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풍의 옛 물가동네로 불리우는 정성(定城, Dongch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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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5-16 08:38본문
남양풍의 옛 물가동네로 불리우는 정성(定城, Dongcheng)은 토지가 비옥하고 자연여건이 우월한 원인으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물이 많이 나는 동네였다.
강가에 솟아 있는 정성의 옛 성 정안고성(定安古城)은 서문과 북문, 1,000m에 달하는 성벽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성안의 동문가와 중남가, 서문가, 북문가 주변에는 남양풍이 다분한 건물 기루(騎樓)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1369년의 명(明)조때 지은 관아건물인 현아(縣衙)는 사면이 막힌 사합원(四合院)구도이다. 색바랜 문을 지나면 어젯날의 북과 돌기둥, 돌기초 등이 보인다.
1559년의 청(淸)나라때 세운 청담정(淸潭亭)이 북쪽문 옆에 세워져 있고 그 정자에는 청렴한 문화를 고양하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이 세워진 뒤로 이 곳은 정성의 명소로 정해져 많은 문인묵객들이 이 곳을 찾아 글을 남겼다.
청나라때 신축한 왕영두(王映斗) 생가는 세 개의 큰 뜰이 품(品)자의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뜰마다 방 3개를 가진 안채 4채에 방 3개의 별채 3채, 방 3개의 서당 1채를 거느리고 가운데 거실을 두었다. 왕영두 생가는 크고 작은 뜰 12개에 문 72개를 가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해원방(解元坊)은 1568년의 명(明)나라때 해남 최초로 과거에 급제한 현지인을 위해 세운 패방이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함을 자랑하는 패방은 태풍이 많은 현지의 환경을 감안해 패방의 앞뒤에 비스듬한 기둥을 세웠다.
이 곳의 문묘(文廟)는 유구한 역사와 웅장한 규모에서 해남의 최고를 자랑한다. 그리고 해남의 모든 문묘에서 이 곳에만 정문(正門)을 두었다. 왜냐하면 과거시험의 3위권에 든 사람만이 문묘의 정문을 통과할수 있고 정성에만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거의 모든 문묘에서는 해마다 성대한 공자제사의식을 치르는데 정성의 문묘행사는 해남의 모든 문묘 중 가장 성대했다. 그 때문에 해남 전역의 선비와 관료들이 이 문묘에 모여 공자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지의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받는 승씨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승태부인묘(冼太夫人廟)는 13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해남의 절간장행사가 벌어지는 이 곳은 오늘날 해남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대하며 규모가 가장 큰 해남 특색의 민속행사장이다.
언제나 맑은 물 찰랑이고 물고기떼 노니는 남려호(南麗湖)는 해남의 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이다. 호수가에는 푸른 숲이 설레고 푸른 하늘과 호수사이로는 항상 시원한 바람이 오간다.
남려호는 또한 품속에 16개의 섬을 안고 있는데 혹은 반달같고 혹은 골뱅이 같이 크고 작은 보석이 은쟁반에 담겨 있는 듯 하다. 도시의 번잡함이란 전혀 없는 남려호는 해남의 가든으로 불리운다.
이밖에 견룡탑(見龍塔)은 해남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탑이다. 1751년 청(淸)나라때 축조한 이 탑은 높이 25m에 달하는 7층의 벽돌탑이다. <역경(易經)>에 근거해 탑을 8면으로 만들고 면마다 "일(日), 월(月), 성(星), 신(辰), 천(天), 지(地), 현(玄), 황(黃)" 여덜 글자를 새겼다.
이 탑은 시멘트나 철근, 못, 기둥 하나 사용하지 않고 벽돌과 찹쌀 등 고대의 건자재만 가지고 수백년동안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아 높은 기교를 보여준다.
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해남의 지방극 경극(瓊劇)도 정성에서 발원했다. 해남 지방극을 이어오는 예술인들이 대부분 이 곳에서 태어남으로 인해 해남에는 "정성이 없으면 예술단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채포반(菜包飯)이라고 하는 정성의 쌈밥은 고기와 야채, 쌀밥을 비벼서 야채잎에 싸서 먹는 음식이다. 원초적인 맛을 가진 이 쌈밥은 맛 또한 아주 특이하다.
해남(海南, Hainan) 정안(定安, Zheng'an)에 위치한 정성은 교통이 편리하다. 해남 소재지 해구(海口, Haikou)에서 모두 정성행 버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