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0% 수익률’ 중국 헤지펀드 제왕은 어떻게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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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03-31 23:06|본문
‘3270% 수익률’ 중국 헤지펀드 제왕은 어떻게 몰락했나
전설적 투자가 쉬샹, 중국경제 영웅에서 부패의 상징으로 몰락하기까지
입력 2016-03-30 19:00
스마트폰이 낮게 울었다. 남자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경찰이 쫓고 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떠들썩한 고향 마을잔치를 뒤로 하고 남자는 차에 올랐다. 당장 상하이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서두르면 고속도로를 타고 항저우만 과해대교를 건널 수 있을 테고, 경찰의 추적도 뿌리칠 수 있을지 몰랐다.
매연에 그을린 고향의 담벼락과 어릴 적 뛰놀던 펑화강을 지나 차는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다리에 도착하자 일이 틀어진 걸 깨달았다. 지나려던 과해대교 15번 출입구는 이미 경찰이 막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무테안경에 하얀 아르마니 코트, 회색빛 버튼다운 셔츠를 입은 남자의 차분한 모습은 경찰의 호들갑스런 체포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입력 2016-03-30 19:00
스마트폰이 낮게 울었다. 남자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경찰이 쫓고 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떠들썩한 고향 마을잔치를 뒤로 하고 남자는 차에 올랐다. 당장 상하이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서두르면 고속도로를 타고 항저우만 과해대교를 건널 수 있을 테고, 경찰의 추적도 뿌리칠 수 있을지 몰랐다.
매연에 그을린 고향의 담벼락과 어릴 적 뛰놀던 펑화강을 지나 차는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다리에 도착하자 일이 틀어진 걸 깨달았다. 지나려던 과해대교 15번 출입구는 이미 경찰이 막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무테안경에 하얀 아르마니 코트, 회색빛 버튼다운 셔츠를 입은 남자의 차분한 모습은 경찰의 호들갑스런 체포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11월 1일 쉬샹의 체포 모습. (출처: 웨이보)
중국 주식시장 폭락으로 세계경제가 뒤숭숭하던 지난해 11월 1일, 중국 ‘헤지펀드의 왕’으로 불린 전설적 투자가 쉬샹(39·사진)은 부패혐의로 공안당국에 긴급체포 됐다. 표정 없는 얼굴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 그의 체포 장면은 여론을 한동안 뒤흔들었다. 체포된 도시는 조모의 100세 생일잔치를 벌이기 위해 들린 고향, 저장성 동부 닝보(寧波)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경제의 신화적 인물에서 부패의 상징으로 최근 몰락한 쉬샹의 일대기를 29일(현지시간) 다뤘다.
원문 기사 링크
◆ 주식시장과 함께 탄생한 성공신화
은퇴 공장노동자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쉬샹은 가난한 마을의 공공주택에서 사는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3년 중국에서는 처음 주식시장이 열렸다. 독학으로 서구의 주식이론 등을 공부한 쉬샹은 부모에게서 빌린 3만 위안(약 500만원)으로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 수익을 쌓아나갔다.
2년 만인 19세 나이에 이미 쉬샹의 명성은 자자했다. 인근 조직폭력배들이 그를 자신의 개인투자담당으로 쓰기 위해 세력다툼을 벌인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20대에 접어든 1990년대 후반, 쉬샹은 주변인들을 모아 ‘영파감사대(寧波敢死隊)’라는 비공식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낮은 가격에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단기투매 하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냈다. 공안당국은 2003년 쉬샹이 일하던 직장을 덮쳐 조사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 중국의 칼 아이칸
2005년 쉬샹은 고향 닝보를 벗어나 상하이로 이사했다. 좀더 권력층과 돈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알맞은 시기에 기회도 찾아왔다. 중국 정부는 이 해부터 헤지펀드(단기이익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개인모집 투자신탁) 사업을 승인했다. 이때를 계기로 중국의 최상위층이 주식시장에 적극 뛰어들었다.
2009년 쉬샹은 ‘쩌시(澤熙)’ 투자회사를 창립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마오쩌둥 전 주석과 청나라 강희제에서 한 글자씩을 딴 이름이었다. 2010년 10억 위안으로 첫 번째 펀드상품을 내놓은 쩌시 투자회사는 이때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해나갔다.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쩌시 투자회사의 상품 중 하나가 내놓은 수익률은 무려 3270%였다. 같은 기간 상하이 주식시장이 겨우 11.6% 커진 데 비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에게는 ‘중국의 칼 아이칸’, ‘전설의 쉬’ 등의 별명이 붙었다.
