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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유대인을 알아야 하나?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06-22 11:38     조회 : 7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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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대인을 알아야 하나?

  오늘날 전 세계 인구 69억명 중 유대인은 크게 잡아도 1700만명 정도이다. 이 얼마 되지 않은 숫자의 유대인이 미국과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고 말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엄청난 과장이라는 반론(反論)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유대인을 음해(陰害)하려는 불순한 의도 또는 반(反)유대주의로 몰아붙인다. 그렇지만 유대인의 국제적 영향력은 경이적이다. 특히 불과 650만명의 미국 유대사회가 미국, 나아가서는 세계무대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공동체(共同體)로 성장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키 어려운 사실이다. 


유대인 파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이들은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과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터득한 지혜이다. 그래서 이들은 권력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권력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보완적으로 도와주면서 이를 그들의 권력기반으로 삼고 장기적인 관리를 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수적으로 열세(劣勢)라는 약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만이 특화(特化)할 수 있는 권력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즉, 경성(硬性)권력 중에는 경제력과 금융, 연성(軟性)권력 중에는 문화예술, 그리고 20세기 이후부터 특수권력으로 성장한 언론 등을 3개 축(軸)으로 하여 그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했다.
 
 유대인은 기원 후 70년 제2차 예루살렘 성전(聖殿) 파괴 후 약 2000년간 전(全)세계를 유랑하면서도 인류사 전반에 걸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지리상 발견, 공산주의 창안, 시장경제와 세계화, 그리고 인류의 운명을 바꾼 수많은 발명과 발견 뒤에는 유대인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 대외(對外)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세계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실상 한국인은 세계화에 필요한 의지와 훈련이 부족하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중국, 그리고 오늘날에는 미국과의 특수관계에 자족하면서 내부지향성만 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화의 논리를 만들어 내고 또한 국제사회에서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유대인의 경험과 지혜는 우리의 세계화 노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요 사건들의 이면(裏面)에는 유대인이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유가(油價)폭등, 곡물파동, 외환(外換)시세의 변동, 국제신용평가, 중동(中東)의 전쟁위험, 이란 핵(核)문제 등 작금(昨今)의 국제적 관심사의 배경을 잘 살펴보면 유대인의 존재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직간접으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유대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최근 들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유대인의 경계대상으로 떠오른 중국이 유대인 연구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마르크스부터 스필버그까지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쳤거나, 떨치고 있는 유대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들 가운데 우선 생각나는 이들만 꼽아 보아도 다음 같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istopher Columbus),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예언가 미셀 드 노스트라다무스(Michel de Nostradamus),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루흐 데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국제금융의 시조(始祖)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공산주의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정신분석학의 태두(泰斗)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작곡가 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상대성원리를 내놓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매독의 특효약인 살바르산을 추출한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요나스 살크(Jonas Salk), <심판>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화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Amadeo Modigliani),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와 오이겐 비그너(Eugen Wigner), <닥터 지바고>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오늘날 세계금융을 지배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체제를 만든 파울 바르부르크(Paul Warburg),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미(美)국무장관, 언어학자이자 대표적 반(反)세계화 지식인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자선가’와 ‘악덕투기꾼’이라는 상반된 평판을 갖고 있는 금융투자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인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Dominique Strauss-Kahn) 등.

오바마 백악관의 유대인들
  국제 유대권력의 핵심은 역시 미국 유대인들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건너온 30여만명의 독일계 유대인과 19세기말~20세기 초 미국에 정착한 250만명의 동(東)유럽계 유대인이 미국 유대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미국 유대인 인구는 약 650만명으로 유대인들이 건국한 이스라엘보다 100만명 정도 더 많다.

