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30년, 中 예술품시장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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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11-18 09:58|본문
원동력, 지원력, 잠재력-개혁개방 30년 중국 예술품시장 발전사
화가 쩡판즈曾梵志)의 유화《면구계열(面具系列: 가면 시리즈) 1996 No.6》이 2008년 5월 24일 홍콩 ‘크리스티스(Christies) 2008 춘계 경매회’에서 6704만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어 화제가 되었다.
‘난세에는 금이 제일이요, 태평성세에는 골동품과 서예작품 수집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개혁개방 바람과 함께 중국 예술품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최근 십 년 동안 중국 예술품시장에는 화랑업, 경매업, 예술박람회가 삼위일체가 된 시장경영 구조가 확립되었으며,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규범화가 이루어져 국제예술품시장에서 그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개혁개방 : 예술품시장 번영의 원동력
개혁개방 전 중국 예술품시장은 1950년대 ‘공사합영(公私合營: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투자, 경영)’과 ‘문화대혁명(1966~1969년)’을 거쳐 극도의 침체기에 들어섰으며, 골동품 상점도 한때 자취를 감추었다. 오랜 시간 동안, 중국에는 서예 작품과 문방구를 다루는 룽바오자이(榮寶齋), 둬윈쉬안(朵雲軒) 등 소수의 국유 서예작품 점포와 문화재 수집 및 대외판매를 담당하는 국영 문화재 상점만이 있었다. 문화재와 예술품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거래될 수 있었고, 수 천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골동품 및 서예작품 수집 풍습은 민간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개혁개방은 이러한 중국 예술품시장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1980년 대에 중국 관광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전국 중대형 도시 특히 동부연해지역 개방도시와 관광도시에 서예작품과 장식화를 전문 경영하는 중소형 화랑이 나타났다. 외국 관광객의 선호를 받으면서, 중국 서예작품은 중요한 외환 창출 제품이 되었다. 대외 문화예술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공예 미술품 및 유명 화가 서예 복제품이 수출되면서 중국 예술품 수출시장이 발전하게 되었다.
1990년대는 중국 예술품시장이 대대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출범으로 중국 예술품시장은 호황기를 맞이했다.
△1991년 호주인 Brian Wallace는 최초로 베이징에 현대적인 화랑 ‘훙먼화랑(紅門畫廊)’을 개설했다. △1992년 10월 3일 선전시동산경매점(深圳市動産拍賣行)은 선전박물관에서 ‘제1회 당대 중국 유명 화가 서예작품 경매회’를 개최하여 중국 예술품 경매의 서막을 열었다. △1992년 10월 11일 국가문물국과 베이징시문물국의 비준을 받아 ‘1992년 베이징 국제 경매회’가 개최되었으며, 중국 문화재 경매시장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1993년 5월 중국 최초의 경매주식회사 중국자더국제문화진품경매유한회사(中國嘉德國際文化珍品拍賣有限公司)가 베이징에서 설립되어 현대적인 경매 기업제도 구축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993년 11월 16일 ‘제1회 중국 예술 박람회가 광저우중국수출제품교역회빌딩(廣州中國出口商品交易會大厦)에서 개최되었다. 이처럼 중국 예술시장의 새로운 시대가 서서히 열리게 되었다.
2001년 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고, 중국의 대외개방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 중국경제의 고도성장과 함께 중국에서 유화 및 영상 전시회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예술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국 예술품시장은 짧은 조정기를 거친 후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예술품시장이 발전하자 관련 경영제도와 법률/법규도 先 실천 後 이론화, 先 시장화 後 규범화 현상을 보이며 점차 완비되었다. 1997년 《중화인민공화국경매법》이 발표된 후 중국 경매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2002년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문물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민간 골동품과 서예작품 수집이 나날이 활발해졌고 민영기업이 대거 예술품시장에 진출했으며 시장수요가 증가했다.
◆ 시장번영: 예술 발전의 지원력
전체 중국의 시장경제에서 예술품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지만, 객관적 의미에서 경제 발전 구조를 변화시켰으며, 특히 문화 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선 시장을 통해 중국 예술품의 국제시장 진출, 중국 문화예술의 국제화, 중국 문화예술의 세계 전파가 이루어졌다.
해마다 경매회사는 정교한 컬러 경매 도록을 대량 인쇄하여, 국내외 소장가와 문화재 매니아들에게 무료로 송부하고, 경매회가 열릴 때마다 사흘간 전시회를 동반 개최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도록 열람과 전시회 참관을 통해, 사람들은 중국역사, 회화, 서법, 공예 및 예술품 감정 관련 지식을 얻고 문화재와 예술품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중국의 문화예술은 폭 넓게 전파되었고 대중의 문화수준과 문화재 보호 의식도 은연중에 제고되었다. 또한, 언론 매체의 시장 홍보도 문화재 지식 및 문화재 정책의 홍보와 교육 확대에 일조했다.
