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주석 1인천하 … 주도권 틀어쥐고 개혁개방 '박차’ 때를 기다려 실권 쥐면 배짱 있게 밀어붙여 … 푸젠성에서 7년 기다리기도 제19차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1인 천하'의 기반을 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화된 권력을 바탕으로 개혁개방에 가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시진핑은 지난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9기 정치국 상무위원 소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개혁개방은 현재 중국 운명을 결정하는 관건이고, 40년의 개혁개방으로 중국 인민의 샤오캉(중산층 사회)을 실현해 갈수록 부유해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경험을 모아 개방을 확대하며 개혁개방을 상호 촉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26일 블룸버그통신에서 소개한 전문가들 의견도 시진핑이 전례와 달리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권력 장악력을 강화한 상황에서 집권 2기를 맞은 만큼 5년 전부터 약속한 경제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진핑이 살아온 과정을 종합해보면 그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때를 기다리지만 조건이 성숙하고 주도권을 잡게 되면 배짱 있게 밀어붙이는 지도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량자허에서 경험 = 시진핑이 1969년부터 7년 동안 산시성 옌안(延安) 부근 량자허에 지식청년으로 하방생활을 할 때 여덟 번째 공청단 가입 신청서를 써서 승인을 받아냈다. 칠전팔기(七顚八起)였다. 공산당 입당도 열 번이나 입당 신청서를 제출해 열한 번째 입당했다. 5년 동안 기다려 량자허 서기에 임명된 후 시진핑은 혁신적인 몇 가지 업적을 이루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메탄가스화 사업이다. 량자허촌에 지금도 눈에 띄는 시설물이 하나 있다.
1974년 당시 대대 당지부서기로 있었던 시진핑이 주민들을 이끌고 만들었던 메탄가스 탱크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그는 촌민들을 이끌고 메탄가스 시설을 만드느라 온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썼다. 토산에 나무가 없어 땔감이 부족한 상황에서 메탄가스 생산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촌 전체의 70% 이상이 메탄가스를 사용하도록 했고, 농민들이 메탄가스로 불을 밝히고 밥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날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도ㆍ감독하는 메탄가스 전문가가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시진핑은 옌안지구 하방 선진 지식청년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정딩에서 경험 = 시진핑은 1982년 지방근무를 자청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자룡의 고향 허베이(河北)성 정딩현(正定)현 부서기로 부임했다.
시진핑은 정딩현에서 관광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거두었다.
CCTV에서 홍루몽 임시 세트장을 짓고 촬영이 끝난 후 철거하기로 결정했지만 이것을 보존해 영화ㆍTV 드라마 촬영 단지를 만들었다.
시진핑의 이러한 발상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창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쉽게 동의할 리 없었다. 시진핑은 정딩현장의 도움을 얻어 어렵사리 계획을 통과시켰고 결과는 대박이 터졌다.
◆푸젠성 푸저우에서 경험 = 시진핑은 1985년 푸젠(福建)성 샤먼시 상무위원회로 부임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푸젠성에서 17년 반 동안 근무하는 동안 7년 동안 때를 기다렸다.
1990년 5월 시진핑에 푸젠성 푸저우에 부임했을 때는 보수적이던 정치·사회 분위기로 인해 특별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1992년 봄 시진핑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덩샤오핑이 남방을 순시하며 광둥에서 유명한 남순강화를 발표했다.
시진핑은 당장 푸저우 정부기관의 업무 효율과 속도를 신속히 끌어올렸다.
푸저우시 기관은'특별한 일은 특별하게 처리하고, 즉시 처리한다(馬上就辦)'는 행동준칙을 정착시켰다. 요즘 말로 원스톱서비스(One stop service)를 도입한 것이다.
시진핑이 정무를 주관하던 기간 동안 푸저우시에 국가급 타이완 기업 투자구, 타이완 공업촌 등을 설립해 타이완 자본인 둥난자동차(東南汽車), 관제전자(冠捷電子), 중화브라운관(中華映管) 등 대기업을 푸저우에 유치했다.
중국 최초의 화교자본 경제기술개발구도 시진핑이 푸저우에서 정무를 주관할 때 설립한 것이다. 당시 시진핑의 업무 방식은 특혜시비가 일 정도로 과감하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저장성의 혁신 = 시진핑은 2002년 49세에 저장성당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시진핑은 저장성에서 4년 반 동안 경제 발전을 선도하고 사회 수준도 크게 향상시켜 여러 분야에서 저장성을 전국적으로 풍요로운 곳으로 이끌었다. '저장모델'은 그의 탁월한 정치적 업적을 증명하고 있다.
시진핑은 취임한지 반년이 지나서 정밀한 조사연구를 거쳐 저장위원회 제11기 제4차 전체(확대)회의에서 '8가지 우세'를 발휘하고, '8가지 조치'를 추진하자는 '팔팔전략'을 발표했다.
당시 중국사회과학원은 국정조사연구 중점 프로젝트를 개설해 이를 평가했으며 중앙으로부터 찬사와 지지를 받았다.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의 저장성판으로 결국 중앙으로 진출하는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반면 거시적 조정ㆍ통제정책에 반대하던 천량위 상하이시 서기는 2006년 실각했고 그 자리를 시진핑에게 내줘야 했다.
2007년 3월 상하이시당위원회 서기에 부임한 시진핑은 제 17차 당대회를 통해 대권가도를 달리게 됐다.
◆개혁파 전면에 등장 = 26일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 등에 따르면 신임 상무위원 중 왕후닝·자오러지·리잔수·왕양은 개혁파 인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사로 분류되며, 이들의 등장으로 개혁 조치가 잇따를 전망이다.
시진핑 집권 2기 지도부가 국가 개입을 더 늘리는 공급측 개혁을 포함해 농촌 토지, 금융, 대외 개방, 생태환경·감독 관리, 행정 관리, 국가 감찰, 간부 고과 평가 등 8대 분야에서 대대적인 개혁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측 개혁은 시진핑의 핵심정책으로 제조 강국, 산업 업그레이드 등 전반적인 경제구조 전환에 방점을 찍고 있으며 집권 2기를 맞이해 더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제조 강국 건설과 전통 산업의 변모, 현대 서비스업 발전, 인프라 네트워크 건설 가속화가 공급측 개혁의 핵심이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진핑 집권1기 5년간 1500여개의 개혁 조치가 나왔으며, 이는 매일 평균 1건의 새 조치가 나온 것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시진핑 집권2기에도 새 개혁 조치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여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정책·조치의 변화를 면밀하게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