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산문(고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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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8-15 09:23|본문
동주(東周)의 문학은 크게 볼 때 ≪서경(書經)≫을 계승한 ≪좌전(左傳)≫·≪국어(國語)≫·≪전국책(戰國策)≫ 등의 "기사(紀事)의 글"과 이 시대에 성행한 제자(諸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상적인 기록인 ≪논어(論語)≫·≪맹자(孟子)≫·≪묵자(墨子)≫·≪장자(莊子)≫·≪한비자(韓非子)≫·≪여씨춘추(呂氏春秋)≫ 등의 "입언(立言)의 글" 두 가지가 있다. 특히 유가·묵가·도가·법가 등 이른바 제자백가에 의하여 이루어진 저술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문학을 대표한다.
☞ 기사(紀事)의 글
① ≪춘추(春秋)≫
기사(紀事)의 글 중 사상사상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이다. ≪춘추≫는 노(魯)나라에 전해 오는 사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공자가 노(魯) 은공(隱公) 원년(BC 722)에서 애공(哀公) 14년(BC 481)에 이르는 사이의 중요한 일의 기록을 편년체(編年體)로 엮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춘추≫의 글이 매우 간략하게 기술된 것을 보면 중국의 문장은 춘추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어떤 일의 배경이나 사건의 진전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서술하기 어려운 단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추≫는 오히려 그것을 보충 해설한 ≪좌전(左傳)≫으로 말미암아 후세에 널리 읽혀졌다고 할 수 있다. ≪춘추≫의 전(傳)에는 ≪좌전≫ 외에도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이 있으나, 교의(敎義) 문답식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문장은 문학적인 면에서 ≪좌전≫보다 훨씬 뒤진다. ≪좌전≫은 ≪춘추좌씨전≫ 또는 ≪좌씨춘추≫라고도 부르는데, 본시는 독립된 저술이었던 것을 후세에 와서 ≪춘추≫를 해설하는 것으로 재편한 것인듯 하다.
② ≪국어(國語)≫
춘추시대의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쓴 책으로는 ≪좌전≫ 이외에도 ≪국어≫가 있다. ≪좌전≫이 노나라 왕실을 중심으로 한 편년체의 기록인 데 비하여 ≪국어≫는 주어(周語)·노어(魯語)·제어(齊語) 등으로 그 시대 나라 별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옛날에는 ≪좌전≫과 ≪국어≫가 모두 공자와 같은 시대의 좌구명(左邱明)이 지은 것으로 믿는 이가 많았으나, 이것들은 동일인의 글일 수가 없는 것이며, 대체로 전국시대의 작품일 것이다.
≪좌전≫과 ≪국어≫는 ≪서경≫이나 그 이전의 산문보다는 훨씬 발달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서경≫이 고대 성현들의 언동을 바탕으로 고원(高遠)한 이상세계의 추구에 시종(始終)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이들은 유가적인 도덕관념이나 예(禮)를 중시하면서도 현실적인 치국(治國)의 여러 가지 양상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임금이나 신하들은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인의도덕(仁義道德)을 내세우면서도 적을 만나면 계략을 써서라도 싸워 이기려 들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그것은 다양한 인물들에 의한 여러 가지 사건을 뜻하기 때문에 그 내용도 재미있고 문장도 생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기사"의 글들은 한결같이 사실(史實)을 빙자하여 유가의 정론(政論)이나 윤리(倫理)를 강조하는 내용인데, ≪국어≫는 ≪좌전≫보다도 훨씬 그러한 설교의 성격을 밖으로 드러내보이고 있다.
③ ≪전국책(戰國策)≫
≪전국책≫은 동주(東周) 정왕(定王) 16년(BC 453)으로부터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BC 246)에 이르는 전국시대의 사건들을 그 시대 12국 별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판본들은 대체로 이전의 자료들은 한대(漢代)에 유향(劉向)이 정리하여 ≪전국책≫이라 이름지은 것이어서 내용에 적지않은 혼란이 있다.
