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진화[進化]를 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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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11-28 21:44|본문
동북아신문 이동렬 편집국장
100년 전과 100년 후, 이제는 급속진행형…
올해 8월말 고려대에서 있은 "조선족의 역할" 관련 세미나에서 일본 호쿠리쿠대 리강철 교수는, "100년 전에 조선족이 있었는가? 이제 100년 후에 조선족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자!"라는 말을 했다. 너무 뜻 깊은 말이다.
학계에서 조선족의 역사(이주 시작부터)를 통상 100년으로 보고 있으니 그 이전에는 조선족이 없었음이 자명한 일이고, 이제 100년 후에 조선족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상충과 융합 속에서 어떻게 진화할지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통상 192만이란 수치를 갖고 있던 조선족 집거사회가 급격히 붕괴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적지 않은 학자들은 "가까운 세월 내에 조선족이 소멸되지 않을까?"하고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리 교수도 "100년 후의 조선족"을 상상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아이러니 한 상상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의 입장에서, 내국인들과 치열한 경쟁 구도를 끊임없이 벌이며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것이라 하겠다. 때문에 그는 "해외이주민과 비교해야 조선족들이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고 주해를 단다.
현재 조선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빠른 진화를 재촉하고 있다.
1880년부터 조선반도에서 살길을 찾아 청나로로 건너갔고, 일제의 강탈이 미워서, 또는 개척단을 만들려는 일제에 의한 강제이주에 의해, 항일을 하기 위해 만주로 이주를 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으니, 조선족은 이주로부터 100년 역사를 만들어 왔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기준으로 하면 장장 50년간 집거생활을 하며 중국에서 "우수민족"으로 거듭났었다.
그러나 1980년대 전후 불과 20여년 사이 60여만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 중국 내 대도시로 이주를 하였고, 한국에 거의 50만, 그리고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2~30만이 이주를 하였기에 본 집거지 고향에는 이제 노인과 어린애 위주의 60여만 인구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계이다.(현재도 끊임없이 이주를 하고 있다.)
사실 "조선족의 진화는 어디까지이고, 글로벌 무대에서 어떤 역할들을 할 수 있으며, 또 스스로 어떻게 자기 역할을 찾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제는, 관련 학계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문제이다.
"조선족의 역할"을 논할 때 관련 학자들은 "긍정과 우려"를 동시에 논한다.
일례로 "조선족의 역할을 중시하라!"고 학계에서 목소리를 제일 높이고 있는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의 이승률 박사는 조선족의 "복합문화력"을 강조하면서, "조선족은 남북관계 개선에 중개적인 매체 작용과 조해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북을 오가며 이북시민들에게 시장 매커니즘을 가르치고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축척하여 통일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하며, 또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를 잘 알고 있는 조선족들의 "복합문화력을 공동문화자원으로 활용하여 '동북아공동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육성하자"고 말한다.
예동근 부경대 교수(조선족 학자)도 "연변중심의 '한반도의 축소판'을 구축한 조선족은 현재, 중국 내 5대 경제권역을 중심으로 경제영토 확장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족 사회의 초국가적인 커뮤니티의 재건"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도시중심론, 동북아네트워크론, 제3의 정체성" 등도 엮인다.
조선족의 이런 역할 논은 남북․중․일을 중심으로, 또 "네트워크를 만들고 강화하자"는 중심의제와 함께 논의되고 정리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조선족 군체가 현시점의 분화(分化)상태에서 그대로 멈추어질까? 분화 되고 분화 되고, 또 분화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분화는 곧 타민족에 의한 동화(同化)를 의미하고, 동화는 곧 조선족이 현재 갖고 있는 "복합문화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은 민족학교가 없는 관계로 3~4세가 부득이 한족 학교로 갈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아무리 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환경은 자녀의 동화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나 타국으로 건너간 조선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저런 생활의 제약을 받아 본인들마저 환경의 압박 속에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평소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기에 현실은 너무 냉정하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우리는 조선족이다!"하고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뒤를 돌아보며 스스로 의지할 "조선족의 정체성(또는 상징성)"을 찾기에도 역사가 너무 짧고 여력이 부족하다. 100년 전부터 조상들이 피땀을 흘리고 목숨까지 바치며 가꿔놓은 정든 고향- 비옥한 삶의 터전은 이미 수없이 타민족에게 넘어갔고, 일가친척이 없는 "초가삼간"에 더는 미련이 없다. 낯선 타향에서, 또는 낯선 이국에서, 조선족은 물질문명의 유혹 속에서 울고 웃으며 이방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조선족의 후대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복합문화력"을 갖고 한‧중‧일 세 나라를 잇는 가교역할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남북 관계 속에서도 마냥 "중개적인 매체 작용과 조해역할"을 할 수 있을까?…너무 의문이 남는 문제이다.
