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 관람대에서 연변을 대표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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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9-11 08:19|본문
열병식 관람대에서 연변을 대표한 그들
사숙선, 올해 93세, 왕청현 동성진 십리평촌에 거주. 그는 섭영진의 부대에서 일본군과 싸웠었다. 그는 전에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가운데서 전투했고 배불리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도 못했으며 또 중상까지 입은적이 있었다. 항일촌민집에서 치료하고 휴양한후 계속하여 전쟁터에 나가 싸웠는데 지금까지도 그의 몸에는 2곳의 총상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손에 있다.9월 3일, 연변주 항일로전사 사숙선은 요청을 받고 북경 천안문관람대에서 항일전쟁승리 열병식에 참석해 조국의 강대함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 그는 어깨 나란히 전쟁터에서 싸우다 희생한 전우들이 머리속에 떠올라 여러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9월 6일, 기자는 로인을 모시고 북경으로 간 51세의 며느리 양복향을 취재했다. 한달전에 그들은 현지 민정부문으로부터 북경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았고 사숙선로인은 이에 매우 흥분해 매일 달력을 넘기며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양복향의 소개에 의하면 관람과정에서 시아버지는 말도 얼마 하지 않은채 어느 한 장면이라도 놓칠가 두려워 아주 열심히 관람했다고 한다. 양복향은 시아버지가 여러번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열병식이 끝난후 사숙선은 며느리에게 오늘날 조국의 강대함은 그로 하여금 자호감을 느끼게 하며 또 흥분을 금할수 없다고 심정을 밝혔다. 눈물을 멈추지 못한것은 항일전쟁 당시 조건이 매우 간고하고 선진적인 무기와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전사들마다 모두 여러개 수류탄을 몸에 지닌채 배고픔을 견뎌내며 먼 길을 걸어 적들과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기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시름을 놓았다. 다시는 적들의 침략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숙선로인이 말했다.
그날밤, 사숙선로인은 양복향의 배동하에 항전승리 70주년 기념문예야회도 관람했다. 현장에서는 노래, 춤, 연기의 형식으로 관중들을 전쟁의 불꽃이 흩날리는 년대로 데려갔다. 핍진한 공연장면은 다시 한번 사숙선로인의 기억을 파고들어 그로 하여금 희생한 전우를 떠올리게 했고 또 눈물을 금치 못하게 했다.9월 4일, 북경기차역에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리고있을 당시 밖에서는 비가 내렸다. 사숙선로인은 훈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비닐박막으로 비를 막고있었는데 지나가던 한 청년이 한눈에 항전로전사인 그를 알아보고 우산을 로인에게 건네준후 자신은 비를 맞으며 떠나갔다고 양복향은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무척 감동 받았다. 하지만 마음씨 고운 청년의 이름조차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9월 5일 아침, 기차는 장춘시에 도착했고 현지 관련 지도자들은 역전에서 그들을 꽃다발로 맞이해주었다. 당일 오전, 현지 정부는 또 북경 관람대에 갔던 전성 8명의 항전로전사좌담회를 개최했다. 항전로전사들은 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공동한 경력을 가지고있었기에 서로 더욱 가까워졌다.
박항영, 왕청현교사진수학교 교사. 1995년 풍채가 출중하고 재능이 넘쳤던 그녀는 암에 걸렸다. 그후 그녀는 고통을 힘으로 전환해 자신의 직업을 더욱 사랑하고 사업에 더욱 충실했는데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공헌했으며 자신도 잊은채 열심히 일했다. 그녀는 농촌교육에 20여년 동안 몸바쳐 일했고 암에 걸린 자신의 몸과 전부의 사랑으로 교사직업의 책임을 떠메였다. 그녀는 전국 10대 교사육인모범, 전국 사덕초병으로 당선되였다.
“정말 영광스럽다. 북경에 가서 열병식을 관람한것은 저한테 평생 자랑으로 남을것이고 또 평생 추억으로 될것이다.” 9월 5일, 왕청현교사진수학교의 교사 박항영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격동된 감정을 목소리와 표정에 아낌없이 드러냈다.
8월 21일, 박항영은 9월 3일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진행할 “중국인민항일전쟁승리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달라는 교육부에서 보내온 요청함을 받았다.