≪전국책≫은 전국시대의 游士나 策士들의 활약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데, ≪좌전≫이나 ≪국어≫보다도 실제의 역사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져 있다. 전국시대에는 정치의 구심점이 되어온 주(周) 왕실이 완전히 권위를 잃어 여러 나라들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싸움을 벌인 때임으로 이전에 강조되던 유가의 윤리도 ≪전국책≫에서는 별로 중시되지 않는다. 나라나 개인이나 자기의 목적이나 이익의 추구를 위하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얘기가 재미있고 인간의 정황이나 세사(世事)의 실상을 꾸밈없이 표현해 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예기들이 주는 교훈에 대하여는 간단히 몇 마디 해설만을 하고 자세한 설명은 피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얘기를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인간사에 대한 교훈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정론(政論)을 얘기하거나 윤리를 강조하는 긴 말의 인용은 ≪좌전≫보다도 ≪국어≫·≪전국책≫으로 갈수록 발달한다. 이러한 긴 이론의 전개에는 말하는 사람의 위엄이나 권위 같은 것이 필요함으로 그 문장이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 같다. ≪국어≫는 ≪좌전≫보다 이런 긴 말의 인용이 많고 ≪전국책≫은 또 ≪국어≫보다 더 많을 뿐만 아니라, 수사나 논리도 훨씬 발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좌전≫에는 긴 논설문이 드물었던 데 비하여 ≪국어≫·≪전국책≫으로 오면 오히려 더욱 긴 말을 인용한 논설문이 각 대목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국어≫·≪전국책≫은 ≪좌전≫ 같은 생동하는 맛은 줄어들고 있지만 산문으로서의 표현기능은 두드러진 발달을 보여주고 있다. ≪전국책≫에 이르러는 중국산문의 아름다운 세련미와 사물의 표현능력이 틀을 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사실(史實)을 빌어 허구적인 글을 쓰고 있어면서도 ≪국어≫는 ≪좌전≫보다 유가의 윤리 강조가 노골적이고, ≪전국책≫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유가사상에만 구애되지 않고 유사(游士)나 책사(策士)들의 활동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여러가지 정황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기사"의 글들을 놓고 볼 때 ≪서경≫과 ≪춘추≫를 계승한 중국산문은 ≪좌전≫·≪국어≫를 거쳐 ≪전국책≫에 이르러 그 문장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할 것이다.
☞ 입언(立言)의 글
"입언"의 글이란 명확한 논리의 표현을 필요로 하는 글이기 때문에, "기사"의 글을 논할 때 얘기한 것처럼 그러한 글들은 전국시대 말엽에 이르러서야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자(諸子)들은 동주(東周)의 겸병전쟁(兼倂戰爭)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회의 격변 속에서 제각기 서로 다른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 사상의 표현방식도 그 집단의 성격에 따라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자(諸子)들은 이처럼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글을 썼기 때문에 중국산문을 크게 발전시킬 수가 있었다. 중국의 문장이 지니는 여러 가지 수사기교나 함축적이고도 아름다운 표현기능 등이 모두 이 시기에 갖추어지게 된다.
① ≪논어(論語)≫
≪논어≫는 공자의 말과 그의 제자 또는 그때 사람들과의 대화 등을 적어놓은 것으로서 앞 뒤로 별 연관이 없는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공자의 제자 또는 그들의 제자들이 자신의 견문을 기록한 것이어서 모두 말이나 대화를 사실 그대로 옮겨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그 때문에 어떤 다른 고대의 문장보다도 당시의 구어체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글 뜻이나 논점은 분명하나 대부분의 말들이 아무런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성격 등이 잘 드러나 있고 대화가 생동하고 있어,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뜻을 담고 있으며, 긴 논설문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논어≫에는 그 말을 할 적의 분위기나 하는 사람의 감정의 흐름까지도 담기어져 있어, 거듭 읽을 수록 새로운 맛이 나고 다른 경전들보다도 재미가 있다.
≪맹자(孟子)≫·≪묵자(墨子)≫·≪장자(莊子)≫의 글은 "기사"의 글 중에서는 ≪국어≫에 짝지을 수 있을 정도로 ≪논어≫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문장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말을 곧바로 인용하면서도 형식이 길고 거창하며, 문장의 논리구성이 훨씬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셋이 전혀 서로 다른 성격의 내용과 문장으로 엮어져 있다.
