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만에 찾아낸 ‘날개’…‘버뮤다 삼각지대’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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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8-17 08:37|본문
1년 반 만에 찾아낸 ‘날개’…‘버뮤다 삼각지대’ 따위는 없다
지난달 29일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의 동부 해안가에서 지난해 3월 실종된 말레이시아항공370의 날개의 일부로 추정되는 ‘플래퍼론’을 경찰이 수거하고 있다. 이 부품은 거의 손상되지 않아, 비행기가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 상태로 미끄러지듯 수면 위로 착륙해 서서히 가라앉은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 보통 항공기는 바다에 추락하더라도 며칠 뒤면 잔해나 주검이 발견된다. 지난해 3월 인도양에서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MH)370은 달랐다. 항공기가 ‘통째로’ 실종됐다. 추락 지점을 추정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기껏 예측한 추락 해역에서는 1년 반째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가 되어가던 중 지난달 29일 인도양의 정반대편에서 MH370 날개의 일부가 발견됐다.
공항에 들어선 우리는 벨트를 풀고 양팔을 올리고 전신 검사를 받는다. 가방에 폭발물을 숨기지 않았는데도 보안요원의 질문에 오금이 저린다. 무장 해제에 응해야 탑승 게이트로 이어지는 컨베이어벨트에 오를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는 인위적으로 공급되는 산소로 호흡할 수밖에 없고 밖으로 나가면 죽음이다. 지구에서 가장 열려 있는 하늘을,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주행한다.
잘 알다시피 항공기 사망률은 자동차 사망률보다 낮다. 우리 몸이 무장해제되고 우리 운명이 조종사의 손에 맡겨지기 때문에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우리는 추락하거나 납치되거나 격추되는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MH)370 사고는 추락 사건도 납치 사건도 아니었다. MH370은 ‘사라졌다’. 239명의 사람을 데리고 실종됐다. 역사상 최대의 ‘항공기 실종 사건’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해역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1년 반이 흘렀다. 지난달 29일 아프리카에 접한 인도양의 외딴섬 레위니옹(프랑스령)의 해안가에서 한 주민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눈에 길이 2m, 폭 1m 됨직한 문짝 같은 게 발견됐다. 이날 오후 이 물체는 전세계 미디어에 타전되면서 세계를 뒤흔들었다. 1년 반 전에 사라진 MH370의 날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8일 0시41분, MH370은 조종사 2명, 승무원 10명, 승객 227명을 싣고 잠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이륙했다. 대형 기종인 보잉777-200이었고, 아침 6시30분에 중국 베이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상할 것 없는 야간비행이었다. 새벽 1시19분 자하리 아맛 샤(53) 기장 혹은 파릭 압둘 하밋(27) 부기장이 말레이시아 관제당국에 작별인사를 건넬 때까지는. 국가간 비행을 하는 비행기는 각국 영공을 드나들 때 해당 관제당국에 출입신고를 해야 한다. 말레이시아를 떠난 MH370은 베트남 영공을 통과해 중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관제당국은 신고를 받지 못했고 비행기는 사라졌다. “굿나잇, 말레이시안 370!” 이것이 MH370에서 마지막으로 전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나중에 레이더 기록을 통해 드러난 이 비행기의 항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말레이시아 관제당국과 작별인사를 마친 직후인 새벽 1시22분, MH370에서는 ‘트랜스폰더’(transponder)라고 불리는 항공교통 관제용 자동응답장치가 꺼졌다. 트랜스폰더는 지상의 관제당국에서 보낸 ‘질문 전파’에 반응해 고도, 속도, 방향 등이 담긴 ‘응답 전파’를 보내는 자동응답장치다. 지상의 관제당국은 이를 보고 항공기 위치를 추적한다.