“정말 의외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기회가 나한테로 왔다.” 9월 5일, 박항영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북경에 와서야 이번 열병식에 참가한 전국각지 교육계통에서 온 총 60명의 우수교육자들중 자신이 우리 연변주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사대표라는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번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조선족인 그녀는 새로 조선족복장도 마련했다고 한다.
박항영은 또렷이 기억하고있다. 열병식이 시작된후 국기게양식을 할 때 전문적인 지휘가 없는 상황에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높은 소리로 국가를 불렀는데 우렁찬 노래소리는 공중에서 메아리쳤다고 한다. 이어 습근평총서기가 차에 탑승해 서서히 모든 부대를 검열했다. 그녀가 앉은 자리는 마침 전투기가 날아오는 방향이여서 머리를 들면 각종 무기장비들이 앞으로 지나가는것을 볼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조국의 강대함을 느꼈다. 중국사람으로서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며 박항영은 말했다. 현장의 영웅모범방형진 인원들은 모두 머리를 들고 가슴을 쭉 펴고있었으며 발걸음이 일치했다.
9월 4일, 박항영은 격동된 심정으로 비행기에 탑승해 연길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 현장 관람대의 정황을 물어보았고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경축해주려고 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무척 부러워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초대장, 요청함 등 서류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왔고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보여준후 잘 간직해두었다. 박항영은 2013년 왕청현교사진수학교에 가서 교사를 담임하게 되였다고 한다. 이번의 열병식 관람경력은 그녀로 하여금 일에 대한 열정과 조국에 대한 열애가 더욱 깊어지게 했다. 그녀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해서 조국에 보답할것이라고 다짐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웅장했다! 텔레비죤에서 보는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9월 6일, 기자는 요청을 받고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열병식을 관람한 연변군대퇴직간부휴양소 소장 최향란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전화를 통해서도 최향란의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느낄수 있었다.
최향란은 9월 3일 6시경, 아침일찍 관람대 현장에 도착했는데 마음속의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다고 한다. 최향란의 자리는 천안문 맞은편 광장 기대 서쪽의 관람대구역에 위치해있었다. 열병식이 시작되여 현장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텔레비죤에서 보는것과 비교할 때 다른점은 현장 관중들의 열렬한 분위기를 직접 느낄수 있었다는것이다.” 현장에서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끊임없이 귀가에서 맴돌았다. 일부 사람들은 일어서서 끊임없이 박수를 쳤고 또 일부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으며 일부 사람들은 “조국만세”를 높은 소리로 웨쳤다고 한다. 질서정연한 방형진이 줄줄이 지나가고 현대화한 설비가 광장앞을 지나가고 전투기들이 하늘상공에서 날아옐 때 최향란의 정서도 고앙되였다. 그녀는 국력의 증강과 국가 과학기술의 진보 발달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나는 국가의 강성함으로 하여 더없는 긍지감을 느꼈다.” 항전로전사들이 탑승한 방형진이 광장앞을 지나갈 때 최향란은 자리에 일어서서 박수로 경의를 표시했다. “일부 항전로전사들은 100세가 넘었어도 여전히 정정하셨는데 마치 당시 항일할 때의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는듯 했다”라며 최향란은 격동해서 말했다.
예장량, 현임 돈화시 발해가도 사업위원회 서기. 그는 2004년 군대에서 지방으로 전업했다. 그가 지방에서 사업하는 동안 그는 백성과 함께 하고 민생을 관심했으며 청년의 취업, 창업을 촉진하고 희망소학교를 건설했으며 토지징발분쟁을 해결하고 도로와 다리를 건설했으며 곤난한 군중을 도와 가난을 해결하고 군중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등 면에서 돌출한 공헌을 하였다.
열병식 관람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전국 1400여명의 모범군인 출신 간부의 대표로서 그들은 전국의 모든 군인출신간부를 대표했다. 돈화시에서 온 예장량도 그중의 일원이였다.
