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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기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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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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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기층문화
 
한민족의 기층사상은 다음의 세 가지 즉 산신사상, 수목사상, 천상사상의 세 분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그전에 먼저 기층사상과 기층문화에 대한 이해를 좀 다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통 우리의 기층문화는 무속신앙이나 점복신앙, 기복신앙 조금 더 나아가면 미륵신앙, 신선사상 정도로 알고 있다. 여기에 불교나, 유교를 꼽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방면의 전공자들은 우리의 마을신앙과 벅수와 장승, 솟대, 서낭당, 돌신앙, 성기신앙 등등을 더 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기층문화가 무엇이다'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를 하여 우리를 시원스럽게 할 정도의 설명서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저 이것저것 민속적인 것이고 오래 된 듯한 풍속이면 모두 한 곳에 때려 넣어 기층문화에 해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어림잡음의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런 어림잡음의 대표격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단연 무속이 으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을 하면 무속은 우리의 기층문화에 해당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런 말을 하면 누가 무슨 망언을 그렇게 마구 지껄여대는가 하겠지만, 기층문화가 무엇인가 하는 간단한 정의를 한번 생각해본다면 이 문제는 금방 해결이 될 것이다.
 
문화를 분류하는데는 여러 가지의 복잡한 학술적 용어들이 있다. 이를 고려하여 기층문화를 이해한다면 기층문화는 우리의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문화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화, 전통문화, 민속문화, 고유문화, 향토문화, 토속문화, 정통문화, 농경문화 등등 문화의 분류법은 복잡 다단하다. 그러나 기층문화는 이 모든 문화의 기반이 되는 간단 명료한 몇 가지의 핵심적인 문화요소들을 지칭하는 개념이 되는 것이다. 복잡한 용어에 대한 정의는 이 정도로 각설을 하고 무속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무속은 그동안 민속학자들에 의한 집중적인 연구의 덕택으로 그 인기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전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 예전에는 천민이나 상놈이나 하던 것이란 인식이 이제는 민족문화의 전통성을 자랑하는 것으로 그리고 고도의 예술적 장치로서 보려는 안목이 넓어지고 있다. 물론 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경시를 하거나 천대시하는 고고한 한국인도 있고, 미신시하여 거들떠보지도 않는 현대적 사고를 가진 한국인도 있고, 더 나아가 아예 무속을 사탄으로 간주를 하여 공격의 대상, 제거의 대상, 아니 박멸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집단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대세는 이제 무속은 우리 민족의 기층문화로 자리매김을 해 주는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누구나 이를 수긍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여기에는 무속이 가지는 고도의 예술성과 신비함과 문화장치로서의 가치를 보는 안목과 무관하게 수긍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무속의 진수를 제대로 알고 몸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무속의 세계는 넓다고 할 수도 있고, 심오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한켠에서는 무속은 미신이니, 천박하다느니, 귀신이나 다룬다느니, 아니면 사람들을 상대로 귀신을 빌미로 하여 사기나 친다느니 하는 등등의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제 무속은 우리의 문화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확실히 무속은 오늘 한국 문화의 정통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데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즈음에 우리는 한번쯤 물어볼 일이 있다. 끊임없이 물어보는 자세는 전통문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리고 이를 공부하고자 할 때 늘 가져야 하는 후손들의 임무이다. 그 물어봐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무속의 역사성에 관한 것이다. 과연 우리의 무속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의 막강한 사상과 예술의 총아로 굳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기층문화에 대한 관심이 야기되는 것이다. 기층문화를 하다말고 무속이야기를 한 것은 여기서 무속의 역사를 다루자는 것이 아니라, 기층문화라는 것은 이런 무속과 같은 전통문화나 민족문화와는 격이 다른 데에 있다는 일례를 들어보인 것이 되겠다.
 