트랜스폰더가 꺼진 MH370은 타이 만 바다에서 서남쪽으로 급선회한다. 민간 항공 관제당국의 시야에선 벗어났지만, 말레이시아 군용 레이더에는 잡힌다. 나중에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비행기는 페낭 섬을 빙 돌아 믈라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에 진입했다. 기수가 가리키는 방향은 서남쪽이었다. 곧이어 군용 레이더 권역 밖으로 비행기는 완전히 사라진다. 이때가 새벽 2시22분이었다.지상에서는 MH370을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관제 당국은 항공기가 실종됐다고 판단하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아침 6시30분이 넘어서도 MH370은 베이징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뒤 진행된 역사상 최대의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난무한 건 음모론이었다. 미국과 타이의 합동군사훈련 중 발사된 미사일에 추락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책이 출판됐고, 미군 기지가 있는 디에고가르시아 섬에 접근하자 테러로 판단한 미군이 격추했다는 전직 항공사 사장의 주장, 테러집단이 납치해 항공기를 핵무기로 개조했을 거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떠돌았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인도양 건너편 레위니옹 섬에서 날개 조각이 나타난 것이다.
날개 조각은 검사를 위해 프랑스로 이송됐다. 보잉777 날개에 부착돼 위아래로 움직여 고도를 조절하는 ‘플래퍼론’이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레위니옹에서 발견된 물체는 MH370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1년 반 전 쿠알라룸푸르 이륙해
40분도 안돼 인도양으로 사라진
사상 최대의 항공기 실종사건
8개국 참여한 수색작전 전개됐지만
인도양 정반대편에서 떠오른 잔해
교신·추적 시스템 꺼진 비행기
일부러 숨으려 하는 것 같았다
훼손 안 된 날개의 잔해
바다 위 착륙하려 했단 말인가
블랙박스를 꼭 찾아야 한다
악수의 흔적이 준 궤적
민간 항공기가 사라지기란 쉽지 않다. 민간·군용 레이더와 위성통신망이 항공기를 거미줄처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조종사는 ‘에이카스’(ACARS)라고 불리는 운항정보 교신시스템으로 지상의 관제당국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브이에이치에프(VHF·초단파) 채널을 통해 짧은 텍스트 메시지 형식으로 운항정보를 송수신한다. 항공기에 이상이 생겼을 때 관련 정보가 자동 발송된다. 주파수가 잡히지 않을 때는 위성신호로 자동 연결된다. 조종사가 위성 모드로 바꿀 수는 있지만, 에이카스 자체를 끌 수는 없다.
반면 고도, 속도, 방향 등을 자동전송하는 트랜스폰더는 조종사가 직접 끌 수 있다. 하지만 숨어 다녀야 하는 군용기가 아니라면야 안전을 중시하는 민항기가 굳이 트랜스폰더를 끌 이유는 없다. 트랜스폰더를 끈다 해도 군 레이더 기지가 민항기를 감시한다. 민항기가 신호를 보내지 않더라도 군은 반송파를 보내 미확인 물체를 식별한다.
MH370은 이런 레이더 그물망에서 빠져나와 인도양에서 잠적했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첫째는 MH370이 인도양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했다는 설이다. 실종 당일 아침 몰디브의 섬 주민들이 하얀 바탕에 빨간색 도색을 한 여객기가 낮게 날아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현지 신문에 실렸다. 둘째는 MH370이 카자흐스탄 방향으로 북행했다는 설이다. 안다만 해 북쪽에서 타이 군용 레이더에 포착된 ‘미확인 물체’가 이 비행기라는 가정에서다.
세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MH370이 남쪽으로 진로를 틀어 몇 시간을 더 비행하다가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인도양에서 추락했다는 주장이다. 이 가정은 영국 인공위성업체 ‘인마르샛’의 전문가들이 이른바 ‘위성과의 악수’(satellite shakes) 신호를 분석해 내놓음으로써 수색 작전의 토대가 되었다. 일반 가정의 컴퓨터가 인터넷 서버에 연결될 때 ‘핑’이 오가는 것처럼, 보잉777의 에이카스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인마르샛에 악수를 하듯 짧게 접속을 시도한다.(VHF 모드에서 위성 모드로 자동 혹은 인위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MH370은 새벽 2시25분부터 오전 8시19분까지 인마르샛에 7번 신호를 보냈다. 이날 아침 베이징에 오지 않는 비행기에 탑승자 가족들이 허둥댈 때, MH370은 인도양에서 남극으로 태연히 남하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국내 항공사의 한 기장도 13일 이러한 분석에 동의했다.
