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바로 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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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3-14 09:49|본문
중국 미용실에는 디자이너가 남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를 선호하는 문화 때문인지 몰라도 이 곳 미용실의 디자이너는 90% 이상이 남자들이다. 서비스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직원들의 밝은 표정은 무뚝뚝한 남자 직원들보다 훨씬 더 값지다. 이곳에서 면접을 보면 대부분이 파마 뿐 아니라 모든 매뉴얼에서 잘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막상 테스트를 해보면 실력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중국 미용실의 파마 실력은 분명 한국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지구상에서 파마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고 세 살부터 일흔 살까지 여자라면 대부분이 파마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당 미용실 분포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며 4년제 미용대학이 있고 미용 박사 과정이 있는 하라는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떤 디자이너를 이곳에 데려다 놓아도 파마만큼은 경쟁력이 있다.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중국에 경쟁 우위에 있을 업종이 몇 개나 될까. 미용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다. 많은 미용인들이 도전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어떻게 하면 더 나은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중국에 오게 된 계기는 이렇다. 관광차 미용인들과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에서의 무한한 가능성과 시장성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너무나 중국에 오고 싶었지만 중국에 오려면 우선 한국에서 성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미용실로 직영점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곳이 35개쯤 될 때였다. 체인점이야 몇 천 개 하는 곳도 많이 있지만 관리나 이익 면에서 직영점을 많이 한다는 게 미용실 특성상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일단 목표를 40개로 정해놓고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 저가 브랜드가 조직을 빠르게 많이 키워 나갈 수 있다고 결론 짓게 됐다. 가게를 구하고 가격을 정하고 직원을 모집했다. 간판은 좀 특이하게 하고 싶었다. 누가 봐도 저렴함을 알 수 있게 간판에 가격을 표시하고 싶었다.
지금이야 피부관리실, 분식집, 회집, 음료수 등에도 가격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처음 하는 거라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하고 반대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훈 헤어칼라 20,000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3년 만에 40개의 직영점을 오픈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 와서도 간판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좀더 나은 간판이 없나 버릇처럼 고민을 하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칼국수 집이 있었다. 그 집은 항상 손님이 많았다. 워낙 면을 좋아하는데다 값도 싸고 맛이 있어 자주 가곤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서야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칼국수집은 간판도 없고 시설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루는 그 집 주인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간판도 없는데 어떻게 올 때마다 손님이 이렇게 많아요?”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손님이 간판이야. 손님들이 우리 집에서 왔다가 맛있게 먹고 나서 여기저기 소문 내주는데 뭘. 간판 필요 없어.”
중국 미용실의 파마 실력은 분명 한국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지구상에서 파마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고 세 살부터 일흔 살까지 여자라면 대부분이 파마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당 미용실 분포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며 4년제 미용대학이 있고 미용 박사 과정이 있는 하라는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떤 디자이너를 이곳에 데려다 놓아도 파마만큼은 경쟁력이 있다.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중국에 경쟁 우위에 있을 업종이 몇 개나 될까. 미용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다. 많은 미용인들이 도전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어떻게 하면 더 나은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중국에 오게 된 계기는 이렇다. 관광차 미용인들과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에서의 무한한 가능성과 시장성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너무나 중국에 오고 싶었지만 중국에 오려면 우선 한국에서 성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미용실로 직영점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곳이 35개쯤 될 때였다. 체인점이야 몇 천 개 하는 곳도 많이 있지만 관리나 이익 면에서 직영점을 많이 한다는 게 미용실 특성상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일단 목표를 40개로 정해놓고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 저가 브랜드가 조직을 빠르게 많이 키워 나갈 수 있다고 결론 짓게 됐다. 가게를 구하고 가격을 정하고 직원을 모집했다. 간판은 좀 특이하게 하고 싶었다. 누가 봐도 저렴함을 알 수 있게 간판에 가격을 표시하고 싶었다.
지금이야 피부관리실, 분식집, 회집, 음료수 등에도 가격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처음 하는 거라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하고 반대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훈 헤어칼라 20,000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3년 만에 40개의 직영점을 오픈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 와서도 간판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좀더 나은 간판이 없나 버릇처럼 고민을 하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칼국수 집이 있었다. 그 집은 항상 손님이 많았다. 워낙 면을 좋아하는데다 값도 싸고 맛이 있어 자주 가곤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서야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칼국수집은 간판도 없고 시설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루는 그 집 주인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간판도 없는데 어떻게 올 때마다 손님이 이렇게 많아요?”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손님이 간판이야. 손님들이 우리 집에서 왔다가 맛있게 먹고 나서 여기저기 소문 내주는데 뭘. 간판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