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나는 왜 조선족문제를 꼬집는 글을 쓰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25 14:49|

본문

-칭찬과 반성에 대하여  
 
미국에서 두 학자를 유럽에 파견하여 미국이 유럽한테서 뭘 배워야 하나를 고찰케 했다. 그 중 A란 사람은 전체유럽을 고찰하고 나서 돌아와 유럽은 우리미국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어 배울 것이 전혀 없다고 회보했고, B란 사람은 우리미국은 유럽한테서 여러모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추한 미국인>>이라는 책을 지어냈다. 결과는 A란 사람은 밥통을 잃게 되었고 B란 사람을 승진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곧 미국인의 열린 도량이며 오늘날 왜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이야기꺼리다.
 
1960년대 아르헨띠나 대사를 지냈던 일본인이 <<추한 일본인>>이란 책을 지어서 파직 당했다. 이유는 일본인은 체면을 중히 여기므로 스스로 자기얼굴에 먹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추한 미국인>>의 저자는 승진하고, <<추한일본인>>의 저자는 파직 당했다. 이것이 곧 열린 미국인의 도량과 막힌 일본인의 속 좁은 표현이 아니겠는가!
 
1986년 대만작가 백양이 <<추한 중국인>>을 대륙에서 출간하였는데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외국의 선진적인 것을 배우려 한 동시에 국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는 도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추한 미국인>>을 썼고, 일본인이 <<추한 일본인>>을 지었고, 중국인이 <<추한 중국인>>을 펴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을 포함해 우리민족은 스스로 ‘추한 한국인’을 쓰지 않았다. 아예 쓸 생각마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한국인이 스스로 쓰지 않으니 1990년대 초 가세히데아키(加漱英明)란 일본인이 <<추한 한국인>>을 썼는데 일본 내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한국 내에서는 굉장히 반발이 심했다. 같은 시기에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를 지어 <<추한 한국인>>에 맞불을 놓아 한국 내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우리민족은 수천 년 동안 남의 속국 혹은 식민지로 살아왔으나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는 데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 없이 오로지 남만을 탓해 왔다. 가령 누가 민족문제에 대해 반성의 글을 좀 쓰면 공격의 표적이 되어 매장된다.
 
한국인과 같은 피를 물고 난 조선족도 체면의식이 강해 한때 56개 민족가운데서 뭐가 제일이었고 하면서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개혁개방 이래 낙후민족으로 전락한데 대한 반성이 적다. 가령 그 누가 반성의 글을 써내면 조선족을 팔아먹는 자로 몰아붙인다.
 
물론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이 있듯이 칭찬이 일시적인 진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허나 칭찬은 남한테서 받아야 하고 반성은 스스로 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부터 내 주제는 어떻든 간에 남이 나의 흉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반발심이 생기는 법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 나의 글 <<답답한 재한조선족>>이 발표되자 어떤 조선족 관련 사이트에서 독자들이 전부 나를 한국인으로 착각하고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한국인이 이런 글을 썼다 해도 우리는 마땅히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참고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글의 저자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 중에 “왜 같은 조선족으로서 조선족을 욕하는 글을 많이 쓰는가?” “더 한심한 한국인이 많은데 왜 한국인의 추한 것을 쓰지 않고 조선족만 욕하는가?”라고 나를 공격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 중 나의 글을 찬성하는 비례가 훨씬 더 많다. 독자들의 관점이 찬이든 반이든 어떻든지 나의 글에 관심 있게 읽어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 기회를 빌어서 나는 왜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가는 입장을 밝히려 한다.
나는 2006년 3월부터 현재까지 신문과 잡지에 85편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58편이 조선족문제를 주제로 한 글이다. 이글들이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찬반양론이 많았다. 문제는 나의 글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고 현실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당신의 말이 맞지만 너무 꼬집는다.”고 말한다. 나는 ‘너무 꼬집었기 때문에 맞는 것이 아닐까?’고 생각한다.
 
내가 조선족문제를 꼬집는 이유는 이렇다. 조선족은 한때 확실히 중국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인정받고 살아왔다. 허나 오늘날 조선족은 확실히 낙후민족으로 전락되었는데 나는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이 점에 대해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과거 우수한 민족이었다는 타이틀을 되찾을까? 이것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며 고민 끝에 조선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꼬집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다음 나도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조선족이 안고 있는 공통된 열근성이 나의 몸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답답한 것’들을 고쳐보려는 마음에서 글을 많이 쓴다.
 
