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시간이 멈춘 원시속으로] ‘삼도차’,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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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6-16 08:40본문
▲ 소수민족 나시족이 믿는 동파교 만신원(萬神圓)이 중국 윈난성 리장평원을 굽어보고 있다. 문명 이전의 세상을 맛보고 싶은 여행객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사진=곽인찬기자
중국 서남부의 윈난성은 줄잡아 한반도의 2배, 남한의 4배 크기다. 인구는 4600만명으로 남한과 비슷하다. 남쪽으로 베트남·라오스·미얀마와 국경이 닿아 있다. 이곳에 25개 소수민족이 오순도순 모여 산다.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절반에 해당한다. 윈난의 땅과 하늘, 바람과 구름, 산과 강에는 수천년간 그곳을 지키며 살아온 소수민족들의 혼이 배어 있다. 윈난성 내 최다 민족은 한족이지만 윈난의 진정한 주인이 소수민족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윈난은 다리(大理)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다리는 남조대리국(南詔大理國)의 수도로 한때 중원의 당(唐)·송(宋)에 맞서 당당한 세력을 과시했던 곳이다. 그 때의 영광을 간직한 다리 고성(古城)은 세계 5대 고성 중 하나로 꼽히며 이미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명소가 됐다.
다리는 배산임수 도읍지의 전형이다. 뒤는 창산(蒼山)이 병풍처럼 둘러쳤고 산자락을 따라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그 앞은 바다처럼 넓은 이해(뫟海) 호수다.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북한산을 진산으로 삼아 한강을 바라보고 궁터를 세운 것과 다르지 않다. 풍수를 보는 눈은 지역과 민족을 불문하고 유사하다.
다리 고성은 윈난 여행에서 꼭 봐야 할 곳이지만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 장소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러기엔 너무 세련됐다. 대신 다리 남쪽 웨이산(巍山) 이족회족(彛族回族) 자치현 내 이슬람 마을 연화촌으로 가보자. 마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시계 태엽을 되돌린 듯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촌장은 누가 봐도 아랍인처럼 생겼다. 그의 부인과 딸들도 하나같이 이국적이다. 윈난에서 회교도를 만날 줄이야. 그들의 조상은 원(元)나라 때 윈난으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회교도들은 고유 문화를 간직한 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촌장과 인사가 끝나자 딸 둘이 차를 내온다. 이름하여 삼도차(三道茶). 세 잔을 연거푸 마시는데 첫 잔은 고차(苦茶)라 하여 쓴맛이고 두번째 차는 첨차(甛茶)라 하여 단맛이고 세번째 차는 회미차(回味茶)라 하여 여운을 느끼게끔 복잡미묘한 맛이다. 차 석 잔을 마시는 동안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윈난 소수민족들은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모스크는 사찰의 대웅전을 연상케 한다. 현판엔 한자와 아랍어가 나란히 쓰여 있다. 다리고성에 가면 천주교 성당이 있다. 그 성당도 외관만 보면 절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모스크든 성당이든 윈난에 오면 철저한 동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도 본질은 잊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니 이러한 개방·포용성이야말로 윈난 문화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윈난에 가면 간판 곳곳에 청진(淸眞)이란 단어가 보인다. 이는 알라신을 뜻하니 곧 회족이 운영하는 점포로 알면 틀림이 없다.
웨이산에도 고성이 있다. 다리고성보다 작지만 사람이 들끓지 않아 좋다. 이곳엔 주로 이족(彛族)이 모여 사는데 수백년 된 허름한 집을 수리하지 않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이족은 한국인과 꼭 닮았다. 몽고인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윈난에서 본 여러 소수민족들이 모두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특히 이족은 우리를 빼닮았다. 아니 우리가 그들을 빼닮았는지도 모른다. 윈난을 수십번 드나든 한국학연구소 박현 소장의 말이 이족보다 묘족(苗族)이 우리와 더 닮았다니 윈난과 한반도의 역사적 관계가 궁금할 뿐이다. 웨이산고성 안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미셴(米線) 식당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쌀국수다. 서울에서 먹는 베트남식 쌀국수보다 면발이 더 쫄깃하고 맛은 강한 편이다. 쌀국수 앞에는 보통 과교(過橋)니 과강(過江)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기엔 전설이 있다. 옛날 과거시험 공부에 열심인 선비가 있었다. 그는 호수 한복판 정자에서 글공부를 했다. 선비의 처는 공부에 정신이 팔려 굶기를 예사로 하는 남편에게 보양식을 바쳤다. 정자까지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이렇게 해서 닭고기 국물에 '다리를 건넌 쌀국수' 즉 과교 미셴이 나왔다.
그런데 미셴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반찬으로 우리가 먹는 김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로 버무린 양배추 김치는 딱 먹기 좋을 만큼 시큼했다. 한국 손님이 온다고 일부러 김치를 담갔나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윈난에서 김치는 흔한 반찬이다. 양배추 김치 외에 무 생채도 여러 번 먹었다. 8박9일 윈난 여행에서 한 번도 한국 음식점을 찾지 않고 혹시나 해 챙겨간 고추장도 그대로 되가져온 것은 윈난식 김치 덕이 크다.
웨이산엔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全眞敎)의 본산이 있다. 높은 언덕에 있어 한적한 이 도관 역시 사람 발길이 뜸해 시간 여행지로는 제격이다. 도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이 태극 팔괘다. 태극기를 통해 태극 팔괘를 접한 한국인들에겐 약간의 문화적 충격이 따를 수 있다. 태극기의 유래를 윈난 곳곳에서 맞닥뜨릴 때마다 당혹스럽다.
도관에는 남조국 왕들의 사당이 모셔져 있다. 일종의 종묘인 셈이다. 비석에 새겨진 이족 특유의 쐐기문자도 이채롭다. 쐐기문자는 원시적인 상형문자가 점차 추상화한 형태다. 리장(麗江)에 사는 나시(納西)족의 상형문자 동파문(東巴文)과 함께 이족의 쐐기문자는 윈난 소수민족들의 문화적 독창성과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윈난에는 어딜 가나 고악(古樂)이 있다. 다리에서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따라 북쪽에 있는 리장고성 안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상설 고악연주 무대가 있다. 리장 백사(白沙)마을에 들렀을 땐 한 쪽에 노인 서너명이 앉아 전통 악기를 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웨이산고성 공진루(拱辰樓)에서 들은 남조고악단의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윈난 고악은 도교에 뿌리를 둔 동경(洞經)음악이다. 도교의 대동선경(大洞仙經)을 송축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소수민족 특유의 민간음악과 중국 당·송·원의 궁중 음악이 뒤섞였다. 이들 노래가 천 년 세월을 넘어 원형을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연주된다. 윈난 고악을 음악의 활화석이라고 부르는 게 과장이 아니다. 고악 연주엔 종종 보컬도 따른다. 차마고도로 기약없이 떠나는 마방(馬幇) 남편과 그런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내의 애절한 대창(對唱·이중창)은 홀연 눈시울을 적신다. 객석에선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앙코르는 아리랑. 소수민족들이 한데 어울려 빚어낸 아리랑 화합의 선율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