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가 남긴 타이족의 옛 동네 나윤(娜允, Na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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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5-23 08:43본문
토사가 남긴 타이족의 옛 동네 나윤(娜允, Nayun)은 1289년에 태왕 맹련(孟連)이 세운 성이다. 원(元)나라에서 지방관리를 위해 나윤에 "군민부(軍民府)"를 세우고 토사(土司)제도를 구축했다.
그때로부터 완벽한 지배제도를 구축한 맹련토사는 수백년동안 인근을 관리하는 지배기관으로 존속하다가 1949년 맹련의 해방과 함께 28대에 걸쳐 660년동안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곳의 건물은 타이족과 한족의 상이한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았다. 나윤은 상중하(上中下)에 위치한 성(城) 세 개와 진(鎭)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위치와 서열에서는 과거 이 곳의 존귀와 비천을 엿볼수 있다.
토사시대에 상성(上城)에는 토사와 가족, 토사가족의 하인들이 주거했고 중성(中城)에는 토사의 관리와 그 가족들이 살았으며 하성(下城)에는 일반 직원들이 주거했다. 망방강(芒方崗)과 망방모(芒方冒) 두 진에는 임업관과 사냥을 업으로 하는 서민들이 살았다.
1878년-1919년에 재건한 맹련 선무사서(宣撫司署)는 상성에서도 최고점에 위치해 있다. 맹련토사의 관청과 저택으로 사용된 이 건물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타이족과 한족의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은 건물이고 운남의 18개 토사관아 중 가장 잘 보존된 토사의 관청건물이다.
문당(門堂)과 의사청(議事廳), 정청(正廳), 동서별채, 식량창고, 주방 등 건물 중에서 정문인 문당은 한족식 건물이다. 세 개의 출입문을 가진 패루(牌樓)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서까래로 처마를 단장했다.
13개의 계단을 거쳐서야 선무사서의 문에 이를수 있음으로 이 곳에 이르면 발 아래로 맹련이 한 눈에 안겨와 관청의 웅장한 기세와 장엄함을 더욱 잘 보여준다.
세 겹의 지붕을 떠인 웅장한 의사청은 상하 두 층으로 되어 있다. 넓고 시원한 1층은 과거 관료들이 휴식하던 곳이며 2층으로 올라가려면 타이족의 습관에 따라 신발을 벗어야 한다.
선무사서의 2층에는 선무사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 정교한 대나무 공예품, 조개껍질에 적힌 기이한 경전, 금은장신구, 역대로 조정에서 토사에게 내린 관복, 한문(漢文)과 타이문으로 적은 공문, 토사의 생활도구 등 귀중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많은 소장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淸)나라 황제가 하사한 예복 망포(蟒袍)이다. 구름과 새, 용, 파도 등을 수놓은 망포는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1869년에 신축한 상성불사(上城佛寺)는 정문과 불전, 승려방, 팔각정, 미얀마식 불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길이 30m, 너비 20m, 높이 12m의 불전은 세 겹의 지붕을 떠 이고 건물밖 복도에 24개의 굵은 기둥을 박았다.
과거 토사가문의 전용 절이었던 상성불사는 토사가문외에 다른 사람은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상성불사는 모든 태족의 사원으로써 중국의 태족은 물론이고 외국에 나가 있는 타이족도 나윤에 돌아오면 반드시 상성불사를 찾는다.
중성불사(中城佛寺)는 과거 중성에 거주하던 관리들을 위한 사원이다. 1910년에 신축한 이 절은 정문과 옆문, 불전, 승려방 등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복도에 둘러싸여 있고 세 겹의 지붕을 떠인 불전의 특색은 건물내부의 금박을 칠한 기둥 24개과 건물외부의 기둥 24개이다.
벽체와 기둥에 불상과 보탑, 공작새, 춤, 꽃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고 혹은 타이족의 벽화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중성불사도 상성불사에 못지 않게 웅장하다.
타이족은 소승불교를 신앙하고 소승불교의 탑문화를 상징하는 것은 금탑이다. 1433년 제8대의 맹련토사가 사람을 미얀마에 파견해 미얀마의 소승불교를 나윤에 도입했고 그때로부터 소승불교가 타이족들속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타이족들은 불교사원을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종교행사와 민속활동을 함께 해왔고 그로부터 타아족만의 문학과 예술, 음악, 무용, 건축특징을 형성했다.
나윤을 중심으로 하는 맹련은 네 갈래에 달하는 타이족의 문화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곳는은 네 갈래로 발전하는 타아족의 서로 다른 역사와 가옥, 의상, 음악, 춤, 풍속 등을 찾아볼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타이족들은 지금까지 많은 풍속을 이어온다. 남자애가 일곱여덜살이 되면 부모들은 그들을 절에 보내서 탁발하고 수행하면서 경전을 배우게 한다. 또 성년남자는 몸에 호랑이나 코끼리, 공작새와 같은 동물로 문신을 새긴다.
문신은 사악함을 쫓고 재앙을 피할수 있다고 태족들은 생각했다. 그와 반면에 여성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편직물을 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나이 든 여성들은 매일 거의 모든 시간을 직포기앞에서 보낸다.
가장 성대한 타이족의 명절로는 개문절(開門節)이다. 3개월동안의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벼를 수확하는 때에 드는 개문절은 풍작을 경축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이날부터 관문절(關門節)이후부터 남녀간 사랑을 못한다는 금기가 해제되면서 남녀청년들은 자유롭게 연애를 하거나 결혼식을 올린다. 또한 개문절날에 남녀청년들은 명절옷을 차려입고 절을 찾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