- 단군신화와 산신사상
 
독일의 마부르그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다이버씨가 북한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교환교수로 한국에 와있는 동안 이곳 저곳 한국의 재미있는 종교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 분은 원래 신학을 전공하였는데 나중에는 종교사회학 쪽으로 방향을 바꿔 종교의 현상학적 측면을 주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종교에 관심을 유난히 기울이는 이유로는 한국종교가 가지는 원초적이고 자연적 현상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날도 이런 독일교수의 관심에 맞추어 우이동 계곡에 있는 무속사당 즉 굿당을 답사하던 차였다.
 
그의 눈에는 한국이 막 고도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종교 현상에 어떤 혼란과 정돈이 야기되는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민속 종교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물론 한국의 기독교가 흐르는 방향을 예의 주시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한국의 기독교가 어떤 방향으로 가든 그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이겠지만, 그의 눈에는 한 나라의 모든 종교적 문화 요소는 서로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듯 하였다.
 
즉 기독교와 무속, 불교와 무속, 더 나아가 다른 민간 종교와 기독교, 불교 또 무속과의 관계까지 그는 넓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듯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그와 같이 우이동 계곡을 답사하면서 느낄 수 있고 확인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학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나름대로의 교차되는 감상을 함께 했던 기억이 있다.
 
굿당을 들르기 전에 그는 그 근처에 있던 조그만 암자에 들르기로 했다. 필자의 생각은 불교와 무속이 습합되는 현장도 보여주고 싶었다.

절 문간의 조계종 소속을 분명히 밝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간판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 먼저 발길을 돌린 곳은 본전의 뒤켠에 있는 산제당이었다. 절의 본전이라고 해봐야 스레트 집에 삼불탱화를 모셔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스레트 집의 한 켠은 비스듬히 삐뚤어져 있어 주위의 풍광과는 잘 어울리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절'하면 으례 웅장한 가람을 연상했던지 독일 교수는 연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태연하게 이러한 절은 한국에 수도 없이 많이 있으며, 그중 많은 수가 무속과 불교의 습합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이런 절이 돈을 많이 모으게 되면 하나씩 하나씩 불사를 거행하여 나중에는 가람의 형태를 갖추기도 한다고도 설명을 하였다. 그가 사는 유럽의 천주교와 기독교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안듯 고개를 연거퍼 끄덕끄덕하며 한편으론 이해를 하는 듯 한편으론 또 의아해 하는 듯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의 이론적 틀을 점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긴 본전의 옆을 지나 가파르게 만들어진 오르막 계단을 한번 굽이돌아 올라선 곳은 산자락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바위를 지붕으로 하여 그 밑에 단정하게 만들어진 산제당이 있는 곳이었다. 독일 교수는 무슨 보물이나 발견한 듯이 연거퍼 사진을 찍어대며 희안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나는 또 이런 산제당이 무엇을 하고 어떤 종교적 기능을 하며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는 비로소 제대로 된 한국의 자연 종교를 알 것 같은지, 아니면 알아버렸는지 나에게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시했다.
 
