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물결 탄 조선족인민, 요지부동 조선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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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5-12 08:52|본문
2년 전 연변작가협회 작가회원들인 김관웅교수와 미국영주권자인 유순호씨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시말은 전 연변작가협회 작가회원인 유순호씨가 재미조선족들의 작품을 ‘연변문학’에 거재해 달라는 청탁과 김관웅교수가 이를 거부한 데서 인기되었다. 그러나 정작 도마에 올라야 하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이 해외조선족작가 작품에 대한 부당한 예우와 문화대혁명시기 ‘계급투쟁’과 ‘노선투쟁’을 방불케하는 작가의 사상경향을 문제 삼는 경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작가들이 온통 간과 쓸개에 나눠 붙어서는 상대방을 공격, 비난하는 것으로 한차례 전쟁을 치른바 있다.
조선족작가들이 “해외에서 발표한 작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연변작가협회의 정설”이라고 한다. 즉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만이 작가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 같으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사회에 남은 마지막 ‘국유기업’같이 시대에 떨어진 연변작가협회와 600명을 헤아리는 조선족작가회원을 두고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포사회에 동냥을 다니다가 결국 연변작가협회의 ‘내부문건’수준으로 전락된 ‘연변문학’의 권위는 물론 그들의 ‘구미’와 ‘인정기준’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개혁개방초기만 해도 ‘연변문학’은 ‘상처문학’으로 전성기를 누리면서 독자들은 잡지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서점 가에 새잡지가 나오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렸고 돌려가며 보는 잡지중의 하나였다. 당시 ‘연변문학’은 조선족사회의 화젯거리로 충분했고 작가들은 조선족사회의 중심에 있었으며 연변작가협회는 조선족사회가 흠모해마지 않는 단체였다. 당시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후대양성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연변문학’은 문학청년들을 상대로 부간 ‘개간지’를 발행하고 연변작가협회 작가들은 ‘문학 강습반’을 통하여 많은 신인들을 육성해 냈다. 오늘의 연변작가협회는 ‘상처문학’을 이끌던 작가들과 그 시대가 육성해낸 신인작가들로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신입되면서 조선족사회는 폐농현상과 함께 도시 진출, 중국내지에로의 진출과 러시아장사, 한국을 비롯한 해외노무로 이어지면서 중국의 다른 민족은 상상도 할 수없는 다원화사회로, 글로벌화 되어갔다. 조선족사회의 변화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이 다원화, 글로벌 화된 조선족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해 주었고 작가들이 그 전열에 서서 부도 쌓고 작가수업도 하면서 조선족사회를 발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은 썰물을 탔다가도 밀물을 타가면서 직장을 잃지 않으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좀처럼 하해(下海)를 원치 않았다. 그런 사회주의 건설시기의 직장인들로 주류를 이루는 것도 오늘의 연변작가협회이다.
결국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현대인의 생존철학을 거역하고 도전을 회피했으며 주변에 울바자를 두르기에 급급했다. 그것이 해외조선족작가와 작품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말하자면 전 중국이 감염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상급에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주위로부터는 입지를 지키고 개인적으로는 직장을 잃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그러는 사이에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민심을 거슬러 버렸고 작가들은 조선족사회의 변화와 보편적 가치를 읽을 수 없었으며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의 구미에 스스로를 얽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연변작가협회는 중국작가협회가 소수민족지구에 둔 분회(分會)이다. 이는 연변작가협회가 조선족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민족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취지를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조선족의 판도는 더 이상 ‘연변과 동북3성’에 국한된 민족이 아니라 ‘연변과 중국전역, 한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지구촌에 산재되어 있는 민족’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이 전국에 눈을 돌리고 지구촌에 눈을 돌려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제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 지역에서 조선족신인을 발굴하고 회원을 발전시켜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아울러 혈통의 개념으로부터 조선족범주에 대한 새로운 정리가 필요하다. 출신이 3대를 간다는 말이 있다. 즉 사람들은 ‘아무개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는 조선족이다.’ ‘아무개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는 조선족이다.’ 하면서 출생에 선입견을 갖게 된다. 이는 해외장기거주자, 외국적 취득자, 해외영주권자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2세, 3세들도 여전히 조선족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왜나면 그들은 ‘연변과 동북3성’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으며 오매불망 애향심을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국적의 외피로 고향을 떠난 조선족들을 기피하고 해외화교를 끌어안기로 유명한 ‘당과 조국’에 부질없는 결백과 효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에 대한 침해이다.
