 축조하듯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 연구를 아주 조직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국력이 무소불위로 강대해져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언제이고 대외적 패권 야욕으로 우리의 국익에 커다란 도전이 될지 모른다.
중국의 동북 3성과 그 북쪽 넘어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일대는 옛 고구려의 기상이 떨치던 곳이다. 중국 환경운동가인 쩡(鄭) 선생이라는 분은 네이멍구 동북쪽 어디에선가 한국적 서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지역을 봤다며 목격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쩡 선생은 문화대혁명때 그곳에 하방돼 3년간 생활했었는데 언어와 기질 음주습관과 가무 등에서 조선사람(한국인)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옛날 고구려의 세력이 이곳까지 뻗쳐 그 흔적이 남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번은 중국 외교부가 외신기자들을 위해 주선한 취재 프로그램으로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의 북쪽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중국 4대미녀 가운데 한명인 왕소군의 박물관을 참관한 적이 있다.
외신 취재단을 인솔한 현지 공무원은 왕소군 관련 유적이 사막과 초원지대인 이런 외진 곳에 자리잡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야사에 따르면 한나라 때 강성했던 변방 민족인 흉노족이 중원을 침략했는데 이때 한나라 조정이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궁녀인 미녀 왕소군을 흉노족의 대장에게 공물로 내줬다는 것이다.
왕소군에 관한 설명을 듣는둥 마는 등 귓등으로 넘기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이 전시실 벽면에는 중국 남북조 및 북위시대의 자료 지도가 걸려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문제의 이 지도에 한반도 전체와 동북 3성 훨씬 북쪽의 광활한 지역이 모두 고구려 영토로 표기돼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학술 연구 프로그램을 앞세워 고구려를 자기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전시장에 버젖히 걸어놓은 이 지도를 보면서 중국이 결국 우리와는 또다른 입장에서 ‘과거엔 이랬다’며 한반도 전체에 대한 역사의 연고권을 시위 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느낌이 영 개운치 못했다.
당시 외신기자단중에는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 기자 등 북한기자 둘도 함께 참가했는데 이들 역시 지도 앞에 한참 머물며 낮은 소리로 뭔가 소곤거렸다.
“고구려가 정말 엄청난 대국이었구만.”
“그러네.....”
귓등으로 들려오는 말은 대충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 ...실효적 지배가 중요한... 남쪽은 왜 그렇게 ..... ”
내가 자리를 뜬 뒤에도 두사람은 한참동안 지도앞에 서성대며 무슨 얘기인가를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었다.
중국은 국경 지역의 역사를 자기들 입김에 맞게 기록해 나가는 동북공정을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그들의 이런 기도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단을 들춰 낼 때마다 냄비처럼 달아올라 흥분했다가는 이내 관심을 꺼버리기 일쑤였다. 우리 정부도 고구려 역사연구 관련 재단 등의 기구를 발족해 훗날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완성해낼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이론적으로 얼마나 명쾌하게 반박 논거를 제시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제고 또다시 동북공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학술적 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감정만 앞세워 흥분하면서 호들갑이나 떨고 정작 학계와 연구재단은 꿀먹은 벙어리 시늉이나 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는 정말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중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 만리장성을 축조하듯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 연구를 아주 조직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국력이 무소불위로 강대해져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언제이고 대외적 패권 야욕으로 우리의 국익에 커다란 도전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