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창하던 어젯날 부두 포전(鋪前, Puq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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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5-16 08:33본문
번창하던 어젯날 부두 포전(鋪前, Puqian)은 뒤에 산을 업고 앞쪽으로 바다를 마주하면서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짙은 부두문화를 형성한 부요한 동네이다.
삼면이 바다에 안긴 포전은 원래 계북(溪北)이라 불렀고 편리한 수로와 육로교통으로 인해 해남이라는 큰 섬속의 섬으로 인정되며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1895년에 조성을 시작한 승리가(勝利街)가 바로 번창한 부두를 업고 형성된 옛 거리이다. 동서향과 남북향의 거리가 열 십(十)자로 사귄 이 거리 양켠에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곳의 건물은 남양풍이 다분한 기루(騎樓)로 거리쪽을 향한 건물의 1층은 기둥만 있는 공간이어서 지붕있는 보도로 사용된다. 때문에 이 곳의 모든 거리양쪽에는 복도가 펼쳐져 장관이다.
이런 건물들은 특히 지붕장식에 신경을 쓰고 베란다와 난간, 기둥도 각자의 특색을 자랑한다. 그리고 벽체의 무늬와 바람벽의 모양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이 서로 다르다.
동서양 건축기법의 기묘한 접목을 실현한 독특한 이런 건물들은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백여년의 세월속에서 오늘날도 고풍스러운 어젯날의 풍채를 자랑한다.
해남지역 유명서원의 하나인 계북서원(溪北書院)은 1893년 청(淸)나라때 건물이다. 넓은 부지를 차지한 이 서원은 문도 양쪽에 건물이 딸리고 지붕에 유리기와를 떠인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서원이 서서부터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 곳에서 강연을 했고 많은 인재들이 이 곳에서 나왔으며 1910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북쪽에 바다를 낀 해발 117m의 칠성령(七星嶺)은 크고 작은 산봉 십여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7개 산봉이 유난히 두드러져 북두칠성과 유사하다고 해서 이름이 칠성령이다.
칠성령의 산에는 숲이 무성하고 동식물자원이 풍부하다. 그 중 한 산허리에는 맑고 단 물맛으로 성수(聖水)로 인정되는 샘물이 일년 사시절 쉬지 않고 퐁퐁 솟아오른다
그 산의 기슭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운치있는 칠성성낭신묘(七星聖娘神廟)라고 하는 암자가 있고 그 곁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둥근달모양의 호수가 위치해 있다.
일곱 산봉은 별 일곱개요, 그 기슭의 호수는 달과 같아 이 곳은 달을 동반하는 별이라는 의미의 칠성반월(七星伴月)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칠성령의 정상에는 1625년 명(明)나라때 세운 두병탑(斗柄塔)이라고 하는 탑 하나가 솟아 있다. 팔각형에 칠층으로 된 이 탑은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진다. 탑의 내부로는 계단을 통해 탑 꼭대기까지 올라갈수 있으며 탑정상은 인근 경치를 한 눈에 볼수 있는 좋은 전망대기이도 하다.
항만의 도시 포전에는 포전항과 목란항(木蘭港), 신부항(新埠港)을 비롯해 세 개의 미항이 있다. 그 중 포전항은 유규한 역사를 자랑하는 항구로 어선과 상선이 오가고 해적과 외세를 막는 중요한 곳이었다.
또한 바닷물이 맑고 파도가 잔잔하며 백사장이 뉘연하고 모래가 부드러운 포전항은 수영과 일광욕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칠성령과 연결되고 삼각형 모양의 넓은 개활지를 가진 목란항도 좋은 관광지이다.
80%에 달하는 숲조성률과 맑고 조용한 바다물의 좋은 생태계를 가진 이 곳의 바위에는 해발 97m의 등대가 솟아 넓은 바다를 비쳐준다. 목란항 바로 곁에 위치한 목란두(頭)는 각자 단독으로 위치한 반달모양의 백사장 7개와 기암괴석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포전에서는 1605년의 지진에 의해 바다밑으로 가라앉은 해저촌(海底村)이 볼만하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 1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육지위의 72개 동네가 수직으로 3-4m 내려앉으면서 바다밑으로 가라앉아 기이한 해저촌으로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5,6월 썰물이 질때 배를 타고 해저촌에 이르면 마을의 윤곽과 폐허가 물밑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이 곳은 중국에서 지진으로 육지가 바다밑에 가라앉은 유일한 고문화유적이다.
포전의 뱃노래는 포전의 유구한 어업문화를 대표한다. 오랜 세월동안 포전에서 뱃사람으로 살아온 이 곳 사람들의 모든 것이 이 뱃노래에 담겨져 자자손손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