학계에서도, "세계화시대 다국어를 구성할 수 있는 조선족의 한중간 경제협력의 중개역할과 남북 간의 매개역할의 당위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나, 냉정하게 고민하면 조선족이 앞으로 지금처럼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곽승지 박사)고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조선족의 진화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고향에 남아있다고 하여, "예전의 그 산과 그 물이 아니듯, 그 조선족이 그 조선족이 아닌 것"이다.
중국의 촌과 향과, 작은 현시(县‧市)들에서 조선족 마을들은 거의 마사졌고 조선족학교도 거의 폐교가 되었으며, 이제는 대부분 성급 소재지 조선족 학교들에 학생들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연변은 연길이나 용정 등에, 길림성은 길림시나 장춘시 등에, 요녕성은 심양시 등에 "마지막 성"을 구축하고 있다. 조선족의 빈자리는 물론 한족이나 타민족이 찾아와서 스스럼없이 메우고 있다.
아직은 연변의 연길시만은 그런대로 "견고한 조선족 고지"마냥 자기민족 학교와 출판사와 방송사 등과, 자치권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앞을 향해 나가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실속 또한 그럴까!?…
주목해야 할 것은, 정체성 관련 등 문제에서 해외에 나가 있는 조선족과 중국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의견이 적지 않게 상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한반도가 모국이고 정체성에서도 자기가 한민족의 후예이며 한민족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국내 적지 않은 조선족들은 "자신은 중국 소수민족의 한 부류일 뿐이다."는 국가론을 앞세우고 민족 정체성은 뒷전으로 한 채 "조선족은 반도와는 무관한 독자적인 집단"으로 판단한다. 물론 이는 아닌 것이다.
이제는 모국에서 조차 조선족이 중국 국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또 부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민족의 후예임도 틀림이 없다.
때문에 조선족은 이런 이중성을 스스로 상충시킬 것이 아니라 동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선족의 분화, 동화, 그리고 모호한 정체성, 민족에 대한 무관심!…거기에 탄탄치 못한 삶의 기반과, 특히 주위 환경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국외거주자들의 입지는 "자유조선족"으로 타민족에 의해 동화되기 십상이기에 이 문제 상 우리는 절대 모호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재한조선족이란 특수한 "조선족 사회집단"을 빠뜨릴 수 없다.
이들은 타국에 나가있는 조선족들보다 정체성 혼란을 더 겪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타민족과 쉬이 구별이 되기에 "나는 한민족의 후예이다"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으나, 모국에서는 "니가 한국인이냐 조선족이냐?", 또는 "니가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로 쉬이 갈등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동포"라고 표현은 하나, 결과적으로는 "외국인"으로, 또는 "중국인"으로 보고 대할 때의 말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가 "이중 잣대"로 재한조선족을 대하고 있기에 곤혹을 겪을 때가 많다. 한국 정부는 "사회통합을 말할 때는 우리 동포"라고 일컫고, "인력으로 말할 때는 외국인"이라고 한다. 중국동포들에 대하여 노동부는 일을 시켜야 하기에 "외국인력 범주"에 넣고, 법무부는 통합으로 끌어들여야 하기에 "동포"라고 하는 것이다.
"동포냐, 외국이냐?"라고 물으면 내국인들은 누구나 "동포"라고 대답을 할 것이지만, 적지 않은 내국인들은 결국 "동포"라고 하면서도 "외국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조선족은 "동포이면서 외국인"이 맞기도 하지만, 이중 잣대를 감수해야 하는 조선족은 "우리는 결국 중국 사람이다!"는 국가론을 앞세우게 된다.