미국 유대인 사회는 총인구 30만명 선일 때부터 이미 연방정부 각료연방대법관을 배출하면서 미국 주류(主流)사회에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역대 민주당 정부하에서 유대 인사들의 국정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케네디를 승계한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이나 빌 클린턴(William Clinton) 정부하에서 유대인이 각료 또는 각료급 공직에 대거 포진했다.
모계(母系) 쪽으로 유대인의 피를 받았다는 설(說)이 있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정부 내에서도 적지 않은 유대인이 국정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시카고 시장 출마를 위해 백악관 비서실장직에서 사임한 람 이매뉴얼(Rahm Israel Emanuel)은 미국 유대 정치인 중 핵심적 인물이다. 그의 부친은 이스라엘 건국 전 대영(對英)항쟁을 벌였던 무장단체 이르군(Irgun)에 참여했던 정통파 유대인이다. 이매뉴얼은 1991년 걸프전 때 이스라엘군에 자원입대하기도 했다.
 
이매뉴얼과 가장 가까운 친구인 데이비드 액설로드(David Axelrod)도 유대인이다. 시카고트리뷴지(紙) 기자 출신의 정치공학 전문가인 그는 지난 2008년 대통령 선거 시 오바마의 선거전략을 맡았다. 오바마 정부 출범 후에는 백악관 특임(特任)보좌관으로 국내정치와 관련한 내밀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모나 서트펜(Mona Sutphen) 백악관 비서실 차장은, 아버지는 흑인이지만 어머니가 유대인이다. 서트펜은 미국 내 강력한 권력체 중 하나인 외교평의회(CFR·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회원이기도 하다. 샐리 카첸(Sally Katzen)은 법률학자 겸 교수로 한때 오바마의 법률고문을 지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James Steinberg) 국무부 차관은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인물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전략 전문가이다. 스타인버그도 CFR 회원이다. 국무부 기획운영담당 차관으로 있다가 각료급 요직인 연방예산실장을 맡은 제이컵 루(Jacob Lew)는 클린턴 정부 시절에도 예산실장을 지낸 바 있는 인물이다.. 루의 전임자로 2009년부터 1년간 연방예산실장을 맡았던 피터 오르스작(Peter Orszack)도 오바마 정부 초기에 활동한 유대인 중 한 명이다.
 
오바마의 경제팀에도 쟁쟁한 유대인 실력자들이 많다. 오바마 경제팀의 수장(首長) 격인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은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외교평의회의 부의장이다.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Lawrence Summers)는 루빈의 직계 인맥으로 국가경제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뉴욕 FRB의장 출신의 티머시 가이트너(Timothy Geitner)도 유대인이라는 설이 있다.
 
MIT 생물학교수인 에릭 랜더스(Eric Landers)와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바머스(Harold Varmus)는 대통령직속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의장이다. 벤 버냉키(Ben Shalom Burnanke)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은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이다.
 
종신직인 9명의 미 연방대법관 가운데는 3명이 유대인이다. 클린턴 정권 시절 임명된 스티븐 브레이어(Stephen Breyer)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지난 7월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이 그들이다. 케이건은 윌슨 대통령 시절인 1916년 유대인으로는 최초로 임명된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 이후 여덟 번째 유대인 연방대법관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인을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자가 넘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유대인이다. 세계 초(超)강대국인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결국 국제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누릴 수밖에 없다.
 
이 많은 유대인사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헨리 키신저이다. 닉슨-포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등을 지낸 그는 정부를 떠난 후에도 강연, 집필, 로비활동 등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견지하고 있다.

키신저와 리처드 펄  
특히 키신저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결사체로 불리는 미국의 외교평의회(CFR), 유럽과 북미(北美)지역의 유력인사 모임인 빌더버그그룹(Bilderberg Group), 북미·유럽·아시아의 엘리트로 구성된 삼변회(TC·Trilateral Commission) 등 3개 기구 모두 참여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국제판도의 큰 흐름을 주도적으로 기획·설계하는 국제엘리트의 수장 격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은 물론 세계경제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 FRB는 초대(初代) 의장인 찰스 해믈린(Charles Hamlin)을 비롯해 역대 의장의 절반 가량이 유대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의장인 벤 버냉키, 그의 전임자로 18년간 FRB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도 유대인이다.
 