② ≪맹자(孟子)≫
≪맹자≫는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도 인의(仁義)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유가의 윤리를 실천하려는 작자인 맹가(孟軻)의 정열 때문에 문장이 웅변적이고 격정적이며 선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문장의 논리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으나 글 자체에는 무리가 없고 깨끗하여 알기 쉬우면서도, 여러 가지 문제에 따라 글도 격류처럼 변화하며 기상이 활달하여 막히는 데가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비유와 해학의 원용은 재미까지 있게 하여 다른 어떤 문장보다도 큰 감화력을 지니고 있다.
③ ≪묵자(墨子)≫
묵가(墨家)를 대표하는 유일한 저술로서 그 창시자인 묵적(墨翟)이 지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묵자는 "천(天)"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兼愛)"를 주장하였다. 그가 그의 시대에 한때도 멈춘 일이 없었던 전쟁을 철저히 반대하는 비전론(非戰論)을 힘주어 전개한 것도 "겸애"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유가의 예악(禮樂)과 사치를 반대하고 근검절용(勤儉節用)을 강조하며, 무엇보다도 실천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묵자의 사상은 모두 당시의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문장도 서민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그 문체는 일상용어에 가까운 질박한 것이고, 문장에 부화(浮華)한 아름다운 표현이나 화려한 수식이 없다. 대체로 시골 목사(牧師)의 설교 같은 글이어서, 중국문장으로서는 잘 지은 글 또는 좋은 글이라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각 편이 "자묵자왈(子墨子曰)"하는 허두를 사용한 직접화법으로 이루어진 문장으로서, 모두가 묵자의 중요한 사상을 설교하는 논설이 전개되고 있어, 중국 산문사상 논변문(論辯文)의 선하(先河)라고도 할 것이다. 특히 ≪묵자≫ 중에는 <경(經) 상·하>·<경설(經說) 상·하>·<대취(大取)>·<소취(小取)> 등 6편의 논리학에 관한 내용이 담긴 부분도 있어, 중국논리학사에 있어서도 이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④ ≪장자(莊子)≫
≪장자≫는 도가(道家)를 대표하는 장주(莊周)의 저술이다. 장자는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도(道)"를 추구하며 현실적인 인간의 모든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지녔던 모든 제약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좋다 나쁘다 또는 아름답다 추하다는 따위의 판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릇된 것이므로, 그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한 욕망이나 의식을 모두 초월하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제자(諸子)들이 정치 사회의 문제를 얘기한 데 비하며 장자는 초현실적인 인간본연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청신(淸新)한 자극을 주었다. 그가 추구한 인간 정신과 사상의 완전한 자유는 중국사상의 경계를 더 한층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장자≫의 초현실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 경향은 그 문장에 있어서도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문제들을 아무 곳에도 매인 데가 없는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으로 논술하고 있어, 문학상으로도 새로운 서술의 기능을 발전시키고 있다. ≪장자≫에는 직언체(直言體)나 대화의 형식을 벗어난 본격적인 서술문(敍述文)이 두드리지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논리를 위하여 꾸며낸 얘기로 이루어진 "우언(寓言)"은 문학면으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장자≫의 특징이라 여겨진다. ≪맹자≫에도 간혹 우언이 눈에 띄지마는 ≪장자≫ 처럼 철저히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장자 스스로 자기 글에는 "우언이 10분의 9 정도"라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⑤ ≪노자(老子)≫와 ≪열자(列子)≫
≪장자≫ 이외에도 도가서(道家書)로 ≪노자≫와 ≪열자≫가 전해지고 있다. ≪노자≫는 공자보다도 선배인 노자가 지은 것이라 하나, 그 문장이 짧으면서도 구체적인 사상을 서술하고 있어 많은 학자들이 전국시대 중엽 이후에 나온 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상편(上篇) 도경(道經), 하편(下篇) 덕경(德經)으로 이루어진 81절(節)의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가의 금언집(金言集) 같은 성격의 것이어서 문학사상의 의의는 ≪장자≫에 훨씬 뒤진다. ≪열자≫는 공자와 맹자의 중간쯤 되는 시기에 산 열어관(列禦冠)의 작품이라 하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적어도 한대(漢代) 이후의 위작(僞作)임이 분명한 것이다.