우리는 현재 모국에서 "조선족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였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면 개탄할 만한 사실을 쉬이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민족 정체성만 강조하면서 동포들을 통합에로만 끌어들이었는데, 한국체류 5~6년 이상이 된 조선족들은 이미 중국에서의 생활기반을 거의 잃어버린 상황이 됐다. 중국에 가면 중국말도 잘 못하겠다 하고, 중국에서 벌어먹고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더 무서운 것은 거기에 일가친척이 없고, 집도 없고, 땅도 없고, 이제 남은 것은 고향에 대한 추억뿐이란다.
그러기에 임시 벌이에 만족하면서 고국에 그냥 눌러 살려고 한다. 그렇다고 모국에서 내국인만큼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거의가 지방정부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생활기반 또한 최하층이다.
더구나 한국정부가 다문화의 범주를 실제로 "내국인과 혈연적으로 맺어지는 외국인"에게만 국한하고 있기에 재한조선족은 다문화범주에서 빠져 누구도 관심하지 않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조선족의 빛깔마저 퇴색된 "이방인"이 되어 있다.
올해 6.25지방 선거 때 재한조선족이 비례대표 한 명도 내지 못한 사실은 심사숙고 할만하다. 귀화동포가 통상 7만 명에 재한중국동포가 40여만이 가깝지만, 여당인 한나라당은 재한조선족 몫으로 비례대표 한명도 추천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국에서 지금까지 정치생명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족은 이렇게 중국 내지 대도시에서, 중국 고향에서, 외국에서, 또 모국에서 환경의 제약을 받으며 어느 민족보다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자신의 이․삼중문화의 우세를 잃어버린 채 "어정쩡한 모습"으로 짬뽕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진화를 종국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진화하고 있는 조선족이 결코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화를 했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중국뿐만 아니라 타국에서도 기업을 경영 하며, 현지 주류사회 진입을 꾀하고 있다.
세계로 나간 유학생들도 적지 않다. 모국에서만 5천여 명이 된다. 석박사생은 물론, 대학교수로, 학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구의 약세가 뚜렷해도, 이북과 이웃을 하고 있는 연변을 거점으로 중국에서도 "두만강개발 중심지역에서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 통일과정 속에 조선족의 역할은 무시 못 하는 것이고, 장차 통일이 되면 연변지역 조선족의 에너지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또 중시해야 할 것은, 상당 부분 조선족이 이제 진화의 기로(岐路)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조선족은 한글을 알고 있기에 조선족이고, 또 중국어나 일본어, 영어도 알고 있기에 조선족이라고 한다. 한글을 모르면 동화가 되고, 동화가 시작되면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이제는 깨어있는 조선족 엘리트들의 역할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분산된 자들과의 통신망을 만들고 정보를 교류하며, "초국가적인 커뮤니티의 재건"을 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 정체성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세계 어디에 흩어져 살더라도 조상들과 자신이 살아오던 고향을 잊지 말고 가꾸던 땅을 버리지 말고, 옛 보금자리를 미래 생활의 중요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만주의 이상설이나 윤동주, 일송정 등을 잊지 못하고 거기에 깃든 민족의 역사와 숨결을 잊지 못하듯, 조선족도 해외에 나가있더라도 향수를 간직하고 삶의 옛 자취를 어루만지고 거기에 기억의 뿌리 한 가닥이라도 남겨두어야 한다.
모국인 한국도 조선족을 한국인으로 완전 동화(그럴 수도 없고)를 시켜도 안 되고, 그들을 배척해서는 더욱 안 된다.
재한조선족으로 하여금 중국과의 연고를 강화하게 하고 인재를 다양하게 흡수하여 그들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국익과 민족에 도움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재중한국인과 조선족과의 연계망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재중한국인이 신조선족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조선족과 신조선족" 간에 신뢰를 쌓으며 진정한 재중한민족사회를 만들 수가 있다. 따로따로 노는 것은 서로에게 불이익만 가져다주고 동화만 재촉하는 꼴이 된다.