네오콘의 대표적 이론가인 리처드 펄(Richard Perle)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방차관을, 1987~2004년 국방정책자문위원단장을 지냈다. 
그는 대(對)중동 강경정책을 주도하면서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의 분위기를 띄운 인물이다. 정부기구뿐 아니라 각종 민간연구소 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네오콘의 저변을 확대시키고 있는 그는 외교평의회, 빌더버그그룹, 삼변회 등 3개 기구 모두에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역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유대인 중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헨리 크라비스(Henry Kravis)이다. 
그는 컬럼비아대 MBA과정을 마치고 지난 2007년 미국 금융위기 때 도산한 투자회사 베어스턴스(Bear Stearns)에 입사(入社)해 투자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1970년대 중반 크라비스는 사촌인 조지 로버츠(George Roberts), 베어스턴스 시절 동료인 유대인 제롬 콜버그(Jerome Kohlberg) 등 3인 동업(同業)으로 자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딴 KKR이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KKR은 경영상태가 어려운 기업을 헐값에 매입하여 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후 높은 가격으로 다시 매각하는 M&A(인수합병)전문의 ‘기업사냥꾼’이다. 이들이 인수한 기업 중에는 미국의 유명한 과자업체 나비스코, 완구체인점 토이스러스, 건전지 제조사 듀라셸 등이 포함되어 있다. 크라비스는 록펠러 가문과도 절친한 사이다. 그는 외교평의회, 빌더버그, 삼변회 그리고 다보스포럼 등에 참여하면서 국제적인 지위를 높이고 있다.
 
구글·페이스북 설립자도 유대인

전 세계 검색 사이트 중 랭킹 1위인 구글(Google)의 창업자는 유대인 청년 두 명이다. 구(舊)소련 태생인 세르게이 브린(Sergei Brin)과 전자학도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25세이던 1998년 구글을 설립,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제1의 인터넷 기업으로 키웠다.
 
마크 주커버그(Mark Zukerberg)는 2004년 2월, 만 20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기숙사 룸메이트인 유대인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와 함께 페이스북(Facebook)을 만들었다. 그는 앞으로 미국 각계에서 지도층으로 성장할 미국 명문사학(Ivy League) 학생들 간의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 장기적인 인맥관리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페이스북을 만들었는데,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노엄 촘스키도 세계여론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50년간 MIT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국제주의와 신자유주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는 다른 유대 지식인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측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계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의 독무대지만, 그들 중에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는 단연 돋보인다. 독일계 유대인인 그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와 TV 수사극 시리즈 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 꼽히는 그는 <포브스>지(誌)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의 100대 부호 명단에도 자주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영향력 있는 많은 미국 유대 언론인 중 단 한 명을 꼽으라면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을 들 수 있다. ‘세계화의 전도서’로 알려져 있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지은 그는 한 번도 타기 어렵다는 퓰리처상을 세 번(1983, 1988, 2002년)이나 수상했다.
 
한국과 유대인
  1950~70년대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던 유대인 거상 사울 아이젠버그. 

바깥세상과는 오랫동안 담을 쌓고 지냈던 한국인은 유대인과 접촉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마 근세 이후 한국과 최초로 인연을 맺은 유대인은 1950년대 자유당 시절부터 제3공화국 말기까지 약 25년간 한국의 외국차관(借款) 도입 중개에 깊이 간여했다고 알려진 독일·스위스계 유대인 거상(巨商) 사울 아이젠버그(Saul Eisenberg·1921~1997년)일 것이다. 독일 뮌헨 태생인 그는 타고난 상재(商才)로 유럽과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대형 사업을 벌여 거부가 됐다. 그는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와도 협조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월남패망 후 공산베트남에 억류됐던 이대용(李大鎔) 공사 석방을 위해 막후에서 활동했으며, 중국-이스라엘 간 관계개선 교섭에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이스라엘은 약 17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우리에게 원조했다. 약 200여명의 미국 유대인 장병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는데, 이들의 랍비였던 차임 포톡(Chaim Potok)은 귀국 후 철학자이자 문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1962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64년에는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이 개설되었다. 
이스라엘공관은 제1차 석유파동 이후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면서 1978년 2월 ‘기술적인 이유’로 잠정 철수했다가 1992년 다시 복귀했다. 이스라엘의 집단농장 키부츠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모델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후 활발한 기고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좌파성향 역사학자 박노자(朴露子·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부계(父系)가 유대인이다.
 