이제 조선족사회가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을 평가할 차례다. 다원화되고 글로벌 화된 조선족사회의 구미를 맞추지 못하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조선족사회가 인정할 수 없다. 조선족사회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민족사회와 동행하는 조선족작가들과 연변작가협회, 조선족사회의 보편적가치가 반영된 ‘연변문학’을 원할 뿐이다. 몇 년 가도 글 한 편 쓰지 못하는 자, 변화를 두려워하고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자, 민족을 논하면 쫓아다니며 훼방을 놓는 자, 필보다 입이 발달한 자, 푼돈을 자랑하며 문단 풍기를 더럽히는 자, 동네방네 파티를 빼놓지 않고 다니는 자들은 연변작가협회를 자진 탈퇴하라. 연변작가협회는 조선족문학의 사활이 걸린 문화공간으로 회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족작가들이 “해외에서 발표한 작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연변작가협회의 정설”이라고 한다. 즉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만이 작가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 같으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사회에 남은 마지막 ‘국유기업’같이 시대에 떨어진 연변작가협회와 600명을 헤아리는 조선족작가회원을 두고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포사회에 동냥을 다니다가 결국 연변작가협회의 ‘내부문건’수준으로 전락된 ‘연변문학’의 권위는 물론 그들의 ‘구미’와 ‘인정기준’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개혁개방초기만 해도 ‘연변문학’은 ‘상처문학’으로 전성기를 누리면서 독자들은 잡지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서점 가에 새잡지가 나오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렸고 돌려가며 보는 잡지중의 하나였다. 당시 ‘연변문학’은 조선족사회의 화젯거리로 충분했고 작가들은 조선족사회의 중심에 있었으며 연변작가협회는 조선족사회가 흠모해마지 않는 단체였다. 당시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후대양성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연변문학’은 문학청년들을 상대로 부간 ‘개간지’를 발행하고 연변작가협회 작가들은 ‘문학 강습반’을 통하여 많은 신인들을 육성해 냈다. 오늘의 연변작가협회는 ‘상처문학’을 이끌던 작가들과 그 시대가 육성해낸 신인작가들로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신입되면서 조선족사회는 폐농현상과 함께 도시 진출, 중국내지에로의 진출과 러시아장사, 한국을 비롯한 해외노무로 이어지면서 중국의 다른 민족은 상상도 할 수없는 다원화사회로, 글로벌화 되어갔다. 조선족사회의 변화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이 다원화, 글로벌 화된 조선족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해 주었고 작가들이 그 전열에 서서 부도 쌓고 작가수업도 하면서 조선족사회를 발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은 썰물을 탔다가도 밀물을 타가면서 직장을 잃지 않으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좀처럼 하해(下海)를 원치 않았다. 그런 사회주의 건설시기의 직장인들로 주류를 이루는 것도 오늘의 연변작가협회이다.
결국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현대인의 생존철학을 거역하고 도전을 회피했으며 주변에 울바자를 두르기에 급급했다. 그것이 해외조선족작가와 작품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말하자면 전 중국이 감염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상급에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주위로부터는 입지를 지키고 개인적으로는 직장을 잃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그러는 사이에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민심을 거슬러 버렸고 작가들은 조선족사회의 변화와 보편적 가치를 읽을 수 없었으며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의 구미에 스스로를 얽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연변작가협회는 중국작가협회가 소수민족지구에 둔 분회(分會)이다. 이는 연변작가협회가 조선족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민족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취지를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조선족의 판도는 더 이상 ‘연변과 동북3성’에 국한된 민족이 아니라 ‘연변과 중국전역, 한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지구촌에 산재되어 있는 민족’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이 전국에 눈을 돌리고 지구촌에 눈을 돌려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제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 지역에서 조선족신인을 발굴하고 회원을 발전시켜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아울러 혈통의 개념으로부터 조선족범주에 대한 새로운 정리가 필요하다. 출신이 3대를 간다는 말이 있다. 즉 사람들은 ‘아무개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는 조선족이다.’ ‘아무개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는 조선족이다.’ 하면서 출생에 선입견을 갖게 된다. 이는 해외장기거주자, 외국적 취득자, 해외영주권자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2세, 3세들도 여전히 조선족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왜나면 그들은 ‘연변과 동북3성’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으며 오매불망 애향심을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국적의 외피로 고향을 떠난 조선족들을 기피하고 해외화교를 끌어안기로 유명한 ‘당과 조국’에 부질없는 결백과 효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에 대한 침해이다.
이제 조선족사회가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을 평가할 차례다. 다원화되고 글로벌 화된 조선족사회의 구미를 맞추지 못하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은 조선족사회가 인정할 수 없다. 조선족사회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민족사회와 동행하는 조선족작가들과 연변작가협회, 조선족사회의 보편적가치가 반영된 ‘연변문학’을 원할 뿐이다. 몇 년 가도 글 한 편 쓰지 못하는 자, 변화를 두려워하고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자, 민족을 논하면 쫓아다니며 훼방을 놓는 자, 필보다 입이 발달한 자, 푼돈을 자랑하며 문단 풍기를 더럽히는 자, 동네방네 파티를 빼놓지 않고 다니는 자들은 연변작가협회를 자진 탈퇴하라. 연변작가협회는 조선족문학의 사활이 걸린 문화공간으로 회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