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장원: 고원의 보루식 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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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9-18 08:21본문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가 9 중 다번째인 강씨장원(姜氏庄園)은 고원의 보루식 토굴집이다. 황토고원에서 가장 호화롭고 가장 대표적인 토굴식 건물인 강씨장원은 교묘한 설계와 엄밀한 구도를 자랑한다.
강씨장원은 과거에 은주(銀州)로 불리운 미지(米脂)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은주나 미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비녀나 장식물과 같이 여인과 연관된 것들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래서 인지 미지에서는 미녀가 많이 난다. 여름이면 땡볕에 뜨겁고 봄에는 모래바람이 불지만 맑은 물과 맛 있는 좁쌀, 고소한 나귀곱창 등 음식이 미인을 만든다.
강씨장원의 주인은 청(淸)나라때 섬서성 북부에서 가장 돈이 많은 지주였다. 강씨는 베이징(北京)에서 전문가를 초청해오고 온갖 장인들을 모아 16년이라는 시간을 들려 이 장원을 조성했다.
토굴식 건물인 강씨장원은 호화판 사택이라기보다는 산 마루에 자리잡은 보루로 황막한 고원에 웅좌한 맹주의 기개를 보여준다. 8m 높이의 담이 장원을 둘러싸고 있으며 높은 곳에는 포대까지 마련되어 공격은 힘들고 수비에 좋은 군사적 특징을 보여준다.
밖에서 보면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계가 삼엄한데 장원에 들어서면 토굴식 정원이 펼쳐지고 정교한 조각이 즐비한 아담한 문이 외관의 차거운 분위기를 따뜻한 문화적 분위기로 바꾼다.
강씨장원은 황토고원에서 흔히 보는 토굴식 건물이지만 일반적인 토굴과는 다르다. 상하 3층으로 된 입체 정원은 숨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토굴에는 비스듬한 지붕이 조성되어 있다.
문기둥 양쪽에는 돌로 만든 북이 놓여져 있고 문턱도 돌로 되어 있다. 정문 바로 뒤에는 청색의 벽돌로 조벽을 조성하고 가운데는 둥근 문을 냈으며 사면에는 품격있는 조각을 새겼다. 그리고 정문의 상단에는 대부제(大夫第)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래서 주변에 노오란 황토가 보이지 않고 토굴식 집에 조성된 반달모양의 둥근 창문만 아니라면 그 곳이 물의 고장인 중국 강남의 어느 저택인줄 착각하게 된다.
강씨장원은 그 어느 귀퉁이도 전혀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마무리를 지었다. 심지어 말이 먹는 풀을 둔 마굿간의 돌확에까지도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강씨의 조상은 위대한 업적을 쌓은 명인이 아니다. 강씨장원을 지은 강요조(姜耀祖)의 증조부는 무과(武科)에 급제했을 따름이고 강요조의 조부는 농사꾼이었다.
강요조의 조부는 힘들게 농사를 짓는 한편 장사도 겸하면서 돈을 벌어서는 땅을 사들였다. 돈과 땅이 남아돌면서도 그는 밭에 나가서 일하고 절약하면서 부를 이루었다. 그렇게 모은 부를 이어받은 강요조가 이 저택을 지은 것이다.
강씨장원은 모두가 돌로 축조되었다. 돌로 쌓은 담에서 시작해 계단에도 돌을 깔았고 부엌은 물론이고 쌀창고까지 돌로 조성했으며 물을 담아두는 그릇도 돌을 파서 만들었다.
단단하고 차거워 보이는 돌은 황토고원의 색채와 조화를 이룬다. 그뿐만 아니라 별채에 창고와 뒷산으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우물이 있는 방의 바닥에는 하수도가 조성되어 있는 등 특이한 설계도 적지 않다.
16년을 들여 만든 강씨장원에 살던 강씨가문의 사람들은 벌써 사라졌다. 하지만 주인의 품위를 보여주는 건물은 주인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서 예술적 지혜와 건물이 담은 의미를 보여준다.
더우기 돌로 축조했기 때문에 기와와 벽돌이 깨지고 나무기둥이 썩어서 스러져가는 다른 건물과 달리 강씨장원은 세월속에서도 변함없이 건축물의 영혼을 영원히 지키고 있다.
강씨장원을 보는데는 대략 반나절이 소요된다. 강씨장원 인근의 동네에 가면 소박한 일반인들의 토굴을 볼수도 있다. 단, 장원과 주변 동네들에 음식점이 없음으로 중식은 도시락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숙박은 미지현에 잡는 것이 좋고 그 참에 현지의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맛 볼수 있다. 특히 나귀곱창이 다른 곳에서는 맛 볼수 없고 미용에 좋은 음식이다.
