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많은 여와(女娲)의 고향 롱성(陇城, Longcheng)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07 09:17본문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스토리가 많은 여와(女娲)의 고향 롱성(陇城, Longcheng)에는 중국의 비조로 공인되는 여와씨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그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7800여년전에 중국인의 선조들이 이 곳에서 맥을 잇기 시작했으며 전설속 인류의 비조인 여와씨가 바로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06년에 한무제(漢武帝)가 이 곳에 량주(凉洲) 자사부(刺史部)를 두고 이름을 롱성이라 했고 그 뒤 역대로 이 곳에 상응한 행정중심을 설치해 오늘에 이르렀다.
역대로 롱성을 관리하던 곳이 바로 고성(故城)이라고 하는 롱성 옛성인데 762년에 외족의 침략에 의해 이 땅에서 소실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옛성은 구백여년전에 재건한 일명 팔괘성(八卦城)이라고 하는 옛동네이다.
1837년에 큰 물이 져서 동네의 반이 물에 밀려가고 그 뒤 장기간에 걸친 보수를 통해 너비 8m, 높이 10m의 성이 10m길이로 한 구간만 남아 내려오면서 어제를 이야기한다.
예로부터 실크로드선상의 무역도시인 롱성에는 많은 타지방의 상인들이 모여 다양한 건물을 지었다. 명(明)나라때의 건물풍을 보여주는 도헌패방(都憲牌坊)에서 시작해 청(淸)조의 풍을 보여주는 와황(娲皇)의 고향 패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무너지고 가게건물만 남아 있다.
약 200m 길이의 거리에 당시 현지인들의 건축기술과 풍토인정을 보여주는 고건물 4,50여채가 모여 높은 관상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현지 문화명소의 하나로 부상했다.
롱성은 군사가들이 다투는 요충지이다. 삼국시기 위촉(魏蜀)간 가정(街亭) 전투도 바로 이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계곡의 개활지에 위치한 가정은 사면으로 통하고 남과 북의 산발이 험준해 공격과 후퇴에 유리한 전략적 지대이다.
삼국때 제갈공명이 마속(馬謖)을 선봉장군으로 보내 가정을 지키도록 했지만 교만해진 마속이 위나라 군대에 가정을 빼앗기자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쳤고 그로 인해 가정은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삼국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인 가정을 위해 1997년 현지정부는 가정에 관한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사서에 의하면 롱성의 산위에 여와사(女娲祠)가 있고 풍구(風溝), 풍대(風台), 풍영(風瑩) 등 지명과 아황(娲皇), 풍미(風尾), 용천(龍泉) 등으로 불리우는 동네가 있다고 한다. 사서는 또한 여와가 바람의 골 풍구에서 태어나 바람의 단 풍대에서 자라 맑은 바람이 부는 풍영에 잠들어 있다고 기록했다.
풍구의 아찔할 절벽위에는 오늘까지도 바닥이 보이지 않은 여와동이 있고 길이 1.5km 길이의 이 여와동은 정가구(鄭家溝)와 연결되어 있다. 단, 동굴 입구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수 있을 정도로 좁고 깊이를 알수 없어 아직까지 들어가본 사람이 없을뿐이다.
롱성의 입구에는 용천이라고 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일년 사계절 비오나 가뭄이 드나 마르지 않고 수위도 항상 변함없는 신비한 우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우물은 여와가 진흙으로 사람을 빚을때 사용했던 우물이라고 한다.
웅장한 기세와 화려한 그림을 자랑하는 여와묘의 입구에는 여와의 고향이라는 의미의 아황고리(娲皇故里)라고 하는 비석이 있고 아황궁(娲皇宮), 돌을 녹여 하늘을 기웠다는 연석보천(煉石補天), 하늘과 땅을 열었다는 개척벽지(開天辟地) 등 액자가 걸려 있다.
건물의 중앙에는 여와씨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고 돌을 녹여 하늘을 막고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든는 장면이 생동하게 재현되어 있다.
서번사(西番寺)는 일명 무우사(無憂寺)라고도 한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秦始皇帝)가 6개국을 통일하고 롱성의 번왕을 멸한 후 천하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근심이 더는 없다는 의미로 "짐은 무우도다!"라고 웨쳤고 롱성에 절을 지어 이름을 무우사라 했다.
석굴을 파고 건물을 지은 이 무우사는 당(唐)조에 이르러 불교가 성행하면서 이름을 서번사로 고치고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보는 서번사는 1987년에 복구한 건물이다.
해마다 3월 19일이 되면 서번사에서 성대한 법회가 열려 주변의 많은 신도와 관광객들이 이 곳에 모여 성황을 이룬다.
그밖에 롱성에서는 해마다 3월 보름날에 여와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을 이어온다. 부근의 촌민들이 그 날이 되면 자발적으로 여와동에 모여 향을 피우고 공물을 바치면서 복을 기원한다.
2006년부터는 현지 정부에서도 인문비조 여와를 기리는 축제를 시작해 여와사에 깃발이 펄럭이고 북소리 구성지며 예포가 울리고 춤과 쿵후, 기교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감숙(甘肅, Gansu)성 천수(天水, Tianshui)시에 위치한 롱성은 교통이 편리하다. 천수 버스 터미널에서 진안(秦安, Qin'an)행 버스를 이용해 40분만에 진안에 이르고 다시 롱성행 버스를 바꾸어 타면 된다.