“위성 신호가 전송되려면 기본적으로 항공기가 전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MH370이 하늘에 떠 있었겠지요.”
인마르샛 전문가들은 ‘위성과의 악수’가 단순한 접속 정보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위성의 위치와 신호의 세기를 분석해 대강의 비행권역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 분석을 토대로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인도양 해상에 MH370이 추락했다고 발표했고,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미국 등 8개국 선박과 항공기가 투입된 항공 역사 사상 최대의 수색 작전이 개시됐다.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엿새를 항해해야 다다르는 고립무원의 공해에서 이뤄진 초기 수색에서 기체 잔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선박과 로봇의 소나를 이용해 우선 수색구역 6만㎢에 이르는 바다의 해저 지형도를 그렸다. 항공기 비슷한 물체가 나타나면 건져내기 위해서다.
MH370 날개의 일부인 플래퍼론이 발견됨으로써, 음모론의 일부는 설득력을 잃었다. MH370이 인도양에 추락한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버뮤다 삼각지대’ 따위란 없고 과학과 문명이 우리 삶의 기반이라는 근대적 믿음도 재확인됐다. 레위니옹 섬에 당도한 파편이 ‘위성과 악수한’ 해역에서 해류를 타고 흘러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도 나왔다. 기체 파편은 반원을 그리며 인도양 북쪽을 돌아 아프리카 해안가에 도착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MH370은 왜 남극으로 진로를 튼 걸까. 그날 새벽 조종실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초기 기내 감압장치가 고장 나면서 모든 사람이 서서히 숨져갔다거나, 화물칸에서 불이 나 기체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시나리오가 대두됐지만, 트랜스폰더 등 외부 통신장치를 모두 끈 채 7시간을 비행한 행위가 설명되지 않았다. 대다수 언론은 트랜스폰더가 누군가에 의해 꺼진 점을 들어 조종사의 ‘자살비행설’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의 한 기장은 13일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동남아시아에서 인천으로 넘어오는데, 저희한테 트랜스폰더가 안 잡힌다고 연락이 왔어요. 재설정해서 눌러봤는데도 관제탑에서는 안 나타난다고 하고…. 다행히 트랜스폰더가 백업용으로 하나 더 있거든요. 그걸로 다시 했더니 그때야 작동되더라고요.”
민간 항공사 조종사들은 보통 이륙할 때가 되어서야 트랜스폰더를 켠다. 미리 켜두고 있으면 공항에 있는 다수 항공기가 전송하는 정보로 관제당국은 쩔쩔맬 것이다. 깜박 잊고 안 켠 채 이륙하는 경우도 있다. 큰 문제는 아니다. 조종사와 관제당국이 수시로 통신하기 때문이다.
“트랜스폰더가 고장 났을 수도 있고, 실수로 껐을 수도 있고, 일부러 껐을 수도 있어요. MH370의 트랜스폰더의 미작동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나올 수 있어요.”
그간의 항공 사고를 살펴보면, 신중했지만 착오로 귀착된 조종사의 판단, 과거 밝혀지지 않았던 부품 결함 등 복잡한 요소가 우연하게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은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믿는 경향이 있다. 자살비행 같은 선명한 내러티브가 귀에 쏙 들어오지만,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확대할 수는 없다.
이번에 발견된 플래퍼론은 무얼 말해줄까. 13일 뉴질랜드 일간지 <뉴질랜드 헤럴드>는 플래퍼론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점을 들어 MH370이 소프트랜딩(마찰력을 줄인 부드러운 착륙)으로 수면에 착륙해 한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을 것이라는 말레이시아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전문가 닐 핸즈퍼드도 “추락할 때까지 항공기가 통제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날개 밑에 달린) 엔진이 수면에 부딪히면서 플래퍼론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랙박스가 발견될 때까지 예단할 수는 없다. 미국 주간지 <포브스>의 항공칼럼니스트 존 골리아는 지난달 31일 “MH370 잔해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블랙박스의 위치”라며 “해류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항공기 추락 지역을 좀더 좁힐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악천후 속에서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AF)447 사고의 경우 해저 3600m의 블랙박스를 건져내는 데 2년이 걸렸다. MH370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은 웬만한 나라보다 훨씬 큰 수백만㎢에 이르는 망망대해다. 여기서 길이 1m도 안 되는 블랙박스를 찾아야 한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지난달 29일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의 동부 해안가에서 지난해 3월 실종된 말레이시아항공370의 날개의 일부로 추정되는 ‘플래퍼론’을 경찰이 수거하고 있다. 이 부품은 거의 손상되지 않아, 비행기가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 상태로 미끄러지듯 수면 위로 착륙해 서서히 가라앉은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 보통 항공기는 바다에 추락하더라도 며칠 뒤면 잔해나 주검이 발견된다. 지난해 3월 인도양에서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MH)370은 달랐다. 항공기가 ‘통째로’ 실종됐다. 추락 지점을 추정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기껏 예측한 추락 해역에서는 1년 반째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가 되어가던 중 지난달 29일 인도양의 정반대편에서 MH370 날개의 일부가 발견됐다.
