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월 대보름 원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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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2-02-06 09:47|본문
중국에서 원소절(元宵節)은 음력으로 정월 15일로, 상원절(上元節) 원석(元夕), 원야(元夜)라고 하며 원절(元節),등절(燈節) 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the Lantern Festival 이다. 원소절 저녁은 음력 새 해 첫 둥근 달이 뜨는 날이며, 설(춘절)이후 처음 맞는 중요한 명절이기도 하다.
약 2000년전 서한( 西漢)때부터 있었고, 등놀이는 동한나라 명제 (東漢 明帝))시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제(明帝)는 불교를 숭배하였는데, 불교에서는 정월 보름날 부처님 사리를 참견하였는데, 이때 등불을 켜서 부처님을 모셨다고 한다. 또한 이날 밤에 황궁과 절에는 등을 켜서 밝혔고, 일반인들도 등을 달았다고 한다. 이후 이러한 불교 의식이 민간에 이전되어 명절로 되고,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 한나라 문제(文帝)때들어 음력 1월 15일을 원소절로 정했으며, 한나라 무제(武帝)때 우주 일체의 신을 주재(主宰)하는 태일신(太一 神)의 제사를 정월 15일로 정했다. 사마천이 태초력(太初歷)을 만들 때 원소절을 중대 명절로 확정하게 되었다.
또 다른 원소등놀이 풍습이 도교의 삼원설(三元說)이란 유래도 있다. 정월 15일은 상원절(上元節), 7월 15일은 중원절(中元節),10월15일은 하원절(下元節) 이라 하였고, 상중하는 각 천지인(天地人)을 천은 기쁨과 즐거움을(喜樂)을 나타내어 상원절에 등을 달았다고 한다.
동방삭과 원소아가씨, 원소의 유래
한나라 무제때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하루는 궁안에서 무제와 거닐다가 우물에 빠져 죽을려는 궁녀를 발견하고 궁녀를 구해 내었다. 궁녀의 이름은 원소(元宵)이며, 궁녀로 온후 매년 봄이 와도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고향생각에 죽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방삭이 애처롭게 여겨 이를 해결해 주마고 약속했다.
어느날 동박삭이 궁을 나와 장안가를 가는데, 복점 좌판이 펼쳐져 잇었고 많은 사람들이 복점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오는 복점마다 전부 ‘정월16일화분신(正月十六火焚身)’이 뽑혀 나왔다. 그러자 장안가 일대가 공황에 빠졌다. 이때 동방삭이 머리를 짜내어 ‘십오일저녁에 화신중 붉은 옷을 입은 신녀가 사전 조사차 오는데, 그녀가 바로 종지를 받든 장안의 사자다. 내가 문구를 쓰서 너희들에게 줄테니 황제와 좋은 방법을 찾아 보라’라고 홍첩(紅帖)을 주고 황제에게 품의하라고 일렀다.
무제가 품의를 받아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장안이 약탈되고, 불이 궁궐을 불태우고, 15일동안 불타며, 화염이 온 밤을 삼킬 것이다.’ 무제는 크게 놀랐고, 동방삭을 불러 어쩌면 좋겠냐고 상의 했는데, 동방삭은 화신군(火神君)이 가장 즐겨 먹는 것이 탕원(汤圓) 인데, 궁중에 있는 원소가 자주 탕원을 만들어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15일 저녁에 원소더러 탕원을 만들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만백성에게도 탕원을 만들어 화신군에게 봉양하고, 15일 저녁에는 등을 달고 폭죽을 터뜨리고 하면 화신군이 크게 만족할 겁니다.
황제는 그게 좋겠다고 하여 이로써 장안가에는 등이 달렸는데, 궁정등에는 원소라는 큰 글씨가 쓰여 달리게 되었다. 한편 원소 가족은 구경 나왓다가 이 등을 보고’원소,원소’를 외쳤고, 이 소리를 들은 원소가 결국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장안가는 결국 아무일도 없이 잘 넘어가게 되었고 무제도 몹시 기뻐했다. 이후부터 장안가는 정월 15일이 되면 등을 다는 풍습이 생겼고, 폭죽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원소가 만든 탕원이 가장 맛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원소를 받들어 탕원을 원소라 부르게 되었고, 원소절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원소절의 발전
원소절은 나라에 따라 지속해서 발전되어 왔는데, 한나라 때는 1일, 당나라 때는 3일, 송나라에 때는 5일, 명나라 주원장 정권이 들어선 이후는 10일 동안을 지냈는데, 초8일부터 등을 달았고, 정월 17일에야 등을 내렸다고 한다.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등놀이 뿐만 아니라 용춤(무용), 사자춤(무사),포한선( 跑旱船),채고교( 踩高跷-긴나무다리춤) 뉴앙가(扭秧歌-니우양거,앙가부르기)등의 잡기(百戱백희)가 등장하였는데, 궁중에는 등을 달 수 없게 했고, 절기도 5일로 단축되었다.
그러나 원세개(袁世凱)가 들어선 때 발음이 같아 1913년부터 위앤시아오는 부를 수 없게 되어 탕원,분과로만 부르게 되었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원소가 전해져 결국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원소는 지금도 남방에서는 탕원,탕단(汤團)이라 부르고 있다.
원소절과 정인절
원소절은 중국의 정인절( 情人節-발렌타인데이))이라고도 한다. 고대 봉건사회에서 원소절 등불놀이는 미혼 남녀에게 만남의 기회를 마련했다. 당시 젊은 여성들은 함부로 외출해 자유활동을 할 수 없었고 이러한 명절때에만 바깥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원소절의 꽃구경과 등불놀이는 젊은 남녀들에게 화려한 만남의 장소를 마련해주어 예쁜 사랑을 꽃피울 수 있게 했다. 대만에서는 미혼 여성이 원소절 밤이면 각종 야채를 훔쳐야만 좋은 남편에게 시집간다는 전통이 있기에 이날 밤이면 처녀들은 너도나도 야채를 훔쳤다는 설도 있다.
정월대보름 원소절의 풍습
원소절의 풍습에는 시등미( 猜燈謎 등 수수께끼 놀이), 용등춤놀이(耍龍燈-솨롱덩),긴마무다리춤(채고교), 포한선 또는 획한선(劃旱船 여성들이 주로 하는 뱃놀이),사자춤, 축서(逐)鼠,쥐쫓기놀이,쥐불놀이도 일종),송등(送燈,여자에게 시집 잘가 아이 잘 낳고 잘 사라는 기원),화장실 귀신 맞이(迎紫姑,영자고, 북방에서는 측고 厕姑), 병마 내 보내기(주백병走百病,산백병散百病, 북방민속, 보통 16일에 함)등이 있고 각 지방이나 민족에 따라 다른 풍습이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물론 원소절에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바로 이 원소 즉 탕원이다.
올해는 원소절이 2월 말인 28일로 되어 있어 춘절을 마무리 하는 명절의 의미를 더욱 잘 나타낸다. 오늘 밤, 상하이 밤은 불꽃놀이(폭죽놀이)로 너무나 사방이 시끄럽다. 그야말로 불귀신이 이 폭죽소리를 듣고 도망갈 정도다. 우리는 그냥 집안에서 시금치,고사리,취나물,콩나물 반찬 먹고, 호두와 땅콩으로 부럼이나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