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풍요로운 동네 안풍(安豊, Anf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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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6-06 08:37본문
평화롭고 풍요로운 동네로 불리우는 안풍(安豊, Anfeng)은 1280여년전 당(唐)조때부터 사서에 기록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안풍은 원래 동쪽의 금을 캐는 곳이라는 뜻으로 동도(東淘)로 불리웠다.
그 때는 바닷가에 위치한 안풍이 해풍에 의해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다. 그 뒤 1027년 송(宋)조때 한 관리가 언제를 쌓아 조수를 막음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되었고 그로부터 이름을 편안할 안(安)자와 풍년 풍(豊)자를 붙여 안풍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다가 명청(明淸)시기에 이르러서는 성세를 맞이해 주거인구가 5만가구에 박두해 그 때 당시 화남지역에서 첫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소금장수들이 몰려들이 안풍의 물길위에는 소금을 실은 배가 꽉 차고 육지에는 소금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소금집산지로 부상했다.
선주들이 적하 편리를 위해 올때마다 배에 청석을 싣고 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청석을 깔아 골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조성된 동도남가(東淘南街)는 명청시기의 옛 거리 모습을 완정하게 보전하고 있다.
전성기인 명청시기에 이 곳에는 양념가게와 원단가게, 잡화점, 다방, 식당등을 비롯해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만 해도 100여개에 달했고 상품을 가지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행상도 500여명이나 되었다.
그 중 가장 특색있는 곳은 칠판다사(七茶爿社)이다. 매일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차를 마시고 자그마한 무대에서 하는 공연을 구경한다. 현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동도전(東淘傳)>은 매일 똑 같은 내용을 중복해도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한때 은행으로도 쓰였던 포씨대루(鮑氏大樓)는 사면에 키 높은 담이 둘러서고 담장에 내외로 이중문을 달았으며 90도 각으로 나란히 한 두 문 사이에는 좁은 공간이 있다.
높은 건물이 첩첩 늘어서서 웅장함을 자랑하고 건물사이에는 뜰이 아담한데 가끔 건물에서 뜰로 통하는 숨은 길도 있어서 신비감을 더해준다. 세 겹의 뜰에 방 18개를 가진 포씨대루는 정교한 장식과 조각으로 미적인 감각을 주는 동시에 당시의 경제발전상황도 잘 보여준다.
명말청초의 애국장령을 기념하기 위해 신축한 사당 오씨종사(吳氏宗祠)는 벽돌과 나무로 지은 건물인데 두 줄의 건물사이에 넓은 뜰이 있고 앞문은 거리로 향하고 뒷문을 나서면 바로 물길이다.
원래 북극전(北極殿)으로 불리운 미타사(彌陀寺)는 1575년의 명조때 신축한 건물이다. 그 때 당시 내외에 이름이 자자해 많은 신도들이 찾았으나 항일전쟁에서 불에 탔다.
미타사에는 황궁과 연관되는 많은 전설도 깃들이 있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오늘날 그 자리에 원래의 모양을 본따서 미타사를 복원해 어젯날의 경관을 회복했다.
유구한 역사와 편리한 교통으로 인해 안풍은 경제가 발전하고 경제의 발전과 함께 문화를 형성하는 명인들도 많이 잉태했다. 안풍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안풍출신의 명인은 소금가문에서 난 철학자 왕간(王艮)이다.
생계를 위해 소금을 팔면서 왕간은 서민경제와 서민소득을 위해 "백성의 일상이 길이다"와 "백성의 일상을 기본으로 한다"는 자신의 철학사상을 구성했다.
안풍의 대표음식으로는 맛이 담백하면서도 오래도록 고소한 맛이 남아 있는 떡 유마병(油麻餠)과 그냥 먹으면 고소하고 물에 담그어 먹으면 소화에 좋으며 소지하기에 좋은 떡 대강취병(大岡脆餠), 기를 돕고 위장을 건강하게 해주는 건강떡 삼연팔진고(蔘燕八珍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