공항에 들어선 우리는 벨트를 풀고 양팔을 올리고 전신 검사를 받는다. 가방에 폭발물을 숨기지 않았는데도 보안요원의 질문에 오금이 저린다. 무장 해제에 응해야 탑승 게이트로 이어지는 컨베이어벨트에 오를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는 인위적으로 공급되는 산소로 호흡할 수밖에 없고 밖으로 나가면 죽음이다. 지구에서 가장 열려 있는 하늘을,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주행한다.
잘 알다시피 항공기 사망률은 자동차 사망률보다 낮다. 우리 몸이 무장해제되고 우리 운명이 조종사의 손에 맡겨지기 때문에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우리는 추락하거나 납치되거나 격추되는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MH)370 사고는 추락 사건도 납치 사건도 아니었다. MH370은 ‘사라졌다’. 239명의 사람을 데리고 실종됐다. 역사상 최대의 ‘항공기 실종 사건’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해역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1년 반이 흘렀다. 지난달 29일 아프리카에 접한 인도양의 외딴섬 레위니옹(프랑스령)의 해안가에서 한 주민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눈에 길이 2m, 폭 1m 됨직한 문짝 같은 게 발견됐다. 이날 오후 이 물체는 전세계 미디어에 타전되면서 세계를 뒤흔들었다. 1년 반 전에 사라진 MH370의 날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8일 0시41분, MH370은 조종사 2명, 승무원 10명, 승객 227명을 싣고 잠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이륙했다. 대형 기종인 보잉777-200이었고, 아침 6시30분에 중국 베이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상할 것 없는 야간비행이었다. 새벽 1시19분 자하리 아맛 샤(53) 기장 혹은 파릭 압둘 하밋(27) 부기장이 말레이시아 관제당국에 작별인사를 건넬 때까지는. 국가간 비행을 하는 비행기는 각국 영공을 드나들 때 해당 관제당국에 출입신고를 해야 한다. 말레이시아를 떠난 MH370은 베트남 영공을 통과해 중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관제당국은 신고를 받지 못했고 비행기는 사라졌다. “굿나잇, 말레이시안 370!” 이것이 MH370에서 마지막으로 전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나중에 레이더 기록을 통해 드러난 이 비행기의 항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말레이시아 관제당국과 작별인사를 마친 직후인 새벽 1시22분, MH370에서는 ‘트랜스폰더’(transponder)라고 불리는 항공교통 관제용 자동응답장치가 꺼졌다. 트랜스폰더는 지상의 관제당국에서 보낸 ‘질문 전파’에 반응해 고도, 속도, 방향 등이 담긴 ‘응답 전파’를 보내는 자동응답장치다. 지상의 관제당국은 이를 보고 항공기 위치를 추적한다.