⑥ ≪순자(荀子)≫
중국산문이 서술과 논설의 기능을 완비한 "기사"의 글인 ≪전국책≫과 맞먹는 저술로 ≪순자≫·≪한비자≫·≪여씨춘추≫가 있다. ≪순자≫는 순경(荀卿)의 저술로써 전국말의 현실주의화한 일파의 유가사상을 대표한다. 순자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있어 이상론만을 고집하지 않고 역사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이해하여, 맹자와는 달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고 예교를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의 문장도 냉정하고 화려한 수사보다는 뜻의 창달(暢達)에 힘썼으며, 논설기능을 가일층 발전시키어 그의 글은 논리가 정연하고 주장이 분명한 위에 전체적인 구성에도 짜임새가 있다. "입언"의 글은 여기에서 본격적인 논설의 전개를 보게 되며, 후세 논설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천론(天論)>·<성악(性惡)> 같은 편은 고대 논설문의 규범이라 할만한 것이다.
⑦ ≪한비자(韓非子)≫
≪한비자≫는 한비의 저술로 법가사상을 대표한다. 한비는 순자의 현실주의적 유가사상도 흡수한 위에 도가사상도 공부하여 법가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그의 문장도 순자처럼 논리 정연하고 뜻 표현에 충실한 논설문을 쓰면서도 도가의 상상력까지도 도입하여 순자와는 달리 우미(優美)한 글로 많은 고사와 우언도 동원하고 있다. 곧 날카로운 현실감각에다 풍부한 상상력까지 겸비하여, 조리있고 분명하면서도 힘있고 날카로운 위에 수사에도 소홀하지 않아 아름다움까지도 느끼게 한다. ≪순자≫에서 한 발자국 더 발전한 산문이라 할 것이다.
⑧ ≪여씨춘추(呂氏春秋)≫
≪여씨춘추≫는 진시황의 승상을 지낸 여불위(呂不韋)가 천하통일 직전에 자기 문하의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저술 편집케 하여 이루어진 책이다. 중국의 고적 중 시종 완전한 체계를 갖춘 최초의 저술이다. 유가사상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나 잡다한 이전의 제자사상을 총합한 것이어서, 문장도 제자(諸子)들에 의하여 닦여진 기능을 종합한 듯한 것이다. 문장이 장중하고 광박(廣博)하며 미려하고도 걸리는 곳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곧 조리가 분명하고 논리도 일관되어 있어 이전의 글보다 뜻이 똑똑하여 읽기가 쉽다. 중국산문의 완성된 형태를 보는 느낌이다.
다만 이상에서 논한 제자(諸子)의 글들은 거의 모두가 작자로 알려진 사람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며, 모두 그의 제자 또는 그들의 제자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또 후세 사람들의 손질이 많이 가하여진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그 작자의 사상이 담기어 있는 것은 그 중의 일부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기사(紀事)의 글
① ≪춘추(春秋)≫
기사(紀事)의 글 중 사상사상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이다. ≪춘추≫는 노(魯)나라에 전해 오는 사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공자가 노(魯) 은공(隱公) 원년(BC 722)에서 애공(哀公) 14년(BC 481)에 이르는 사이의 중요한 일의 기록을 편년체(編年體)로 엮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춘추≫의 글이 매우 간략하게 기술된 것을 보면 중국의 문장은 춘추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어떤 일의 배경이나 사건의 진전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서술하기 어려운 단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추≫는 오히려 그것을 보충 해설한 ≪좌전(左傳)≫으로 말미암아 후세에 널리 읽혀졌다고 할 수 있다. ≪춘추≫의 전(傳)에는 ≪좌전≫ 외에도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이 있으나, 교의(敎義) 문답식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문장은 문학적인 면에서 ≪좌전≫보다 훨씬 뒤진다. ≪좌전≫은 ≪춘추좌씨전≫ 또는 ≪좌씨춘추≫라고도 부르는데, 본시는 독립된 저술이었던 것을 후세에 와서 ≪춘추≫를 해설하는 것으로 재편한 것인듯 하다.
② ≪국어(國語)≫
춘추시대의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쓴 책으로는 ≪좌전≫ 이외에도 ≪국어≫가 있다. ≪좌전≫이 노나라 왕실을 중심으로 한 편년체의 기록인 데 비하여 ≪국어≫는 주어(周語)·노어(魯語)·제어(齊語) 등으로 그 시대 나라 별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옛날에는 ≪좌전≫과 ≪국어≫가 모두 공자와 같은 시대의 좌구명(左邱明)이 지은 것으로 믿는 이가 많았으나, 이것들은 동일인의 글일 수가 없는 것이며, 대체로 전국시대의 작품일 것이다.