그는 나름대로 느낀 바 감상을 토로하였다. 그중에 그는 여러 가지 예리한 지적들을 제기하였다. 그는 산신사상에 관해 예리한 지적을 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산제당에 모셔진 산신 탱화나 산신 위패는 산에 대한 숭배인데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도 그들의 가슴 속에는 등산이라는 사실이외에 그런 산신에 대한 신앙의 심리를 같이 가지고 산을 대하고 오르고 있을 것일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나는 그의 이런 지적을 예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은 확실히 우리에게 뭔가 다른 신비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존재인데 거기에는 역시 모종의 우여곡절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단군신화에서부터 나오는 산신사상에 기인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한양대학교의 어느 인류학 교수는 우리의 고유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유형의 문화재보다는 무형의 문화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새벽 등산사상(?)을 신문지상에서 정리를 하여 싣기도 했다. 그의 의견은 문화재라는 것이 꼭 눈으로 보여야만 하는 가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이야기를 출발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는 우리의 문화를 정리하는데 이런 보이지 않는 문화 행위와 그와 관련된 사상성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새벽에 등산을 하며 일견 부지런함을 과시하는 것 같은 것이 단순한 부지런함이 아니고 새벽과 산, 그리고 아침과 동틈에 대한 여러 가지 상징성이 동반된 우리의 생활상의 새벽등산사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등산에 있다. 서울 근교는 물론이고 시내 안에 있는 산같이 생긴 곳에서는 어디고 새벽에 등산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올망 졸망한 산에는 낮보다는 새벽에 올라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동이 트기 전부터 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간단한 산보와 체조 등을 하고 내려와 동네 목욕탕을 들러 집으로 들어가는 순서를 매일마다 지키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서만 관찰되는 특이한 현상이다. 오죽하면 외국의 한 교수가 낮에 산에 오르는 사람을 예사로 보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현상은 이외에도 생활의 여러 곳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산에 대한 사상은 종교적 신앙의 형태로도 잘 정립이 되어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산제, 산지사, 동제, 부락제 등으로 불리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산제나 동제의 형식과 종류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르게 구분되어 치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바위신앙이나 개인적인 산제사, 산우물에 드리는 치성, 산에 있는 특별한 나무에 드리는 산치성 등의 일반인 대상이 있고, 이외에 무속인이나, 역술가나 다른 수행자는 산을 찾아 산의 정기를 받아가기를 온갖 정성을 다해 치성들을 드린다.
 
이들 모두는 산에서 산신의 정기와 위호를 받아 감화되고 동화되어 인간사의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이들이 얼마나 산과 산에 주재하는 산신에 대한 신령스러움을 얼마만큼 확신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산은 우리에게 실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과연 우리의 기층문화로서 산신사상이 얼마나 단단한 기반을 이루고 있나를 알 수 있게 하는 것들이다.
 
산이 얼마나 신령스러운 것인가는 역시 우리의 단군신화에도 잘 기록되어 있다. 다음의 글귀가 바로 이런 산신사상을 출발하게 했던 기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단군이 장당경으로 이주하여, 후에는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는데, 나이가 1908세에 이르렀다."(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 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삼국유사, 일연))