트랜스폰더가 꺼진 MH370은 타이 만 바다에서 서남쪽으로 급선회한다. 민간 항공 관제당국의 시야에선 벗어났지만, 말레이시아 군용 레이더에는 잡힌다. 나중에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비행기는 페낭 섬을 빙 돌아 믈라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에 진입했다. 기수가 가리키는 방향은 서남쪽이었다. 곧이어 군용 레이더 권역 밖으로 비행기는 완전히 사라진다. 이때가 새벽 2시22분이었다.지상에서는 MH370을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관제 당국은 항공기가 실종됐다고 판단하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아침 6시30분이 넘어서도 MH370은 베이징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뒤 진행된 역사상 최대의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난무한 건 음모론이었다. 미국과 타이의 합동군사훈련 중 발사된 미사일에 추락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책이 출판됐고, 미군 기지가 있는 디에고가르시아 섬에 접근하자 테러로 판단한 미군이 격추했다는 전직 항공사 사장의 주장, 테러집단이 납치해 항공기를 핵무기로 개조했을 거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떠돌았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인도양 건너편 레위니옹 섬에서 날개 조각이 나타난 것이다.
날개 조각은 검사를 위해 프랑스로 이송됐다. 보잉777 날개에 부착돼 위아래로 움직여 고도를 조절하는 ‘플래퍼론’이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레위니옹에서 발견된 물체는 MH370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1년 반 전 쿠알라룸푸르 이륙해
40분도 안돼 인도양으로 사라진
사상 최대의 항공기 실종사건
8개국 참여한 수색작전 전개됐지만
인도양 정반대편에서 떠오른 잔해
교신·추적 시스템 꺼진 비행기
일부러 숨으려 하는 것 같았다
훼손 안 된 날개의 잔해
바다 위 착륙하려 했단 말인가
블랙박스를 꼭 찾아야 한다
악수의 흔적이 준 궤적
민간 항공기가 사라지기란 쉽지 않다. 민간·군용 레이더와 위성통신망이 항공기를 거미줄처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조종사는 ‘에이카스’(ACARS)라고 불리는 운항정보 교신시스템으로 지상의 관제당국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브이에이치에프(VHF·초단파) 채널을 통해 짧은 텍스트 메시지 형식으로 운항정보를 송수신한다. 항공기에 이상이 생겼을 때 관련 정보가 자동 발송된다. 주파수가 잡히지 않을 때는 위성신호로 자동 연결된다. 조종사가 위성 모드로 바꿀 수는 있지만, 에이카스 자체를 끌 수는 없다.
반면 고도, 속도, 방향 등을 자동전송하는 트랜스폰더는 조종사가 직접 끌 수 있다. 하지만 숨어 다녀야 하는 군용기가 아니라면야 안전을 중시하는 민항기가 굳이 트랜스폰더를 끌 이유는 없다. 트랜스폰더를 끈다 해도 군 레이더 기지가 민항기를 감시한다. 민항기가 신호를 보내지 않더라도 군은 반송파를 보내 미확인 물체를 식별한다.
MH370은 이런 레이더 그물망에서 빠져나와 인도양에서 잠적했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첫째는 MH370이 인도양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했다는 설이다. 실종 당일 아침 몰디브의 섬 주민들이 하얀 바탕에 빨간색 도색을 한 여객기가 낮게 날아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현지 신문에 실렸다. 둘째는 MH370이 카자흐스탄 방향으로 북행했다는 설이다. 안다만 해 북쪽에서 타이 군용 레이더에 포착된 ‘미확인 물체’가 이 비행기라는 가정에서다.
세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MH370이 남쪽으로 진로를 틀어 몇 시간을 더 비행하다가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인도양에서 추락했다는 주장이다. 이 가정은 영국 인공위성업체 ‘인마르샛’의 전문가들이 이른바 ‘위성과의 악수’(satellite shakes) 신호를 분석해 내놓음으로써 수색 작전의 토대가 되었다. 일반 가정의 컴퓨터가 인터넷 서버에 연결될 때 ‘핑’이 오가는 것처럼, 보잉777의 에이카스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인마르샛에 악수를 하듯 짧게 접속을 시도한다.(VHF 모드에서 위성 모드로 자동 혹은 인위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MH370은 새벽 2시25분부터 오전 8시19분까지 인마르샛에 7번 신호를 보냈다. 이날 아침 베이징에 오지 않는 비행기에 탑승자 가족들이 허둥댈 때, MH370은 인도양에서 남극으로 태연히 남하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국내 항공사의 한 기장도 13일 이러한 분석에 동의했다.
“위성 신호가 전송되려면 기본적으로 항공기가 전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MH370이 하늘에 떠 있었겠지요.”