지난주에 가리봉의 00노래방에 갔는데 한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어마나, 김선생님도 이런 장소에 다니세요?”라고 마치 희한한 일을 발견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작년 자진출국 때 나의 손을 거쳐 갔다가 무사히 재입국했다. 그녀 외에도 손님들은 나를 신문사에서 근엄하게 글을 쓰고 정직하게 일만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천만에 말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겨우 지난해부터이고 과거는 옛날사람들이 “남자는 지랄 외에는 다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 나는 마약을 대지 않은 외에 벼라 별 ‘지랄’을 다해보면서 살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밤 12시경에 우리 일행 중에 나와 이견(異見)이 있어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리봉시장 안이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면서 나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 한 가게 주인(조선족)이 나를 보고 “김선생님도 답답한 조선족이구먼!”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정신이 벌떡 들었다. 아차, 그렇지! 내가 <<답답한 재한조선족>>이란 글을 썼지만 오히려 내가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구나! 사돈이 남말을 하고 있었네.
 
내가 이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재한조선족들이 차원이 낮고 나는 차원이 높아서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도 똑 같은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나의 몸에도 조선족이 안고 있는 공통된 열근성을 갖고 있기에 공동으로 고쳐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다는 입장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나는 1990년도 여행업으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국인과 생활해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추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한국인관광객들이 중국에 가서 아가씨를 잘못 건드려 대신해서 사과하러 다녔고, 효도관광으로 중국에 가신 할머니들이 호텔의 타올(수건)을 몰래 훔쳐 대신 사과하러 다니는 등 중국 땅에서의 한국인의 추태상을 쓰자면 정말 책 한 권은 족히 써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데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개별적인 한국인의 추태를 떠벌려봐야 우리에게 차려지는 실리가 무엇인가는 것이다. 멀리 말고 우리 센터입구에는 매일 한국인 노숙자들이 술을 마시고 오줌을 갈기고 하면서 거처하고 있다. 대낮에 내가 밖에 나가 바람을 쏘이면서 담배를 피우면 한국인 노숙자들이 네댓 명씩 담배를 빈다. 여지껏 가리봉에서 조선족노숙자를 보지 못했으며 낯모를 조선족이 나한테 담배를 빈 적이 없다.
 
자아, 그렇다면 개별적인 한국인의 추태상을 마치 전체 한국이 형편없는 것처럼 떠벌려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한국과 한국인이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조선족사회보다 많이 앞서 있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하고 배울 것은 허심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조선족문제에 대한 글만 쓴다고 해서 조선족은 우수한 면이 없는가? 천만에! 조선족도 우수한 면이 많다. 다만 칭찬은 남이 해주고 우리 스스로는 반성을 하는 것이 민족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꼬집는 글을 쓰는 것이다. 또한 백양이 <<추한 중국인>>을 쓴 것이 중국인이 미워서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중국어에 “恨鐵不成鋼”이란 격언이 있듯이 나는 조선족도 ‘철’이 ‘강’으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족문제를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씀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고수하고 있다. 첫째 나는 정치나 거창한 글을 쓰지 않는다. 둘째 나는 뉴스에 보도되었거나 남들의 손을 거쳐 흘러가는 글을 쓰지 않는다. 셋째 나는 현실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넷째 나는 내가 쓴 글에 대해선 누가 뭐라든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책임진다.
 
조선족문제는 민감한 문제다. 허나 건드릴 것은 건드리고, 꼬집을 것은 꼬집고, 파헤칠 것은 과감하게 파헤쳐야 한다. 상처가 아프다고 덮어두면 점점 더 곪아 간다. 곪아 터지기 전에 손을 보아 상처를 고쳐야 한다. 이것이 우리조선족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9-04-18 13:50:24 출국/비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0-11-27 10:41:45 한민족센터에서 이동 됨]
0