≪좌전≫과 ≪국어≫는 ≪서경≫이나 그 이전의 산문보다는 훨씬 발달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서경≫이 고대 성현들의 언동을 바탕으로 고원(高遠)한 이상세계의 추구에 시종(始終)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이들은 유가적인 도덕관념이나 예(禮)를 중시하면서도 현실적인 치국(治國)의 여러 가지 양상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임금이나 신하들은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인의도덕(仁義道德)을 내세우면서도 적을 만나면 계략을 써서라도 싸워 이기려 들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그것은 다양한 인물들에 의한 여러 가지 사건을 뜻하기 때문에 그 내용도 재미있고 문장도 생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기사"의 글들은 한결같이 사실(史實)을 빙자하여 유가의 정론(政論)이나 윤리(倫理)를 강조하는 내용인데, ≪국어≫는 ≪좌전≫보다도 훨씬 그러한 설교의 성격을 밖으로 드러내보이고 있다.
③ ≪전국책(戰國策)≫
≪전국책≫은 동주(東周) 정왕(定王) 16년(BC 453)으로부터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BC 246)에 이르는 전국시대의 사건들을 그 시대 12국 별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판본들은 대체로 이전의 자료들은 한대(漢代)에 유향(劉向)이 정리하여 ≪전국책≫이라 이름지은 것이어서 내용에 적지않은 혼란이 있다.
≪전국책≫은 전국시대의 游士나 策士들의 활약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데, ≪좌전≫이나 ≪국어≫보다도 실제의 역사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져 있다. 전국시대에는 정치의 구심점이 되어온 주(周) 왕실이 완전히 권위를 잃어 여러 나라들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싸움을 벌인 때임으로 이전에 강조되던 유가의 윤리도 ≪전국책≫에서는 별로 중시되지 않는다. 나라나 개인이나 자기의 목적이나 이익의 추구를 위하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얘기가 재미있고 인간의 정황이나 세사(世事)의 실상을 꾸밈없이 표현해 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예기들이 주는 교훈에 대하여는 간단히 몇 마디 해설만을 하고 자세한 설명은 피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얘기를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인간사에 대한 교훈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정론(政論)을 얘기하거나 윤리를 강조하는 긴 말의 인용은 ≪좌전≫보다도 ≪국어≫·≪전국책≫으로 갈수록 발달한다. 이러한 긴 이론의 전개에는 말하는 사람의 위엄이나 권위 같은 것이 필요함으로 그 문장이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 같다. ≪국어≫는 ≪좌전≫보다 이런 긴 말의 인용이 많고 ≪전국책≫은 또 ≪국어≫보다 더 많을 뿐만 아니라, 수사나 논리도 훨씬 발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좌전≫에는 긴 논설문이 드물었던 데 비하여 ≪국어≫·≪전국책≫으로 오면 오히려 더욱 긴 말을 인용한 논설문이 각 대목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국어≫·≪전국책≫은 ≪좌전≫ 같은 생동하는 맛은 줄어들고 있지만 산문으로서의 표현기능은 두드러진 발달을 보여주고 있다. ≪전국책≫에 이르러는 중국산문의 아름다운 세련미와 사물의 표현능력이 틀을 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사실(史實)을 빌어 허구적인 글을 쓰고 있어면서도 ≪국어≫는 ≪좌전≫보다 유가의 윤리 강조가 노골적이고, ≪전국책≫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유가사상에만 구애되지 않고 유사(游士)나 책사(策士)들의 활동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여러가지 정황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기사"의 글들을 놓고 볼 때 ≪서경≫과 ≪춘추≫를 계승한 중국산문은 ≪좌전≫·≪국어≫를 거쳐 ≪전국책≫에 이르러 그 문장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할 것이다.
☞ 입언(立言)의 글
"입언"의 글이란 명확한 논리의 표현을 필요로 하는 글이기 때문에, "기사"의 글을 논할 때 얘기한 것처럼 그러한 글들은 전국시대 말엽에 이르러서야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자(諸子)들은 동주(東周)의 겸병전쟁(兼倂戰爭)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회의 격변 속에서 제각기 서로 다른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 사상의 표현방식도 그 집단의 성격에 따라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자(諸子)들은 이처럼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글을 썼기 때문에 중국산문을 크게 발전시킬 수가 있었다. 중국의 문장이 지니는 여러 가지 수사기교나 함축적이고도 아름다운 표현기능 등이 모두 이 시기에 갖추어지게 된다.
