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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실크로드를 가다](3)고대 동북아 국제무역도시 차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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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8-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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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강 ‘요하’를 건넌 불심·문명, 찬란한 고대의 빛
옅은 연무 속에 질펀한 갈대밭이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다. 설레는 추억 속에 선양을 떠난 지 한 시간 남짓하면서부터다. 요하(遼河) 강가에 이르렀다. 요하는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잊지 못할 강이다. 때로는 이 강이 우리 강토의 경계선이기도 했고, 때로는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도 하면서 그 너머의 땅까지 차지한 적도 있었다. 동북 남부평야를 가로지르는 장장 1400㎞에 달하는 이 강은 대흥안령에서 발원한 서요하와 장백산맥에 수원을 둔 동요하가 만나서 발해만에 흘러 들어간다. 수천년간 이곳 사람들은 정말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안간힘을 다 써가며 강을 다스려 보려고 했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아직 무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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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양의 북탑에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불자들. ‘동북 제1탑’으로 불리는 북탑은 높이 42.6m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진창물에 묻혀 있는 갈대밭이 바로 그 유명한 요택(遼澤), 즉 요하 강가의 소택지다. 내몽골 사막에서 흘러내리는 유사로 인해 이런 소택지가 형성된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보장왕 4년(645) 당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에 내침할 때 이 요택에 이르니 진흙이 200리나 되어 인마가 통행할 수 없어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만큼 짓궂은 땅이다. 오늘 변한 것이라곤 그 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길 몇 오리뿐이다. 키가 족히 2~3m나 되는 굵은 갈대만이 인간의 무능을 비웃 듯 가을바람에 설레설레 몸을 젓는다.
이역의 정취를 감상하느라 중간 중간 달리기를 멈추다보니, 선양에서 차오양까지의 260㎞ 거리를 5시간이 걸려서야 주파했다. 길가에 ‘개고기 갈비’란 간판을 내건 허름한 식당이라든가, 안내 표시로 긴 장대에 색 초롱을 매단 것은 무언가 우리의 것을 연상시킨다. 그 옛날 한 때 이곳은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으니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차오양의 야경은 꽤나 화려하다. 중국의 여느 도시처럼 가로등이나 간판들이 세련미는 없어 보이지만 짙은 색조에 찬연하기는 하다. 시 중심인구는 35만명이지만, 2개의 직할시와 3개의 현, 2개의 구를 거느리고 있어 인구는 총 334만명이나 된다.
‘베이다창(北大倉)신농촌주점’이란 깔끔한 식당에서 40대 초반의 현지 여안내원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일정을 토론했다. 사실 이곳을 찾은 첫째 이유는 이곳에 우리의 고대사 전개와 관련된 몇 가지 유적·유물이 있어 그것을 현장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데 있다. 맨 처음으로 가고픈 곳은 시 동북방 근처에 있는 베이퍄오(北票)다. 1965년 그곳에 있는 북연의 한 권세가인 풍소불(馮素弗·383~415)의 묘에서 신라 고분에서 나온 유리그릇과 비슷한 유리제품 5점이 나왔다. 동북아에서는 유일한 유사품이다. 우리나라로 뻗은 ‘유리의 길’을 추적하는 데는 더 없이 귀중한 증거물이다. 그런데 안내원의 말로는 상부 지시로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그곳에 접근하는 것이 불허된다고 한다. 언저리라도 가보자고 달랬으나 막무가내다. 용렬한 ‘학문의 보호주의’ 장벽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첫 걸음부터 심상찮다는 예감을 애써 지워가면서 다음날(10월18일) 일정에 임했다.
