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후통과 사합원(Hutong and Quadran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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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9-15 09:41|본문
‘보이는 것’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도시 공간
베이징 성안에 남아 있는 후통은 보이지 않는 도시 공간이자 베이징
의 키워드이다.
서로 다른 크기의 사합원들이 모이면서 이룬 통로인 후통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정교하게 짜인 거대한 그물같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이
함께 있는 후통의 공간 산책.
▲ 위에서 내려다본 전형적인 사합원. 안마당과 중문이 보인다.
사합원과 사합원군 사이에서는 후통이 눈에 들어온다.
▶ 구시가지 후통과 사합원지역을 부수고 만든 신작로. 좌우측에 아직 남은 사합원이 보인다.
후통은 북경 특유의 옛 거리이다. 아직 북경에는 수천이 넘는 후통이 남아 있다. 자금성 주변의 후통은 연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 세워진 것이다. 황제들은 주례고공기에 의해 도시를 계획하였다.
도성 한가운데 금단의 도시, 자금성이 자리하고, 자금성과 도성 사이에 운하가 흐르며 운하를 거슬러 격자 가로망이 조성 전체를 채우고 있다.
큰 격자 가로망 안에 동서로 후통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 사합원이 들어선 것이다.
후통은 두 종류였다. 전통적 후통은 자금성 좌우에 질서 정연하게 들어섰다. 거주자의 대부분은 황실의 인척이거나 귀족들이었다.
자금성 남측 천안문 광장과 북측 경산 바깥 멀리에 지어진 후통은 보통사람들의 마을이었으며 주로 장사치나 평민들이 살았다.
후통의 주공간은 네 방향에 자리한 네 집으로 이루어진 사합원(四合阮, quadrangles)이다.
고위층 공직자나 부유한 사람들의 거대한 사합원에는 전정과 후정이 있으며 화려하게 장식된 구조체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보통사람들의 집은 작은 대문과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 동서방을 좌우에 둔 정방. 전형적인 사합원의 안 모습이다.
중국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
후통은 마을을 가리키기보다 서로 다른 크기의 사합원들이 모이면서 이루어진 통로를 말한다.
사합원은 대부분 남향이었으므로 후통은 대부분 동서를 달린다.
동서로 이어지는 긴 후통 사이에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 있기 마련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정교하게 짜인 거대한 그물이 높은 장벽 안에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China Housing 2000' 프로젝트를 청화대학과 함께 작업하면서 자주 베이징을 다니던 중 베이징 한 가운데서 '보이는 것' 가운데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베이징의 전통마을의 거리인 후통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의 도시형 주거인 사합원의 안과 밖을 구석 구석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 사합원을 연결하는 공간 장치인 서방 모서리의 작은 마당과 모서리 문.
자금성과 천단만 보다가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알게 되면서 베이징의 문과 루와 성벽을 알게 되었고 드디
어 베이징과 베이징 사람의 삶의 공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베이징하면 누구나 먼저 자금성과 천단, 만리장성과 이화원을 생각하지만 중국인과 중국 문명의 참모습을 알자면 베이징인들이 살던 마을을 알아야 한다. 황제가 살던 집 보다 베이징인들이 살던 집이 당연히 그들의 삶을 더 많이 말해줄 수 있는 곳이다.
베이징 사람들이 살던 후통이 아직 베이징 한 가운데 남아 있으나 다들 잘 모른다. 원나라가 대제국의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에 세울 때 황궁 주위에 수천 수만의 사합원을 지었다
◀ 후통에 있는 사합원 내부의 화랑이 만나는 공간.
북경성곽과 자금성 사이를 가득 채웠던 후통과 사합원은 많이 부서졌으나 아직 그 틀은 남아 있다.
현대의 베이징은 천안문 광장 주변 이외에는 대부분 옛 도성 바깥에 세워져 자금성 주위와 경산 북측 옛 도시 구역의 후통은 성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600년 역사 도시의 시간과 공간이 박제되었으나 베이징에는 그들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말하는 후통과 사합원이 아직 거기 남아 있다.
후통을 제대로 보려면 경산 북측 종루에 올라야 한다. 45 의 급경사 계단을 올라 종루에 서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천년 도시의 삶의 현장이었던 수천수백의 후통과 사합원을 볼 수 있다.