◆ 토사구팽(兎死狗烹)
쉬샹에게는 꾸준히 악소문이 뒤따랐다. 권력층 자녀들을 뜻하는 ‘태자당(太子黨)’의 돈을 주가조작으로 부풀리며 정부로부터 협력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중국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서도 쩌시 투자회사는 성공가도를 내달렸다. 다른 모든 투자상품들이 몰락해 가는 와중에도 지난해 초 쩌시가 운영하는 한 상품의 수익은 357%에 달했으며 나머지 상품도 최소 20%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가 주식시장 회복을 위해 구입한 주식들은 묘하게 쩌시의 상품들이 구입한 주식과 맞아 떨어져갔다.
중국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여론은 쉬샹에게 적대적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9월 들어서는 쉬샹이 부패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게시물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낳았다. 결국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중국 공안당국은 쉬샹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가 돈을 벌어다준 권력층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쉬샹이 11월 당국에 체포된 뒤 쩌시 투자회사는 산산조각이 났다.
현재 쉬샹은 내부자거래 혐의로 공안당국에 비공개 구금 중이다. 중국 공안당국은 그 외에도 주식시장을 교란시킨 혐의로 유명 투자가와 언론인들을 잡아가뒀다.
현지에서는 중국 정부가 쉬샹을 대중의 분노를 희석시킬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가는 NYT에 “이미 부패는 상상을 넘어설만치 만연해있다”면서 “중국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도 부패 혐의로 잡아 가둘 수 있다”고 전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원문 기사 링크
◆ 주식시장과 함께 탄생한 성공신화
은퇴 공장노동자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쉬샹은 가난한 마을의 공공주택에서 사는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3년 중국에서는 처음 주식시장이 열렸다. 독학으로 서구의 주식이론 등을 공부한 쉬샹은 부모에게서 빌린 3만 위안(약 500만원)으로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 수익을 쌓아나갔다.
2년 만인 19세 나이에 이미 쉬샹의 명성은 자자했다. 인근 조직폭력배들이 그를 자신의 개인투자담당으로 쓰기 위해 세력다툼을 벌인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20대에 접어든 1990년대 후반, 쉬샹은 주변인들을 모아 ‘영파감사대(寧波敢死隊)’라는 비공식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낮은 가격에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단기투매 하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냈다. 공안당국은 2003년 쉬샹이 일하던 직장을 덮쳐 조사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 중국의 칼 아이칸
2005년 쉬샹은 고향 닝보를 벗어나 상하이로 이사했다. 좀더 권력층과 돈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알맞은 시기에 기회도 찾아왔다. 중국 정부는 이 해부터 헤지펀드(단기이익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개인모집 투자신탁) 사업을 승인했다. 이때를 계기로 중국의 최상위층이 주식시장에 적극 뛰어들었다.
2009년 쉬샹은 ‘쩌시(澤熙)’ 투자회사를 창립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마오쩌둥 전 주석과 청나라 강희제에서 한 글자씩을 딴 이름이었다. 2010년 10억 위안으로 첫 번째 펀드상품을 내놓은 쩌시 투자회사는 이때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해나갔다.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쩌시 투자회사의 상품 중 하나가 내놓은 수익률은 무려 3270%였다. 같은 기간 상하이 주식시장이 겨우 11.6% 커진 데 비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에게는 ‘중국의 칼 아이칸’, ‘전설의 쉬’ 등의 별명이 붙었다.
◆ 토사구팽(兎死狗烹)
쉬샹에게는 꾸준히 악소문이 뒤따랐다. 권력층 자녀들을 뜻하는 ‘태자당(太子黨)’의 돈을 주가조작으로 부풀리며 정부로부터 협력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중국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서도 쩌시 투자회사는 성공가도를 내달렸다. 다른 모든 투자상품들이 몰락해 가는 와중에도 지난해 초 쩌시가 운영하는 한 상품의 수익은 357%에 달했으며 나머지 상품도 최소 20%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가 주식시장 회복을 위해 구입한 주식들은 묘하게 쩌시의 상품들이 구입한 주식과 맞아 떨어져갔다.
중국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여론은 쉬샹에게 적대적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9월 들어서는 쉬샹이 부패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게시물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낳았다. 결국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중국 공안당국은 쉬샹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가 돈을 벌어다준 권력층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쉬샹이 11월 당국에 체포된 뒤 쩌시 투자회사는 산산조각이 났다.
현재 쉬샹은 내부자거래 혐의로 공안당국에 비공개 구금 중이다. 중국 공안당국은 그 외에도 주식시장을 교란시킨 혐의로 유명 투자가와 언론인들을 잡아가뒀다.
현지에서는 중국 정부가 쉬샹을 대중의 분노를 희석시킬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가는 NYT에 “이미 부패는 상상을 넘어설만치 만연해있다”면서 “중국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도 부패 혐의로 잡아 가둘 수 있다”고 전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