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伊犁) 아홉동네 중 첫 마을 혜원(惠遠, Huiy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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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5-30 08:33본문
이리(伊犁, Yili) 아홉동네 중 첫 마을인 혜원(惠遠, Huiyuan)은 청(淸)나라 정부가 신강(新疆, Xinjiang)지역 지배를 위해 파견한 최고의 행정 및 군사장관 이리장군의 주둔지이다.
청나라 건륭(乾隆)제가 하사한 혜원이라는 이름은 청나라 황제의 은혜가 멀리까지 간다는 의미이다. 한 때 신강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허브였던 혜원옛성은 이리하 하류의 개활지대에 위치해 있다.
역사적으로 이리는 신강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교통요충지이다. 청나라 황제는 바로 이 곳에 행정장관을 파견해 혜원성을 축조하고 혜원의 주변에 위성동네 8개를 두어 토탈 "이리구성(伊犁九城)"이라 했다.
전란과 제정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혜원성의 건물은 거의 모두 파손되고 이리하의 침식으로 지하의 문화재도 찾아볼수 없다. 오늘까지 남아 있는 문화재는 일부 성터뿐이다.
1882년 청나라는 혜원성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기존의 혜원성을 본따서 새로운 성을 축조했다. 우리가 오늘 보는 혜원성이 바로 그 때 지은 것이다.
혜원성안에 위치한 이리장군부 유적에는 정원과 오솔길, 복도, 정자, 돌사자만 남아 있다. 사합원(四合院)식으로 된 장군부에는 또 키 높은 고목 네 그루가 옛 동네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장군저택 입구에 들어누운 두 마리 돌사자는 남방조각의 세밀함과 북방조각의 호방함을 두루 갖추었다. 전한데 의하면 위엄과 용맹함보다는 순박하고 둔해보이는 이 돌사자는 제정 러시아 황제의 모습으로 조각되었다고 한다.
혜원 옛 성 중앙에 위치한 종고루(鐘鼓樓)는 혜원을 내려다 볼수 있는 좋은 전망대이다. 종고루에서 동서남북으로 네 갈래 거리가 네 개의 성문으로 통하는 종고루는 3층 건물이다.
1927년과 1964년, 1981년 세번에 걸쳐 보수한 이 종고루는 신강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건물이다. 오늘날 혜원에서는 성숙된 농업재배기술과 풍부한 태양광, 토지자원을 이용해 무공해 야채와 과일생산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