스토리가 많은 여와(女娲)의 고향 롱성(陇城, Longcheng)에는 중국의 비조로 공인되는 여와씨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그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7800여년전에 중국인의 선조들이 이 곳에서 맥을 잇기 시작했으며 전설속 인류의 비조인 여와씨가 바로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06년에 한무제(漢武帝)가 이 곳에 량주(凉洲) 자사부(刺史部)를 두고 이름을 롱성이라 했고 그 뒤 역대로 이 곳에 상응한 행정중심을 설치해 오늘에 이르렀다.
역대로 롱성을 관리하던 곳이 바로 고성(故城)이라고 하는 롱성 옛성인데 762년에 외족의 침략에 의해 이 땅에서 소실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옛성은 구백여년전에 재건한 일명 팔괘성(八卦城)이라고 하는 옛동네이다.
1837년에 큰 물이 져서 동네의 반이 물에 밀려가고 그 뒤 장기간에 걸친 보수를 통해 너비 8m, 높이 10m의 성이 10m길이로 한 구간만 남아 내려오면서 어제를 이야기한다.
예로부터 실크로드선상의 무역도시인 롱성에는 많은 타지방의 상인들이 모여 다양한 건물을 지었다. 명(明)나라때의 건물풍을 보여주는 도헌패방(都憲牌坊)에서 시작해 청(淸)조의 풍을 보여주는 와황(娲皇)의 고향 패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무너지고 가게건물만 남아 있다.
약 200m 길이의 거리에 당시 현지인들의 건축기술과 풍토인정을 보여주는 고건물 4,50여채가 모여 높은 관상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현지 문화명소의 하나로 부상했다.
롱성은 군사가들이 다투는 요충지이다. 삼국시기 위촉(魏蜀)간 가정(街亭) 전투도 바로 이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계곡의 개활지에 위치한 가정은 사면으로 통하고 남과 북의 산발이 험준해 공격과 후퇴에 유리한 전략적 지대이다.
삼국때 제갈공명이 마속(馬謖)을 선봉장군으로 보내 가정을 지키도록 했지만 교만해진 마속이 위나라 군대에 가정을 빼앗기자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쳤고 그로 인해 가정은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삼국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인 가정을 위해 1997년 현지정부는 가정에 관한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사서에 의하면 롱성의 산위에 여와사(女娲祠)가 있고 풍구(風溝), 풍대(風台), 풍영(風瑩) 등 지명과 아황(娲皇), 풍미(風尾), 용천(龍泉) 등으로 불리우는 동네가 있다고 한다. 사서는 또한 여와가 바람의 골 풍구에서 태어나 바람의 단 풍대에서 자라 맑은 바람이 부는 풍영에 잠들어 있다고 기록했다.
풍구의 아찔할 절벽위에는 오늘까지도 바닥이 보이지 않은 여와동이 있고 길이 1.5km 길이의 이 여와동은 정가구(鄭家溝)와 연결되어 있다. 단, 동굴 입구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수 있을 정도로 좁고 깊이를 알수 없어 아직까지 들어가본 사람이 없을뿐이다.
롱성의 입구에는 용천이라고 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일년 사계절 비오나 가뭄이 드나 마르지 않고 수위도 항상 변함없는 신비한 우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우물은 여와가 진흙으로 사람을 빚을때 사용했던 우물이라고 한다.
웅장한 기세와 화려한 그림을 자랑하는 여와묘의 입구에는 여와의 고향이라는 의미의 아황고리(娲皇故里)라고 하는 비석이 있고 아황궁(娲皇宮), 돌을 녹여 하늘을 기웠다는 연석보천(煉石補天), 하늘과 땅을 열었다는 개척벽지(開天辟地) 등 액자가 걸려 있다.
건물의 중앙에는 여와씨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고 돌을 녹여 하늘을 막고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든는 장면이 생동하게 재현되어 있다.
서번사(西番寺)는 일명 무우사(無憂寺)라고도 한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秦始皇帝)가 6개국을 통일하고 롱성의 번왕을 멸한 후 천하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근심이 더는 없다는 의미로 "짐은 무우도다!"라고 웨쳤고 롱성에 절을 지어 이름을 무우사라 했다.
석굴을 파고 건물을 지은 이 무우사는 당(唐)조에 이르러 불교가 성행하면서 이름을 서번사로 고치고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보는 서번사는 1987년에 복구한 건물이다.
해마다 3월 19일이 되면 서번사에서 성대한 법회가 열려 주변의 많은 신도와 관광객들이 이 곳에 모여 성황을 이룬다.
그밖에 롱성에서는 해마다 3월 보름날에 여와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을 이어온다. 부근의 촌민들이 그 날이 되면 자발적으로 여와동에 모여 향을 피우고 공물을 바치면서 복을 기원한다.
2006년부터는 현지 정부에서도 인문비조 여와를 기리는 축제를 시작해 여와사에 깃발이 펄럭이고 북소리 구성지며 예포가 울리고 춤과 쿵후, 기교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감숙(甘肅, Gansu)성 천수(天水, Tianshui)시에 위치한 롱성은 교통이 편리하다. 천수 버스 터미널에서 진안(秦安, Qin'an)행 버스를 이용해 40분만에 진안에 이르고 다시 롱성행 버스를 바꾸어 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