① ≪논어(論語)≫
≪논어≫는 공자의 말과 그의 제자 또는 그때 사람들과의 대화 등을 적어놓은 것으로서 앞 뒤로 별 연관이 없는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공자의 제자 또는 그들의 제자들이 자신의 견문을 기록한 것이어서 모두 말이나 대화를 사실 그대로 옮겨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그 때문에 어떤 다른 고대의 문장보다도 당시의 구어체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글 뜻이나 논점은 분명하나 대부분의 말들이 아무런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성격 등이 잘 드러나 있고 대화가 생동하고 있어,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뜻을 담고 있으며, 긴 논설문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논어≫에는 그 말을 할 적의 분위기나 하는 사람의 감정의 흐름까지도 담기어져 있어, 거듭 읽을 수록 새로운 맛이 나고 다른 경전들보다도 재미가 있다.
≪맹자(孟子)≫·≪묵자(墨子)≫·≪장자(莊子)≫의 글은 "기사"의 글 중에서는 ≪국어≫에 짝지을 수 있을 정도로 ≪논어≫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문장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말을 곧바로 인용하면서도 형식이 길고 거창하며, 문장의 논리구성이 훨씬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셋이 전혀 서로 다른 성격의 내용과 문장으로 엮어져 있다.
② ≪맹자(孟子)≫
≪맹자≫는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도 인의(仁義)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유가의 윤리를 실천하려는 작자인 맹가(孟軻)의 정열 때문에 문장이 웅변적이고 격정적이며 선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문장의 논리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으나 글 자체에는 무리가 없고 깨끗하여 알기 쉬우면서도, 여러 가지 문제에 따라 글도 격류처럼 변화하며 기상이 활달하여 막히는 데가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비유와 해학의 원용은 재미까지 있게 하여 다른 어떤 문장보다도 큰 감화력을 지니고 있다.
③ ≪묵자(墨子)≫
묵가(墨家)를 대표하는 유일한 저술로서 그 창시자인 묵적(墨翟)이 지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묵자는 "천(天)"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兼愛)"를 주장하였다. 그가 그의 시대에 한때도 멈춘 일이 없었던 전쟁을 철저히 반대하는 비전론(非戰論)을 힘주어 전개한 것도 "겸애"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유가의 예악(禮樂)과 사치를 반대하고 근검절용(勤儉節用)을 강조하며, 무엇보다도 실천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묵자의 사상은 모두 당시의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문장도 서민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그 문체는 일상용어에 가까운 질박한 것이고, 문장에 부화(浮華)한 아름다운 표현이나 화려한 수식이 없다. 대체로 시골 목사(牧師)의 설교 같은 글이어서, 중국문장으로서는 잘 지은 글 또는 좋은 글이라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각 편이 "자묵자왈(子墨子曰)"하는 허두를 사용한 직접화법으로 이루어진 문장으로서, 모두가 묵자의 중요한 사상을 설교하는 논설이 전개되고 있어, 중국 산문사상 논변문(論辯文)의 선하(先河)라고도 할 것이다. 특히 ≪묵자≫ 중에는 <경(經) 상·하>·<경설(經說) 상·하>·<대취(大取)>·<소취(小取)> 등 6편의 논리학에 관한 내용이 담긴 부분도 있어, 중국논리학사에 있어서도 이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④ ≪장자(莊子)≫
≪장자≫는 도가(道家)를 대표하는 장주(莊周)의 저술이다. 장자는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도(道)"를 추구하며 현실적인 인간의 모든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지녔던 모든 제약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좋다 나쁘다 또는 아름답다 추하다는 따위의 판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릇된 것이므로, 그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한 욕망이나 의식을 모두 초월하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제자(諸子)들이 정치 사회의 문제를 얘기한 데 비하며 장자는 초현실적인 인간본연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청신(淸新)한 자극을 주었다. 