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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이 엿본 이탈리아 상류층은 어떤 모습일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7-03-25 00:02     조회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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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엿본 이탈리아 상류층은 어떤 모습일까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이탈리아 문학계의 가교 역할을 했던 스가 아쓰코(Suga Atsuko)가 생을 마감하기 6년 전인 1992년에 남긴 수필이다. 

저자는 1929년생으로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에서 유학하며 근대 일본문학 작품을 이탈리아로 옮기는 일에 주력했던 번역 문학가다.

책을 읽기 전, 비록 종전 후라 해도, 저자가 일본과 같은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저의가 궁금했다. 


혹시 저자가 군국주의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며 책을 읽었다. 

스가 아쓰코는 1960년 밀라노에서 동료들과 함께 '코르시아 서점'을 운영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 

코르시아 서점은 새로운 사회와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던 반체제 활동가들의 아지트였다. 
기성 종교와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모였으니 군국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성권력에 저항하는 아나키스트 혹은 세계 시민에 가깝다.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살 것 같았던 저자는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 이후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1971년 일본으로 돌아간다. 

게이오, 교토, 도쿄 대학 등에서 강의 활동을 이어나가며 이탈리아 문학 작품을 일본어로, 일본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며 내공을 쌓았다.
 훗날 조치 대학 비교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은 그런 내공의 결과다. 
저자는 이방인의 감각으로 서점에 모인 젊은이들과 후원자들을 부드러운 파스텔로 풍경을 그리듯이 1960년대 밀라노 거리를 불러냈다. 

그 속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자유를 갈망하고 방황하는 모습, 동시대를 살지만 다른 세상을 사는 이탈리아 귀족사회의 모습 등이 담겼다. 

투명인간처럼 '그 자리에 없는 양' 구는 것을 좋아했던 저자는 관찰자로서 밀라노를 우리에게 끌어 왔다.

"십일 년 남짓 밀라노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나는 그 자리에 없는 양' 굴 수 있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학생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무시당했다거나 무례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거참 재미있네, 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늘 말없이 귀 기울이는 쪽이었다." -p.14.

이탈리아 상류사회를 관찰하는 저자의 자세가 상당히 독특했다. 
누군가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시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격식이 필요한 손님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가깝다는 말일 수도 있다. 튀지 않는 것, '화'(和)를 몸에 익히며 살았던 일본인이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나지 않은 성격이 한몫 한 셈이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은 다락 깊숙한 곳 어딘가에 먼지 가득 쌓여 있던 오래된 일기장이나 편지를 읽는 기분을 안겨준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 읽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이름도 생소한 일본 작가가 30년도 더 된 일을 회상하는 일이다.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서 그리 유익할 것도 없고, 딱히 궁금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끝까지 읽었다. 

스사 아쓰코의 문투는 낯설었고 친절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인생 황혼기에 이르러 어떤 이는 죽고, 또 어떤 이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 이야기를 전하는 <코르시아 서점>은 슬픈 음계를 가졌다. 
흑백 톤의 다단조가 수필을 지배한다. 그리움이 묻어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회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다. '사는 게 그런 거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절제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이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 자체인 양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상향을 그려갔다. 

서점을 처음 시작한 다비드도, 그의 주위를 지키던 친구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젊은 우리는 각자 마음속 서점의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외곬으로 나아가려고만 했다.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상향을 꿈꾸던 외골수 젊은이에서 고독과 이웃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이 되기까지 세월이 필요했다는 저자의 독백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가 떠올랐다.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했던 시인은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본다"고 했다. 

시인은 마음속에 고래를 품고 살고, 인생은 고독한 가운데 살아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고가 날아오는 나이가 돼 보니, 순수했던 시인의 감성은 털끝만큼도 남아 있지 않고, 고독과 이웃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알았던 것들을 서서히 잃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깨달을까? 

움베르토 사바가 말했듯이 "인생만큼 살아가는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목이 빠져라 그리워하던 황야로 달려갈 기력마저 다하고, 센 머리를 바람에 날리는 날에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책 많이 읽는다고 그게 다 머리에 남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시간은 망각이라는 선물로 그 많은 독서를 비웃는다. 

하지만 굳은 땅 속에 지렁이 몇 마리가 흙을 갈아 거름지게 하듯이 독서는 굳은 머리를 부드럽게 한다. 남을 게 없는 것 같은데 남는 것, 독서라는 게 그렇다. 

인생 황혼기에 다다른 작가의 수필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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