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아름다운 고향 황요(黃姚, Huangy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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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5-09 08:28본문
꿈속의 아름다운 고향 황요(黃姚, Huangyao)는 고요한 동네이다. 아침이나 정오, 아니면 황혼 그 어느때나 그토록 고요하다. 황요는 푸른 동네이다. 물도, 산도, 나무도, 이끼도, 밭도, 심지어 공기도 푸르게 느껴진다.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는 황요는 육칠백년전의 명(明)나라때에 동네가 형성되어 삼사백년전의 청(淸)나라때에 최고에 이르렀다. 동네에 황씨성과 요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황요이다.
리강(漓江)의 하류에 위치한 황요에는 동굴, 정자와 누각, 절과 암자, 사당, 고목, 액자 등 여섯가지가 많다. 산이 있는 곳에는 필히 물이 있고 물이 있으면 다리가 있고 다리가 있는 곳에는 정자가 있고 정자에는 주련이 있으며 주련은 필히 액자속에 들어 있다. 이 것이 바로 황요이다.
카르스트 지형이기 때문에 황요에는 진무산(眞武山)을 비롯해 기이한 산봉이 많고 요강(姚江)과 소주강(小珠江), 흥녕하(興寧河)가 그 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건물사이를 굽이 돌아 흐른다.
300여채의 명청(明淸)때 고건물과 푸른 산, 맑은 강, 그리고 강기슭의 무성한 반얀나무와 기이한 바위들은 황요를 시처럼 그림처럼 아름답게 만들면서 모든 사람들의 꿈속에 머문다.
황요의 아름다운 운치는 크지는 않지만 특이한 모양으로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바위들이 만드는 황요팔경에서 볼수 있다. 이런 바위는 모양에 따라 길위에 똬리를 튼 물고기와 해바라기를 하는 닭, 동굴속에서 나오는 뱀, 모래사장위의 거북이, 용문을 뛰어넘는 잉어 등 생동한 이름을 가진다.
황요의 옛 동네는 구궁팔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요는 강물이나 건물의 외벽으로 담을 대체하고 담을 쌓지 않은 동네이다. 대신 황요에는 골목과 건물에 많은 문을 설치했다.
이런 문들은 모두 다리나 정자와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황요의 거리는 주요 거리를 중심으로 많은 골목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아홉 굽이를 돌고 그 때문에 방어하기가 아주 쉽다.
황요의 옛 거리에는 이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 거리에 깐 청석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9만 9천 9백 9십9개라고 말이다. 누구도 거리에 깐 청석이 정말로 이 숫자가 되는지 헤어보지는 않았지만 황요에서 아홉 구자를 좋아한다는 것만은 쉽게 알수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차면 넘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넘치는 열 십자보다는 조금 여지가 있는 아홉 구자를 더 좋아하면서 자신의 겸허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구 곱하기 구해서 얻는 여든하나를 완벽한것으로 인정한다.
거리 양쪽의 가게건물들은 잘 보존되어 있지만 어젯날의 번화함과 기능은 찾아볼수 없고 가끔 어렴풋이 보이는 가게 간판에서 그 기능을 읽을수 있을 뿐이다.
골목도 아주 고요해서 청석을 밟는 소리와 개짖는 소리만 들린다. 황요의 청석길은 밟으면 큰 소리가 나도록 특별히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 비밀을 모는 도적이 몰래 동네에 들어오면 그 발자국 소리에 금방 잡혔다고 한다.
8갈래의 청석길 중 잉어가라고 하는 골목이 있다. 이 거리를 조성할때 자연스럽게 위치한 바위의 모양이 물고기처럼 보여 장인들이 그 바위에 머리와 꼬리를 내젖는 모양의 잉어를 조각했다. 그로 인해 도로위의 돌로 된 물고기라는 의미의 반도석어(盤道石魚)가 황요 팔경의 하나로 되었다.
황요에서는 거리 하나에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살고 그 성씨는 그 만의 사당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황요에는 크고 작은 사당 열 몇개가 있다.
명나라때 세워진 오가사(吳家祠)는 벽돌과 나무로 지은 건물에 유리기와를 얹어 화려함을 연출한다. 뜰을 둘러싼 건물에는 붓으로 벽화를 그리고 별채는 오씨네 가문의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학당과 숙박처로 사용된다.
천마산(天馬山)기슭 푸른 숲속에 위치한 절 문명각(文明閣)은 명나라때 세워졌다. 원래는 문명수제(首第)와 활연정(豁然亭), 석자로(惜字爐), 관우를 공양하는 대당정전(大堂正殿), 괴성공을 공양하는 괴성루(魁星樓) 등 건물 12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중 8채만 남아 있다. 문명각에서 한 볼거리는 역대 명인들이 남긴 시와 석각이다
요강기슭에는 명나라때 지은 무대 건물 고희대(古戱台)가 숙연하게 솟아 있다. 정자와 누각식으로 지은 이 건물은 커다란 청석으로 1m 정도의 단을 쌓고 그 위에 지붕을 떠인 8개의 기둥을 박았다.
기둥과 단에는 정교한 조각을 새기고 무대의 뒤에는 분장실로 사용되는 방을 설계했다. 고희대 바로 곁에는 오늘날 전시실로 사용되는 고건물 보주관(寶珠觀)이 위치해 있다.
진무산 기슭의 신흥가(新興街)와 황요 옛 동네의 영안가(永安街)를 연결하는 대룡교(帶龍橋)는 바닥에 커다란 청석을 깔고 쇠줄로 연결해 일체를 이룬다.
무성한 반얀나무의 배동하에 대룡교는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대룡교의 돌계단을 내리면 바로 양(梁)씨들이 모여사는 신흥가이다. 뒤에 진무산을 업고 높게 올라앉은 거리의 한쪽에는 키 높은 포루(炮樓)가 있는데 그 포루에 올라서면 황요가 한 눈에 안겨온다.
풍수 좋은 황요에는 기이한 경관도 많다. 선인고정(仙人古井)이라 이름한 우물에서는 사시절 샘물이 솟아 오른다. 전하는데 의하면 음력 7월 초이레에 받은 샘물은 3년을 두어도 썩지 않고 그 물을 마시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우물은 모양도 특이하다. 위로부터 아래로 세 개의 못으로 나뉘는데 샘물 구멍에서 가장 가까운 못의 물은 식용수로 쓰고 두번째 못에서는 채소를 씻고 세번째 못에서는 빨래를 하고 그 세 과정을 거친 다음 강물로 흘러든다.
산 기슭에 위치한 황요는 사면에 산이다. 정상 진무산과 수탉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한 계공산(鷄公山), 술병같은 주병산(酒甁山), 골뱅이 같다고 해서 지은 라산(螺山)이 황요를 품에 안고 있고 그 기슭으로는 세 갈래의 강물이 흐른다고 해서 전설에 의하면 이 곳은 용 아홉마리가 둥지를 튼 풍수 좋은 곳이라고 한다.
광서(廣西, Guangxi) 소평(昭平, Zhaoping)에 위치한 황요는 교통이 편리하다. 계림(桂林, Guilin)에서 공교(鞏橋, Gongqiao)행 버스를 이용하면 4시간만에 공교에 이르고 공교에서 황요까지의 5km는 다양한 방법으로 쉽게 이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