- 산신의 정체
 
지금까지 한국의 민속학계에서 명쾌하게 풀지 못하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이 산신사상에 관한 것이다. 학자들이 빠져있는 고민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 나라는 오래 전부터 농경을 시작하여왔고, 어로를 겸해왔는데 왜 산신을 모시고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왜 농경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에 관련된 신들을 다양하면서도 성대하게 모시지를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자고로 산신은 적어도 농경신의 계열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수렵과 채집의 경제형태를 가지는 수렵민들의 신계로 적합하고 고정화된 것이다. 실제로 수렵생활을 아직도 하고 있는 지구촌 오지의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렵생활을 청산한지 오래이고 바야흐로 문명의 맛을 보고 생활을 한지가 얼마인데 수렵신이자 동물신의 아지트인 산신을 아직껏 신봉하고 있는 가에 대한 고민이 말하자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왜 아직까지 이런 수렵의 중심신인 산신을 신봉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뭔가 이론적인 오류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설명은 어느 인류학 책을 쳐다봐도 하나도 틀리지 않는 충실한 내용들이다. 확실히 우리는 산신사상을 가지고 있고 이 산신사상은 수렵체제 하의 신적 계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점검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점검한다는 것은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하나 하나를 따지는 것은 지겨운 일이니 거두절미하고 여기서도 역시 간단한 본론과 결론만을 언급하자.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우리의 농경은 생각보다 지극히 짧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습식 집약농은 겨우 삼국시대에 들어선 훨씬 후의 일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한반도에서는 상당히 오랜 동안 수렵의 생활을 위주로 하여 살아왔었던 집단이 살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실은 위에 언급한 짧은 단군신화의 한 구절이다. 국조인 단군이 죽어서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된 것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왜 단군이 죽어서 산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그곳에서 또 왜 산신이 되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사실이 수렵사회에서의 동물신과 산신과는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는 뭔가 잘못 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당연한 것일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방법의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즉 수렵생활을 하는 현장으로 가서 그들의 생활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 오지의 아무데나 가서는 안되고 곰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방향을 맞추어야 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시선을 만주북부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에게 돌려보면 이런 문제는 쉽게 풀려버린다. 이곳에서 곰은 이들의 산신이다. 그리고 곰은 이들의 동물신으로 그들의 사냥을 보장해주는 절대 절명의 귀중한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 부족민이 죽으면 곰의 세계로 가서 곰신이 된다는 것이다, 즉 죽은 연후에 곰이 사는 산의 산신이 된다는 것인데 이런 심상은 이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스런 신앙의 형태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단군이 죽어서 아사달 산에 들어가 산신이 왜 되어야만 하는가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설명이 되지는 않았다. 아직 더 살펴야 할 몇 가지가 남아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자면 왜 산신이 되려고 하는가 이다. 즉 산신이 된 후에 무슨 일을 하길래 조상이 죽어서 산신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 생계의 주요 근원인 동물 사냥을 바로 이 산신 즉 곰신이 관장을 하고 나아가 동물 사냥의 보장을 도맡아서 행하고 있다고 믿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단군이 죽어서 산신이 되려고 하는 것은 그의 후손을 대대로 책임지고 먹여 살릴 것이라는 대단한 각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08세를 누렸다고 하니 그 동안을 단군은 후손을 위해 장수를 누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산신에 대한 골깊은 신앙 형태와 사상성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우여곡절이 내재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굿당의 신전에 걸려 있는 산신도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많은 이론적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분명 거기에는 이런 산신 사상의 내용이 빠져서는 그 기층의 기반을 빼먹는 부실 공사로 낙인찍히기 쉽상이다. 이런 것을 일러 기층문화, 기층사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층사상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할 점들을 제시해주게 된다. 그리고 그후 문화 발전 단계의 제 요소에 관여를 하게 된다. 방금 앞에서 언급한 무신도 중의 산신도가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농경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그리고 죽은 후의 사후세계를 상정하는 장례법과 관련된 것도 서로 비교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사람이 죽으면 땅을 파고 땅속에 묻는다. 그리고 사후의 세계가 산신이 되는 것과는 다르게 그려지게 된다. 아니 이제는 더 나아가 풍수사상과 연관을 지어 전혀 다른 사후 세계관을 가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죽은 조상의 후손의 현실적인 삶의 실리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점은 너무도 똑같이 닮아 있다.
 