예술품시장을 통해 국가박물관도 진귀한 골동품과 서예작품을 발견하고 소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민영 박물관과 민영 예술소장기관의 발전이 촉진됐다. 특히, 전 세계적인 경매업의 문화재 수집으로 해외로 유실된 문화재를 되찾게 되었다.
이전에 중국 국영박물관 소장 문화재는 주로 국가조달, 민간인 기증,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얻어졌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방식의 한계가 두드러졌으며, 예술품 시장이 박물관 문화재 소장의 새로운 루트를 마련해주었다.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은 예술품 경매시장에서 1995년 《십영도(十詠圖)》, 2003년《출사송(出師)》을 구입했으며, 국가문물국도 2002년 예술품 경매시장을 통해 《연산명(研山銘)》을 구입했다. 상하이박물관은 1997년 해외에서 반입된 ‘옹씨장서(翁氏藏書)’ 등의 문화재를 구입했다. 10여 년 간 경매시장을 통해 구입한 문화재가 8만 여 점에 이르며, 여기에는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에서 분실된 문화재 등 진귀한 보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예술품 소장 붐은 매번 관련 예술창작 발전을 촉진했다. 현재 번성하고 있는 예술품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경매시장으로 예술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었고, 현대 예술의 발전도 촉진되었다. 1970년대 말 유명화가의 서예작품 경매가격은 1평방미터당 10여위안에 그쳤으나, 현재는 수 만위안 심지어 10여 만위안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최근 30년 간 중국화의 경매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화안(畵案) 한 장에서 수십 평방미터의 화실, 심지어 바로 화랑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 작업실로 변화되었으며, 30년 동안 중국 미술가의 생활과 작업 여건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 명예와 부를 모두 얻은 예술가가 많아졌으며, 개혁개방 이전에 화가들이 급한 일 때문에 그림을 종이로 바꿨던 비참한 일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화랑은 일급 예술시장의 주체로서 포지셔닝 및 경영 이념에 따라 미술가를 발굴, 양성, 보급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현재 베이징에는 전문적인 화랑이 500개가 넘어 집약적인 경영 형태를 보이고 있다. 798, 쑹좡(宋莊), 쒀자춘(索家村), 페이자춘(費家村) 등 지역은 화랑과 예술가의 집산지가 되었다. 2005년 이후 외국의 고급 화랑이 속속 들어오면서 베이징 화랑이 국제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해외 화랑이 상호보완 되면서 예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중국 예술가들에게 더 넓은 예술안목과 많은 발전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미술 창작작업은 이러한 외부환경이 촉매로 작용하여 더욱 활성화되었다.
◆ 학술규범: 시장 발굴의 잠재력
중국 예술품시장은 10여 년간의 고도성장을 거쳐 베이징을 중심으로 상하이, 항저우(杭州), 광둥(廣東)으로 뻗어나갔으며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현재 중국 예술품시장에는 국유기업, 민영기업, 외자기업, 합자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병존하고 있으며, 시장에서 화랑, 경매회, 예술박람회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또한, 예술품 에이전트의 활동이 날로 활발해지고 있으며, 소장 품목 범위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예술품시장에는 규모화, 명품화, 다원화 발전추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예술품시장에서 학술계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양날의 검’이다. 현재 예술품 투자는 주식, 부동산 투자와 더불어 3대 투자로 불리지만, 중국 예술품시장의 성격은 이미 소장에서 투자로 전환되었고, 투기적 색채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시장에는 가짜 사진작품과 이미테이션이 난무하고 있으며, 심지어 해외에서 반입된 문화재 중에도 이미테이션이 적지 않다. 사재기, 조작, 빈번한 거래 등 투기행위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일부 학술계 인사와 기관이 학술적 양심을 버려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문화재/예술품 감정 및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대 예술이 소비화, 오락화, 복제화, 동질화의 경향을 보이면서 예술 창작능력이 저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운영이 규범화 되지 않아 1급과 2급 작품이 뒤바뀌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관련 법규도 미비하여 소장가, 경영자, 학자들은 중국 예술품시장을 가까이하지 않고 있다. 경영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유감스러워 하고, 학자들은 애석해 하고 있다. 현재 중국 예술품시장이 초호황기를 지나 한파를 맞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중국 예술품시장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중국 경제 발전을 내다보았다. 현실에 입각하여 서구 예술품시장 발전 규칙에 대한 참조를 기반으로, 이성적인 조정 및 학술적 규범화를 거쳐 거대한 시장 잠재력을 발굴해야만 중국 예술품시장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 쩡판즈曾梵志)의 유화《면구계열(面具系列: 가면 시리즈) 1996 No.6》이 2008년 5월 24일 홍콩 ‘크리스티스(Christies) 2008 춘계 경매회’에서 6704만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어 화제가 되었다.