인마르샛 전문가들은 ‘위성과의 악수’가 단순한 접속 정보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위성의 위치와 신호의 세기를 분석해 대강의 비행권역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 분석을 토대로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인도양 해상에 MH370이 추락했다고 발표했고,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미국 등 8개국 선박과 항공기가 투입된 항공 역사 사상 최대의 수색 작전이 개시됐다.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엿새를 항해해야 다다르는 고립무원의 공해에서 이뤄진 초기 수색에서 기체 잔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선박과 로봇의 소나를 이용해 우선 수색구역 6만㎢에 이르는 바다의 해저 지형도를 그렸다. 항공기 비슷한 물체가 나타나면 건져내기 위해서다.
MH370 날개의 일부인 플래퍼론이 발견됨으로써, 음모론의 일부는 설득력을 잃었다. MH370이 인도양에 추락한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버뮤다 삼각지대’ 따위란 없고 과학과 문명이 우리 삶의 기반이라는 근대적 믿음도 재확인됐다. 레위니옹 섬에 당도한 파편이 ‘위성과 악수한’ 해역에서 해류를 타고 흘러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도 나왔다. 기체 파편은 반원을 그리며 인도양 북쪽을 돌아 아프리카 해안가에 도착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MH370은 왜 남극으로 진로를 튼 걸까. 그날 새벽 조종실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초기 기내 감압장치가 고장 나면서 모든 사람이 서서히 숨져갔다거나, 화물칸에서 불이 나 기체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시나리오가 대두됐지만, 트랜스폰더 등 외부 통신장치를 모두 끈 채 7시간을 비행한 행위가 설명되지 않았다. 대다수 언론은 트랜스폰더가 누군가에 의해 꺼진 점을 들어 조종사의 ‘자살비행설’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의 한 기장은 13일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동남아시아에서 인천으로 넘어오는데, 저희한테 트랜스폰더가 안 잡힌다고 연락이 왔어요. 재설정해서 눌러봤는데도 관제탑에서는 안 나타난다고 하고…. 다행히 트랜스폰더가 백업용으로 하나 더 있거든요. 그걸로 다시 했더니 그때야 작동되더라고요.”
민간 항공사 조종사들은 보통 이륙할 때가 되어서야 트랜스폰더를 켠다. 미리 켜두고 있으면 공항에 있는 다수 항공기가 전송하는 정보로 관제당국은 쩔쩔맬 것이다. 깜박 잊고 안 켠 채 이륙하는 경우도 있다. 큰 문제는 아니다. 조종사와 관제당국이 수시로 통신하기 때문이다.
“트랜스폰더가 고장 났을 수도 있고, 실수로 껐을 수도 있고, 일부러 껐을 수도 있어요. MH370의 트랜스폰더의 미작동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나올 수 있어요.”
그간의 항공 사고를 살펴보면, 신중했지만 착오로 귀착된 조종사의 판단, 과거 밝혀지지 않았던 부품 결함 등 복잡한 요소가 우연하게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은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믿는 경향이 있다. 자살비행 같은 선명한 내러티브가 귀에 쏙 들어오지만,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확대할 수는 없다.
이번에 발견된 플래퍼론은 무얼 말해줄까. 13일 뉴질랜드 일간지 <뉴질랜드 헤럴드>는 플래퍼론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점을 들어 MH370이 소프트랜딩(마찰력을 줄인 부드러운 착륙)으로 수면에 착륙해 한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을 것이라는 말레이시아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전문가 닐 핸즈퍼드도 “추락할 때까지 항공기가 통제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날개 밑에 달린) 엔진이 수면에 부딪히면서 플래퍼론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랙박스가 발견될 때까지 예단할 수는 없다. 미국 주간지 <포브스>의 항공칼럼니스트 존 골리아는 지난달 31일 “MH370 잔해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블랙박스의 위치”라며 “해류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항공기 추락 지역을 좀더 좁힐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악천후 속에서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AF)447 사고의 경우 해저 3600m의 블랙박스를 건져내는 데 2년이 걸렸다. MH370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은 웬만한 나라보다 훨씬 큰 수백만㎢에 이르는 망망대해다. 여기서 길이 1m도 안 되는 블랙박스를 찾아야 한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