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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딤섬에 담긴 홍콩의 성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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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1-08-0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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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 사이의 끼니를 뜻하는 점심(點心)은 원래 불교 용어였다고 한다. 오후에는 밥을 먹지 못했던 ‘오후 불식’이라는 초기 불교의 규율 때문에 승려들은 오후가 되기 전 약간의 요기를 했다. 지금 먹으면 내일 아침까지 먹지 못할 터다. 약간의 요기. 양에 차지 않는 양이었나 보다. 위장이 아닌 고작 마음에 점 하나를 찍는다는 점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말이다.

홍콩에 갔다면 반드시 한 번 이상은 맛봐야 하는, 만두의 일종인 딤섬(點心)이 우리 식으로 읽었을 때 점심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사실 겨우 십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홍콩인들은 딤섬 그 자체보다는 딤섬과 함께 마시는 차에 방점을 두는 탓에 차를 마신다는 뜻의 ‘얌차’(飮茶)라고 말한다. 딤섬이라고 한정 짓는 단어는 차에 관심이 없는, 그저 예쁘장한 만두 먹기에만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쓰는 용어다.
패스트푸드. 이 단어에서 딤섬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로 대표되는 그 무지막지한 힘 덕분에 모든 사람들은 패스트푸드 하면 햄버거나 프랜차이즈 피자만을 떠올린다. 금방 만들 수 있고,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요리. 아마 이게 패스트푸드의 정의일 것이다. 얇은 나무로 만든 일회용 ‘도시락’에 넣어 다니며 언제든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초밥이나, 미리 빚어놓은 뒤 찜통에 살짝 쪄내기만 하면 되는 딤섬도 분명 패스트푸드의 범주에 들어간다.

샌드위치 백작이 도박에 열중하기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고 그게 버거로 발전했듯, 딤섬은 개화기 분주했던 부두가 노동자를 위한 음식이었다. 밀가루 속에 소를 넣고 찌기만 하면 끝이다. 굳이 젓가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끼니를 해결하다 갑자기 일이 생기면 왕창 입에 털어넣고 일터로 가면 그만이었다. 패스트푸드가 가진 효율성을 다 가졌던 딤섬은 부둣가를 평정하고 이내 서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침 빈속을 뜨끈한 차로 달래던 서민들은 찜통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딤섬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거우부리 바오쯔 난샹 샤오룽바오 같은 딤섬도 청나라 말기의 개화기 시절 처음 생겨났다. 거우부리 바오쯔가 탄생한 톈진은 베이징 동쪽의 항구도시이고, 샤오룽바오가 탄생한 상하이 역시 항구도시다. 지금이야 특급호텔 일류 레스토랑에서도 딤섬을 취급하지만, 딤섬으로 명성을 날리던 전통 레스토랑은 대부분 주택가에 자리 잡은 허름한 식당이다. 손때가 몇십 년 이상 쌓여 나무색인지 손때인지 알 수 없는 그 반들거리는 오래된 탁자의 광택에서 나는 안도할 때가 있다.

‘아! 이제야 홍콩에 왔구나.’

홍콩에는 지금도 역사를 자랑하는 딤섬 레스토랑이 있다. 중부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옌샹루(燕香樓)나 루위다실(陸羽茶室) 같은 곳이 그렇다. 둘 다 80년가량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존재는 버림받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 이런 오래된 식당을 지탱시켜주는 고객은 예전부터 쭉 이 집의 딤섬을 먹어왔던 홍콩 토박이 노인들이다.

아니 젊은이들은 이런 오래된 집에서 일하는 것조차 기피하는지, 홀에서 접대하는 웨이터들도 수십년은 같은 일을 했음직 한 영감님들이다. 간혹 일부 여행안내서가 이런 집을 소개하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호기심에 방문했다가도 진저리를 내며 나오곤 한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예쁘장하고 입에 맞는 딤섬만 먹다가 연꽃향이 풀풀 나는 전통식은 견디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영어라고는 전혀 통하지도 않는 투박한 영감님의 거친 서비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뱃사람의 일용 양식이었던 딤섬은 1970년대 홍콩의 경제 부흥기를 거치며 변해간다. 우리 기준으로는 정규직이 아니고, 게다가 비정규직의 계약 경신이 달마다 이어지는 살벌한 정글 자본주의 세상에서 홍콩 사람들은 늘 바빴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땅덩어리에 효율적으로 사람을 넣다 보니 고층빌딩이 발달했다. 건널목의 파란불을 기다리며 길을 건너느니 차라리 구름다리 위로 뛰어다니는 문화가 발달했다. 급기야 공중회랑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딤섬은 빨라야만 살아남는 홍콩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홍콩 경제만큼이나 고도성장을 했다. 무엇보다 경제가 나아지자 사람들은 딤섬을 개량하는 데 골몰했다. 겨우 돼지고기나 간장에 졸인 소고기 따위가 들어가던 딤섬 소에 새우와 같은 고급 재료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딤섬의 고객은 거친 뱃사람에서 코스모폴리턴이 되었다. 그것도 입을 작게끔 보이기 위해 오물거리면 음식을 먹어야 미덕인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고급화되는 딤섬. 찐빵처럼 큼지막한 딤섬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사라져갔고, 여성 취향의 예쁘장한 딤섬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대통 속에 3∼4개씩 담겨 나오는 앙증맞은 모양새의 오늘날의 딤섬이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요즘도 딤섬은 변하고 있다. 일 때문에 해마다 홍콩을 방문하는 나는 최근 딤섬의 경향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제 딤섬은 부자들의 사치품으로 발돋움하려는 듯 전복, 샥스핀, 제비집, 심지어 금가루를 포함하는 종류도 생겨났다. 한국 돈 2000원에 한 통씩 먹던 딤섬 가격이 요즘은 단 한 개에 1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먹는 것이 일인 나는 죽을 맛이다.

모양새는 어떠한가? 몇 년 전 금붕어 모양의 새우 딤섬이 세간의 인기를 끌더니 요즘은 고슴도치, 눈사람, 토끼 심지어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는 호박 귀신 모양의 딤섬도 등장해 언론의 관심을 끌곤 한다. 딤섬은 이제 홍콩 요리를 대표하는 장르가 되었고, 경우에 따라 레스토랑의 질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홍콩에 도착했다. 올해는 어떤 딤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홍콩의 딤섬 레스토랑 중 올해는 또 어떤 식당의 놀라운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까? 홍콩은 딤섬이라는 단 하나의 먹을거리로도 흥미진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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