글로벌한민족 목록

글로벌한민족 목록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 인기글 재한조선족문제연구 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 -국적이 뭐길래? "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중국동포타운신문입니다.” “여보세요, 저는 한국 사람인데요, 한 가지 여쭈어 볼 일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하느님 맙소서. 한국 땅이 아무리 작다고 한들 도망가면 어디에 가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중국동포가 가출한…(2009-03-25 15:10:39)
동생과 혼인신고를 하고 형과 살다가 신세 망친 여자 인기글 일부 조선족여성들이 한국 땅을 밟으려고 국제결혼을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그 방법도 가지각색이여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딸, 오누이, 형부와 처제가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동생과 혼인신고를 하고 형과 사는 사례도 있다. 길림시에서 온 장모 여인(28세)은 3년 전에 한국에 왔는데, 당시 한국인 박모가 중국에 가서 그녀와 선을 보고 혼인약속을 했지만 신용불량자라 재산담보를 제출할 수가 없어 혼인신고를 못하고, 박모의 동생이 형을 대신해 장모…(2009-03-25 15:08:58)
재한 세 조선족아줌마의 창업취업 성공담 인기글 힘들수록 얻는것도 많아요 1. 한국생활 쉽지만 않다.2. 계획을 세워라. 3. 부지런하라.4. 전문가가 되라. 주방장인 박아줌마: 분명한 목표 갖고 부단히 자기개발해야박씨(길림성 구태시, 52세)아줌마는 한국에 간지 6년째이다. 남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울상이지만 박씨 아줌마한테는 《늘 일자리가 따라다닌다.》 한국행에 앞선 분명한 목표와 충분한 준비, 부단한 자기개발이 그 원인이다. 중국에 있을적 원래 식당업을 한 박씨는 료리에는 익숙, 한국에 간 후에도 여전히 식당업에 종사하…(2009-03-25 15:07:00)
"대한민국, 이런 게 싫더라~" 인기글 벌써 고국 대한민국 땅을 밟은 지도 어언 5년 세월이 훌쩍 넘어선다. 눈앞에 추석을 앞두고 있으니 올해도 거의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내 고향의 전통과 뿌리는 같으나 한 세기를 넘나들며 꽤나 큰 차이를 보이는 한국문화와 사회. 그동안 벌어졌던 그 간격이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점점 가까워진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 동안 한국은 이렇게 변했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관계로, 일상용어에서는 요즘 한자어를 쓰면 왠지 좀 촌스럽다 하고, 콩글리쉬를 쓰면 뭔가 있어 보인단다. 회사에…(2009-03-25 15:05:51)
뿌리 없는 마음 인기글 연변에서 태여나고 자란 중국 조선족인 내가 이곳 한국에 류학을 와서부터 머리 아프게 고민했던것이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밤과 낮 따로 없이 긴장에 얼굴 근육 한번 제대로 풀지 못한채 늘 뻣뻣하게 나를 만들었던 고민, 그건 고민이 아니라 차라리 고문이였다. 이 하늘아래 그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워본적이 이제껏 없었으며 이 세월동안 그렇게 풀이 죽어본적이 또한 없었다. 이 아름다운 한국에서, 이 예쁘장한 고국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못할 고민에 내 스스로 정신분렬증에 걸리지 않을가 얼마나 걱…(2009-03-25 15:03:52)
조선족 언어우세가 아닌 능력우세로 거듭나야 할 때 인기글 번역시장에서 조선족들이 경쟁대상에게 점점 밀리고있다. 조선족들은 단순한 언어번역보다도 다방면의 지식, 종합자질을 구비한 능력있는 통역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갈수록 활발해지고있는 중한교류로 각종 국제회의, 경제무역, 문화, 교육, 관광 등 령역에서의 통역에 대한 수요는 줄곧 끊기질 않았으며 지금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 과정중 조선족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다룰수 있다는 우세로 번역시장에서는 받들리는 존재로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학생들의 증가와 중국어를 장악한 한국인들…(2009-03-25 15:01:55)
조선족과 한국인사이 이혼절차에서 드러나는 문제점 인기글 요 몇 년 동안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 건수가 급증함에 따라 이혼율도 급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에 있어서 위장결혼 수가 60% 넘을 것으로 보고, 진짜 결혼으로 왔으나 가출하여 별거상태에 있는 자가 많아 잠재적 이혼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짐작되어 실제 큰 말썽이 없이 살고 있는 비례가 20% 미만일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미 이혼했거나 현재 이혼 중에 있거나 앞으로 잠재적으로 이혼할 수를 합치면 80%나 된다는 얘기가 된…(2009-03-25 14:59:30)