한달전에 예장량은 길림성인사청에서 전해온 통지를 받았는데 인사부에서는 그를 전국 모범군전(军转)간부의 대표로 “9.3”열병에 관람할것을 요청했다. 통지를 받은후 예장량은 아주 흥분되였다고 한다. 통일배치에 따라 그는 9월 2일 북경에 도착했고 열병식때 천안문 맞은편, 군악대 죄측의 관람대에서 전체 열병과정을 관람했다. 군인출신인 그는 직접 이번 열병식을 관람한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간주했고 조국의 강대함을 직접 눈으로 보고 특히 군대의 강대함을 직접 목격할수 있는것으로 하여 그는 더욱 긍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번 열병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습근평총서기의 중요연설은 저뿐만아니라 58명의 군전간부대표들을 모두 분발시켰다”고 말했다. 부대에서 나온 간부로서 그는 총서기가 30만명의 군대를 감축하는 결책을 지지한다면서 이는 우리 나라 종합국력의 제고뿐만아니라 우리 나라가 평화발전의 도로를 걸으려는 결심과 노력을 설명한다고 말했다./인민넷
양복향의 소개에 의하면 관람과정에서 시아버지는 말도 얼마 하지 않은채 어느 한 장면이라도 놓칠가 두려워 아주 열심히 관람했다고 한다. 양복향은 시아버지가 여러번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열병식이 끝난후 사숙선은 며느리에게 오늘날 조국의 강대함은 그로 하여금 자호감을 느끼게 하며 또 흥분을 금할수 없다고 심정을 밝혔다. 눈물을 멈추지 못한것은 항일전쟁 당시 조건이 매우 간고하고 선진적인 무기와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전사들마다 모두 여러개 수류탄을 몸에 지닌채 배고픔을 견뎌내며 먼 길을 걸어 적들과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기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시름을 놓았다. 다시는 적들의 침략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숙선로인이 말했다.
그날밤, 사숙선로인은 양복향의 배동하에 항전승리 70주년 기념문예야회도 관람했다. 현장에서는 노래, 춤, 연기의 형식으로 관중들을 전쟁의 불꽃이 흩날리는 년대로 데려갔다. 핍진한 공연장면은 다시 한번 사숙선로인의 기억을 파고들어 그로 하여금 희생한 전우를 떠올리게 했고 또 눈물을 금치 못하게 했다.9월 4일, 북경기차역에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리고있을 당시 밖에서는 비가 내렸다. 사숙선로인은 훈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비닐박막으로 비를 막고있었는데 지나가던 한 청년이 한눈에 항전로전사인 그를 알아보고 우산을 로인에게 건네준후 자신은 비를 맞으며 떠나갔다고 양복향은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무척 감동 받았다. 하지만 마음씨 고운 청년의 이름조차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9월 5일 아침, 기차는 장춘시에 도착했고 현지 관련 지도자들은 역전에서 그들을 꽃다발로 맞이해주었다. 당일 오전, 현지 정부는 또 북경 관람대에 갔던 전성 8명의 항전로전사좌담회를 개최했다. 항전로전사들은 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공동한 경력을 가지고있었기에 서로 더욱 가까워졌다.
박항영, 왕청현교사진수학교 교사. 1995년 풍채가 출중하고 재능이 넘쳤던 그녀는 암에 걸렸다. 그후 그녀는 고통을 힘으로 전환해 자신의 직업을 더욱 사랑하고 사업에 더욱 충실했는데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공헌했으며 자신도 잊은채 열심히 일했다. 그녀는 농촌교육에 20여년 동안 몸바쳐 일했고 암에 걸린 자신의 몸과 전부의 사랑으로 교사직업의 책임을 떠메였다. 그녀는 전국 10대 교사육인모범, 전국 사덕초병으로 당선되였다.
“정말 영광스럽다. 북경에 가서 열병식을 관람한것은 저한테 평생 자랑으로 남을것이고 또 평생 추억으로 될것이다.” 9월 5일, 왕청현교사진수학교의 교사 박항영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격동된 감정을 목소리와 표정에 아낌없이 드러냈다.
8월 21일, 박항영은 9월 3일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진행할 “중국인민항일전쟁승리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달라는 교육부에서 보내온 요청함을 받았다.
“정말 의외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기회가 나한테로 왔다.” 9월 5일, 박항영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북경에 와서야 이번 열병식에 참가한 전국각지 교육계통에서 온 총 60명의 우수교육자들중 자신이 우리 연변주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사대표라는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번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조선족인 그녀는 새로 조선족복장도 마련했다고 한다.