조선족은 이렇듯 스스로 분화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 분화의 기로(岐路)를 운명으로 맞으며 거듭 진화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족은 스스로가 막을 것은 막고 노력해야 할 것은 노력해야 한다. 또 한민족의 소중한 자산을 지켜 나가고 살리는 입장에서 한반도의 역할, 특히 한국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100년 전에 조선족이 있었는가? 이제 100년 후에 조선족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자!"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조선족의 진화가 한민족에게도, 조선족이 살고 있는 중국이나 타국에도, 또 스스로에게도 좋은 결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계에서 조선족의 역사(이주 시작부터)를 통상 100년으로 보고 있으니 그 이전에는 조선족이 없었음이 자명한 일이고, 이제 100년 후에 조선족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상충과 융합 속에서 어떻게 진화할지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통상 192만이란 수치를 갖고 있던 조선족 집거사회가 급격히 붕괴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적지 않은 학자들은 "가까운 세월 내에 조선족이 소멸되지 않을까?"하고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리 교수도 "100년 후의 조선족"을 상상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아이러니 한 상상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의 입장에서, 내국인들과 치열한 경쟁 구도를 끊임없이 벌이며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것이라 하겠다. 때문에 그는 "해외이주민과 비교해야 조선족들이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고 주해를 단다.
현재 조선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빠른 진화를 재촉하고 있다.
1880년부터 조선반도에서 살길을 찾아 청나로로 건너갔고, 일제의 강탈이 미워서, 또는 개척단을 만들려는 일제에 의한 강제이주에 의해, 항일을 하기 위해 만주로 이주를 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으니, 조선족은 이주로부터 100년 역사를 만들어 왔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기준으로 하면 장장 50년간 집거생활을 하며 중국에서 "우수민족"으로 거듭났었다.
그러나 1980년대 전후 불과 20여년 사이 60여만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 중국 내 대도시로 이주를 하였고, 한국에 거의 50만, 그리고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2~30만이 이주를 하였기에 본 집거지 고향에는 이제 노인과 어린애 위주의 60여만 인구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계이다.(현재도 끊임없이 이주를 하고 있다.)
사실 "조선족의 진화는 어디까지이고, 글로벌 무대에서 어떤 역할들을 할 수 있으며, 또 스스로 어떻게 자기 역할을 찾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제는, 관련 학계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문제이다.
"조선족의 역할"을 논할 때 관련 학자들은 "긍정과 우려"를 동시에 논한다.
일례로 "조선족의 역할을 중시하라!"고 학계에서 목소리를 제일 높이고 있는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의 이승률 박사는 조선족의 "복합문화력"을 강조하면서, "조선족은 남북관계 개선에 중개적인 매체 작용과 조해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북을 오가며 이북시민들에게 시장 매커니즘을 가르치고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축척하여 통일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하며, 또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를 잘 알고 있는 조선족들의 "복합문화력을 공동문화자원으로 활용하여 '동북아공동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육성하자"고 말한다.
예동근 부경대 교수(조선족 학자)도 "연변중심의 '한반도의 축소판'을 구축한 조선족은 현재, 중국 내 5대 경제권역을 중심으로 경제영토 확장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족 사회의 초국가적인 커뮤니티의 재건"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도시중심론, 동북아네트워크론, 제3의 정체성" 등도 엮인다.
조선족의 이런 역할 논은 남북․중․일을 중심으로, 또 "네트워크를 만들고 강화하자"는 중심의제와 함께 논의되고 정리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조선족 군체가 현시점의 분화(分化)상태에서 그대로 멈추어질까? 분화 되고 분화 되고, 또 분화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분화는 곧 타민족에 의한 동화(同化)를 의미하고, 동화는 곧 조선족이 현재 갖고 있는 "복합문화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은 민족학교가 없는 관계로 3~4세가 부득이 한족 학교로 갈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아무리 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환경은 자녀의 동화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나 타국으로 건너간 조선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저런 생활의 제약을 받아 본인들마저 환경의 압박 속에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평소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기에 현실은 너무 냉정하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우리는 조선족이다!"하고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뒤를 돌아보며 스스로 의지할 "조선족의 정체성(또는 상징성)"을 찾기에도 역사가 너무 짧고 여력이 부족하다. 100년 전부터 조상들이 피땀을 흘리고 목숨까지 바치며 가꿔놓은 정든 고향- 비옥한 삶의 터전은 이미 수없이 타민족에게 넘어갔고, 일가친척이 없는 "초가삼간"에 더는 미련이 없다. 낯선 타향에서, 또는 낯선 이국에서, 조선족은 물질문명의 유혹 속에서 울고 웃으며 이방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조선족의 후대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복합문화력"을 갖고 한‧중‧일 세 나라를 잇는 가교역할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남북 관계 속에서도 마냥 "중개적인 매체 작용과 조해역할"을 할 수 있을까?…너무 의문이 남는 문제이다.
