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정원: 강남 최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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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0-17 07:31본문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9 중 여섯번째인 소주(蘇州)의 졸정원(拙政園)은 강남 최고의 정원이다.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 하늘에는 극락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항주(杭州)가 명문가의 규수같이 우아하고 대범하다면 소주는 가난한 집 고운 딸같이 이쁘장하고 다소곳하다. 항주가 아름다운 호수 서호(西湖)를 대표로 한다면 소주는 아담한 정원 졸정원을 중심으로 한다.
기원전에 오(吳)나라 왕 합려(闔闾)때 도시가 조성되어 수천년동안 한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은 소주는 웅장함은 없지만 항상 부드러움을 유지하고 있어 소주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소주에는 정원이 아주 많아서 거리를 거니다보면 저도 모르게 어느 정원속에 몸을 두게 된다. 그 때면 소주가 정원에 안겨 있는지 소주가 정원을 품고 있는지 헷갈린다.
졸정원과 유원(留園), 망사원(望師園), 환수산장(環秀山庄), 사자림(獅子林), 창랑정(滄浪亭), 예포(藝圃), 퇴사원(退思園)을 비롯해 세계유산에 등재된 소주의 많은 정원 중 당연히 졸정원이 으뜸이다.
졸정원은 오백년전 명(明)나라때 어사(御史)벼슬을 지낸 왕헌신(王獻臣)이 당(唐)나라때 시인 육구몽(陸龜蒙) 저택의 터에 지은 정원이다. 벼슬에 싫증을 느낀 왕헌신은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의미로 정원에 졸정원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정원을 조성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왕헌신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 뒤에 왕헌신의 아들이 졸정원을 걸고 도박을 하면서 하루밤에 정원을 잃었으며 그 뒤로 졸정원의 주인은 수차 바뀌게 되었다.
중원(中園)은 졸정원의 중심이고 정품이다. 넓은 연못이 중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물가에는 누각과 정자 등이 세워져 있으며 물길위에는 작고 아담한 석교가 조화롭다.
마루까지 닿은 높고 긴 창문의 원향당(遠香堂)은 북쪽으로 연꽃이 화사한 연못과 연결되어 있다. 원향당은 연못속의 정자와 어울려 "사면에 연꽃이 피고 삼면에 버드나무 우거진" 비경을 이룬다.
정자와 원향당사이에는 또 의옥헌(倚玉軒)이라는 이름의 누각이 있어서 어디서나 임의로 연못이 만개한 연꽃을 볼수 있다. 중원에서는 연꽃을 유난히 좋아한 주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동원(東園)은 넓은 잔디밭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동산을 쌓았다. 동산의 주변에는 천향각(天香閣)과 출향관(秫香館)을 비롯한 건물들이 지어져 시골경관을 연출한다.
동원의 서쪽에는 기복을 이룬 지세를 따라 복도를 조성했는데 정교한 창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다양하다. 복도에 서면 정교한 조각의 창틀너머로 정원이 한 눈에 보여 높은 조경기법을 과시한다.
서원(西園)은 중원과 동원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구도가 치밀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다. 중원과 동원보다 뒤늦게 조성된 원인으로 서원은 청나라때의 정원풍을 지닌다.
기복을 이룬 물위의 복도를 주선으로 연못위에 지은 원앙홀과 동백나무 우거진 원앙관이 운치를 이룬다. 그 뒤로는 탑이 보이는데 사실 그 탑은 졸정원에 세운 탑이 아니라 소주 최고의 탑인 북사탑(北寺塔)이다. 정원의 조경에 정원밖의 풍경을 빌어온 것이다.
한 동안 동원과 중원, 서원으로 나뉘어 있던 졸정원은 청나라 후반의 태평천국(太平天國)때에 충왕부(忠王府)의 가든으로 되면서 다시 하나로 합쳐 수선과 재건을 거쳐 명나라때의 규모를 회복했다.
그 뒤에도 졸정원은 다시 몰락해 정원의 건물에 구멍이 숭숭 나고 바닥에는 이끼가 가득 꼈으나 중국 건국 후 소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원으로 원상복귀시켰다.
설명:
졸정원의 저택부분은 소주원림박물관으로 사용, 원원(園原)과 원사(園史), 원취(園趣), 원치(園治) 등 네 전시실을 통해 정원의 역사와 멋, 관리 등을 펼쳐보인다.
졸정원 정원내의 다실에서는 지방극 공연이 있어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고 유료로 자신이 원하는 극목을 신청할수도 있다. 그리고 특히 명절이나 휴일에는 관객이 아주 많다.