그가 추구한 인간 정신과 사상의 완전한 자유는 중국사상의 경계를 더 한층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장자≫의 초현실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 경향은 그 문장에 있어서도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문제들을 아무 곳에도 매인 데가 없는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으로 논술하고 있어, 문학상으로도 새로운 서술의 기능을 발전시키고 있다. ≪장자≫에는 직언체(直言體)나 대화의 형식을 벗어난 본격적인 서술문(敍述文)이 두드리지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논리를 위하여 꾸며낸 얘기로 이루어진 "우언(寓言)"은 문학면으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장자≫의 특징이라 여겨진다. ≪맹자≫에도 간혹 우언이 눈에 띄지마는 ≪장자≫ 처럼 철저히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장자 스스로 자기 글에는 "우언이 10분의 9 정도"라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⑤ ≪노자(老子)≫와 ≪열자(列子)≫
≪장자≫ 이외에도 도가서(道家書)로 ≪노자≫와 ≪열자≫가 전해지고 있다. ≪노자≫는 공자보다도 선배인 노자가 지은 것이라 하나, 그 문장이 짧으면서도 구체적인 사상을 서술하고 있어 많은 학자들이 전국시대 중엽 이후에 나온 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상편(上篇) 도경(道經), 하편(下篇) 덕경(德經)으로 이루어진 81절(節)의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가의 금언집(金言集) 같은 성격의 것이어서 문학사상의 의의는 ≪장자≫에 훨씬 뒤진다. ≪열자≫는 공자와 맹자의 중간쯤 되는 시기에 산 열어관(列禦冠)의 작품이라 하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적어도 한대(漢代) 이후의 위작(僞作)임이 분명한 것이다.
⑥ ≪순자(荀子)≫
중국산문이 서술과 논설의 기능을 완비한 "기사"의 글인 ≪전국책≫과 맞먹는 저술로 ≪순자≫·≪한비자≫·≪여씨춘추≫가 있다. ≪순자≫는 순경(荀卿)의 저술로써 전국말의 현실주의화한 일파의 유가사상을 대표한다. 순자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있어 이상론만을 고집하지 않고 역사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이해하여, 맹자와는 달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고 예교를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의 문장도 냉정하고 화려한 수사보다는 뜻의 창달(暢達)에 힘썼으며, 논설기능을 가일층 발전시키어 그의 글은 논리가 정연하고 주장이 분명한 위에 전체적인 구성에도 짜임새가 있다. "입언"의 글은 여기에서 본격적인 논설의 전개를 보게 되며, 후세 논설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천론(天論)>·<성악(性惡)> 같은 편은 고대 논설문의 규범이라 할만한 것이다.
⑦ ≪한비자(韓非子)≫
≪한비자≫는 한비의 저술로 법가사상을 대표한다. 한비는 순자의 현실주의적 유가사상도 흡수한 위에 도가사상도 공부하여 법가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그의 문장도 순자처럼 논리 정연하고 뜻 표현에 충실한 논설문을 쓰면서도 도가의 상상력까지도 도입하여 순자와는 달리 우미(優美)한 글로 많은 고사와 우언도 동원하고 있다. 곧 날카로운 현실감각에다 풍부한 상상력까지 겸비하여, 조리있고 분명하면서도 힘있고 날카로운 위에 수사에도 소홀하지 않아 아름다움까지도 느끼게 한다. ≪순자≫에서 한 발자국 더 발전한 산문이라 할 것이다.
⑧ ≪여씨춘추(呂氏春秋)≫
≪여씨춘추≫는 진시황의 승상을 지낸 여불위(呂不韋)가 천하통일 직전에 자기 문하의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저술 편집케 하여 이루어진 책이다. 중국의 고적 중 시종 완전한 체계를 갖춘 최초의 저술이다. 유가사상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나 잡다한 이전의 제자사상을 총합한 것이어서, 문장도 제자(諸子)들에 의하여 닦여진 기능을 종합한 듯한 것이다. 문장이 장중하고 광박(廣博)하며 미려하고도 걸리는 곳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곧 조리가 분명하고 논리도 일관되어 있어 이전의 글보다 뜻이 똑똑하여 읽기가 쉽다. 중국산문의 완성된 형태를 보는 느낌이다.
다만 이상에서 논한 제자(諸子)의 글들은 거의 모두가 작자로 알려진 사람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며, 모두 그의 제자 또는 그들의 제자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또 후세 사람들의 손질이 많이 가하여진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그 작자의 사상이 담기어 있는 것은 그 중의 일부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