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의 역사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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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12-03 22:39본문
산삼 역사을 찾아서
과거 산삼의 주산지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 지역, 연해주 일부였다.
특히 고구려의 영토는 앞의 지역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인삼은 고구려 판도 안에서만 서식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이 세워지면서 중국 본토와 만주 일대 동북부의 교류는 끊겼고 이 상황은 한 무제 때까지 이어진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을 설치하면서 한반도 북부 및 만주 남부와 중국 본토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 지방의 특산물이었던 산삼도 중국에 알려지게 된다.
이후 산삼은 중국과의 대표적인 거래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은 한반도를 대표적인 산삼의 주산지로 보았으며 각종 공물 목록에 산삼을 포함시키는 일이 많았다.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 예물로 산삼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중국은 朝鮮에 요구하는 산삼의 양은 점차 많아졌고, 수량을 맞추기 위해 조선의 백성들은 백두산에서 고되게 산삼을 찾아나서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백성들은 공납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사태까지 생겼으며, 이런 와중에 산삼 채집의 수고를 덜고자 일부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산삼 씨앗을 파종, 인삼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는 14세기 말부터 개성에서 인삼을 재배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 시기를 기준으로 산삼이라는 개념이 인위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삼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기른 인삼과 산삼은 뚜렷한 구별 없이 조선시대에도 공납물품으로 취급되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조선이 백두산지역에서 자연삼을 연간 수만 근 채취하여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개무역 물품으로 사용,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쌓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