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철호| 작성일 :12-11-20 05:46|

본문

            
피눈물의 지팡살이

                                             지주 지방관청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에 녹아나는 조선족농민들
포산호의 억울함

태고연한 원시림과 잡목이 우거진 황지에서 흰옷의 그림자가 언뜰거린다. 엄동의 눈보라를 가르며 괭이가 언땅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츠럽다. 조선족간민들에 의해 황지는 차츰 밭모양을 냈으며 마침내 옥답으로 변하여 조며 감자농사가 제법 잘 되기만 했다.
   
한창 재밌게 농사를 짓고있을 때 난데없는 <<다부살이>>(만족식두루마기를 입은 점산호)들이 나타나 남의 땅에서 웬 농사질이냐며 호통친다. 다 된 곡식을 마구 짓밟으며 당장 떠나라고 을러메기도 한다. 주인없는 황지인줄 알고 개간했더니 점산호들의 사지증서안에 든 땅이였던것이다. 어떤 점산호들은 조선족간민들이 자기 땅을 개척하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다가 황지가 옥답으로 변한 다음 불현듯 나타나서 주인행세를 하기도 했다. 
   
그자들은 계속 농사짓겠으면 소작료를 내라고 강요했다. 하여 조선족간민들은 자신이 일군 땅을 떠나거나 아니면 소작농으로 전락되여야 했다. 조선족간민들의 개황에 대해 류병호선생은 “점산호와 포산호”라는 글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조선족간민들의 개황방법을 보면 첫해의 가을 혹은 이듬해의 이른봄에 잡초와 관목들을 베여낸후 괭이와 보습으로 갈아번지고 조를 심는데 첫해에는 밭고랑도 내지 않고 김도 매지 않는다. 이듬해부터 콩, 옥수수, 보리를 심었다. 이렇게 2-3년이 지나면 황지가 점차 옥답으로 되는데 이사이에 겨울이면 도끼로 나무뿌리를 찍어내야 한다. 그래서 조선족간민들을 당시 지방관청에서는 간민이라고 불렀고 한족과 만족들은 지호(地戶) 혹은 포산호(山戶), 즉 산을 뚜지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점산호의 소작농으로 전락된 포산호들의 생활이란 중세기 장원주의 농노와 같았다.”

   
산골짜기에 단풍물 오르고 밭곡식이 여물어서 누렇게 익은 가을, 탈곡장에 높이 쌓은 낟가리를 바라보면서 봄내 여름내 손이 갈라터지게 일한 보람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있는데 난데없는 날벼락이 날아든다. 무장한 졸개들을 거느린 다부살이가 탈곡장에 뛰여들어 마구잡이로 조선족간민들이 지은 곡식을 우마차에 실어간다. 자기들의 요구에 만족되지 않으면 그 집 안해를 빼앗아 가기도 한다. 그래도 성차지 않으면 자식까지 빼앗아간다. 
   
포산호들은 혼히 4상의 토지를 소작맡으면 점산호의 1상의 밭을 무상으로 다루어주어야 했다. 또 해마다 10-20일간 점산호의 일을 무상으로 해주어야 한다.  이외에도 점산호를 위해 잡역을 해주어야 했다. 례컨대 음력설전후이면 점산호의 마소들이 1년간 먹을 사료를 썰어주어야 하며 립추전후이면 땔나무 50단을 하여 바쳐야 한다. 같은 글에서 류병호선생은 포산호들의 억울함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근채구의 점산호 손보산은 포산호들에게 매년 1상의 감자를 심도록 하였는데 꼭 김 세벌을 매게 하고 가을이면 잘된 감자만 골라 자기의 국수방에 가져오게 하였다. 점산호들은 잘 다룬 옥답을 빼앗아 례물을 많이 바치는 다른 간민들에게 소작주고 옥답을 빼앗긴 간민에게는 다른 황지를 개척할 것을 강요하기 일쑤였다.”


                     
빚갚지 못해 처자 빼앗겨

옛날에 연변에서 땅없는 농민들이 지주의 토지를 소작맡아 부치는것을 지팡살이라고 했다. 지팡이란 한어를 잘 몰랐던 농민들이 지주가 차지하고있는 “地方(띠팡)”을 지팡으로 잘못 부른데서 생겨난 말인데 일부에서는 “地盤爾(띠팔)”에서 왔다고도 한다.
“이주민들이 입버릇처럼 외운 지팡이란 곧 토지를 비롯한 생산자료가 어느 한 지주에게 들어간 지방을 말한다. 례를 들면 쑹개네지팡(宋家地方), 왕개지팡(王家地方), 조개지팡(趙家地方)같은것들이다.”(박청산 김철수 《이야기중국조선족력사》)
   