베이징의 옛 도성은 부서졌으나 옛 도시 원형의 틀은 아직 남아 있다.
옛 도시는 왜곡되고 부서져 있어도 현대 건축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서울 사대문안 옛 도시는 고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업 건축 아래 묻혀 버렸고 수백년 살아온 주거 공간은 일부가 유적처
럼 남아 있다.
후통같이 마을이 그대로 남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은 옛 것을 파괴하고 그 위에 세운 배역의 도시이나 베이징은 옛것을 비껴 바깥에 그들의 도시를 세운 공생의 도시이다.
자금성과 후통이 있어서 베이징은 위대한 도시인 것이다. 왕의 공간인 경복궁과 창덕궁과 종묘는 남았으나 서울 사람들이 살던 서울사람의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폐허가 된 누황의 거리여도 후통에는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이 담긴 길은 모두 사라진 반면, 후통은 비록 피폐하였으나 살아있는 도시 구역이다
▶ 月洞門이라 쓰는 문게이트가 정원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우징 네트워크 공간
베이징을 많이 다녔고 베이징에 대해 여러번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후통을 알게된 이후 베이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 최고의 건축가이며 도시학자인 우량융 교수의 안내와 가르침을 받아 후통을 다니면서 그간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얼마
나 피상적인 것인지를 알았다.
북경성과 자금성과 천단을 아는 것은 북경의 번지를 아는 정도였다. 우량융 교수의 안내로 자금성 바깥 '보이는 것 사이에 자
리한 보이지 않는 거리' 후통을 볼 수 있었다.
건축 바깥의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베이징이라는 세계 최고 도시 공간의 어반 패브릭이며 금단의 도시 자금성의 버트레스이며 베이징원인의 후예가 살던 하우징 네트워크가 바로 후통이었다.
서울에 서울 사람의 마을이 없는 것을 베이징의 후통에서 더 크게 느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후통에 가서 중국을 비웃는다. 후통에서 관광객들은 연민을 느낀다. 나는 그들에게서 진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후통은 베이징을 열 수 있는 키워드이나 정작 후통에는 부서진 사합원만이 남아 있다. 후통에 베이징의 키워드가 있어도 사합원의 마을에는 후통이 없다. 베이징과 자금성과 사합원은 실재하는 공간이지만 후통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공간이다.
후통은 디지털의 세계였다. 4천년전 중국인들이 발견한 주역의 세계가 바로 디지털의 세계다. 주역의 세계와 디지털의 세계를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며 후통과 어반하우징 네트워크를 비교하는 것 역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후통에 서면 네트워크 위에 서 있는 기이한 체험을 한다. 1000만 도시 베이징의 키워드인 후통을 모르면 베이징의 어반 네트워크를 알 수 없다. 서울에서는 역사의 메모리가 제거된 현재의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거느리고 있다
▶ 화랑에서 옆마당으로 통하는 문게이트(月洞門).
나는 부산 송도가 내려다 보이는 사쿠라마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 하나 하나보다 사쿠라마치를 사쿠라마치이게 하였던 것은 산과 바다를 잇는 작은 길 바로 그것이었다. 도시에 실재하는 길이 있어야 도시와 건축이 삶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후통을 다니면서 스파카나폴리를 생각하였다. 로마의 신도시 네아폴리스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산과 바다를, 역사와 현재
를 통합하기 위해 바위를 칼로 자르듯 가로지르는 도시 스파카나폴리.
자금성과 베이징성 벽을 가로질러 차단한 왕성의 도시를 성곽과 견고히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후통을 베이징의 오늘에 다시 있게 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China Housing 2000'에서 그런 제안이 나와야 할것이다. ◀ 사합원 내부 장식.
후통에 갈 때마다 가회동 한옥마을 거리의 비문명을 다시 생각한다.
하회마을 골목과 폼페이의 거리와 후통을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다.
후통과 사합원이 있는 것은 없는 것이 함께 있는 북경의 실재다.
'보이지 않는 도시공간'인 후통에 대해서는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후통과 사합원을 제대로 아는 방법일지 모른다.
'보이는' 사합원 사이에서 '보이지않는' 후통을 볼 수 있으면 베이징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