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화재 참사 유일한 조선족생존자 임춘월씨 후속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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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1-17 09:08|본문
지난 2008년 1월 7일에 발생한 경기도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 40명(한국인 23명, 중국동포 17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참화가 3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대 수술 6차, 총 13차례 수술을 받은 임춘월씨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2008년 한국 이천 ''코리아2000''냉동창고 화재사고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조선족 생존자이다.꼭 3년이란 시간이 돌이오는 시간 우리는 다시 임춘월씨를 만나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고마운 여러분들의 덕분이지요.''하고 말을 남긴 임춘월씨의 사연을 다시 돌이켜보게 되였다.
사고발생 당시 임춘월씨는 남편과 함께 같은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이날도 한창 여념없이 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이야, 불이 났다!'' 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웨치는 다급한소리에 임춘월씨는 옆에서 한창 일하던 남편을 끌었으나 윗층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나가야 한다며 남편은 빨리 먼저 나가라고 임춘월씨를 떠밀었다. 임춘월씨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밖으로 뛰어 나왔다. 뒤이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뒤통수를 치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땅에 쓰러졌다. 삶의 본능으로 그녀는 땅에서 뒹굴었다. 이 광경을 본 한 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아저씨가 달려와 그녀의 몸에 달린 불을 꺼주었다…
임춘월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임춘월씨를 담당하고 있는 이 병원의 김 성규주치 의사는 그녀에게 ''3도 화상''이란 진단을 내렸다. 임씨의 언니 임춘화씨는 련 며칠 밤낮 동생을 간호하느라 3차나 까무러쳤었다. 그녀는 ''제부를 잃은 내가 동생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며 낮에는 현장에 일하고 밤이면 병원에 달려와 동생을 간호했다. 의사의 정성어린 치료와 언니의 정성과 마음에 감동되여서인지 임씨의 병세는 빠른 호전을 가져왔다.
2006년 7월 재입국 하면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취직해 일하게 되였으며 남편과 나란히 한 현장에서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간 모은 돈으로 고향 길림시 영길현에 만년에 남편과 아기자기 살아갈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기도 했다.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꼭 남편이 사망한 2개월만이다. 친척들은 임씨의 건강과 심리상태를 념려해 여태껏 숨겨두었던 것이다. 나이가 동갑인 남편은 화재사고발생 화염에 휩싸여 더는 깨여나지 못했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임씨는 남편의 말을 꺼내자 숨이 거칠어지며 눈시울부터 젖어 들었다.
''참, 저렇게 떠나려고 그런지 요 2~3년 동안은 저를 각별히 잘 돌봐 주었어요. 퇴근후면 밥도 지어놓고 빨래도 하고… 일터도 나란히 같이 다니고 함께 일할 때면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길로 우리를 쳐다 봤지요.'' 달콤했던 그때를 회상하는듯 그녀는 도란도란 말을 이었다. ''이제 돈 좀 벌어 잘 살 때라고 생각했는데…그만…''그녀는 드디여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일 잇지 못했다…
''참, 정부에 감사를 드려야겠어요. 한국정부도 그렇고 중국정부도 그렇고 너무도 고마웠어요.'' 임춘월씨는 화재발생 당시 자기를 구해준 생면부지의 우즈베키스탄 아저씨가 고마웠고 서로 다투어 차량을 들이대며 병원으로 호송하겠다던 화재현장에 있던 한국분들이 고마웠으며 사고발생 후 주 한국중국대관과 령사관의 관계일군들이 몸소 현장과 병원까지 찾아와 위문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생명이 일각을 다투던 그때 한국 아저씨들이 서로 다투어 차로 저를 싣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임춘월씨는 그때 조금만 시간을 지체했어도 자기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사고발생 후 중국의 호금도 국가주석과 온가보 국무원 총리께서 사후처리를 잘 할 것을 주 한국 중국대사관에 지시한 소식을 병원에서 들었어요. 그리고 중국대사관과 령사관의 책임자들이 몸소 사고현장과 병원을 찾아 위문해주고 또 염봉란 총령사가 직접 인천공항까지 나가서 가족들의 입국을 맞이해준데 대해 더없는 감격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는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가면을 쓰고 다니는 임춘월씨는 오늘 3번째로 가면을 벗어보인다면서 이미 많이 호전된 상황이지만 아직도 수십차의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말하였다. 아직 수술 고통도 많이 격어야 하겠지만 생활상에서도 풀리지 않은 일들도 많다고도 하셨다. 우선 매 3개월에 한번씩 아픈 몸을 끌고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다니며 체류연장을 하는것도 불편하고 또한 일부 사후처리도 마무리가 되지않은 상황이라고 하면서 될수록 빠른 시일에 해결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임춘월씨의 참된 모습과 그의 굳센 의지도 다시 보게 되였고 올해에는 그의 소원이 빠른 시일에 해결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