문화례절 배우면서 한국생활을 해가야 인기글 나는 스스로도 우리 조선족녀성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꿈을 안고 한국에 온 우리들은 사랑하는 남편이 옆에 없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집에 두고 왔어도 오직 돈 벌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빨리도 한국생활에 적응한다. 꿈에서도 못해 본 하루 13시간의 로동도, 알아못들을 한국사람들의 영어식 한국말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힘들면 힘든대로, 더러우면 더러운대로 우리의 두 손과 두발이면 못해낼 일이 없다. 차츰 한국생활에 적응이 돼가면서 나는 우리와 한국사람들간의 차…(2009-03-25 14:56:55)
조선족 사회 어디로 가야하나? 인기글 필자가 처음 조선족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 90년대 중반이후였다. 그때는 조선족사회에서 개혁개방이후 나타난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위기설', ‘해체설'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였고 필자 또한 이에 대응하여 당시 조선족사회에 로출된 문제를 중국의 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력설하였다. 그때부터 이미 10년안밖의 시간이 지난 현재 조선족사회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이것을 아직도 ‘진통'속의 과정이라고 할수 있는지?…(2009-03-25 14:55:22)
조선족녀성 가정과 애정관에 '돌연변이' 인기글 조선족녀성 가정과 애정관에 '돌연변이' 중한 수교후 15년동안 한국 붐이 거세게 일면서 조선족녀성들의 전통관념에 일부 변화가 생겼다.특히 가정관념과 애정관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부터 발언권수위가 높아졌다. 이와 관련 기자는 현재 한국 체류중인 조선족녀성, 현지에 남은 외기러기 녀성, 부부가 함께 생활하고있는 30-40대 녀성 3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45명 조사대상중 일부 녀성들은 자신의 '은사'가 외부에 로출되는건 아닌지 하는 우려로 조사를 거절했다. 가정보다 자신이 …(2009-03-25 14:54:10)
[열람중]나는 왜 조선족문제를 꼬집는 글을 쓰는가? 인기글 -칭찬과 반성에 대하여 미국에서 두 학자를 유럽에 파견하여 미국이 유럽한테서 뭘 배워야 하나를 고찰케 했다. 그 중 A란 사람은 전체유럽을 고찰하고 나서 돌아와 유럽은 우리미국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어 배울 것이 전혀 없다고 회보했고, B란 사람은 우리미국은 유럽한테서 여러모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lt;&lt;추한 미국인&gt;&gt;이라는 책을 지어냈다. 결과는 A란 사람은 밥통을 잃게 되었고 B란 사람을 승진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곧 미국인의 열린 도량이며 오늘날 왜 미국이 …(2009-03-25 14:49:24)
전쟁터에 피여난 한송이 진달래 인기글 ———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세우고 돌아오리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때 경애의 나이는 19세였다. 미혼부인 신만규씨는 반년전에 입대하여 마을을 떠난 뒤였다. 고향을 떠나 조양천교도대에 가입한 경애…(2009-03-25 14:47:59)
언어때문에 "울고 웃는" 조선족들 인기글 ◈ 중국어 한국어 이중언어가 무역 등 사업의 큰 우세◈ 영어기초 낮아 미국 등지에서 대졸생도 막벌이 내가 만난 해외의 사람들에게 《중국조선족》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조선족들이 적응력이 강하고 부지런하고 사업을 잘한다》고 말한다. 따지고보면 중국 조선족들의 중국어와 한국어의 이중언어의 우세가 해외진출과 해외에서의 사업개척에 큰 우세가 되고있다. 이중언어의 우세로 조선족들은 해외진출의 경우 현지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을 정착과 사업의 발판으로 삼을수 있으며 뒤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2009-03-25 14:46:32)
나를 분발케 하는 한복 인기글 나를 분발케 하는 한복 김봉선 연변중국조선족민속박람회의 개막과 더불어 민족의 전통의상 한복은 그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자랑하며 국내외 손님들의 갈채를 받고있다. 한복은 우리민족이 얼굴이며 조상이 숨결이며 지혜의 결정체이다.풍만하고 아름다운 몸맵시를 은근히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녀자 한복은 멋있고 우아해보이며 색채조합이 잘 어울리고 예술적기교가 뛰여나 그 아름다움을 극치에 이르게 한다.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춘하추동 한복차림으로 살아왔다.삼복염철에는 베저고리,베치마를 …(2009-03-25 14:45:53)
조선족 이산가족문제 어찌할것인가? 인기글 중국개혁개방이후 조선족의 삶의 반경은 중국전역으로,세계방방곡곡으로 넓어졌습니다. 지역사회에서의 몇십년간의 &lt;&lt;우물안개구리생활&gt;&gt;을 청산하고 그야말로 천하를 지구촌으로 알고 횡행하면서 많은것을 얻고,그러나 또 많은것을 잃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족의 &lt; 이산가족문제&gt;는 조선족사회의 기본근간에 직격탄을 퍼붓어 송두리채 뒤흔들고 있습니다.말하자면 이 문제는 조선족사회조직의 기본세포인 가족의 생존 및 존재형태를 재편성시키고 있습니다. 조선족 매 가정은 몰라도 가…(2009-03-25 14:44:59)
게시물 검색

공지사항 2024년 龍의 힘찬 기운을 받아 건강부자가 되세요
延边聖山本草商贸有限公司(연변성산본초상무유한공사)微信 138-4339-0837 카톡전화번호 010-4816-0837
Copyright © 2006 吉ICP备2020005010号 住所 :延吉市北大新城 2号楼3010
企业法人注册号(법인사업자 등록번호):2224000000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