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덩샤오핑의 ‘실사구시’와 한국 이명박의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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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12-22 02:05|본문
덩샤오핑의 ‘실사구시’와 이명박의 ‘실용주의’
MB정부의 ‘실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실용이 도대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 하는 회의감이 든다. 중국의 지인들과 MB의 실용주의에 대한 토론을 할 때에, 누군가 그것을 덩샤오핑의 ‘실사구시(实事求是)’에 비견하였다. 그러나 실용주의와 실사구시는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실사구시는 ‘사실로부터 진실을 구한다’는 뜻이다. 덩샤오핑(邓小平)의 실사구시는 지향이 분명하였다. 일단 ‘먹고살자’는 것이다. 배고파 죽겠는데 거창한 이론이고 이념이고 다 필요 없고, 당장 먹고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인민을 배부르게 만드는 일이면 뭐든지 했다. 안팎에서 수정주의라고 부르든 말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유래없는 말조차도 부끄럼없이 만들어내고, 개방특구를 과감하게 열어놓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였다. 모두가 먹고 살아보자고 한 짓이었다. 그것만이 진리였고, 그것이 바로 사실이었다. 그에 앞서 ‘마오쩌둥이 결정한 정책과 지시는 무조건 옳다’는 양개범시(两个凡是)의 주장에 맞서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척도(实践是检验真理的唯一标准)’라는 너무도 유명한 구호를 만들어냈다. 중국식 실사구시의 어원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원칙은 있었다. 바로,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一个中心, 两个基本点)으로 정리되는 이 원칙에는 경제발전을 중심에 놓되, 개혁개방과 4가지 기본원칙을 양 날개로 달았다. 4가지 기본원칙에는 ‘공산당의 영도’가 포함된다. 1989년 천안문 시위 진압에 대하여 말이 많지만, 어쩌면 거기에서 우리는 덩샤오핑이 추구한 실사구시의 ‘속뜻’을 분명히 목격할 수 있었다. 급진보다는 안정이 중요하고, 안정의 중심에는 공산당이 있다는 기본 개념이다. 옳든 그르든, 실사구시에는 이처럼 목표가 분명하고 철학이 녹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실용이 된다.
◆ 실용을 버리고 원칙을 찾아라!
MB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의 목표는 무엇이며,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철학은 무엇인가? 멀리 볼 필요도 없이, 바로 엊그제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들어보자. 이 정부의 실용에 대해서는 이미 기대를 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다. 살펴본즉, ‘누구한테도 욕 얻어먹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 - MB는 그것을 실용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상인(商人)의 자세다. 그것도 ‘잔뜩 주눅든’ 상인의 자세다. 철학의 빈곤이 드러나 보이고, 요즘식대로 이야기하자면 ‘개념 미탑재’다.
조화롭게 이 편 저 편 모두 다독거려야 할 때가 있고, 분명하게 철학을 드러내 보여야 할 때가 있다. MB는 작금 전개되는 상황을 전자(前者)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후자(候者)에 서야할 시점이다. 김정일의 죽음 앞에 전쟁불사, 북진통일을 외치자는 말이 아니다. 김정일 생전에 당할 만큼 당하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남북관계다. 독재자의 말로를 똑똑히 지적하면서, “앞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북한이 살 길이고, 그러한 노선전환의 입장과 태도를 분명히 한다면 남한은 적극적으로 도와줄 용의가 있다”, 이렇게 똑부러지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역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다면 바보다. 그렇더라도, 이리 해도 불만, 저리 해도 불만인 사람들이라면, 그냥 분명하게 갈 길을 가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유연한 곡선의 리더십이 아니라 강력한 직선의 추진력이 필요한 때다. 한반도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나갈 수도 있는 천재일우의 시기에 이 무슨 기생오라비 같은 포용질이란 말인가. 어정쩡 양다리 걸치는 격으로 “북한 주민을 위로한다”니, 도대체 뭘 위로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더 웃기는 실용 팔푼이들이 있다. 저쪽에서는 입도 벙긋 안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대규모의 식량지원’ 운운하는 것이다. 이른바 보수언론이라는 데가 그렇다. 그리하여 뭔가 융통성 있게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굶주리는 동포를 살리기 위한 식량지원을 다른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계기 정도로 여기는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틀려먹었다. 저쪽에서 달라고 하면 그때에 가서 머리 맞대고 규모와 방법을 논의하면 된다.
재삼 뒤집어보건대 이 정부의 실용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실용인지 알 수가 없어, 때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숨기는 보신(保身)용 실용이라고 밖에는 달리 평가할 말이 없다.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은 임기이지만, 그 1년이 너무도 중요한 1년인지라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하여 우이독경 식으로라도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실용을 버리고 원칙을 찾는 2012년이 되길 바란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안개 속을 걸어가게 될 북한의 정세 속에서, 어느 누군가가 ‘개혁개방(혹은 투쟁)을 하면 남한이 도와줄 것’이라는 확고한 변혁의 신념을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bitdori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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