이런 점들을 비교하며 문화요소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게 되면 우리가 사는 오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우리의 존재도 좀더 확실하게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층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이를 정리하고 나아가 우리 문화의 해석을 담당하여 미래의 설계를 감히 측정해볼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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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상처입은 사람들 인기글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이라면 대부분 조상들의 고향인 한국에 한번이라도 가보고싶어한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 국적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게는 수입이 높은 한국으로 가서 몇년 부지런히 일해 돈을 벌어와 잘 살자는 일념에서이다. 한국행으로 목돈을 벌어와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심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아주 많다. 우리에게 가장 힘들었던것은 한국에서 받은 천대와 멸시이다. 나는 1999년도에 한국에 갔는데 재단기술이 있는 나의 한 친구는 복장회사에서 재봉…(2009-03-25 14:27:50)
우리 민족 속담 1000가지 인기글 우리 민족 속담 1000가지 계집 바뀐 건 모르고 젓가락 짝 바뀐 건 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라 나룻이 석 자라도 먹어야 샌님 거미는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 거지도 손 볼 날이 있다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다 못 채운다 바보는 죽어야 고쳐진다 밟힌 지렁이 꿈틀한다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흉 본다 겨울 바람이 봄 바람 보고 춥다 한다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나고 말은 해야 시원…(2009-03-25 14:26:54)
조선족 구역자치지역은 어떤 곳? 인기글 조선족 구역자치지역은 어떤 곳? 민족구역자치는 중국공산당이 맑스-레닌주의원리를 우리 나라의 민족실제에 결합하여 민족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기본정책으로서 우리 나라의 중요한 정치제도의 하나이다.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로부터 이주하여 온 민족으로서 장시기동안의 어려운 력사과정에서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조국의 변강을 개발하고 건설하고 보위하였으며 점차 중국의 한 개 소수민족으로 형성되였다. 일찍 자산계급민주혁명시기에 조선족들은 민족의 《자치》를 주장하고 《자치》를 위해 거대한 대가를 …(2009-03-25 14:25:52)
[열람중]한민족의 기층문화 인기글 한민족의 기층문화 한민족의 기층사상은 다음의 세 가지 즉 산신사상, 수목사상, 천상사상의 세 분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그전에 먼저 기층사상과 기층문화에 대한 이해를 좀 다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통 우리의 기층문화는 무속신앙이나 점복신앙, 기복신앙 조금 더 나아가면 미륵신앙, 신선사상 정도로 알고 있다. 여기에 불교나, 유교를 꼽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방면의 전공자들은 우리의 마을신앙과 벅수와 장승, 솟대, 서낭당, 돌신앙, 성…(2009-03-25 14:25:05)
지금도 흐르는 한(恨)의 가락 아리랑 *이규태 인기글 아리랑은 지방에 따라 스물다섯 가지가 채집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특정 지방에서만 특정 아리랑이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불려지지 않는 곳이 없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노래가 아리랑이다.그것은 한국적 정서의 원형질(原形質)이요, 공통 분모(共同分母)다. 각기 다른 많은 아리랑은 선율과 가사도 조금씩 다르지만, 실은 하나의 공통된 기본형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 기본형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2009-03-25 14:23:47)
우리 민족은 왜 흰옷을 입었을까-주강현 인기글 평양감사 환영도(부분도), 흰옷 일색의 평양 모습이다 우리 민족은 왜 흰옷을 입었을까 비숍 여사가 목격한 흰옷 빨래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었고,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네 차례나 우리나라를 다녀간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1898년에 <…(2009-03-25 14:22:42)
중국조선어 한국어 문화어 인기글 중국조선어 한국어 문화어 전 병 선 중국조선어, 한국어, 문화어는 모두 한 민족의 한 종류의 언어이다. 이런 언어가 광복후 조선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부동한 사회제도를 실행하고 래왕이 단절된데서 언어에는 점차적으로 차이가 생겼다. 한국은 서울의 말을 기초로 하여 언어생활을 진행하였으며 조선은 평양말을 기초로 한 문화어로 언어생활을 진행하였다. 한국은 1936년의 “조선어표준말모음집”을 표준으로 하여 한국어를 사용하였다. 1988년 한국에서는 “한글맞춤법통일안…(2009-03-25 14:18:27)
우리말 번역에서 떠오른 단상 인기글 우리말 번역에서 떠오른 단상 주 봉 중국경제의 비약적인 발전과 그 호황,그리고 종합적 국력이 세계적인 우선 순위는 줄곧 많은 외국의 선진기술,기업과 자금이 진입한 것과 큰 관계를 갖는다.예서 언어란 이 매개의 융통은 어디까지나 생소한 두 나라사이에서 그 교류과정을 다 잘 밟도록 함에 결정적 역할을 놀았다.다시 말해서 각 분야에서 사업하는 통、번역인들의 노력에 타국의 통하지 않던 말과 글을 중국말과 글로 전환한 그 성공에서 일 것이다.이 통、번역인 대오엔 우리 조선족들도 많이 있는…(2009-03-25 14: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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