이른 아침 북탑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엔 ‘동북제1단조와불’이라고 하는 길이 8.6m, 무게 1t짜리 와불이 현란한 조명 속에 위용을 드러낸다. 사실상 이 박물관은 중국 명탑 박물관이다. 전국 63기의 고탑 중 명탑 20기를 그림과 유물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차오양에만도 명탑들인 북탑과 남탑을 비롯해 17기의 고탑이 있으니, 이 도시는 가위 ‘고탑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진 ‘사연불도(思然佛圖)’란 사판모형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사연’은 ‘연나라를 사모’한다는, ‘불도’는 ‘불탑’이란 뜻이다. 이를 테면 연나라를 사모해 세운 불탑이란 말이다. 1600년 전 5호16국 시대에 전연과 후연, 북연의 연속 3연 수도였던 용성(龍城)의 황궁 자리에 이 탑을 세운 주인공은 북연 마지막 황제인 풍홍(馮弘)의 손녀이자 북위 효문제의 조모인 황후 풍씨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7층 방형탑으로 높이만도 80여m에 달하는 북위의 대표적 탑의 하나다. 이 탑이 바로 오늘 남아있는 북탑의 원조다. 거개가 불탑이니, 그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북연의 마지막 황제 풍홍은 북위의 공격 앞에 100년간 3국의 수도로 영광을 누렸던 도시가 운명의 경각에 달리자 요동 지방의 고구려로 피신한다. 피신 직전, 불을 질러 이 고도를 초토화시켰다. 박물관에는 요대의 7보탑을 비롯해 각종 금은법륜과 금은경탑, 유리와 옥 제품, 특히 이곳밖에 없는 백색골(骨)사리와 홍갈색혈(血)사리 등 북탑의 지궁과 중궁, 천궁에서 발견된 귀중한 유물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필자는 유리장 속에 갇혀있는 한 점의 유물 앞에서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새 부리를 한 담록색의 유리병, 10~11세기 전반의 페르시아 병이라고 적혀 있다. 경주 황남동98호남분에서 나온 봉수형(鳳首形) 유리병과 기형이 신통하리만치 같다. 여기서도 이러한 유사품이 발견되다니. 사실 필자는 그간 중앙아시아나 이란, 터키 등 여러 곳에 점재(點在)한 이러한 유사품을 발견했다. 이제는 저 멀리 지중해 연안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진 ‘유리의 길’을 설정해 봄직한 자신감이 생겼다. 베이퍄오에 못 간 실망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쾌거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이역만리 미지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것은 이러한 행운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어 북탑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탑은 방형의 13층 밀첨식전탑(密式塼塔)으로서 현존 높이는 42.6m의 고탑이다. 흔히들 이 탑을 가르켜 3연과 북위, 수, 당, 요나라의 5대를 거쳤다고 해서 ‘오세동당(五世同堂)’의 탑, 또는 ‘동북 제1보탑’이라고 한다. 탑의 동·서·북면의 중앙에는 가문(假門)이 나있고, 남면 한가운데는 중궁으로 통하는 정식 문이 있다. 탑신 4면에는 4방불과 8협시보살, 24비천, 8영탑, 탑명(塔銘) 등 주로 밀교와 관련된 부조물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아마 후대에 증수할 때 이러한 밀교적 요소들이 가미된 것 같다. 놀라운 것은 몇몇 젊은이들이 이 고탑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갈색 법복을 입은 20여명이 ‘아미타불’을 음송하면서 탑돌이를 하는 모습이다. 한편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관광객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무덤덤하다. 몇 년 전 이곳과 맞먹는 시안 법문사에 들렸을 때는 몇몇 스님이 사찰을 지키고 있을 뿐, 이런 광경은 좀처럼 없었다. ‘종교 금지’와 ‘종교 자유’란 이율배반적 현실 앞에서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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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도 끝내 건너지 못했다는 질퍽한 200리 요탁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북탑과 쌍벽을 이루는 남탑이 있다. 북탑보다는 후대인 요대에 지은 이 탑 역시 13층 밀첨식전탑으로서 높이는 약간 더 높은 45m이다. 구조나 벽면 조각상 등은 북탑과 대동소이하나, 소장 유물 대부분이 도굴당하고 관리도 허술해 먼발치에서나 바라보는 괴괴한 유물로만 남아 있다. 쌍벽이라서 그런지 두 탑 사이는 그렇게 화목하지 못한 성싶다. 현지 안내원은 남탑을 가리키면서 이런 전설을 전한다. 이 두 탑이 세워진 후 남탑에는 신성한 뱀이 살고, 북탑에는 괴이한 거미가 살고 있었다. 상서로운 동물로 전해 오는 뱀은 선해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나, 고약한 거미는 해만 주는 애물단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대로해 한밤중에 청천벽력 같은 소나기를 내렸다. 이튿날 아침 청소부 할아버지는 거미 잔해를 한 바구니 가득 수습했다. 그 후부터 북탑은 죽은 탑으로서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고, 남탑만이 영탑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전설을 뒷받침하듯, 그 후부터 제비는 남탑에만 날아들고 남탑 꼭대기에는 푸르고 싱싱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가을이 되면 풍성한 열매를 사람들에게 선사하곤 했다. 지금도 제비는 남탑에만 날아든다고 한다. 그래서 ‘보배로운 탑에 황금 제비(寶塔金燕)’란 말이 생겨났다. 인간더러 권선징악의 영험을 터득하라는 쯤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이 남탑 맞은편에는 우순사(佑順寺)라고 하는 라마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청나라 강희 37년(1698)에 황제의 하명에 따라 황궁이 직접 출자해 8년 만에 완공했다. 고색창연한 이 사원의 정문에는 강희가 하사한 ‘우순사’란 현판이 걸려있다. ‘하늘(황제)은 성실하게 백성을 보우(保佑)’하고, ‘큰 덕을 행해 천하를 순조(順調)롭게 하라’는 두 가지 뜻을 합쳐서 ‘우순사’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백성을 잘 보살피며 큰 덕을 베풀어야 천하가 태평하다는 거야 동서고금 만고의 섭리가 아닌가.