개간초기 조선족농민들은 쌀도 농구도 없기에 지주에게서 쌀, 농구, 생활비를 빌어 땅을 부치잖으면 안되였다. 이런 것을 방청이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쌀, 농구, 부림소, 생활용품을 대주면서 3년동안 소작료를 안받는다 해놓고는 이주민들이 끊임없이 쓸어들고 상품경제가 점차 발전해가자 첫해부터 소작료를 내라고 했다. 첫해에 수확고의 20%, 이듬해에 30%, 그 다음해에 40% 바치는데 거기에다 월리식까지 합하면 수확고의 70-80%를 바치는셈이였다. 네 번째해부터는 종자, 농구, 부림소 등을 자부담하면서 방청을 반작으로 넘어가게 한다. 반작은 소출의 절반을 지주에게 소작료로 바치는걸 말한다. 
  
등허리를 내리 쬐는 무서운 땡볕아래에서 잔뼈도 굳지 않은 애숭이 머슴애가 후치를 끈다. 이마로는 비지땀이 줄 끊어진 구슬마냥 마구 쏟아진다. 후치대를 잡은 아비의 목에서도 겨불냄새가 난다. 이것은 당시 조선족농민의 풍경이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조선족농민들에게 있어서 부림소 한 마리 갖춘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여 소가 메여야 할 쟁기를 흔히 사람이 메잖으면 안되였다. 뼈가 물러나게, 살이 떨어지게 한해농사를 지어놓았으나 소출의 절반을 지주에게 바치고 여러 명목의 가렴잡세까지 바치고나면 다시 빈털털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만다. 
   
이듬해 봄이 되기도 전에 쌀독이 비게 되어 조선족농민들은 지주에게서 높은 리률로 쌀을 꾸어다 호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곡물반환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봄에 곡물 1되를 꾸어주고 가을에 3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봄이면 지주들은 시장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꾸어준다. 그러나 가을이면 폭락한 값으로 6배에 해당한 곡물을 받아들인다. 례하면 봄에 량식 한되 값이 1원이라면 한되에 1.5원으로 꾸어주는데 가을이면 량식값이 0.5월으로 폭락했으나 의연히 봄의 가격으로 받는다. 그러니 봄에 1되 꾸어온 량식이 가을에 6되 되는 것이다.
   
이외에 점산호들은 고리대로 지호들의 고혈을 짜냈다. 리자는 보통 5푼이고 높을 때에는 10푼짜리도 있었다. 정한 기한내에 갚지 못하면 처자를 빼앗기기도 했다. 빚을 못갚은 농민들의 아들딸들은 지주집에 꼴모슴, 부엌데기로 들어가야 했다.

“덕신향 장동촌 하촌의 최대동은 점산호의 고리대를 갚지 못하여 하마터면 고환을 잘리울번하였다.”(김희 “장동촌을 개척한 사람들”)
   
                                
가렴잡세와 “동양척식회사”의 착취

“조선족농민들은 지방관청으로부터도 온갖 수탈을 당했습니다. 동북의 다른 지방에서는 볼수 없는 괴이한 세금을 바쳤는데 문턱세, 인두세같은것이 그런것이지요.”

  

연변대학 박창욱교수는 조선족농민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 없다고 한다.
   
조선족농민들은 교육비, 순경비, 보위단비 등 지방세를 바쳐야 하는외에 사묘, 도로, 교량수축비같은 촌세를 바쳤으며 억울하게도 문턱세, 인두세. 고용세, 양우세(養牛稅), 굴뚝세, 입적비 초대비, 땔나무세, 해산세 등을 바쳐야 했다. 문턱세라는 것은 관청에 불리워간 조선족들이 관청의 대문에 들어설 때 바치는 세금이다. 소로 농사를 짓는다고 소세를 바쳐야 했고 지주의 토지를 소작받는다고 고용세를 바쳐야 했다. 이외에도 호세(戶稅)라는것도 있었는데 주둔군의 생활비를 바치는 것을 말한다. 량식, 닭, 닭알, 땔나무, 술, 담배, 잡화의 비용을 모두 호세로 각 호에 분담시켰다.
   

그리고 군대가 촌락을 경유할 때 촌민들이 무상으로 식사와 잡비를  제공하여야 하고 관리와 경찰들이 농촌에 내려가서 쓰는 비용도 촌민들이 부담해야 했다. 
   