‘난세에는 금이 제일이요, 태평성세에는 골동품과 서예작품 수집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개혁개방 바람과 함께 중국 예술품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최근 십 년 동안 중국 예술품시장에는 화랑업, 경매업, 예술박람회가 삼위일체가 된 시장경영 구조가 확립되었으며,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규범화가 이루어져 국제예술품시장에서 그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개혁개방 : 예술품시장 번영의 원동력
개혁개방 전 중국 예술품시장은 1950년대 ‘공사합영(公私合營: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투자, 경영)’과 ‘문화대혁명(1966~1969년)’을 거쳐 극도의 침체기에 들어섰으며, 골동품 상점도 한때 자취를 감추었다. 오랜 시간 동안, 중국에는 서예 작품과 문방구를 다루는 룽바오자이(榮寶齋), 둬윈쉬안(朵雲軒) 등 소수의 국유 서예작품 점포와 문화재 수집 및 대외판매를 담당하는 국영 문화재 상점만이 있었다. 문화재와 예술품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거래될 수 있었고, 수 천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골동품 및 서예작품 수집 풍습은 민간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개혁개방은 이러한 중국 예술품시장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1980년 대에 중국 관광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전국 중대형 도시 특히 동부연해지역 개방도시와 관광도시에 서예작품과 장식화를 전문 경영하는 중소형 화랑이 나타났다. 외국 관광객의 선호를 받으면서, 중국 서예작품은 중요한 외환 창출 제품이 되었다. 대외 문화예술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공예 미술품 및 유명 화가 서예 복제품이 수출되면서 중국 예술품 수출시장이 발전하게 되었다.
1990년대는 중국 예술품시장이 대대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출범으로 중국 예술품시장은 호황기를 맞이했다.
△1991년 호주인 Brian Wallace는 최초로 베이징에 현대적인 화랑 ‘훙먼화랑(紅門畫廊)’을 개설했다. △1992년 10월 3일 선전시동산경매점(深圳市動産拍賣行)은 선전박물관에서 ‘제1회 당대 중국 유명 화가 서예작품 경매회’를 개최하여 중국 예술품 경매의 서막을 열었다. △1992년 10월 11일 국가문물국과 베이징시문물국의 비준을 받아 ‘1992년 베이징 국제 경매회’가 개최되었으며, 중국 문화재 경매시장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1993년 5월 중국 최초의 경매주식회사 중국자더국제문화진품경매유한회사(中國嘉德國際文化珍品拍賣有限公司)가 베이징에서 설립되어 현대적인 경매 기업제도 구축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993년 11월 16일 ‘제1회 중국 예술 박람회가 광저우중국수출제품교역회빌딩(廣州中國出口商品交易會大厦)에서 개최되었다. 이처럼 중국 예술시장의 새로운 시대가 서서히 열리게 되었다.
2001년 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고, 중국의 대외개방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 중국경제의 고도성장과 함께 중국에서 유화 및 영상 전시회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예술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국 예술품시장은 짧은 조정기를 거친 후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예술품시장이 발전하자 관련 경영제도와 법률/법규도 先 실천 後 이론화, 先 시장화 後 규범화 현상을 보이며 점차 완비되었다. 1997년 《중화인민공화국경매법》이 발표된 후 중국 경매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2002년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문물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민간 골동품과 서예작품 수집이 나날이 활발해졌고 민영기업이 대거 예술품시장에 진출했으며 시장수요가 증가했다.
◆ 시장번영: 예술 발전의 지원력
전체 중국의 시장경제에서 예술품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지만, 객관적 의미에서 경제 발전 구조를 변화시켰으며, 특히 문화 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선 시장을 통해 중국 예술품의 국제시장 진출, 중국 문화예술의 국제화, 중국 문화예술의 세계 전파가 이루어졌다.
해마다 경매회사는 정교한 컬러 경매 도록을 대량 인쇄하여, 국내외 소장가와 문화재 매니아들에게 무료로 송부하고, 경매회가 열릴 때마다 사흘간 전시회를 동반 개최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도록 열람과 전시회 참관을 통해, 사람들은 중국역사, 회화, 서법, 공예 및 예술품 감정 관련 지식을 얻고 문화재와 예술품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중국의 문화예술은 폭 넓게 전파되었고 대중의 문화수준과 문화재 보호 의식도 은연중에 제고되었다. 또한, 언론 매체의 시장 홍보도 문화재 지식 및 문화재 정책의 홍보와 교육 확대에 일조했다.
