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기 날리는 부용의 동네 부용(芙蓉, Forong)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작성일11-04-28 08:27본문
묵향기 날리는 부용의 동네 부용(芙蓉, Forong)은 원래 이름이 왕촌(王村)이었는데 이 동네에서 <부용진>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영화의 주인공이 미두부(米豆腐)라는 묵을 만들면서 부용이라는 이름으로 내외에 이름을 날렸다.
이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부용은 기원전 200여년의 진(秦)나라때 유양(酉陽)이라 불리는 지방왕족의 도읍이었다. 그 뒤에 팽씨토사(彭氏土司)가 이 곳에 나라를 세우고 왕촌이라 이름했다.
수백년동안 호남서부의 정치, 경제, 문화중심으로 역할을 해온 부용은 유수(酉水)를 빌어 상하로 편리한 수로 교통을 자랑하면서 중요한 교통 요충지와 번화한 동네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수상가옥으로 된 이 박물관 건물의 반은 물위에 떠 있고 반만 땅위에 솟아 있다. 건물을 떠인 시멘트 기둥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면서 어제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물위를 흐르는 배위에서 이 수상가옥을 바라보면 또 다른 운치를 자랑한다.
부용의 113번지는 영화 <부용진>의 주인공이 묵을 팔던 장소이다. 영화에서 부용의 묵을 알고 이 곳을 찾는 손님이 아주 많다. 부용에는 새콤한 맛의 묵외에도 단 맛의 쏘가리 요리, 살 찐 골뱅이 요리, 시원한 토가족의 막걸리 등 많은 먹거리가 있다.
이 건물 맞은켠에는 청나라때의 골동품을 경영하는 가게가 있다. 맛 있는묵을 맛 보고나서 이 가게에 들려 정교한 조각이 화려한 일명 물이 떨어지는 침대라는 침대를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원래 복숭아꽃, 배꽃과 차나무, 귤나무의 화과산(花果山) 육각정(六角亭)에 있다가 지금은 왕촌민속풍광관에 옮겨진 계주동주(溪洲銅柱)는 토가족의 성물이다.
940년에 오래동안의 싸움끝에 초나라 왕이 계주의 토사와 평화합의를 체결하고 지역을 분간하기 위해 5,000개의 구리 기둥을 만들었고 그 기둥에 평화합의의 내용을 새겼다.
천여년의 세월속에서도 구리 기둥은 여전히 반짝이고 그 때의 기록을 선명하게 보존하면서 토가족 고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문헌으로써 자리를 잡고 있다.
부용에서는 바위숲이 무성한 우각암(牛角岩)도 꼭 가볼 필요가 있다. 그 곳에는 버섯모양의 바위와 짐승모양의 바위, 소녀바위, 무사바위 등이 다양해 멀리서 보면 마치 바위의 분재와 같다. 그 중 소뿔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사람이 불어서 소리를 낼수 있기 때문에 이름하여 소뿔바위라는 의미로 우각암이다.
부용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토가족이다. 의상은 한(漢)족과 같지만 그들은 아직도 음력 6월 초엿새 토가족 두령이 세상을 떠난 기념일에 옷을 밖에말리는 등 고유의 민속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곳에는 또한 처녀들이 시집을 갈 때 길러준 부모의 정과 자매간의 정을 잊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흘낮 사흘밤 대성통곡을 하는 풍속도 있다.
전문가들에 의해 "가장 오래된 중국 무용"으로 평가되는 모구스(茅古斯)춤도 이 곳에서 기원했다. 짚으로 만든 치마만 입은 무용수들의 동작은 거칠고 호방하다.
부용의 가게들에서 또 빼놓을수 없는 것은 눈이 어지럽게 실북이 오가는 직포현장이다. 재주많은 토가족 처녀들이 짠 예술작품을 살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문도 할수 있다.
호남(湖南, Hunan)성 영순(永順, Yongshun)에 위치한 부용은 교통이 편리하다.길수(吉首, Jishou)나 영순에서 부용행 버스를 이용하거나 장가계(張家界, Zhangjiajie)에서 부용행 버스를 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