“가련한 조선족농민들이 당하는 설음은 이것뿐이 아니였다. 그들은 악착스러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악박과 착취도 받아야 했다. 1918년 일제의 <동양척식회사>에서는 조선족농민들의 토지계약서를 저당잡히고는 대부하는 방법으로 대를 이어 개척해놓은 땅을 앗아갔으며 그 땅에서 40-50%의 소작료를 받아냈다.” 대형다큐멘터리 “연변아리랑”(서봉학 리광수)의 해설사이다. 이 대형다큐멘터리에서 하마탕주민 오준섭(80세)로인과의 인터뷰를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들이 수전, 한전 5헥타르 다룬다면 문패에다 한 헥타르당 얼마를 바치라는 것을 써붙여 놓습니다. 세금이 어찌나 높은지 혀를 찰 정도였지요. 세금을 못내는 경우엔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데 가장집물을 빼앗거나 부셔놓군 하였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연변대학 황룡국교수와의 인터뷰도 있다.
    

“연변의 토지를 점하기 위하여 일제는 연변에다 <동약척식회사 간도출장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구제한다는 명의로 농민들에게 대부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는 토지대금, 밭갈이소값, 농기구값, 량식값 등이 망라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족농민들은 그 규정에 따라 밭을 사가지고 토지계약서를 동양척식회사에 바쳐야 했습니다. 규정에는 리자와 본전을 다 물면 토지계약서도 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리자가 어찌나 높았던지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도 리자를 다 갚은 사람이 없었답니다.”

   
지주와 지방관청 그리고 일제의 악박착취는 조선족농민들의 명줄을 꽉 틀어쥐고 놓아주질 않았다.(계속 )      