위치: 섬서(陝西, Shanxi)성 미지(米脂, Mizhi)현
교통: 다양한 교통편으로 미지현에 이른 다음 중심광장에서 강씨장원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버스편이 많지 않음으로 차량을 임대하는 편이 더 좋다.
계절: 황금의 가을
국제방송
강씨장원은 과거에 은주(銀州)로 불리운 미지(米脂)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은주나 미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비녀나 장식물과 같이 여인과 연관된 것들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래서 인지 미지에서는 미녀가 많이 난다. 여름이면 땡볕에 뜨겁고 봄에는 모래바람이 불지만 맑은 물과 맛 있는 좁쌀, 고소한 나귀곱창 등 음식이 미인을 만든다.
강씨장원의 주인은 청(淸)나라때 섬서성 북부에서 가장 돈이 많은 지주였다. 강씨는 베이징(北京)에서 전문가를 초청해오고 온갖 장인들을 모아 16년이라는 시간을 들려 이 장원을 조성했다.
토굴식 건물인 강씨장원은 호화판 사택이라기보다는 산 마루에 자리잡은 보루로 황막한 고원에 웅좌한 맹주의 기개를 보여준다. 8m 높이의 담이 장원을 둘러싸고 있으며 높은 곳에는 포대까지 마련되어 공격은 힘들고 수비에 좋은 군사적 특징을 보여준다.
밖에서 보면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계가 삼엄한데 장원에 들어서면 토굴식 정원이 펼쳐지고 정교한 조각이 즐비한 아담한 문이 외관의 차거운 분위기를 따뜻한 문화적 분위기로 바꾼다.
강씨장원은 황토고원에서 흔히 보는 토굴식 건물이지만 일반적인 토굴과는 다르다. 상하 3층으로 된 입체 정원은 숨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토굴에는 비스듬한 지붕이 조성되어 있다.
문기둥 양쪽에는 돌로 만든 북이 놓여져 있고 문턱도 돌로 되어 있다. 정문 바로 뒤에는 청색의 벽돌로 조벽을 조성하고 가운데는 둥근 문을 냈으며 사면에는 품격있는 조각을 새겼다. 그리고 정문의 상단에는 대부제(大夫第)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래서 주변에 노오란 황토가 보이지 않고 토굴식 집에 조성된 반달모양의 둥근 창문만 아니라면 그 곳이 물의 고장인 중국 강남의 어느 저택인줄 착각하게 된다.
강씨장원은 그 어느 귀퉁이도 전혀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마무리를 지었다. 심지어 말이 먹는 풀을 둔 마굿간의 돌확에까지도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강씨의 조상은 위대한 업적을 쌓은 명인이 아니다. 강씨장원을 지은 강요조(姜耀祖)의 증조부는 무과(武科)에 급제했을 따름이고 강요조의 조부는 농사꾼이었다.
강요조의 조부는 힘들게 농사를 짓는 한편 장사도 겸하면서 돈을 벌어서는 땅을 사들였다. 돈과 땅이 남아돌면서도 그는 밭에 나가서 일하고 절약하면서 부를 이루었다. 그렇게 모은 부를 이어받은 강요조가 이 저택을 지은 것이다.
강씨장원은 모두가 돌로 축조되었다. 돌로 쌓은 담에서 시작해 계단에도 돌을 깔았고 부엌은 물론이고 쌀창고까지 돌로 조성했으며 물을 담아두는 그릇도 돌을 파서 만들었다.
단단하고 차거워 보이는 돌은 황토고원의 색채와 조화를 이룬다. 그뿐만 아니라 별채에 창고와 뒷산으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우물이 있는 방의 바닥에는 하수도가 조성되어 있는 등 특이한 설계도 적지 않다.
16년을 들여 만든 강씨장원에 살던 강씨가문의 사람들은 벌써 사라졌다. 하지만 주인의 품위를 보여주는 건물은 주인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서 예술적 지혜와 건물이 담은 의미를 보여준다.
더우기 돌로 축조했기 때문에 기와와 벽돌이 깨지고 나무기둥이 썩어서 스러져가는 다른 건물과 달리 강씨장원은 세월속에서도 변함없이 건축물의 영혼을 영원히 지키고 있다.
강씨장원을 보는데는 대략 반나절이 소요된다. 강씨장원 인근의 동네에 가면 소박한 일반인들의 토굴을 볼수도 있다. 단, 장원과 주변 동네들에 음식점이 없음으로 중식은 도시락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숙박은 미지현에 잡는 것이 좋고 그 참에 현지의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맛 볼수 있다. 특히 나귀곱창이 다른 곳에서는 맛 볼수 없고 미용에 좋은 음식이다.
위치: 섬서(陝西, Shanxi)성 미지(米脂, Mizhi)현
교통: 다양한 교통편으로 미지현에 이른 다음 중심광장에서 강씨장원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버스편이 많지 않음으로 차량을 임대하는 편이 더 좋다.
계절: 황금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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