차오양은 황허문명을 비롯한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라고 하는 훙산(紅山)문화구의 동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적잖은 원시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 고도를 가로지르는 다링(大凌)하 양안에서는 구석기 시대 인류의 거주지와 고생물화석 및 원시 종교유적이 발굴되어 세인을 깜작 놀라게 했다. 주변에는 동북의 불교 명산 봉황산(鳳凰山)과 ‘요서(遼西)의 푸른 섬’이라고 하는 대흑산(大黑山)을 비롯해 산명수려한 경관들이 즐비하다. 자고로 요서 지방의 동서남북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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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탑 천궁에서 발굴된 페르시아 유리봉수병. 신라의 유리봉수병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 유구한 고도는 우리 겨레의 고대사 전개에서 늘 완충지 역할을 해왔다.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를 거쳐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강토의 가장 서변에 있는 중국과의 접경지이면서 격전장이기도 했다. 또한 문물이 오가는 통구이기도 했다. 북탑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도 발견되는 연나라 화폐 명도전(明刀錢) 유물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교역수단인 화폐의 공유는 두 나라 간에 통교가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 통구를 통해 불교도 오갔다. 일찍부터 차오양은 동북 불교의 요람으로서 불교의 한반도 동전에 가교역할을 했다. 370년에 전연을 멸한 전진(前秦)왕 부견은 2년 후인 소수림왕 2년(372)에 승려 순도를 고구려에 보내 불상과 경문을 전함으로써 불교가 비로소 고구려에 전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원에서 흥기한 전진이 전연을 멸하자마자 승려를 보냈다면, 십중팔구는 그 승려가 이미 고구려 조정과 모종의 관계를 유지해 온 이곳 출신의 승려였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가 3연과 통하는 길은 남·북도 두 갈래였다. 북도는 수도 환도에서 출발해 심주(瀋州, 현 선양)를 거쳐 통정(通定)에서 요하를 건너 영주(營州, 현 차오양)에 이르는 길이고, 남도는 환도에서 출발해 요동(遼東, 현 랴오양)을 거쳐 양어무(梁魚務)에서 요하를 건넌 다음 영주에 다다르는 길이다. 이렇게 영주는 고구려의 최서단 변방이었다. 두 당서에 의하면, 6세기를 전후해 영주는 동북아 최대의 국제무역도시였는데, 고구려가 장악하고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저 멀리 페르시아(이란)에서 상인들이 이곳까지 와서 고구려인들과 교역도 하고 어울렸던 것이다. 고구려 무용총 고분벽화(4세기 말~5세기 초) 속의 손잡고 겨루는 수박도(手搏圖)나, 각저총 벽화 속의 씨름도(4세기 말)에서 보이는 심목고비(深目高鼻)한 상대방은 다름 아닌 영주 땅을 거쳐 고구려에 들어온 페르시아인이라고 추단해도 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해동성국 발해 때의 5대 국제통로의 하나가 바로 상경에서 영주를 거쳐 중원까지 이어지는 ‘영주로’였다.
이렇게 보면 차오양은 결코 우리에게 낯선 고장이 아니다. 우리와의 역사적 인연은 끈끈하다. 그 어딘가에 선조들이 남긴 발자국과 뿌려놓은 겨레의 체취가 스며있으련만, 찾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자못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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