0

글로벌한민족 목록

글로벌한민족 목록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7) 인기글 간도일본총령사관 연변을 침략하고 항일투쟁을 진압한 소굴 연변의 풍부한 물질자원을 수탈한 수뇌부 죄악의 붉은 담장 네귀에 삼엄한 또치까를 앉힌 우중충한 붉은 벽돌담장, 2메터도 넘는 그 붉은 담장에 옹위되여 있는 미색의 건축물-룡정시 륙도하로 869번지. …(2012-11-22 10:59:41)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 인기글 “간도협약” 부패무능한 청정부 불평등조약 맺고 고난의 조선인들 이중악박에 모대겨 백두산 “정계비” 청나라 강희황제는 일찍부터 《청일통지(淸一統志)》를 편찬하여 청나라경역을 명확히 하려고 하였다. 물론 청나라-조선 변계가 두만강, 압록강이라는…(2012-11-22 10:59:03)
조선 조·한 경제합작 조속 회복하려 인기글 조선 조·한 경제합작 조속 회복하려2012-11-16 13:59 래원:인민넷 인민넷이 11월 16일 서울에서 한국련합뉴스를 인용하여 보도한데 따르면 조선이 한국과의 경제합작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기업이 조선에 투자하여 개설한 공장을 완미하레 관리하고있다고 한 기업인이 15일 밝혔다. 그들의 기업은 조선에 마늘가공공장을 앉혔다. 그는 15일 한국련합뉴스의 취재를 접수하였을 때 전날 2년 6개월만에 조선을 방문하고 공장을 둘러보았다고 하고나서 조선측에서 공장의 시설을 잘 관리하였다고 하고…(2012-11-22 07:51:53)
조선족기업인들이 개발한 제주도 별장 판매 인기몰이 인기글 구매자에 영주권 부여, 후세까지 사유재산으로  (흑룡강신문=칭다오) 박영만 기자 = 지난 11월 9일부터 3일동안 칭다오 백리광장에서 진행된 ‘해외유학 및 해외부동산 판매전시회’에서 다롄의 조선족기업인들이 개발하여 판매하는 ‘제주도빅토리아관광리조트’ 프로젝트가 수많은 현지 고객들의 흥취를 자아냈다. 칭다오일보, 칭다오석간, 칭다오라디오방송, 칭다오TV 등에서 연일 해당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쏟아내고 많은 칭다오시민들이 구매의향을 밝히는 등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전…(2012-11-22 07:23:53)
월드옥타 中연변지회장에 허재룡씨 인기글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중국 연변·연길지회는 20일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회장에 허재룡(50) 연변룡성일진비닐채색유한공사 대표를 추대했다고 21일 밝혔다.신임 허 회장은 다음달 20일 제4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2년의 임기 동안 지회를 이끌게 된다.유대진 현 회장은 이달 초 월드옥타 본회 부회장에 선임됐으며 연변·연길지회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월드옥타 연변·연길지회는 지난 2007년 2월 창립돼 현재 142명의 동포 기업인이 회원으로 …(2012-11-22 07:05:25)
[열람중]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5) 인기글 피눈물의 지팡살이 지주 지방관청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에 녹아나는 조선족농민들 포산호의 억울함태고연한 원시림과 잡목이 우거진 황지에서 흰…(2012-11-20 05:46:42)
"조선족무형문화재, 부(富) 창조하는 문화콘텐츠" 인기글 한국외대 문화콘텐츠 콜로키움…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올해 퇴임한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은 "우리민족 고유의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며, "다만, 문화란 '국경'을 넘어 인류 모두가 향유해야 할 자산이란 것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장경률 전 소장은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센터장 임영상)가 지난 14일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개최한 문화콘텐츠 콜로키움에서 '무형문화재, 중국 조선족의 가장 큰 정신…(2012-11-19 07:52:56)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4) 인기글 벼꽃향기 거치른 벌판에 벼꽃향기 싱그럽고 조선족농민 “어곡전”까지 다뤄 첫 수리공사 “연변의 벼농사는 우리 조선족에 의해 시작되였습니다. 력사적으로 보면 고구려나 발해시기에 이곳의 벼농사는 이미 시…(2012-11-19 06:55:02)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3) 인기글 고난의 조선족간민 문전옥답 치발역복하지 않았다고 정부에 빼앗기고 사지안에 들었다고 영문 모른채 점산호에 빼앗기고 조선간민구1881년,청정부는 동…(2012-11-19 06:26:01)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2) 인기글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제6촌민소조에서 보이는 꼬리섬. “간 도” “월강죄” 두려워한 거짓말 “간도농사” 향연짙은 력사의 지명ㅡ“간도”로 …(2012-11-18 08:15:25)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1) 인기글 월 강 곡 이 땅에 정착하게 되는 민족의 전주곡 애달픔 맺혀있는 겨레의 슬픈 노래 1 겨울 두만…(2012-11-18 06:47:51)
한국 경주대, 하얼빈에 한국어학당 개소 인기글 한국 경주대학교(총장 이순자)가 중국 하얼빈에 한국어학당을 개소했다.  경주대는 지난 12일 이순자 총장, 이준희 교수(관광중국어학과), 차원현 교수(국제한국어교원학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제9중학교 허웨이 부교장을 비롯한 관계자와 현지 학생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대학교 한국어학당 개소식을 가졌다.  경주대는 현지강사 및 한국인 교수를 파견해 한국어학당을 운영할 계획이며 교육은 경주대학교와 업무협정이 체결된 현지 중국인 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순자 총장은 "중국 현지에…(2012-11-15 08:38:35)
中기자 "北위화도 경제특구 가보니…" 인기글 주민 1만3천여명 농업 종사…기반시설 낙후(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도로는 온통 흙길이고 고층 건물은 없다. 흙으로 만든 오래된 집에 사는 주민은 뜰에 채소를 많이 심어놨는데 위화도 특구 전체가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 같다."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14일 북·중이 공동 개발을 추진 중인 북한 위화도 경제특구의 현재 상황을 취재한 기사를 실어 관심을 끌고 있다.환구시보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회사로 국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다.신문은 북한이 외국 기자에 위화…(2012-11-15 07:39:07)
"아리랑의 中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조선족의 자랑" 인기글 "아리랑의 中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조선족의 자랑"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 한국외대 콜로키엄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중국이 최근 아리랑을 '문화유산'에 선정함으로써 한·중 간 문화적 갈등 조짐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국과 조선족 사회가 함께 아리랑을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은 15일 오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센터장 임영상) 주최로 서울 한국외대 BRICs 화상강의실에서 열린 …(2012-11-15 04:56:38)
조선족 전철수 黨 중앙위원…김진길 후보위원(종합 인기글 조선족 전철수 黨 중앙위원…김진길 후보위원(종합) 中 18차 당대회 주석단에 진입한 조선족 전철수(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재중동포로 8일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커창 상무 부총리 등과 함께 247명으로 구성된 주석단에 포함된 전철수(全哲洙·60) 당 통전부 부부장. 지린(吉林)성장 출신인 전 부부장은 15~17기 중앙후보위원에 연속 선출됐고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와 1…(2012-11-15 04:53:40)
게시물 검색

공지사항 2024년 龍의 힘찬 기운을 받아 건강부자가 되세요
延边聖山本草商贸有限公司(연변성산본초상무유한공사)微信 138-4339-0837 카톡전화번호 010-4816-0837
Copyright © 2006 吉ICP备2020005010号 住所 :延吉市北大新城 2号楼3010
企业法人注册号(법인사업자 등록번호):2224000000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