학계에서도, "세계화시대 다국어를 구성할 수 있는 조선족의 한중간 경제협력의 중개역할과 남북 간의 매개역할의 당위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나, 냉정하게 고민하면 조선족이 앞으로 지금처럼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곽승지 박사)고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조선족의 진화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고향에 남아있다고 하여, "예전의 그 산과 그 물이 아니듯, 그 조선족이 그 조선족이 아닌 것"이다.
중국의 촌과 향과, 작은 현시(县‧市)들에서 조선족 마을들은 거의 마사졌고 조선족학교도 거의 폐교가 되었으며, 이제는 대부분 성급 소재지 조선족 학교들에 학생들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연변은 연길이나 용정 등에, 길림성은 길림시나 장춘시 등에, 요녕성은 심양시 등에 "마지막 성"을 구축하고 있다. 조선족의 빈자리는 물론 한족이나 타민족이 찾아와서 스스럼없이 메우고 있다.
아직은 연변의 연길시만은 그런대로 "견고한 조선족 고지"마냥 자기민족 학교와 출판사와 방송사 등과, 자치권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앞을 향해 나가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실속 또한 그럴까!?…
주목해야 할 것은, 정체성 관련 등 문제에서 해외에 나가 있는 조선족과 중국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의견이 적지 않게 상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한반도가 모국이고 정체성에서도 자기가 한민족의 후예이며 한민족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국내 적지 않은 조선족들은 "자신은 중국 소수민족의 한 부류일 뿐이다."는 국가론을 앞세우고 민족 정체성은 뒷전으로 한 채 "조선족은 반도와는 무관한 독자적인 집단"으로 판단한다. 물론 이는 아닌 것이다.
이제는 모국에서 조차 조선족이 중국 국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또 부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민족의 후예임도 틀림이 없다.
때문에 조선족은 이런 이중성을 스스로 상충시킬 것이 아니라 동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선족의 분화, 동화, 그리고 모호한 정체성, 민족에 대한 무관심!…거기에 탄탄치 못한 삶의 기반과, 특히 주위 환경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국외거주자들의 입지는 "자유조선족"으로 타민족에 의해 동화되기 십상이기에 이 문제 상 우리는 절대 모호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재한조선족이란 특수한 "조선족 사회집단"을 빠뜨릴 수 없다.
이들은 타국에 나가있는 조선족들보다 정체성 혼란을 더 겪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타민족과 쉬이 구별이 되기에 "나는 한민족의 후예이다"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으나, 모국에서는 "니가 한국인이냐 조선족이냐?", 또는 "니가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로 쉬이 갈등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동포"라고 표현은 하나, 결과적으로는 "외국인"으로, 또는 "중국인"으로 보고 대할 때의 말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가 "이중 잣대"로 재한조선족을 대하고 있기에 곤혹을 겪을 때가 많다. 한국 정부는 "사회통합을 말할 때는 우리 동포"라고 일컫고, "인력으로 말할 때는 외국인"이라고 한다. 중국동포들에 대하여 노동부는 일을 시켜야 하기에 "외국인력 범주"에 넣고, 법무부는 통합으로 끌어들여야 하기에 "동포"라고 하는 것이다.
"동포냐, 외국이냐?"라고 물으면 내국인들은 누구나 "동포"라고 대답을 할 것이지만, 적지 않은 내국인들은 결국 "동포"라고 하면서도 "외국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조선족은 "동포이면서 외국인"이 맞기도 하지만, 이중 잣대를 감수해야 하는 조선족은 "우리는 결국 중국 사람이다!"는 국가론을 앞세우게 된다.
우리는 현재 모국에서 "조선족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였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면 개탄할 만한 사실을 쉬이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민족 정체성만 강조하면서 동포들을 통합에로만 끌어들이었는데, 한국체류 5~6년 이상이 된 조선족들은 이미 중국에서의 생활기반을 거의 잃어버린 상황이 됐다. 중국에 가면 중국말도 잘 못하겠다 하고, 중국에서 벌어먹고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더 무서운 것은 거기에 일가친척이 없고, 집도 없고, 땅도 없고, 이제 남은 것은 고향에 대한 추억뿐이란다.