IMF사태와 유대자본

1997년 12월 한국은 혹독한 IMF 사태를 겪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아시아 외환(外換)위기 당시 “외환위기는 동남아를 위시한 신흥공업국의 경제를 국제 유대자본에 예속시키려는 국제 유대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유대계 금융투자가인 소로스를 이 음모수행의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때문에 그는 반유대주의자 또는 인종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IMF가 내놓은 처방과는 정반대로 변동환율제를 고정환율제로 바꾸고 이를 밀고나가 성공을 거둠으로써IMF 방식만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님을 입증했다. 반대로 한국과 태국은 모두 IMF가 제시한 강압적이고 불평등한 처방을 전면수락하고 말았다.
 
IMF사태 이후 한국의 시중은행 거의 모두가 평균 50%가 넘는 외국자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IMF 사태 당시 국제 금융자본의 한국 금융시장 개방압력을 전폭 수용한 결과이다.
 
현재 한국 금융기관에 투자한 국제자본의 주류는 전통적으로 건실한 대형 국제 금융기관이 아닌 게릴라성 사모(私募)펀드나 단기 투기자금이다. 여기에는 골드만삭스 등 유대계 자본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외국인이 우리 주식을 소유하는 비중도 거의 50%선에 육박한다. 이들 자금 모두는 설비투자가 아닌 은행, 보험, 증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기업활동의 목표가 생산증대나 고용확대라는 사회적 책무에서 오직 단기 고수익으로 전환되는 반사회적 현상을 야기하게 된다. 
만약 한국이 이들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펴서 국제자본의 불만을 사게 되면 이들은 일시에 투자자금을 모두 회수해서 다른 국제 투기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과거 1997년 IMF사태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에 투자한 외국자본이 모두 유대자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형 투자컨소시엄의 경우 투자주체의 세부적인 분류도 쉽지 않다. 유대자본이 국제 자본시장에서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미리 개발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과 유대인의 공통점  

유대계 연방대법관들. 왼쪽부터 긴스버그, 브레이어, 케이건. 

지난날 필자가 미국서 근무할 때 우리 동포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다. “한국인과 유대인 사이에는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은 것 같은데, 어째서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미국에서 빨리 성공하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들의 말처럼 한국인과 유대인은 신기할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한국인과 유대인은 모두 평균적으로 머리가 좋고 영리하며 부지런하다.
둘째, 머리와 직결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우리나 유대인 모두 광적인 교육열을 보인다. 20세기 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가난한 유대인이나, 우리나 모두 교육이라면 만사를 제쳐 놓고 최우선순위를 부여했다.

셋째, 한국이나 유대인 모두 여성의 주도적인 역할이 매우 크다. 결혼 후에도 여자가 배우자의 성(姓)으로 바꾸지 않고 처녀 때의 성을 그대로 쓰는 민족은 한국인과 유대인밖에 없다. 또한 교육과 가정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여성인 점도 한국과 유대인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유대인의 경우, 유대인의 정체성을 말할 때 유대인 어머니나 할머니가 기준이지, 부계(父系)는 비중이 작다. 가령 유대인 어머니와 비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되는 반면, 아버지만 유대인인 경우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건부로 인정받는다.
반면에 한국인과 유대인 간에는 차이점도 적지 않다.
 