위치: 강소(江蘇, Jiangsu)성 소주(蘇州, Suzhou)시
교통: 소주시내에서 졸정원을 종착역으로 하거나 경유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봄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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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杭州)가 명문가의 규수같이 우아하고 대범하다면 소주는 가난한 집 고운 딸같이 이쁘장하고 다소곳하다. 항주가 아름다운 호수 서호(西湖)를 대표로 한다면 소주는 아담한 정원 졸정원을 중심으로 한다.
기원전에 오(吳)나라 왕 합려(闔闾)때 도시가 조성되어 수천년동안 한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은 소주는 웅장함은 없지만 항상 부드러움을 유지하고 있어 소주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소주에는 정원이 아주 많아서 거리를 거니다보면 저도 모르게 어느 정원속에 몸을 두게 된다. 그 때면 소주가 정원에 안겨 있는지 소주가 정원을 품고 있는지 헷갈린다.
졸정원과 유원(留園), 망사원(望師園), 환수산장(環秀山庄), 사자림(獅子林), 창랑정(滄浪亭), 예포(藝圃), 퇴사원(退思園)을 비롯해 세계유산에 등재된 소주의 많은 정원 중 당연히 졸정원이 으뜸이다.
졸정원은 오백년전 명(明)나라때 어사(御史)벼슬을 지낸 왕헌신(王獻臣)이 당(唐)나라때 시인 육구몽(陸龜蒙) 저택의 터에 지은 정원이다. 벼슬에 싫증을 느낀 왕헌신은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의미로 정원에 졸정원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정원을 조성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왕헌신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 뒤에 왕헌신의 아들이 졸정원을 걸고 도박을 하면서 하루밤에 정원을 잃었으며 그 뒤로 졸정원의 주인은 수차 바뀌게 되었다.
중원(中園)은 졸정원의 중심이고 정품이다. 넓은 연못이 중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물가에는 누각과 정자 등이 세워져 있으며 물길위에는 작고 아담한 석교가 조화롭다.
마루까지 닿은 높고 긴 창문의 원향당(遠香堂)은 북쪽으로 연꽃이 화사한 연못과 연결되어 있다. 원향당은 연못속의 정자와 어울려 "사면에 연꽃이 피고 삼면에 버드나무 우거진" 비경을 이룬다.
정자와 원향당사이에는 또 의옥헌(倚玉軒)이라는 이름의 누각이 있어서 어디서나 임의로 연못이 만개한 연꽃을 볼수 있다. 중원에서는 연꽃을 유난히 좋아한 주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동원(東園)은 넓은 잔디밭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동산을 쌓았다. 동산의 주변에는 천향각(天香閣)과 출향관(秫香館)을 비롯한 건물들이 지어져 시골경관을 연출한다.
동원의 서쪽에는 기복을 이룬 지세를 따라 복도를 조성했는데 정교한 창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다양하다. 복도에 서면 정교한 조각의 창틀너머로 정원이 한 눈에 보여 높은 조경기법을 과시한다.
서원(西園)은 중원과 동원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구도가 치밀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다. 중원과 동원보다 뒤늦게 조성된 원인으로 서원은 청나라때의 정원풍을 지닌다.
기복을 이룬 물위의 복도를 주선으로 연못위에 지은 원앙홀과 동백나무 우거진 원앙관이 운치를 이룬다. 그 뒤로는 탑이 보이는데 사실 그 탑은 졸정원에 세운 탑이 아니라 소주 최고의 탑인 북사탑(北寺塔)이다. 정원의 조경에 정원밖의 풍경을 빌어온 것이다.
한 동안 동원과 중원, 서원으로 나뉘어 있던 졸정원은 청나라 후반의 태평천국(太平天國)때에 충왕부(忠王府)의 가든으로 되면서 다시 하나로 합쳐 수선과 재건을 거쳐 명나라때의 규모를 회복했다.
그 뒤에도 졸정원은 다시 몰락해 정원의 건물에 구멍이 숭숭 나고 바닥에는 이끼가 가득 꼈으나 중국 건국 후 소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원으로 원상복귀시켰다.
설명:
졸정원의 저택부분은 소주원림박물관으로 사용, 원원(園原)과 원사(園史), 원취(園趣), 원치(園治) 등 네 전시실을 통해 정원의 역사와 멋, 관리 등을 펼쳐보인다.
졸정원 정원내의 다실에서는 지방극 공연이 있어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고 유료로 자신이 원하는 극목을 신청할수도 있다. 그리고 특히 명절이나 휴일에는 관객이 아주 많다.
위치: 강소(江蘇, Jiangsu)성 소주(蘇州, Suzhou)시
교통: 소주시내에서 졸정원을 종착역으로 하거나 경유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봄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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