박항영은 또렷이 기억하고있다. 열병식이 시작된후 국기게양식을 할 때 전문적인 지휘가 없는 상황에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높은 소리로 국가를 불렀는데 우렁찬 노래소리는 공중에서 메아리쳤다고 한다. 이어 습근평총서기가 차에 탑승해 서서히 모든 부대를 검열했다. 그녀가 앉은 자리는 마침 전투기가 날아오는 방향이여서 머리를 들면 각종 무기장비들이 앞으로 지나가는것을 볼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조국의 강대함을 느꼈다. 중국사람으로서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며 박항영은 말했다. 현장의 영웅모범방형진 인원들은 모두 머리를 들고 가슴을 쭉 펴고있었으며 발걸음이 일치했다.
9월 4일, 박항영은 격동된 심정으로 비행기에 탑승해 연길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 현장 관람대의 정황을 물어보았고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경축해주려고 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무척 부러워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초대장, 요청함 등 서류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왔고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보여준후 잘 간직해두었다. 박항영은 2013년 왕청현교사진수학교에 가서 교사를 담임하게 되였다고 한다. 이번의 열병식 관람경력은 그녀로 하여금 일에 대한 열정과 조국에 대한 열애가 더욱 깊어지게 했다. 그녀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해서 조국에 보답할것이라고 다짐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웅장했다! 텔레비죤에서 보는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9월 6일, 기자는 요청을 받고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열병식을 관람한 연변군대퇴직간부휴양소 소장 최향란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전화를 통해서도 최향란의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느낄수 있었다.
최향란은 9월 3일 6시경, 아침일찍 관람대 현장에 도착했는데 마음속의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다고 한다. 최향란의 자리는 천안문 맞은편 광장 기대 서쪽의 관람대구역에 위치해있었다. 열병식이 시작되여 현장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텔레비죤에서 보는것과 비교할 때 다른점은 현장 관중들의 열렬한 분위기를 직접 느낄수 있었다는것이다.” 현장에서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끊임없이 귀가에서 맴돌았다. 일부 사람들은 일어서서 끊임없이 박수를 쳤고 또 일부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으며 일부 사람들은 “조국만세”를 높은 소리로 웨쳤다고 한다. 질서정연한 방형진이 줄줄이 지나가고 현대화한 설비가 광장앞을 지나가고 전투기들이 하늘상공에서 날아옐 때 최향란의 정서도 고앙되였다. 그녀는 국력의 증강과 국가 과학기술의 진보 발달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나는 국가의 강성함으로 하여 더없는 긍지감을 느꼈다.” 항전로전사들이 탑승한 방형진이 광장앞을 지나갈 때 최향란은 자리에 일어서서 박수로 경의를 표시했다. “일부 항전로전사들은 100세가 넘었어도 여전히 정정하셨는데 마치 당시 항일할 때의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는듯 했다”라며 최향란은 격동해서 말했다.
예장량, 현임 돈화시 발해가도 사업위원회 서기. 그는 2004년 군대에서 지방으로 전업했다. 그가 지방에서 사업하는 동안 그는 백성과 함께 하고 민생을 관심했으며 청년의 취업, 창업을 촉진하고 희망소학교를 건설했으며 토지징발분쟁을 해결하고 도로와 다리를 건설했으며 곤난한 군중을 도와 가난을 해결하고 군중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등 면에서 돌출한 공헌을 하였다.
열병식 관람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전국 1400여명의 모범군인 출신 간부의 대표로서 그들은 전국의 모든 군인출신간부를 대표했다. 돈화시에서 온 예장량도 그중의 일원이였다.
한달전에 예장량은 길림성인사청에서 전해온 통지를 받았는데 인사부에서는 그를 전국 모범군전(军转)간부의 대표로 “9.3”열병에 관람할것을 요청했다. 통지를 받은후 예장량은 아주 흥분되였다고 한다. 통일배치에 따라 그는 9월 2일 북경에 도착했고 열병식때 천안문 맞은편, 군악대 죄측의 관람대에서 전체 열병과정을 관람했다. 군인출신인 그는 직접 이번 열병식을 관람한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간주했고 조국의 강대함을 직접 눈으로 보고 특히 군대의 강대함을 직접 목격할수 있는것으로 하여 그는 더욱 긍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번 열병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습근평총서기의 중요연설은 저뿐만아니라 58명의 군전간부대표들을 모두 분발시켰다”고 말했다. 부대에서 나온 간부로서 그는 총서기가 30만명의 군대를 감축하는 결책을 지지한다면서 이는 우리 나라 종합국력의 제고뿐만아니라 우리 나라가 평화발전의 도로를 걸으려는 결심과 노력을 설명한다고 말했다./인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