우선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시공(時空)개념의 차이이다. 아마도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은 유독 공간에 집착한다. 우리는 토지와 집에 유난히 애착을 느낀다. 이는 민족주의적 배타성만 키우게 된다. 이런 정서는 국제무대로 뻗어 나가는 데 분명 장애가 된다.
 
반면, 유대인은 나라 없이 2000여년 간 세계를 떠돌다 보니 공간보다는 ‘시간’과 ‘기회’에 더욱 커다란 비중을 둔다. 
유대인들에게는 국적(國籍)이 큰 의미가 없다. 유대인 중 이중 삼중 국적자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대신 시간과 기회를 활용하는 데는 유대인을 따라갈 수 없다. 유대인이 개발한 시간차를 이용한 금융소득이나 재(財)테크, 그리고 미국정착을 그들의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분투하여 오늘날 커다란 성취를 이룬 것 모두 유대인들의 시간과 기회를 극대화한 좋은 예이다.
 
둘째, 교육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점이 있을 뿐 교육의 진정한 목표와 교육의 질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우리의 교육은 한마디로 경쟁, 전투형이다. 많은 인구 중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에도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보다는 각종 시험을 통과해서 승리하기 위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로 변질되고 있다. 우리의 유교식 교육전통은 일방적인 지식의 주입에만 치우치고 지적호기심과 상상력을 허황한 것으로 규정해 왔다. 그렇다고 실용성을 중시한 것도 아니다. 이래서는 지식을 응용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지혜를 만들기 어렵다.
 
유대인은 다르다. 유대인들은 우리와 같이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을 교육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이해시킨다. 

이 개념이 구체화되어야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배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만나 무엇을 물어보면 이들 대부분은 즉답을 피하고 질문자에게 다른 각도에서 반문한다. 즉, 일문일답식이 아닌 토론이 양자 간 대화에도 적용된다. 이 토론은 교육방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즉, 교수의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를 지양(止揚)하고 학생 간 토론, 학생과 교수 간 토론 등으로 다양한 사고와 접근방법을 유도하여 각자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한다.
바로 이 유대인의 창의력 교육이 인구에 비해 많은 노벨상 수상자와 국제적인 석학을 배출케 만든 원동력이다.
 
유대인, 기부문화 중시

셋째, 세계화의 경험이다. 한국인이 집단으로 해외에 나간 것은 1960년대 브라질 등 남미 농업이민과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대규모 이민이 전부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적으로 외국을 침략하거나 지배해 본 경험이 없어서 외국서 정착하여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선의의 모험정신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세계화의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세계화가 체질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많은 나라를 전전하면서 국제화를 체험적으로 익혔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화의 제반 조류를 그들의 페이스로 끌고갈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했다.
 
넷째, 유대인은 논리적이고 이지적(理智的)인 데 반해 우리는 감성이 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유럽으로 말하면 라틴계 민족이나 아일랜드인의 기질과 비슷하다. 한국인은 인정이 많은 반면 때로는 격정적이기도 하다. 즉, 우리에게는 ‘기분’이라는 것이 있다. 바로 이 기분과 신바람이 과거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형 역동성(力動性)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우리는 논리적인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이론을 들먹이며 따지고 들면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유대인은 사려 깊고 논리적이다. 논리적인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논리적인 사람일수록 정확한 판단을 하며, 따라서 ‘기분’에 근거한 오판,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자선이나 기부의 전통이 부족하다. 아마도 오랜 기간 어렵게 살다 보니 남에게 베푸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유대인들도 미국 정착 초기에는 모진 고생을 한 뒤 안정된 기반과 재력을 쌓았다. 이렇듯 어렵게 이룬 부(富)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은 자선과 기부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들은 자선을 장기적 관점의 투자로 여긴다.
 
현대사회는 기부를 부의 사회환원과 분배라는 차원에서 선행(善行)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은 존경도 받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커진다. 
특히 미국의 경우 유대인의 적극적인 자선활동은 이들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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