예술품시장을 통해 국가박물관도 진귀한 골동품과 서예작품을 발견하고 소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민영 박물관과 민영 예술소장기관의 발전이 촉진됐다. 특히, 전 세계적인 경매업의 문화재 수집으로 해외로 유실된 문화재를 되찾게 되었다.
이전에 중국 국영박물관 소장 문화재는 주로 국가조달, 민간인 기증,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얻어졌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방식의 한계가 두드러졌으며, 예술품 시장이 박물관 문화재 소장의 새로운 루트를 마련해주었다.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은 예술품 경매시장에서 1995년 《십영도(十詠圖)》, 2003년《출사송(出師)》을 구입했으며, 국가문물국도 2002년 예술품 경매시장을 통해 《연산명(研山銘)》을 구입했다. 상하이박물관은 1997년 해외에서 반입된 ‘옹씨장서(翁氏藏書)’ 등의 문화재를 구입했다. 10여 년 간 경매시장을 통해 구입한 문화재가 8만 여 점에 이르며, 여기에는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에서 분실된 문화재 등 진귀한 보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예술품 소장 붐은 매번 관련 예술창작 발전을 촉진했다. 현재 번성하고 있는 예술품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경매시장으로 예술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었고, 현대 예술의 발전도 촉진되었다. 1970년대 말 유명화가의 서예작품 경매가격은 1평방미터당 10여위안에 그쳤으나, 현재는 수 만위안 심지어 10여 만위안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최근 30년 간 중국화의 경매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화안(畵案) 한 장에서 수십 평방미터의 화실, 심지어 바로 화랑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 작업실로 변화되었으며, 30년 동안 중국 미술가의 생활과 작업 여건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 명예와 부를 모두 얻은 예술가가 많아졌으며, 개혁개방 이전에 화가들이 급한 일 때문에 그림을 종이로 바꿨던 비참한 일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화랑은 일급 예술시장의 주체로서 포지셔닝 및 경영 이념에 따라 미술가를 발굴, 양성, 보급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현재 베이징에는 전문적인 화랑이 500개가 넘어 집약적인 경영 형태를 보이고 있다. 798, 쑹좡(宋莊), 쒀자춘(索家村), 페이자춘(費家村) 등 지역은 화랑과 예술가의 집산지가 되었다. 2005년 이후 외국의 고급 화랑이 속속 들어오면서 베이징 화랑이 국제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해외 화랑이 상호보완 되면서 예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중국 예술가들에게 더 넓은 예술안목과 많은 발전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미술 창작작업은 이러한 외부환경이 촉매로 작용하여 더욱 활성화되었다.
◆ 학술규범: 시장 발굴의 잠재력
중국 예술품시장은 10여 년간의 고도성장을 거쳐 베이징을 중심으로 상하이, 항저우(杭州), 광둥(廣東)으로 뻗어나갔으며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현재 중국 예술품시장에는 국유기업, 민영기업, 외자기업, 합자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병존하고 있으며, 시장에서 화랑, 경매회, 예술박람회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또한, 예술품 에이전트의 활동이 날로 활발해지고 있으며, 소장 품목 범위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예술품시장에는 규모화, 명품화, 다원화 발전추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예술품시장에서 학술계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양날의 검’이다. 현재 예술품 투자는 주식, 부동산 투자와 더불어 3대 투자로 불리지만, 중국 예술품시장의 성격은 이미 소장에서 투자로 전환되었고, 투기적 색채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시장에는 가짜 사진작품과 이미테이션이 난무하고 있으며, 심지어 해외에서 반입된 문화재 중에도 이미테이션이 적지 않다. 사재기, 조작, 빈번한 거래 등 투기행위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일부 학술계 인사와 기관이 학술적 양심을 버려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문화재/예술품 감정 및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대 예술이 소비화, 오락화, 복제화, 동질화의 경향을 보이면서 예술 창작능력이 저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운영이 규범화 되지 않아 1급과 2급 작품이 뒤바뀌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관련 법규도 미비하여 소장가, 경영자, 학자들은 중국 예술품시장을 가까이하지 않고 있다. 경영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유감스러워 하고, 학자들은 애석해 하고 있다. 현재 중국 예술품시장이 초호황기를 지나 한파를 맞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중국 예술품시장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중국 경제 발전을 내다보았다. 현실에 입각하여 서구 예술품시장 발전 규칙에 대한 참조를 기반으로, 이성적인 조정 및 학술적 규범화를 거쳐 거대한 시장 잠재력을 발굴해야만 중국 예술품시장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