그러기에 임시 벌이에 만족하면서 고국에 그냥 눌러 살려고 한다. 그렇다고 모국에서 내국인만큼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거의가 지방정부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생활기반 또한 최하층이다.
더구나 한국정부가 다문화의 범주를 실제로 "내국인과 혈연적으로 맺어지는 외국인"에게만 국한하고 있기에 재한조선족은 다문화범주에서 빠져 누구도 관심하지 않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조선족의 빛깔마저 퇴색된 "이방인"이 되어 있다.
올해 6.25지방 선거 때 재한조선족이 비례대표 한 명도 내지 못한 사실은 심사숙고 할만하다. 귀화동포가 통상 7만 명에 재한중국동포가 40여만이 가깝지만, 여당인 한나라당은 재한조선족 몫으로 비례대표 한명도 추천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국에서 지금까지 정치생명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족은 이렇게 중국 내지 대도시에서, 중국 고향에서, 외국에서, 또 모국에서 환경의 제약을 받으며 어느 민족보다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자신의 이․삼중문화의 우세를 잃어버린 채 "어정쩡한 모습"으로 짬뽕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진화를 종국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진화하고 있는 조선족이 결코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화를 했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중국뿐만 아니라 타국에서도 기업을 경영 하며, 현지 주류사회 진입을 꾀하고 있다.
세계로 나간 유학생들도 적지 않다. 모국에서만 5천여 명이 된다. 석박사생은 물론, 대학교수로, 학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구의 약세가 뚜렷해도, 이북과 이웃을 하고 있는 연변을 거점으로 중국에서도 "두만강개발 중심지역에서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 통일과정 속에 조선족의 역할은 무시 못 하는 것이고, 장차 통일이 되면 연변지역 조선족의 에너지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또 중시해야 할 것은, 상당 부분 조선족이 이제 진화의 기로(岐路)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조선족은 한글을 알고 있기에 조선족이고, 또 중국어나 일본어, 영어도 알고 있기에 조선족이라고 한다. 한글을 모르면 동화가 되고, 동화가 시작되면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이제는 깨어있는 조선족 엘리트들의 역할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분산된 자들과의 통신망을 만들고 정보를 교류하며, "초국가적인 커뮤니티의 재건"을 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 정체성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세계 어디에 흩어져 살더라도 조상들과 자신이 살아오던 고향을 잊지 말고 가꾸던 땅을 버리지 말고, 옛 보금자리를 미래 생활의 중요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만주의 이상설이나 윤동주, 일송정 등을 잊지 못하고 거기에 깃든 민족의 역사와 숨결을 잊지 못하듯, 조선족도 해외에 나가있더라도 향수를 간직하고 삶의 옛 자취를 어루만지고 거기에 기억의 뿌리 한 가닥이라도 남겨두어야 한다.
모국인 한국도 조선족을 한국인으로 완전 동화(그럴 수도 없고)를 시켜도 안 되고, 그들을 배척해서는 더욱 안 된다.
재한조선족으로 하여금 중국과의 연고를 강화하게 하고 인재를 다양하게 흡수하여 그들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국익과 민족에 도움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재중한국인과 조선족과의 연계망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재중한국인이 신조선족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조선족과 신조선족" 간에 신뢰를 쌓으며 진정한 재중한민족사회를 만들 수가 있다. 따로따로 노는 것은 서로에게 불이익만 가져다주고 동화만 재촉하는 꼴이 된다.
조선족은 이렇듯 스스로 분화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 분화의 기로(岐路)를 운명으로 맞으며 거듭 진화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족은 스스로가 막을 것은 막고 노력해야 할 것은 노력해야 한다. 또 한민족의 소중한 자산을 지켜 나가고 살리는 입장에서 한반도의 역할, 특히 한국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100년 전에 조선족이 있었는가? 이제 100년 후에 조선족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자!"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조선족의 진화가 한민족에게도, 조선족이 살고 있는 중국이나 타국에도, 또 스스로에게도 좋은 결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